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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엽 장문인의 칼부림과 벽면의 검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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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당가의 도도한 독설 사매 당소혜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머리를 조아리며 은침 해독 주머니를 바치고 떠난 직후, 청명검종 뒤뜰 창고방에는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한시우는 여전히 입안에 가득한 지옥 같은 짠맛과 쓰고 비린 맛에 혀를 날름거리며 탁자 위의 맹물을 연거푸 들이켜고 있었다.


“팽가 이 돼지 자식…… 청소용 양동이에 소금을 대체 얼마나 탄 거야? 켁, 켁! 목구멍이 다 쓰라리네.”


시우는 억울함에 가슴을 쥐어뜯었다. 당소혜가 가져온 국이 그렇게 살인적인 염도를 자랑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걸 피하려다 들이부은 청소용 양동이에서 산염기 중화 반응이라는 해괴망측한 연기 쇼가 일어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결국 사기극의 규모만 우주 크기로 키워놓고 당가 외가의 보물까지 강제로 강탈당한 꼴이 되었으니, 시우의 심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들통나면 진짜 삼대가 멸할 거다. 당장 입안을 제대로 헹구고 정신을 차려야 해. 주방에 가서 맑은 우물물이라도 퍼 마셔야겠다.’


시우는 당소혜가 바치고 간 보랏빛 은침 해독 주머니를 대충 도포 소매 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장로들이나 원해스님이 들이닥치기 전에 조용히 처소를 빠져나왔다. 그의 목적지는 맑은 우물이 있는 주방 뒤편이었으나, 만성 피로와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그의 방향 감각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시우는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어두운 밤안개 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방이 아니라 청명검종의 가장 장엄하고 신성한 전각인 장문전 ‘청명각’의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 여기가 어디야? 왜 장문각으로 온 거지?”


시우가 당황하여 발걸음을 돌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청명각 내부에서 귀청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푸른색 검강(劍罡)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아름다운 창살문이 단숨에 박살 나며 목조 파편들이 시우의 발끝 앞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으아악! 깜짝이야!”


시우는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에 뒤로 펄쩍 뛰어넘어졌다. 엉덩방아를 찧은 채 먼지 구름이 자욱한 청명각 내부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도와 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청명검종의 역도들아! 감히 초대 시조님의 영토를 더럽히다니! 내 오늘 너희를 단 한 놈도 남겨두지 않고 베어버리겠다!”


백발을 산발한 채 핏빛 안광을 번뜩이는 늙은 거구의 무인. 청명검종의 전대 장문인이자 태상장로인 화경 초입의 초일류 고수, 독고엽이었다.


그는 지금 심각한 치매 발작과 함께 극도의 기혈 역류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보검 ‘청명검’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푸른색 검강을 사방으로 내뿜고 있었고, 그 검강이 스칠 때마다 청명각의 단단한 한옥 기둥들이 두부처럼 잘려 나가고 있었다.


청명각 밖마당에는 철면장로 위지관을 비롯한 문파의 장로들이 사색이 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태상장로님! 진정하십시오! 저희는 역도가 아니라 청명검종의 후예들입니다!”


위지관이 목청껏 소리쳤지만, 독고엽의 뇌리에는 오직 ‘문파를 멸망시키려는 역도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광포한 망상만이 가득 차 있었다. 장로들 중 그 누구도 감히 청명각 내부로 진입하지 못했다. 화경 고수의 광포한 검강에 몸이 쪼개질까 두려운 것도 있었지만, 억지로 제압하려 무력을 썼다간 독고엽의 막힌 심맥이 완전히 터져 주화입마(走火入魔)로 사망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이 일을 어찌할꼬! 태상장로님의 내력이 완전히 폭주하고 계신다! 이대로 두면 전각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장로님의 목숨마저 위태롭다!”


위지관이 피눈물을 흘리며 절망하던 바로 그때, 그의 매서운 안광이 마당 구석에서 엉덩이를 찧고 덜덜 떨고 있는 회색 도포의 사내를 포착했다.


“아! 대사형! 대사형 한시우께서 오셨다!”


위지관의 외침에 모든 장로들의 시선이 일제히 시우에게로 쏠렸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구원자를 바라보는 광신적인 희망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역시 대사형이십니다! 장문각의 위기를 미리 예측하시고, 이 깊은 밤에 홀로 몸을 던져 태상장로님을 구하러 오시다니요!”


