야반도주와 밀사의 육탄 충돌
불빛이 모퉁이를 돌며 시우의 발끝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히익!'
한시우는 찰나의 순간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품속에 숨겨둔 팽가 특제 만두의 뜨끈한 열기가 도포 자락을 넘어 가슴팍을 지졌지만, 지금 그 뜨거움을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밤 보초 박칠성의 묵직한 가죽 장화 소리가 귓가를 때렸고, 그가 들고 있는 야간 전등의 노란 불빛이 어둠을 찢으며 시우가 서 있는 골목길 구석을 향해 뱀처럼 뻗어오고 있었다.
여기서 걸리면 끝장이다. 문파에 선포된 ‘대사형 수련 방해 금지령’을 어기고 밤중에 몰래 개구멍으로 빠져나와 주방 만두나 훔쳐 먹던 파렴치한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날 터였다. 사제들의 맹목적인 눈빛이 분노로 바뀌어 자신을 청명산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는 끔찍한 미래가 시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거기 누구냐! 대사형의 처소 방향에서 기척이 들렸다!”
박칠성의 날카로운 사자후가 골목길을 울렸다. 일류 보초 무사답게 미세한 옷깃 스치는 소리마저 잡아낸 것이 분명했다. 전등 불빛이 시우의 발끝을 비추기 직전, 시우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무공도 없고 경공도 없는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술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시우는 눈을 질끈 감고, 옆에 펼쳐진 가파르고 어두운 산비탈 가시덤불 속으로 몸을 냅다 날렸다.
“우와아악!”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한 비명이 목구멍 안에서 피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대로 산비탈 아래로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한 시우의 몸뚱이는 중력의 무자비한 법칙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뾰족한 나뭇가지가 도포를 찢고 가시덤불이 뺨을 사정없이 긁고 지나갔다. 꼬리뼈가 커다란 돌부리에 부딪힐 때마다 시우는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극심한 통증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시우가 필사적으로 지켜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품속에 든 만두 두 알이었다. 양손으로 가슴팍을 꼬옥 쥔 채 웅크린 자세로 구르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사냥꾼을 피해 굴러떨어지는 산짐승과 같았다.
시우의 길치 속성은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자신이 어디로 구르는지,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오직 살려달라는 본능 하나만으로 몸을 웅크린 채 가속도를 더해갈 뿐이었다. 이것이 훗날 사제들에게 ‘대지의 굴곡을 따라 신형을 숨기는 귀곡보법의 변형’으로 기록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
한편, 시우가 굴러떨어지고 있는 산비탈 아래, 거대한 바위 그늘 어둠 속에는 한 사내가 숨을 죽이고 숨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독고랑. 청명검종의 지하 감옥에 갇힌 야심가 오진태 장로의 밀사였다. 회색 야행복을 입고 쥐새끼처럼 날렵하게 생긴 그는,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도주 비전 신공’을 마스터한 일류 도주 전문가였다. 그의 가슴팍에는 오진태가 외부 세력인 철검문과 혈교에 청명검종을 전복시키자고 제안하는 극비 역모 밀서가 소중하게 품어져 있었다.
독고랑은 청명산 초입의 삼엄한 경비 태세를 바라보며 차갑게 비웃고 있었다.
‘위지관 그 멍청한 늙은이가 대사형을 지킨답시고 보초들을 사방에 깔아두었으나, 내 야간 도주보 앞에서는 한낱 어린아이의 장난일 뿐이다. 이 밀서만 안전하게 전달하면 청명검종은 물론이고 저 가짜 대사형 한시우의 목도 날아가겠지.’
독고랑은 가볍게 신형을 움직여 탈출 타이밍을 잡으려 했다. 일류 무사로서 그의 오감은 극도로 예민하게 열려 있었고, 주변의 미세한 살기나 기류의 변화를 완벽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머리 위 산비탈에서 기이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쿠구구구구!”
