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선인의 기적과 찢어진 비급서
천장각 서고 깊은 구석, 자욱하게 피어오르던 분홍빛 매화 검기가 마침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대나무 바닥을 가볍게 휩쓸던 기류가 잠잠해지자, 정좌하고 있던 화산파의 매화검수 화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는 전례 없는 영롱한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십 년 동안 단단하게 막혀 그녀의 숨통을 조이던 내공의 병목 구간이 기적처럼 뚫려 있었다. 단전에서는 맑고 순수한 화산파의 진기가 폭포수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화영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뚫렸다……! 내 힘으로는 평생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던 경지가, 단 한 번의 호흡만으로 완벽하게 관통당했어.'
그녀는 고개를 돌려 옆에 누워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회색의 낡은 잡역부 도포를 걸치고, 먼지 쌓인 비급서 한 권을 베개 삼아 벤 채 여전히 입을 반쯤 벌리고 자고 있는 사내. 청명검종의 대사형, 한시우였다. 그의 입가에는 침이 한 줄기 흘러내려 베개로 쓰던 고서의 표지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화영은 그 더럽고 나태해 보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터질 듯한 경외심과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아아,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대사형께서는 내가 자신을 의심하고 감시하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시면서도, 꾸짖기는커녕 은밀히 이곳 천장각으로 나를 유인하셨다. 그리고 가장 무방비한 수면의 자세를 취하시며, 화산파의 잃어버린 구결과 공명하는 태식코골이법(胎息鼻骨法)을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내 무지함을 깨우쳐 주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신 참된 선인이시로다!'
화영은 떨리는 몸을 일으켜 시우를 향해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마가 대나무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게 절을 올렸다. 눈가에는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시우의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주변을 가득 채우던 매화 검기의 서늘함이 사라지자, 시우는 지독한 만성 피로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눈을 게슴츠레 뜨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분홍빛 도포를 입은 무시무시한 화산파의 여검수가 자신을 향해 절을 올리고 있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시우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으아악! 깜짝이야! 이 여자 왜 이래? 왜 자다 깨니까 내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사기꾼인 거 들통나서 마지막 제사라도 지내주는 건가?!'
시우는 공포로 인해 온몸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으나, 그는 필사적으로 정신을 다잡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여기서 찌질한 모습을 보였다간 진짜로 목이 날아갈 터였다.
“……화영 소저. 이게 무슨 짓이오? 어서 일어나시오.”
화영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광신적인 존경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대사형! 소매의 무지함과 오만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대사형의 숭고한 뜻을 알지 못하고 감히 실력을 의심하여 감시하는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럼에도 대사형께서는 대도(大道)의 호흡법을 펼치시어 소매의 막힌 기맥을 뚫어주셨으니, 이 은혜는 평생 골수에 새겨 화산파의 이름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예? 대도의 호흡법이요?”
시우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그저 며칠 동안 이 스토커 같은 여자 때문에 잠을 못 자서 피곤해 뒤지기 직전에 서고 구석에 누워 잔 것뿐이었다. 코를 곤 것은 만성 비염과 피로 때문이었는데, 그걸 대도의 호흡법이라니?
하지만 시우는 자신의 진짜 무공 수치가 0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는 짐짓 흐릿한 눈빛을 유지하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흠, 쿨럭…… 깨달음을 얻었다니 다행이오. 도(道)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니, 그만 검을 거두시오.”
“대사형의 자비로운 가르침, 깊이 새기겠습니다!”
화영이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는 순간, 시우의 아랫배 깊은 곳에서 가공할 만한 대격변이 일어났다.
꾸르르르륵————!
그것은 용의 울음소리도, 고도의 내공 공명음도 아니었다. 지독한 가스 팽창과 함께 장이 뒤틀리는 처절한 배탈의 경고음이었다.
시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어젯밤 주방장 팽가와 함께 몰래 훔쳐 먹었던 상한 돼지고기 만두와, 며칠 동안 화영에게 감시당하며 쌓인 극심한 스트레스가 화학 반응을 일으켜 그의 대장에서 핵폭탄급 배탈을 유발한 것이었다.
'큰일났다. 진짜 큰일났어! 지금 당장 뒷간으로 가지 않으면…… 전설의 대사형 한시우가 아니라, 천하제일의 똥싸개로 역사에 박제될 거야! 내 평화로운 은퇴 계획이고 뭐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고!'
시우는 괄약근에 전신 내력(사실은 순수한 항문 조임근의 완력)을 집중했다. 온몸이 덜덜 떨렸고, 다리가 안쪽으로 꺾였다.
