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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나귀와 적토마의 대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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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바퀴가 청명산 경계를 벗어나 거친 황토길로 접어들자, 시우는 품속의 은자 주머니를 꽉 쥐었다.


‘남궁 영지인지 남궁 가문인지 하는 괴물들이 도사린 곳으로 이대로 끌려갈 순 없다. 어떻게든 중간에 도망쳐야 해.’


황실에서 내어준 초호화 가마 안에서, 한시우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가마 밖에서는 금위군 대장 강백과 근위대원 수십 명이 철통같은 경호를 펼치며 웅장하게 대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가 어찌나 살벌한지, 가마 창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공기마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도망칠 틈이 아예 없었다. 이대로 대로를 타고 남궁세가의 영지에 당도하는 순간, 시우의 목숨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천년 영맥을 뚫고 검선의 비전까지 해독했다는 가짜 명성이 진짜 고수들의 예리한 안광 앞에서 단 1초 만에 뽀록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시우는 쉰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목구멍을 쥐어짜며, 가마 안쪽에 비치된 나무판자(필담용 석판)를 꺼내 들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분필을 쥐고 다급하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나는 이토록 호사스러운 황실 가마를 탈 자격이 없소. 고향 백성들의 피땀과 눈물이 서린 청명검종의 ‘감자 수송 마차’를 타겠소. 그리고 내게 가장 병들고 느린 나귀 한 마리를 준비해 주시오.]


시우는 밖을 향해 석판을 툭툭 쳤다. 가마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시우의 전담 마당쇠와 마굿간 조수 곽칠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석판에 적힌 글을 읽은 두 사람의 동공이 동시에 세차게 흔들렸다.


곽칠구는 마굿간을 관리하는 순박하고 충성심이 지나친 소년이었다. 칠구는 시우의 글씨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아…… 대사형! 역시 대사형이십니다!’


칠구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무협 클리셰에 찌든 고도의 뇌내망상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로를 타고 가면 남궁 영지 회합을 방해하려는 혈교의 자객들이 가장 먼저 황실 가마를 습격할 터. 대사형께서는 일부러 가장 초라하고 허름한 감자 수송 마차를 타시어 적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병든 나귀로 위장하여 적들이 방심한 틈을 타 천천히 우회하시려는 고도의 기만책(欺瞞策)을 쓰시는구나! 과연 천하의 기맥을 읽으시는 선지자다운 안목이로다!’


곽칠구는 가슴을 쥐어짜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과잉 충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어찌 대사형께 진짜 병든 나귀를 드릴 수 있겠는가! 만약 자객들이 습격했을 때 대사형께서 대피하셔야 하거늘, 병든 나귀가 다리를 절면 대사형의 옥체에 흠집이 날 터! 내 비록 겉보기에는 가장 한심하고 병든 나귀처럼 보이되, 내부에는 황실에서 하사받은 전설의 명마 ‘적토마’의 피를 지닌 괴물을 준비하리라!’


곽칠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는 시우를 향해 은밀하게 전음(사실은 속삭임)을 보냈다.


“대사형, 깊은 뜻을 헤아렸사옵니다. 소인이 완벽하게 위장된 ‘병든 나귀’와 감자 마차를 준비하겠으니,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시우는 칠구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묘한 불안감을 느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저 캑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느릿느릿 걸어가는 나귀 마차를 타면, 밤중에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품속의 은자 백 냥 주머니를 들고 숲속으로 유유히 야반도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을 뿐이었다.


잠시 후, 황실 가마가 멈춰 서고 시우는 마차로 자리를 옮겼다.


연무장 구석에서 굴러다니던, 말똥 냄새와 썩은 감자 냄새가 찌든 허름하기 짝이 없는 ‘감자 수송 마차’였다. 그리고 그 마차의 앞에 서 있는 ‘나귀’를 본 순간, 시우는 미세하게 이마를 찌푸렸다.


나귀의 외관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회색빛 가죽은 군데군데 털이 빠져 있었고, 귀는 비정상적으로 길었으며, 다리는 흐물흐물하게 풀려 있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귀의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의 화력이 어찌나 강한지, 바닥의 흙먼지가 소용돌이치며 쓸려 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녀석의 목덜미 아래로 흐르는 땀방울이 기이할 정도로 붉은 핏빛을 띠고 있었다.


‘……나귀가 왜 저렇게 핏빛 땀을 흘리지? 요즘 나귀들은 다 저런가?’


무공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시우는 그저 만성 피로와 요추 통증 때문에 깊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저 이 느려 터진 짐승이 자신을 이송로의 가장 외진 곳으로 천천히 데려다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시우는 마차의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고삐를 손에 쥐었다. 옆에서 에스코트를 준비하던 금위군 대장 강백이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허리를 숙였다.


“대사형, 정말 대로를 벗어나 저 험난한 청명산 뒷길 절벽 산로로 향하시겠습니까? 그곳은 경사가 가파르고 바위가 많아 마차가 구르기 쉬운 위험한 구역이옵니다.”


시우는 석판에 다급하게 글을 써서 보여주었다.


[수행은 원래 험난한 법이오. 내 친히 이 험로를 통해 자연의 이치를 닦겠소. 그러니 근위대원들은 대로를 지키며 천천히 따라오시오.]


실제로는 경비병들이 자신을 미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얄팍한 꼼수였다. 하지만 강백은 가슴을 치며 오열하듯 감탄했다.


“아아! 대사형! 스스로 험로를 택하시어 적들의 매복을 유인하고, 저희 금위군의 안전을 도모하시다니! 참으로 눈물겨운 배려이십니다! 대사형의 뜻에 따라 저희는 대로를 수호하며 외곽에서 엄호하겠습니다!”


“캑! 캑캑! (아니야, 따라오지 말라고!)”


