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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은 천재와 꿀잠 금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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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하의 청풍검 끝이 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어지며, 대연무장에 웅장한 침묵이 감돌았다.


바람조차 멈춘 듯한 고요 속에서, 백운하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무릎이 단단한 청석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그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멍하니 시우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횃불 빛을 받아 애처롭게 빛났다.


“……졌습니다.”


백운하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한마디는 대연무장에 모인 수백 명의 사제들의 심장에 직격타를 날렸다.


“대사형의 넓고 깊은 도(道) 앞에, 소인의 얕은 검술이 참으로 부끄럽사옵니다! 검을 뽑지도 않으시고, 오직 발끝의 공명과 손끝의 무형지기만으로 소인의 검로를 완벽하게 봉쇄하시다니…… 참으로 지존의 경지이십니다!”


백운하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가슴속에 도사리고 있던 오만함과 천재로서의 자존심은, 시우가 보여준 기상천외한 ‘다리 떨기’와 ‘비틀거림’의 충격 속에서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백운하의 눈에는 시우의 그 찌질하고 나약한 몸짓들이, 자신을 가엽게 여겨 단 한 번의 타격도 가하지 않고 스스로 자멸하게 만든 ‘자비로운 대협의 가르침’으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비무대 위의 한시우는 지금 감격할 여유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왜 혼자 질질 짜면서 대가리를 박고 난리야? 그보다…… 진짜 터진다! 방광이 한계 돌파를 넘어서 우주 폭발을 일으키기 직전이라고!’


시우는 아랫배가 찢어질 듯한 고통에 전신을 바르르 떨었다. 괄약근에 준 힘이 0.1푼이라도 풀리는 순간, 청명검종 대사형의 위엄은커녕 전 무림의 웃음거리로 역사에 길이 남을 대참사가 일어날 판이었다. 시우는 이 참혹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차가운 눈빛으로 백운하를 내려다보았다. 사실은 너무 아프고 지려버릴 것 같아서 얼굴 근육이 완전히 굳어버린 표정이었다.


“……알았으면 되었다.”


시우는 목구멍을 쥐어짜며 가장 묵직하고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길게 말할 시간도 없었다. 한 글자라도 더 내뱉었다간 아랫배의 압력이 흔들릴 테니까.


시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무대 아래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승리의 기쁨에 취해 관중을 둘러보거나 검을 치켜들었겠지만, 시우는 오직 뒷간(화장실)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기묘할 정도로 꼿꼿했고, 발걸음 하나하나가 태산처럼 무거웠다. 괄약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필사의 보폭 조절이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철면장로 위지관은 가슴을 쥐어짜며 오열했다.


“보아라! 저 고결한 뒷모습을! 승리의 영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직 도의 본질만을 쫓아 묵묵히 걸어가시는구나! 참으로 우리 청명검종의 등불이로다!”


“대사형! 대사형!”


사제들의 폭발적인 연호 소리가 청명산을 뒤흔들었다. 진소희 사매는 눈을 반짝이며 품속의 공책에 붓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대사형 어록 제2장: 승리는 찰나의 먼지일 뿐, 지존은 검을 거둔 뒤에도 오직 묵묵히 도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그 소란을 뒤로한 채, 시우는 연무장 구석의 어두운 수풀을 지나 뒷간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역사적인 방출의 순간, 시우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살았다…… 진짜 조상님 뵐 뻔했네…….’


지독한 위기를 넘긴 시우는 뒷간 벽에 머리를 기댔다. 방광은 평화를 찾았으나, 마음은 심해보다 무거웠다. 낙제해서 쫓겨나기는커녕, 문파의 수석 천재 백운하마저 무릎 꿇린 불세출의 괴물 대사형으로 완전히 박제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퇴직금 50냥을 받아 고향 감자밭으로 돌아가려던 그의 소박한 은퇴 계획은 이제 안개처럼 흐릿해지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청명각 앞마당은 평소와 다른 기묘한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우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처소에서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처소 주변의 모든 길목에 제자들이 꼿꼿한 자세로 서서 주변을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날카로운 눈매의 노력파 사제 혁무진은 시우의 방문 앞 3보 거리에 검을 쥐고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혁 사제? 거기서 뭐 하냐?”


시우가 조심스럽게 묻자, 혁무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전신을 굳히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대사형! 안심하고 정좌 수련에 드십시오! 위지관 장로님의 명에 따라, 오늘부로 문파에 ‘대사형 수련 방해 금지령’이 선포되었습니다!”


“뭐? 수련 방해 금지령?”


시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혁무진은 맹목적인 눈빛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대사형께서 어제 비무대 위에서 보여주신 대지 공명의 경지는 전신 영기를 극한으로 소모하는 고행임이 밝혀졌습니다! 장로님께서는 대사형의 고결한 명상을 방해하는 그 어떤 소음이나 접근도 허용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대사형이 처소에 머무시는 동안, 저희 사제들이 24시간 교대로 철통 경호를 설 것입니다!”


시우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원래 시우가 위지관 장로에게 ‘수련 중에는 깨우지 말라’고 꼼수를 부렸던 것은, 방안에서 마음껏 낮잠을 자고 야반도주할 틈을 엿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장로와 사제들은 이를 ‘우주의 안정을 위한 고도의 명상 수련’으로 오해하여, 아예 시우의 방 주변에 삼엄한 군사 바리케이드를 쳐버린 것이다.