화영은 시우의 전신이 떨리며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지는 것을 보고 크게 경악했다.
'아아! 보아라! 나 한 명을 깨우쳐 주기 위해 전신의 영기를 호흡법으로 쏟아내시고, 그 반동으로 극심한 내상을 입으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저 고결한 표정을 유지하시다니…… 참으로 눈물겨운 희생이로다!'
“대사형! 안색이 극도로 안 좋으십니다! 소매가 내력을 전수해 드리겠—”
“오, 오지 마시오! 건드리지 마시오!”
시우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지금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기라도 하면, 아랫배의 압력 조절 장치가 완전히 붕괴될 터였다. 시우는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마치 축지법을 펼치듯 꼿꼿하고도 빠른 걸음걸이로 천장각의 문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갈지자로 비틀거리면서도 상체는 흔들리지 않는 그 기묘한 보법은, 실질적으로 바지에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필사의 괄약근 방어 걸음마였다.
“내…… 급히 해독해야 할 천기가 있어 가봐야겠소!”
시우는 천장각 문틀을 붙잡고 튀어나가며, 옆에 있는 책장에서 먼지 쌓인 낡은 가죽 비급서 한 권을 무작위로 낚아챘다. 책의 제목을 읽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오직 뒷간에 휴지가 없을 때를 대비한 본능적인 비상 종이 확보였다.
***
같은 시각, 천장각 외곽에서 대사형의 동태를 관찰하고 있던 분석형 천재 사제 육청풍은 둥근 안경을 치켜올리며 눈을 번뜩였다.
“……! 대사형께서 천장각에서 급히 나오신다! 그런데 저 걸음걸이는 무엇이지?”
육청풍은 품속에서 청동 자와 나침반을 꺼내 들고 시우의 이동 궤적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시작했다. 시우는 다리가 조여와 좌우로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지만, 머리의 높이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장딴지의 각도는 좌우 사십오 도, 보폭은 정확히 일 척 삼 촌의 간격을 유지하며 고속으로 이동하고 계신다. 저것은 대지의 기운을 억누르며 인과율의 궤적을 회피하는 허허실실보(虛虛實實步)의 극의가 분명하다! 게다가 품속에 낡은 고서를 소중히 안고 계시다니…… 필시 문파의 명운이 걸린 엄청난 천기를 해독하기 위해 은밀한 성소로 향하시는 것이다!”
육청풍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시우의 뒤를 조용히 쫓기 시작했다. 대사형의 위대한 천기 해독 과정을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다는 학구열 때문이었다.
시우는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기척을 느끼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으아악! 왜 쫓아오는 거야! 제발 쫓아오지 마! 나 지금 한계라고! 1초만 늦어도 대재앙이 터진단 말이야!'
시우는 괄약근의 비명을 무시한 채, 마지막 전력을 다해 문파 구석에 위치한 낡은 나무 뒷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거의 공중을 비행하듯 날아가 뒷간 문을 박차고 들어간 시우는, 문고리를 안에서 걸어 잠그고 털썩 주저앉았다.
쾅! 털썩.
“하아아아…… 살았다.”
마침내 시작된 거대한 방출의 순간, 시우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랫배를 쥐어짜던 극심한 고통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며 전신의 긴장이 완벽하게 풀렸다.
그러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볼일을 모두 마친 시우가 습관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때, 그의 심장은 다시 한번 나락으로 떨어졌다.
뒷간 벽면에 걸려 있어야 할 낡은 짚신 가죽이나 휴지용 종이가 단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청소부 마당쇠가 깜빡하고 뒷간 종이를 채워놓지 않은 것이었다.
“미치겠네! 왜 하필 오늘이야?! 마당쇠 이 자식, 내가 은자 3냥이나 흘려줬는데 일을 이딴 식으로 해?!”
시우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자신의 품속을 뒤적였다. 다행히 천장각에서 급하게 나오며 낚아챘던 먼지 쌓인 가죽 비급서가 손에 잡혔다. 시우는 책의 표지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희미하게 누런 잉크로 ‘소화유선……’ 어쩌구저쩌구 적혀 있는 한자 단어들이 보였으나, 한문 까막눈인 시우에게는 그저 훌륭한 엉덩이 세척용 종이일 뿐이었다.
“에이, 알 게 뭐야. 당장 똥을 닦아야 사기꾼 대사형이고 뭐고 체면을 지키지!”
시우는 눈을 감고 조상님께 불경죄를 사죄하며, 가죽 책의 뒷장부터 사정없이 찢어내기 시작했다.
