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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세가 후계자의 비무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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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세가의 붉은 도전장이 위지관의 손에 쥐어지자, 시우의 척추가 다시 한번 공포로 떨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내 허리……! 독고엽 할배가 진짜 날 죽이려고 작정했나 보네.”


청명검종 뒤뜰 창고방 침상에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린 한시우는 허리춤을 부여잡고 처절한 신음을 내뱉었다. 어젯밤 치매 발작을 일으킨 태상장로 독고엽의 광포한 진검 난사를 피하려다 바닥을 구르고 자빠진 대가는 참혹했다. 요추 부근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은 단순한 꾀병이 아니었다. 진짜로 허리 디스크가 터지기 직전의 실재하는 물리적 부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처소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온 철면장로 위지관의 눈빛은 감격과 경외심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대사형! 모용세가의 수석 후계자 모용진이 전 제자들과 청명현 백성들이 지켜보는 대연무장 한가운데에 당도했습니다! 대사형의 명성을 ‘가짜’라 매도하며, 청명검종의 정통성을 깨부수겠다고 오만방자하게 소리치고 있사옵니다!”


시우는 베개에 머리를 처박은 채 목구멍을 쥐어짜며 비굴하게 웅얼거렸다.


“장로님…… 보시다시피 내 뼈가 완전히 어긋나 꼼짝도 할 수 없소. 이번 비무는 사절할 테니, 그 모용진이라는 자에게 내가 큰 병에 걸려 곧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주시오. 제발 부탁이오.”


실제로는 뼈가 아파서 싸울 수 없으니 살려달라는 처절한 애원이었으나, 위지관의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 위지관은 주먹을 불끈 쥐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아! 대사형! 육신의 고통마저 도(道)를 닦는 기회로 삼으시며, 오만함에 가득 찬 모용세가의 어린 후계자를 자비로이 용서하려 하시는군요! ‘내가 곧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말씀은, 집착을 버리고 무(無)로 돌아가는 궁극의 부동심을 몸소 보여주신 선문답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 오만한 자들은 대사형의 침묵을 두려움으로 오해하고 문파의 정문을 모독하고 있사옵니다!”


“아니, 진짜 아프다고! 뼈가 부러졌단 말이야!”


시우가 비명을 질렀으나, 위지관은 이미 들리지 않는 듯 방밖을 향해 웅장하게 소리쳤다.


“천하장사 최두팔은 어서 들어오너라! 대사형께서 누워 계신 상태에서도 대연무장의 검세를 굽어살피실 수 있도록, 특제 황실 침상 의자를 대기시켜라!”


“예, 장로님!”


방문이 열리며 바위 같은 근육을 지닌 하인 최두팔이 웅장한 가마 형태의 누울 수 있는 의자를 들고 진입했다. 시우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최두팔의 두꺼운 팔뚝에 들려 강제로 의자 위에 눕혀졌다. 엉덩이가 시트에 닿을 때마다 요추를 찌르는 통증에 시우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고, 전신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대사형께서 연무장으로 행차하신다!”


위지관의 외침과 함께, 시우는 자신의 의지와는 100% 무관하게 청명검종 대연무장 한가운데로 강제 송환당하기 시작했다.


***


청명검종 대연무장은 이미 수백 명의 사제들과 청명현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황금빛 자수가 화려하게 수놓아진 자줏빛 비단 전포를 입은 청년이 거만하게 서 있었다. 모용세가의 수석 후계자이자 이류 극성의 고수, 모용진이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가문의 상징이자 푸른 보석이 박힌 명검 ‘현무검(玄武劍)’이 번뜩이고 있었다.


“청명검종의 가짜 대사형 한시우는 어서 나와 내 현무검 앞에 무릎을 꿇어라! 졸음 속에서 영맥을 뚫었다는 황당한 소문으로 천하를 기만하는 사기극을 내 오늘 백일하에 밝혀내겠다!”


모용진이 뿜어내는 가공할 ‘제왕기세(帝王氣勢)’가 연무장의 대기를 차갑게 얼려버렸다. 백성들은 그 압도적인 무력의 기운에 숨을 죽였고, 사제들은 분노 어린 눈빛으로 모용진을 쏘아보았다.


바로 그때, 대연무장 입구에서부터 웅장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사형께서 입장하신다!”


