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굴한 눈물과 대협의 거룩한 비애
청명검종 일주문 앞은 이른 아침부터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황실의 황금빛 문양이 수놓아진 초호화 가마와 남궁세가의 청색 깃발을 든 무사들이 길게 늘어섰고, 그 뒤로는 청명현 백성들과 사제들 무려 1만 명이 운집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화려하고도 장엄한 배웅 행렬의 한가운데로, 한시우는 최두팔이 미는 임시 침상 의자에 누운 채 실려 나왔다. 어젯밤 자객 독고패를 제압하느라(?) 지푸라기 베개를 내던진 후유증으로 전신 근육통이 극에 달해 있었고, 요추 디스크는 찌릿찌릿 비명을 질렀다. 게다가 목구멍은 완전히 가버려 캑캑거리는 쉰 소리 외에는 단 한 마디도 내뱉을 수 없는 완벽한 실성 상태였다.
하지만 시우의 품속 깊은 곳에는 장만복에게 받은 묵직한 ‘은자 백 냥 주머니’가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시우는 멍하니 일주문 너머로 드리운 남궁 영지의 거대한 먹구름을 바라보며 속으로 절규했다.
‘미쳤어, 진짜 미쳤다고! 남궁 영지 회합이라니! 거기 가면 무림맹 감사단에 남궁세가 진짜 고수들까지 바글바글할 텐데, 나 같은 무공 제로 잡역부가 가면 1초 만에 사기극이 들통나서 참수당할 게 뻔하잖아!’
시우는 어떻게든 이 미친 이송 마차에 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출발 자체를 무산시키거나, 최소한 며칠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밤중에 은자 백 냥을 들고 고향 감자밭으로 야반도주를 감행할 수 있었다.
‘그래, 체면이고 대사형이고 다 필요 없다. 여기서 찌질하게 울고불고 매달려서 가기 싫다고 떼를 쓰자. 다리가 풀려서 걸을 수 없다고, 무서워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엉엉 울어버리는 거야! 그러면 아무리 가스라이팅에 미친 위지관 장로라도 나를 강제로 보낼 수는 없겠지!’
시우는 결심했다. 이름하여 ‘주저앉아 눈물 흘리기’ 신공이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체면을 완전히 버리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본능적인 비굴함의 극의였다.
가마가 일주문 바로 앞 경계선에 멈춰 서고, 위지관 장로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가마 문을 열었을 때였다.
“대사형, 준비가 완료되었사옵니다. 황실의 기운을 담은 가마가 대사형의 안위와 위엄을 남궁 영지까지 완벽하게—”
그 순간, 시우는 침상 의자에서 스스로 바닥으로 슬그머니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청명검종 일주문의 차가운 흙바닥 위에 털썩 주저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캑! 캑캑! 으어어엉……! (나 안 가! 진짜 무서워서 가기 싫다고! 제발 여기 남겨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꺽꺽거리는 쉰 신음 소리와 함께, 시우의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흙바닥을 적셨다. 그는 바닥의 흙을 손톱이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쥐며 도리질을 쳤다. 제발 자신을 이 지옥 같은 회합으로 보내지 말아 달라는, 목숨을 건 처절한 비굴함의 발악이었다.
연무장 전체에 찬물을 끼얹은 듯 지독한 정적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처절한 오열을 지켜보던 광신도 사매 진소희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두꺼운 공책과 붓을 꺼내 들더니,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미친 듯이 받아적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가에도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아…… 대사형……! 어찌 이토록 깊고 거룩한 뜻을 숨기고 계셨단 말입니까!”
진소희가 울부짖으며 시우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대사형께서는 지금 자신에게 쏟아지는 천하의 명예와 황실의 비호를 모두 귀찮은 먼지처럼 여기시는 것입니다! 남궁 영지 회합으로 향하면 정파의 거물로 추앙받으며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될 터인데, 대사형께서는 오직 이 고향 청명현의 소박한 백성들과 이별하는 것이 슬퍼 이토록 대지를 적시며 울고 계신 것입니다! 만인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시면서도, 공을 탐하지 않는 저 눈물겨운 애종심(愛宗心)이라니요!”
“예……? (아니야, 나 진짜 무서워서 우는 거야!)”
시우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캑캑거리며 부정하려 했으나,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그때, 배웅 나온 군중들의 틈새에서 선글라스 대신 먹칠을 한 안경을 쓴 야바위꾼 심봉사가 지팡이로 바닥을 탁탁 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특유의 웅장한 목소리로 군중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이여! 보시오! 대사형 한시우께서 지금 누구를 위해 울고 계신단 말이오! 저 눈물은 대사형 개인의 슬픔이 아니외다! 남궁 영지에 도사린 마교의 음모와, 앞으로 피 흘리게 될 무림의 비극을 미리 천기로 읽으시고,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 슬퍼하시는 성자(聖者)의 거룩한 비애란 말이오! 검을 뽑기도 전에 천하의 아픔을 품으시는 저 거룩한 오열을 보시오!”
심봉사의 사기꾼 기질 가득한 외침이 1만 명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영웅주의 필터를 완벽하게 자극했다.
순식간에 일주문 앞 도로 전체가 눈물바다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백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대사형! 저희 같은 미천한 백성들을 위해 울지 마십시오!”
“아아, 한 대협! 그 숭고한 뜻을 내 어찌 잊으리오!”
사제들도 일제히 칼을 바닥에 내려놓고 눈물을 훔치며 대사형의 이름을 연호했다.
“대사형 한시우—!!!”
“대사형의 거룩한 비애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시우는 흙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닦으며 완전히 굳어버렸다. 주위에서 울려 퍼지는 1만 명의 웅장한 통곡 소리에 아랫배가 다시 한번 공포로 팽팽하게 긴장해 왔다.
‘이 미친 빡빡이 거지 숭배자 녀석들아…… 나 진짜 그냥 무서워서 가기 싫다고 소리치는 거잖아…… 왜 다들 울고불고 난리인데…….’
위지관 장로마저 눈물 콧물로 수염을 적시며 시우의 앞으로 기어 와 머리를 조아렸다.
“대사형, 대사형의 그 자비로운 뜻을 깊이 헤아렸사옵니다. 하지만 대사형께서 가지 않으시면 남궁 영지의 수만 백성들이 마교의 손에 죽어 나갈 것입니다. 부디 그 거룩한 비애를 거두시고, 가마에 올라 천하를 구원해 주십시오!”
위지관이 손짓하자, 최두팔과 강백이 다가와 주저앉아 굳어버린 시우의 양팔을 부축해 강제로 황실 가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시우의 은퇴 자금 백 냥 주머니가 도포 자락 안에서 묵직하게 흔들렸다.
철컥, 가마의 문이 단단히 닫히고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자, 1만 명의 백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가마의 뒤를 배웅했다. 시우는 어두운 가마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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