찢어적! 찢어적!
그는 거친 가죽 종이들을 손으로 마구 구겨 부드럽게 만든 뒤, 거침없이 볼일을 해결했다. 그리고 똥 묻은 종이 조각들을 뒷간 구석의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렸다. 완전한 흔적 인멸이었다.
하지만 시우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가 찢어 쓴 책이 바로 백 년 전 무림에서 홀연히 사라졌던 전설의 검선, 소화선인의 친필 비급서인 ‘소화선인 비전구결’의 진짜 원본이었다는 사실을.
소화선인은 생전에 장난기가 극심하고 의심이 많아, 후대의 도둑들이 자신의 비급을 훔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비급서 곳곳에 교묘한 ‘함정 구결(가짜 초식 수식)’들을 섞어두었다. 만약 이 함정 구결들을 그대로 연마했다간 뇌가 파괴되고 기맥이 뒤틀려 즉사하게 만드는 무서운 장치였다. 소화선인은 가짜 구결들을 특수한 은빛 금속성 안료로 적어두었는데, 이 안료는 오직 강한 산성과 유기물이 결합해야만 녹아내려 지워지는 특이한 화학적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 시우가 쏟아낸 오물(똥)의 성분은 평범하지 않았다.
어젯밤 주방장 팽가가 빚은 상한 돼지고기의 부패한 유기산, 태상장로 독고엽이 만검굴에 피웠던 벽사초 연기의 강알칼리성 재, 그리고 약초꾼 백초옹이 시우에게 강제로 먹이려다 만두 속에 섞여 들어간 천년 만년삼의 강력한 산성 약력 성분이 시우의 대장 내부에서 기막히게 혼합되어 초강력 화학 정화 액체로 진화해 있었던 것이다.
시우가 똥을 닦아 던진 비급서 낙장 위에서, 이 기적의 오물 성분이 은빛 금속 안료로 적혀 있던 소화선인의 ‘가짜 함정 구결’들만을 정확하게 녹여내어 하얗게 지워버리기 시작했다. 종이 위에 원래 숨겨져 있던 진짜 검선의 비전 초식만이 누런 종이 위에 선명하게 부각되는 기적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
뒷간 밖에서 대사형의 암행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던 분석형 천재 육청풍은 미간을 찌푸렸다.
“……! 뒷간 안에서 기이한 파열음과 함께 웅장한 내력의 배출음이 들려온다. 대사형께서 필시 몸 안의 모든 탁기를 배출하고 천기의 결실을 맺으신 것이 분명하다!”
잠시 후, 뒷간 문이 열리며 시우가 영혼이 반쯤 가출한 허탈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전신의 가스를 모두 배출해 몸은 가벼워졌으나, 사기꾼 신화가 더 단단해진 것에 대한 깊은 절망감 때문에 그의 눈빛은 심해보다 깊고 차가웠다.
시우는 문밖에서 안경을 치켜올리며 자신을 기다리던 육청풍을 발견하고 움찔했다.
“……육 사제? 왜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소?”
육청풍은 시우의 허탈하고도 무심한 표정—실제로는 똥 싸고 지친 표정—을 마주하는 순간, 등줄기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대사형! 대사형께서 천장각에서 가져오신 고서를 통해 천기를 해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배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시우는 똥 닦은 사실을 들킬까 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짐짓 헛기침을 크게 하며 칼집에 꽂힌 이 빠진 목검을 꽉 쥐었다.
“콜록! 흠…… 배움이라니, 별거 아니오. 나는 그저…… 쓸모없는 찌꺼기들을 버리고 왔을 뿐이오. 더 이상 묻지 말고 각자 처소로 돌아가 수련이나 하시오.”
실제로는 ‘나 똥 싸고 닦은 종이 버렸으니까 제발 묻지 말고 꺼져라’는 뜻이었지만, 육청풍의 천재적인 뇌리는 이 말을 우주적인 선문답으로 완벽하게 오역해 냈다.
'쓸모없는 찌꺼기들을 버리고 왔다니……! 아아! 소화선인이 남긴 백 년 묵은 비급서의 가짜 함정 구절들을 ‘찌꺼기’라 칭하시며, 그것들을 완벽하게 파훼하여 뒷간에 폐기하셨다는 뜻이로구나! 진짜 구결만을 남겨놓으셨다는 계시가 틀림없다!'
“대사형의 깊은 뜻, 이 육청풍의 둔한 머리로도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어서 처소로 돌아가 도를 닦겠습니다!”