최두팔의 어깨에 메인 특제 침상 의자에 누워, 시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우는 밤새 허리 통증과 공포로 잠을 설쳐 지독한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었고, 굳어버린 표정으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었다.


그 표정은 연무장에 모인 이들의 눈에는 ‘세상의 하찮은 도전을 비웃는 절대자의 오만함과 여유’로 완벽하게 오역되었다.


“보아라! 대사형의 저 초연한 풍모를!”

“비무대 위에서도 정좌(누워 있기)를 유지하시다니, 검의 형태를 초월한 무형검의 지존다우시도다!”


진소희 사매는 눈을 반짝이며 품속의 공책을 펼쳐 붓을 들었고, 그림자 속에서 대기하던 무림맹의 여검객 설지현은 ‘과연 대사형께서는 적의 살기 앞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으시구나’라며 경외심에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시우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여유는 무슨……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거라고! 그리고 저 녀석 손에 든 거 진짜 칼이잖아! 나 진짜 죽는다!’


모용진은 침상 의자에 누운 채 자신을 흐릿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우의 모습에 지독한 모욕감을 느꼈다.


“한시우! 감히 비무대 위에서 누운 채로 나를 대하겠다는 말이냐!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어서 검을 뽑아라!”


모용진이 현무검을 칼집에서 반쯤 뽑아 들자, 서슬 퍼런 청색 검기가 대기를 찢으며 시우의 코끝을 겨냥했다.


시우의 평생의 고질병인 ‘칼날 공포증’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진검의 광채를 마주하자 시우의 뇌는 즉시 모든 회로를 정지시키고 셧다운 상태, 즉 ‘극도의 공포와 뇌 정지’ 상태에 빠져들었다. 온몸의 근육이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고,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동공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의 한 점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그것은 타인에게 ‘우주의 순리를 통달하여 희로애락을 초탈한 고결한 살기’로 변환되는 ‘오해 유발 아우라’의 절정이었다.


시우는 바짝 타들어 가는 목구멍의 갈증을 해결하고,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의자 옆 탁자 위에 놓인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 뜨거운 벽라춘 차가 담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려던 소박한 시도였다.


하지만 모용진은 시우가 손을 움직이는 순간,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자신의 전성기 내력을 쥐어짜 무시무시한 제왕기세를 폭발시켰다.


“우웅—!”


초일류에 육박하는 무서운 살기가 시우의 전신을 강타했다.


그 기세의 압박에 놀란 시우의 손가락 근육이 비자발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찻잔을 떨어뜨리는 순간 뜨거운 물이 쏟아져 화상을 입을 것이고, 사기꾼 정체가 들통날 것이라는 절박한 공포가 그의 무의식을 지배했다. 시우는 찻잔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잔을 꽉 쥐었으나, 그의 손가락은 전율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달—”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고속의 손 떨림이었다.


도자기 재질의 찻잔과 찻잔 받침, 그리고 뚜껑이 미세하고 정교하게 부딪히며 연무장 전체에 기괴하고 날카로운 고주파 진동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달달달달달달달달—”


처음에는 단순한 떨림 소리처럼 들렸으나, 대연무장의 넓은 청석 바닥과 공명하며 그 진동음은 기묘할 정도로 일정한 주파수를 형성해 나갔다.


모용진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검을 쥔 손을 멈추었다.


‘이, 이 소리는 대체 무엇이냐……?’


모용진은 모용세가의 후계자로서 중원의 온갖 기이한 무학 지식을 전수받은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상대방의 소리를 이용해 기혈을 파괴하는 ‘음공(音功)’ 파훼법을 극도로 수련한 전문가였다. 그렇기에 그의 뇌리는 즉시 시우의 찻잔 떨림 소리를 고도의 무학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도자기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다. 이 진동 주파수는…… 내 심장의 고동 박동수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어! 아니, 일치하는 것을 넘어 내 심맥의 흐름을 강제로 제어하려 들고 있구나!’


그것은 지독한 억까이자 완벽한 오역이었다. 시우는 그저 뜨거운 찻잔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바들바들 떨었을 뿐이지만, 모용진의 예민한 청음 능력은 그 소리에서 기묘한 인과율의 주파수를 찾아내 스스로의 심맥을 동조시켜 버린 것이었다.