‘아니야! 난 그냥 물 마시러 왔다고! 저 미친 할배가 왜 저기서 칼춤을 추고 있는 건데!’


시우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부정하려 했으나, 이미 상황은 그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독고엽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마당에 주저앉아 있는 시우를 정확히 겨냥했다. 화경 고수의 서슬 퍼런 살기가 대기를 찢으며 시우의 온몸을 짓눌렀다.


“네놈…… 네놈이 바로 역도들의 수괴구나! 죽어라!”


독고엽이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의 신형은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청색 매와 같았고, 그의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 검강은 청명각의 대들보를 단숨에 가르며 시우의 머리통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시우의 평생의 고질병인 ‘칼날 공포증’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진검의 번뜩이는 광채와 뺨을 찢을 듯한 바람 소리를 마주하자, 시우의 뇌는 즉시 모든 사고 회로를 정지시키고 셧다운 상태에 들어갔다. 온몸의 근육이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렸고, 다리의 힘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으, 으아아아악!”


시우는 비명을 지르며 본능적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면적을 최소화하여 칼날에 맞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지극히 찌질하고도 소박한 생존 본능이었다.


철썩!


시우가 청석 바닥에 개구리처럼 완벽하게 밀착하는 순간, 독고엽의 검강이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과과광—!


시우의 머리 뒤편에 있던 청명각의 거대한 목조 벽면이 폭발하듯 쪼개지며 엄청난 먼지가 피어올랐다. 단 1치만 높았어도 시우의 대가리는 수박처럼 쪼개졌을 터였다.


‘살려줘! 나 진짜 죽는다! 은자 50냥이고 나발이고 여기서 제삿날이 되게 생겼어!’


시우는 공포로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끼며 바닥을 뱀처럼 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 미친 노인네의 사각지대로 벗어나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독고엽은 집요했다. 그는 시우가 바닥에 엎드려 피한 것을 고도의 회피 신법으로 오해하고는, 검세를 아래로 꺾어 바닥을 기고 있는 시우의 옆구리를 향해 수평으로 검을 내질렀다.


쉭—!


차가운 쇳소리가 귀를 때리자, 시우는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몸을 좌우 갈지자(之)로 미끄러뜨렸다. 마침 청명각 바닥은 독고엽의 검강 때문에 깨진 찻잔의 물과 청소용 왁스로 인해 극도로 미끄러운 상태였다.


시우의 다리가 뒤틀리며 ‘헛발질 및 미끄러짐’ 신법이 발동했다. 중심을 잃은 그의 몸이 좌우로 비틀거리며 흐느적거렸고, 엉덩이를 바닥에 댄 채 사방으로 미끄러져 다녔다.


“이놈! 어찌 검을 뽑지 않고 몸짓만으로 내 검로를 막아서는가!”


독고엽은 경악했다. 그의 눈에 비친 시우의 움직임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으나, 기이할 정도로 자신의 검강이 닿기 직전의 찰나의 순간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해 내고 있었다.


시우는 검을 칼집에서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오직 칼날 공포증에 질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바닥을 구르고 미끄러질 뿐이었다.


“으아아! 오지 마! 저리 가라고!”


시우의 비명 소리는 청명각 내부의 굉음과 섞여 웅장한 기합 소리로 변조되어 장로들의 귀에 도달했다.


“보아라! 대사형께서 태상장로님의 주화입마를 막기 위해 일부러 무기를 쓰지 않고 계신다!”

“그렇다! 무기를 쓰면 태상장로님의 내력이 반발하여 심맥이 터질 것을 염려하시어, 오직 신법과 육신만으로 검세를 유도하고 계시는구나! 참으로 눈물겨운 효심이자 대도의 경지이로다!”


위지관과 장로들은 청명각 밖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실제로 독고엽은 시우의 흐느적거리는 궤적을 쫓아 검을 휘두르느라 정신이 완전히 팔려 있었다. 시우가 왼쪽으로 미끄러지면 독고엽의 검이 왼쪽 벽을 쳤고, 시우가 오른쪽으로 구르면 검이 오른쪽 기둥을 때렸다.


카강! 쾅! 콰과광!


정확히 열두 번의 격렬한 헛발질과 미끄러짐이 이어졌다. 시우는 전신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오직 살기 위해 바닥을 기고, 구르고, 자빠졌다.


그리고 그 열두 번의 회피 궤적을 따라, 독고엽의 검 끝은 청명각의 가장 거대하고 단단한 참나무 벽면에 깊고 정교한 검흔(劍痕)들을 새겨나갔다.