돌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하고 둔탁한 물체가 산비탈의 수풀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며 내려오는 소리였다. 독고랑은 본능적으로 살기 감지술을 펼쳤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 굴러오는 정체불명의 물체에서는 단 1푼의 살기도, 적의도, 심지어 내공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독고랑의 안광이 급격히 흔들렸다.
‘기척이 아예 없다니? 살기를 완벽하게 갈무리한 반박귀진의 경지인가? 설마…… 청명의 대사형 한시우가 나의 탈옥을 미리 예측하고 숨통을 죄러 온 것인가!’
공포가 독고랑의 전신을 지배했다. 일류 무사들의 고질병인 과도한 무협적 상상력이 작동한 것이다. 독고랑은 서둘러 야간 도주보를 펼치며 옆으로 신형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시우의 구르는 각도는 인간의 지성으로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돌부리에 부딪혀 튕겨 나가고, 가시덤불에 걸려 회전 속도가 불규칙하게 변하는 시우의 궤적은 물리학적 무질서의 극치였다. 피하려던 독고랑의 발걸음이 오히려 시우가 튕겨 나가는 낙하 지점과 정확히 일치해 버렸다.
“어, 어째서 피할 수 없는 거지?!”
독고랑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가시덤불을 뚫고 날아온 시우의 묵직하고 뻣뻣한 엉덩이와 등짝이 독고랑의 명치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콰아앙!
무공을 익힌 무인들은 타격을 받을 때 기를 운용해 신체를 유연하게 만들어 충격을 흘려보낸다. 하지만 한시우는 단 1g의 내공도 없는 순도 100%의 범인이었다. 즉, 그의 몸은 기의 흐름이 전혀 없는, 그저 단단하고 무거운 ‘돌덩어리’ 그 자체였다.
그 무방비하고 단단한 범인의 육체 충돌은 일류 무사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으로 작용했다.
“끄아학!”
독고랑의 갈비뼈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졌고, 명치가 함몰되었다.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식하고도 둔탁한 물리적 타격에 독고랑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피를 토하며 바닥에 자빠졌다.
시우 역시 충격의 반동으로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다 거꾸로 처박혔다.
“아이고, 나 죽네…… 허리 부러졌네…….”
시우는 전신을 관통하는 통증에 신음하며 본능적으로 바닥을 짚었다.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손을 버둥거리던 중, 그의 손바닥에 거칠고 단단한 가죽 종이의 감촉이 닿았다. 독고랑이 충격으로 명치를 움켜쥐며 떨어뜨린 오진태의 극비 역모 밀서였다.
시우는 머릿속이 몽롱한 상태에서 그것이 팽가가 만두를 싸준 종이 포장지인 줄 착각했다.
‘내 만두 포장지가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네…… 잃어버리면 안 되지.’
시우는 품속의 만두가 무사한지 확인한 뒤, 바닥에서 주운 가죽 밀서를 품속 깊은 곳에 꽉 쥐어 넣었다. 그리고 아픈 허리를 붙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바로 그때, 산비탈 위에서 수많은 횃불의 붉은 불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쪽이다! 대사형께서 가시덤불 속으로 몸을 날리셨다!”
“대사형! 대사형!”
박칠성의 무전 소리를 듣고 달려온 혁무진과 전담 마당쇠, 그리고 수십 명의 사제들이 횃불을 들고 들이닥쳤다. 그들이 비춘 횃불 불빛 아래, 가시덤불을 온몸으로 관통해 옷자락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입가에 만두 기름을 묻히고 꼿꼿하게 서 있는 대사형 한시우의 장엄한(?) 실루엣이 드러났다.
사제들은 일제히 경악 어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시우의 발끝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청명검종의 최정예 밀사이자 일류 도주 전문가인 독고랑이 명치가 함몰된 채, 바닥에 쓰러져 시우의 발끝을 보며 피를 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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