“달달달달달달달달—”


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모용진의 단전 내부에서 내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우가 긴장감에 몸을 움츠리며 찻잔을 더 세게 쥐자, 진동음의 주파수가 미세하게 빨라졌다.


‘헉! 주파수가 변했다! 내 심장 박동을 강제로 끌어올려 심맥을 터뜨리려는 속셈이로구나! 이것이 말로만 듣던, 검을 뽑지 않고도 상대를 파멸시키는 무형음파공(無形音波功)…… ‘천지공명 음공’의 경지란 말인가!’


모용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는 시우의 음공(?)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내력을 억지로 끌어올려 심맥을 보호하려 시도했다.


“하아아앗!”


모용진이 기합을 지르며 내공을 폭발시켰으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시우의 찻잔 떨림 소리에는 그 어떤 ‘내공’이나 ‘기’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것은 순 순도 100%의 물리적인 도자기 떨림 소리일 뿐이었다. 즉, 대항할 대상 기운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허공의 메아리였던 것이다.


모용진이 억지로 끌어올린 가공할 내력은 대항할 적의 기운을 찾지 못하고 허공에서 갈 길을 잃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기운은 고스란히 모용진 자신의 단전과 심맥을 향해 역류(逆流)하기 시작했다.


“컥……! 쿨럭!”


모용진의 입에서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의 전신 기맥이 뒤틀리며 심각한 내상(內傷)이 발생한 것이었다.


시우는 눈앞에서 모용진이 갑자기 피를 토하자 기겁했다.


‘으아악! 저 자식 왜 갑자기 피를 토해?! 설마 내가 차에 독이라도 탄 줄 알고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는 건가?!’


공포가 극에 달한 시우는 찻잔을 든 채 캑캑거리며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시려 했으나, 손이 너무 떨려 차가 코로 들어가 버렸다.


“켁! 쿨럭! 켁!”


시우가 코를 쥐어짜며 내뱉은 거친 기침 소리는, 모용진의 귀에는 자신을 향해 내뿜는 마지막 ‘사자후의 전조’로 들렸다.


모용진의 멘탈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손에 든 현무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맑은 쇳소리와 함께 검이 청석 바닥에 굴렀다.


“소, 소인이 완패했습니다……! 대사형의 신성한 무형음공 앞에서는 내 현무검조차 한낱 장난감에 불과했군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모용진은 피를 훔치며 무대 아래로 도망치듯 달려 나갔다. 그의 뒷모습은 오만함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비굴했다.


대연무장 전체에 폭풍 같은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1초 뒤, 장로들과 사제들, 백성들의 폭발적인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와아아아아! 대사형! 대사형 한시우!”

“검을 뽑지도 않으시고, 오직 찻잔의 미세한 공명 소리 하나만으로 모용세가의 후계자를 굴복시키시다니요! 실로 음공의 지존이시로다!”


위지관 장로는 눈물을 흘리며 시우의 침상 의자 앞으로 달려와 무릎을 꿇었다.


“대사형!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적을 자비로이 돌려보내신 그 깊은 뜻,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진소희 사매는 광신적인 눈빛으로 공책에 글을 갈겨썼다.


[대사형 어록 제4장: 소리는 곧 검이요, 찻잔의 떨림은 천지의 맥동이니, 지존은 찻잔 하나로 천하의 오만함을 무릎 꿇리신다.]


시우는 코가 매워 눈물을 찔끔 흘리며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달달 떨리는 빈 찻잔이 쥐어져 있었다.


‘아니야…… 난 그냥 컵 안 떨어뜨리려고 버틴 것뿐이라고…… 허리 아파 죽겠는데 왜 다들 울고불고 난리야…….’


그의 억울한 명성은 이제 모용세가마저 집어삼키며 전 무림의 전설로 성역화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연무장 정문을 깨부술 듯이 열며 무림맹의 검은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전령마가 대연무장 한가운데로 거칠게 들이닥쳤다. 전령 무사가 말에서 내리며 위지관을 향해 황금빛 서신을 높이 치켜들었다.


“무림맹주 제갈운 맹주님의 극비 소환장입니다! 청명검종의 대사형 한시우는, 무림의 명운이 걸린 ‘남궁 영지 회합’의 핵심 군사로 임명되었으니 즉시 무림맹 본산으로 출두하십시오!”


서신에 찍힌 붉은 인장이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나자, 시우의 척추가 다시 한번 공포로 굳어버렸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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