마지막 열두 번째 검흔이 벽면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우웅—!”


독고엽의 전신에서 요동치던 푸른색 기류가 거짓말처럼 멈추어 섰다.


그의 막혀 있던 심맥과 뒤틀려 있던 기혈이, 열두 번의 극한의 검세를 펼치는 과정에서 기적적으로 정렬되어 뚫려버린 것이었다. 독고엽은 검을 쥔 채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의 붉게 충혈되어 있던 눈동자에서 광기가 걷히고, 맑고 정정한 안광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헉! 헉!”


독고엽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손에 든 청명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청명각의 벽면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기가 막히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열두 개의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검흔들이 그리는 기하학적인 궤적은, 과거 청명검종의 초대 시조 청명자가 남겼으나 백 년 전 유실되어 실전되었던 궁극의 검법, ‘청명소요검법(淸明逍遙劍法)’의 마지막 오의 초식인 ‘소요무흔(逍遙無痕)’의 완벽한 검로도(劍路圖)였다.


독고엽은 떨리는 손으로 벽면의 검흔을 어루만졌다. 그의 노안에 눈물이 고여 흘러내렸다.


“아아…… 이것은…… 실전되었던 우리 문파의 마지막 비전이 아니더냐! 내 치매의 광기 속에서 갈 길을 잃고 날뛸 때, 이 아이가 자신의 몸을 미끼로 삼아 내 검을 인도했구나! 내 막힌 혈도를 뚫어 주화입마를 막아주고, 동시에 벽면에 잃어버린 구결을 완성하도록 검로를 유도하다니……!”


독고엽은 자리에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는 지금 승리의 기쁨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바닥을 너무 격렬하게 구르고 미끄러진 탓에 그의 회색 도포는 먼지와 때로 찌들어 걸레짝이 되어 있었고, 옆구리와 무릎에는 시퍼런 피멍이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기괴한 각도로 허리를 비틀며 미끄러진 탓에 척추 신경이 완벽하게 어긋나 버렸다.


우드득—!


“아으으윽…… 허리야…… 내 허리…….”


시우는 요추 부근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타격감과 통증에 신음 소리를 내지르며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움켜쥐었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허리 디스크가 터져 평생 앉은뱅이로 살아야 할 것 같은 지독한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독고엽은 그 Pathetic한 신음 소리를 ‘천지의 깨달음을 얻고 대도의 고통을 감내하는 지존의 묵직한 호흡’으로 오역해 버렸다.


“오오! 대사형 한시우여! 이 늙은이의 목숨을 구하고 문파의 비전을 되찾아주기 위해 자신의 육신을 이토록 아끼지 않다니! 참으로 눈물겨운 헌신이로다!”


독고엽은 눈물을 흘리며 시우에게로 다가가, 그의 전신을 부서질 듯이 강하게 껴안았다.


“우드드득—!”


“악! 으아아아악!”


시우의 허리뼈가 독고엽의 가공할 화경 내력에 압박당해 다시 한번 기괴한 소리를 내며 맞춰졌다. 시우는 척추가 반 토막 나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으나, 장문각 안으로 들이닥친 위지관과 장로들은 그 비명을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지존의 사자후’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대사형 한시우는 오늘부로 청명검종의 정통 후계자이자, 태상장로님의 유일한 적전제자이심을 선포하노라!”


독고엽의 웅장한 선언이 청명각 내부를 가득 메웠다.


시우는 허리의 통증과 억울함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퇴직금 50냥을 받아 고향 감자밭으로 도망치려던 그의 소박한 꿈은, 이제 청명검종의 정통 후계자라는 무시무시한 왕관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장문각의 깨진 문틈을 타고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보, 보고드립니다! 장로님! 문파 정문 일주문 앞에 외지에서 온 무서운 전령이 당도했습니다!”


전령 무사의 다급한 외침에 위지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전령이라니? 이 깊은 밤에 대체 누가 찾아왔단 말이냐?”


“그것이…… 모용세가의 수석 후계자, 모용진 대협이 보낸 공식 비무 도전장이라 하옵니다! 대사형 한시우의 가짜 실력을 깨부수고 가문의 위세를 떨치겠다며, 내일 아침 대연무장에서 목숨을 건 비무를 신청했습니다!”


그 순간, 바닥에 쓰러져 허리를 움켜쥐고 있던 시우의 동공이 터질 듯이 확장되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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