이것은 완벽한 감금이었다. 낮잠을 잘 수는 있게 되었지만, 방밖으로 한 걸음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황당한 족쇄가 채워진 셈이었다.


‘미치겠네…… 진짜 도망칠 틈이 아예 없잖아!’


시우는 침대에 엎어져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사제들의 과잉 충성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시우가 바람을 쐬려고 창문만 살짝 열어도, 지붕 위에서 대기하던 보초 사제가 내려다보며 “대사형! 기류의 흐름에 이상이 있사옵니까!”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감금의 하루가 지나고, 밤 깊은 자정이 찾아왔다.


시우의 뱃속에서 웅장한 배꼽시계가 울렸다. 쪼르륵 소리가 방안의 고요를 깨뜨렸다. 하루 종일 제자들의 감시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탓에, 극심한 공복감이 밀려왔다. 시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오직 하나, 주방장 친구 팽가가 밤마다 남겨두는 기름지고 따뜻한 ‘팽가 특제 만두’였다.


‘배고파 죽겠다…… 만두…… 만두를 먹어야 해.’


시우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문가로 다가갔다.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니, 달빛 아래에서 혁무진 사제가 여전히 눈을 부릅뜬 채 파수꾼처럼 서 있었다. 저 무식하고 우직한 녀석에게 “나 만두 먹으러 간다”고 했다간, 분명 “대사형의 위장 수련을 위해 소인이 직접 만두를 대령하겠습니다!”라며 문파 전체를 깨워 소란을 피울 게 뻔했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보초들의 맹목적인 눈길을 피해 음지에서 움직여야 했다.


시우는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가 잡역부 시절, 장로들의 눈을 피해 밤마다 야식을 먹으러 가기 위해 먼지 쌓인 바닥을 파놓았던 작은 개구멍(도주로)이 숨겨져 있었다.


시우는 도포 자락을 허리에 단단히 묶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개구멍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기맥이 막힌 범인의 몸뚱이였기에 기어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쥐새끼 같았지만, 생존을 위한 움직임만큼은 날렵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죽이며 간신히 처소 뒷벽 밖으로 빠져나온 시우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마침 마당 한구석에서 몽당빗자루를 들고 야간 청소를 하던 마당쇠가 개구멍에서 튀어나오는 시우의 엉덩이를 목격했다.


마당쇠는 빗자루를 멈추고 멍하니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들통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러나 마당쇠는 이내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이고, 오늘 밤하늘에 달이 참 밝네. 내 눈이 침침해서 짚더미 속에서 기어 나오는 대협의 그림자를 본 모양이여. 대사형께서 문파의 야간 안위를 위해 몸소 개구멍으로 은밀 시찰을 도시는 깊은 뜻을, 이 미천한 머슴이 어찌 방해하겠는가.”


마당쇠는 일부러 헛기침을 크게 하며 반대편 마당으로 걸어가 버렸다. 시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속으로 외쳤다.


‘마당쇠 아주머니! 아니, 마당쇠 형씨! 평생 은혜는 잊지 않을게!’


위기를 넘긴 시우는 어둠을 틈타 주방을 향해 달렸다. 귀곡보법의 흔적마저 느껴지는 비틀거리는 도망 끝에, 마침내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문파 주방에 도달했다.


주방 문을 살며시 열자, 뚱보 주방장 팽가가 둥글둥글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갓 쪄내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얗고 통통한 특제 만두 접시가 들려 있었다.


“왔냐, 시우야? 내 오늘 너 하루 종일 갇혀서 굶는 거 보고 특별히 고기랑 야채를 듬뿍 넣어 빚어두었다.”


“팽가야……! 너밖에 없다, 진짜!”


시우는 눈물을 흘리며 만두를 입에 쑤셔 넣었다. 쫄깃한 만두피 속에서 터져 나오는 육즙의 고소함이 전신에 퍼지자, 하루 동안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시우와 팽가는 주방 구석에 앉아 소리 없이 만두를 나누어 먹으며, 은퇴 후 고향에서 만두 가게를 동업하자는 비밀 서약을 다시 한번 다졌다. 이 소박하고 따뜻한 야식 동맹이야말로 시우가 끔찍한 무림 생활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자, 남은 건 도포 속에 잘 숨겨서 가라.”


팽가가 남은 만두 두 알을 종이에 싸서 시우의 품속에 넣어주었다.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처소로 복귀하기 위해 주방을 나섰다.


만두를 쟁취했다는 승리감에 취해, 시우는 어두운 주방 뒷길 골목을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이제 개구멍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기만 하면 완벽한 밤의 승리였다.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 소나무 숲길 모퉁이 너머에서, 어둠을 가르는 날카로운 노란색 불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벅, 벅, 벅……”


가죽 장화를 신은 무거운 발소리와 함께, 밤 보초꾼 박칠성의 손등등 불빛이 시우가 서 있는 골목길 정면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박칠성은 밤눈이 매우 밝은 일류 보초 무사였다. 불빛이 이 어두운 골목을 비추는 순간, 품속에 만두를 품고 기어 다니던 대사형의 찌질한 야식 탈출 현장이 백일하에 드러날 판이었다.


시우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불빛이 모퉁이를 돌며 시우의 발끝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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