시우가 쉰 소리를 내며 손사래를 쳤지만, 강백은 이미 눈물겨운 숭배의 필터에 갇혀 부하들을 이끌고 대로 방향으로 신속하게 흩어졌다. 마침내 시우의 주변에는 곽칠구와 허름한 감자 마차, 그리고 정체불명의 회색 나귀만이 남게 되었다.


“대사형,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소인이 준비한 녀석은 겉보기엔 저래도 아주 끈기가 대단합니다!”


곽칠구가 손을 흔들며 순진하게 웃었다. 시우는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는 안도감에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마차 고삐를 가볍게 흔들었다.


“이랴.”


그 소박한 쉿 소리가, 청명산 전체를 뒤흔들 대폭주의 도화선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툭.


고삐 가죽이 나귀의 등덜미를 가볍게 때리는 순간, 기이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부드드득!


나귀의 등덜미를 덮고 있던 회색 가죽이 사정없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밀가루 풀칠과 싸구려 실로 대충 기워 붙여놓았던 위장용 당나귀 가죽이,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만한 열기와 근육의 팽창을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터져 나간 것이다. 회색 가죽 조각들이 나비처럼 허공으로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 누더기 가죽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집채만 한 크기의 붉은색 야수였다.


온몸에 불꽃을 머금은 듯한 찬란한 진홍빛 털, 강철처럼 단단하게 다져진 네 다리, 그리고 황금빛으로 이글거리는 매서운 안광. 황실의 보물고에서 보관되던 전설의 야생마이자, 하루에 천 리를 달린다는 파멸의 폭주마 ‘적토마(赤兎馬)’가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히히히히힝—!


적토마가 하늘을 향해 웅장하게 포효했다. 녀석의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기류가 마차 바닥의 흙먼지를 폭발시키듯 날려 보냈다.


시우는 찻잔을 들고 졸다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동공을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었다.


‘……나귀가 왜 저렇게 빨갛게 변해? 저거 나귀 아니잖아! 호랑이보다 더 무섭게 생겼잖아!’


경악할 시간조차 없었다. 본색을 드러낸 적토마는 자신을 묶고 있던 감자 마차의 나무 멍에를 가볍게 털어내더니, 청명산 뒷길 절벽 산로를 향해 대지를 박차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적토마의 발굽이 청석 바닥을 때릴 때마다 불꽃이 튀었고, 허름한 나무 판자로 대충 짠 감자 마차는 가속도를 견디지 못해 좌우로 사정없이 요동쳤다. 마차 뒤편에 실려 있던 비상식량 감자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자객들을 저격하는 포탄처럼 날아다녔다.


“으, 으아아아아—! 캑! 캑캑!”


시우는 요추 디스크가 끊어지는 듯한 충격과 함께 몸이 허공으로 붕괴되는 기분을 느꼈다. 마차 바닥에서 구르며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마차 고삐와 적토마의 진홍빛 말갈기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살려달라는 처절한 비명 소리가 그의 쉰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캑! 캑캑! 끄어어억—!”


그것은 인간의 소리가 아닌, 흡사 굶주린 괴수가 전장을 향해 포효하는 무서운 살기(殺氣) 어린 신음 소리 같았다.


적토마는 평생 강력한 강자만을 인정하며 황실의 그 어떤 일류 장수도 태우지 않으려 했던 오만한 신마(神馬)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등 뒤에 매달린 인간은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살기 제로 신체’의 상태이면서도, 자신의 폭주하는 내력 진동을 아무런 저항 없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게다가 목덜미를 움켜쥔 저 손아귀의 장력은 어찌나 단단한지(사실은 떨어지면 즉사한다는 공포 때문에 쥐가 날 정도로 꽉 쥔 것이다), 갈기가 뽑혀 나갈 정도로 묵직한 힘을 풍기고 있었다.


여기에 시우의 처절한 쉰 비명 소리가 적토마의 귀를 때렸다.


“캑! 캑캑! 끄어억!”


적토마의 영리한 머릿속에서 기이한 오역의 회로가 작동했다.


‘아아! 이 지존은 지금 내게 ‘더 빨리 달려라! 이 정도 속도로는 내 무학의 경지를 담아내지 못한다!’라며 준엄한 사자후를 내뿜고 계시는구나! 내 전력을 다해 이 지존의 기개에 보답하리라!’


두우우우웅—!


적토마의 전신에서 핏빛 영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적토마가 가속도를 더하며 청명산 뒷길 절벽 산로의 가파른 경사면을 향해 수직으로 돌진했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른지 마차 바퀴가 공중에 붕 떴고, 시우의 몸은 바람의 저항을 이기지 못해 마차 뒤편으로 연처럼 펄럭이며 공중에 붕 떠올랐다.


“끄어어어어억—!”


시우는 전신으로 불어닥치는 가공할 바람에 뺨을 사정없이 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올랐고, 낡은 도포 자락은 사정없이 찢겨 가시나무에 걸려 날아갔다. 은자 백 냥 주머니가 든 도포 안쪽 주머니가 찢어질까 봐, 그는 한 손으로 갈기를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품속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그 모습은 멀리서 보기에, 폭주하는 전설의 명마 위에서 단 한 손만으로 고삐를 쥔 채 허공을 날아다니는 신선(神仙)의 신형과 같았다.


산로 주변의 가시덤불과 바위들이 미친 속도로 뒤로 스쳐 지나갔다. 길치 본능의 우회 속성이 발동했는지, 적토마는 정상적인 이송 경로를 완벽하게 벗어나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는 험난한 절벽 산로 깊은 곳으로 대폭주를 이어갔다.


적토마가 시우를 태우고 절벽 산로를 날아가듯 질주하자, 시우는 마차 고삐를 쥔 채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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