육청풍은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린 뒤, 시우가 멀어지자마자 번개 같은 속도로 뒷간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뒷간 내부에는 지독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지만, 학구열에 미친 육청풍에게는 그것이 마치 검선의 영기가 뿜어내는 향기처럼 느껴졌다. 그는 쓰레기통을 뒤져 시우가 버린 똥 묻은 비급서 낙장들을 조심스럽게 수거했다.
“이, 이것은……!”
낙장을 넓게 펼친 육청풍의 두 눈이 안경 너머로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누렇게 얼룩진 종이 조각들 위로, 은빛 안료로 적혀 있던 조잡한 글자들이 완벽하게 녹아내려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지워진 공백 사이로, 백 년 동안 그 어떤 천재 무인도 찾아내지 못했던 소화선인의 진짜 비전 초식 구결들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기적이다……! 대사형의 성수(오물)가 종이의 불순물만을 정확하게 삭혀내어, 비급의 함정을 완벽하게 해독하셨어! 똥 묻은 흔적 자체가 진짜 무공의 흐름을 가리키는 이정표였구나!”
육청풍은 눈물을 흘리며 냄새나는 종이 조각들을 정성스럽게 우물가로 가져가 물에 깨끗이 씻어냈다. 그리고 햇볕에 말린 뒤, 가죽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하나의 비급첩을 완성했다. 이름하여 ‘소화선인 비전구결(Reconstructed)’의 탄생이었다.
육청풍은 완성된 비급첩의 첫 장을 읽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으며 기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진짜 소화유선검(소화유선검)의 극의…… 대사형의 무한한 자비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평생 가짜 무공을 연마하다 주화입마에 빠져 죽었을 터!”
그는 지체 없이 대연무장 중앙으로 달려갔다. 연무장에는 위지관 장로와 수백 명의 제자들이 대사형의 안위를 걱정하며 모여 있었다.
“사제들아! 모두 이쪽을 보아라!”
육청풍이 소리치며 연무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거대한 대련용 청석 바위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손에는 시우가 평소 땔감으로 쓰려던 이 빠진 목검이 들려 있었다.
“청풍아, 그 냄새나는 가죽 종이들은 무엇이며, 왜 대사형의 목검을 들고 있느냐?”
위지관 장로가 묻자, 육청풍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장로님! 대사형께서 뒷간에서 몸소 오물을 사용해 해독해 주신 소화선인의 진짜 비전 구결입니다! 제가 감히 대사형의 목검을 빌려, 그 위대한 무학의 실체를 검증해 보이겠습니다!”
육청풍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복원된 비전의 초식대로 이 빠진 목검을 가볍게 치켜들었다. 전신에서 하얀 기류가 뿜어지며, 목검 끝에서 푸른색 검기가 번뜩이기 시작했다. 시우가 닦아낸 흔적을 따라 검로를 그리는 순간, 목검이 허공을 가르며 일직선의 무형의 궤적을 연출했다.
“소화유선검, 제1초—— 청강출해(靑江出海)!”
콰아아아앙————!!!
대연무장이 떠나갈 듯한 가공할 폭음이 울려 퍼졌다.
육청풍이 휘두른 이 빠진 목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푸른색 검강이, 연무장 중앙에 서 있던 단단한 무쇠 청석 바위를 일격에 정확히 반 토막으로 갈라버렸다. 잘려 나간 바위 단면은 마치 거울처럼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다.
연무장에 일순간 폭풍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위지관 장로는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린 채 바들바들 떨었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며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목검 하나로 절정 고수도 부수지 못하는 청석 바위를 두 동강 낸 것이었다.
“이, 이 위력이 정녕 사실이란 말이냐……!”
위지관이 무릎을 꿇으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대사형 한시우……! 뒷간에서 볼일을 보시는 순간조차 문파의 실전된 비전을 해독하시고, 제자들에게 천하제일의 무학을 선물하시다니! 참으로 우리 청명검종의 살아있는 시조이시로다!”
“대사형 한시우! 대사형 한시우!”
수백 명의 제자들이 일제히 시우의 처소를 향해 무릎을 꿇고 땅이 꺼지도록 절을 올리며 웅장하게 찬가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광신적인 경외심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편, 자신의 창고방 침상에 누워 겨우 배탈의 여파를 추스르고 있던 시우는, 연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음과 사제들의 광기 어린 연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미친 사제 놈들이! 제발 나 좀 살려줘, 집에 갈래!”
시우는 텅 빈 은자 주머니를 꼭 쥔 채, 도망칠 길 없는 명예의 감옥 속에서 처절하게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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