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파 매화검수의 밀착 감시
차가운 목소리가 비수처럼 시우의 귓가를 때리는 순간, 시우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일주문 너머, 자욱한 새벽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화산파의 매화검수 화영의 자태는 그야말로 한 폭의 냉랭한 그림 같았다. 분홍빛 매화 자수가 정교하게 수놓아진 백색 도포는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채 정갈하게 휘날렸고, 허리춤에 차고 있는 ‘매화검’의 검자루에는 서슬 퍼런 검기가 감돌아 연무장의 온도를 순식간에 겨울철 얼음판처럼 끌어내렸다. 그녀의 매서운 안광이 시우의 전신을 샅샅이 훑어내리기 시작하자, 시우는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고향 땅의 아버지를 부르며 울부짖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살려주세요. 나 진짜 무공 못 한단 말이야! 왜 맨날 나한테 이런 괴물들이 꼬이는 건데!’
시우의 속마음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뇌 정지가 찾아오며 안면 근육이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만성 피로로 인해 눈가에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과, 공포로 인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진 시우의 무표정한 얼굴은 타인에게 ‘우주의 섭리를 통달하여 생사여탈권을 쥔 초탈한 지존의 아우라’로 변환되어 사방으로 뿜어졌다. 이른바 ‘오해 유발 아우라’의 폭발이었다.
연무장에 모여 있던 청명검종 사제들은 화영의 매서운 도발에 일제히 검을 뽑아 들며 시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례하다! 화산파의 매화검수라 할지라도 우리 문파의 영웅이자 무학의 구세주이신 대사형께 감히 칼끝을 겨누다니!”
진소희 사매가 공책을 품에 꼭 쥔 채 붓을 치켜들며 사자후를 내질렀다. 육청풍 역시 안경을 치켜올리며 매서운 눈빛으로 화영을 노려보았다.
“화산파의 검술이 아무리 독보적이라 한들, 우리 대사형의 무형공무검 앞에서는 한낱 먼지 털기에 불과할 터! 당장 검을 거두고 무릎을 꿇어라!”
사제들의 맹목적인 과잉 호위와 숭배에 시우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얘들아, 제발 입 좀 닫아! 저 여자 진짜로 빡치면 나 먼저 반 토막 난다고!’
화영은 사제들의 분노 어린 호위를 차가운 미소로 흘려보내며, 시우의 흐릿하고 졸린 눈빛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심장 속에는 지독한 의구심과 호기심이 동시에 요동치고 있었다.
‘이상하군. 천년 영맥을 뚫고, 빗자루 하나로 철검문을 제압했으며, 끓는 소금물로 남궁벽의 십 년 묵은 한독을 치료했다는 자가…… 어찌 단 1푼의 내공의 흐름도 풍기지 않는 거지? 마치 길거리의 평범한 잡역부와 다를 바 없는 완벽한 무(無)의 상태다. 이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내력을 완벽하게 단전 깊은 곳에 가두어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는 반박귀진(返樸歸眞)의 극의인가?’
화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검자루를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뿜어내는 이류 극성의 매서운 살기가 시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내공이 아예 없어 기의 파동을 감지하지 못하는 시우는 그저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화영의 눈에는 그 무반응이 자신을 완전히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절대자의 무심함’으로 해석되었다.
“한시우 대협. 명성이 자자한 그대의 무형검을 내 매화검법으로 직접 검증해 보고자 하니, 비무에 응해 주시오.”
화영이 검을 반쯤 뽑아 들며 도발하자, 시우는 굳어버린 혀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가장 비굴하고도 엄숙한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나는 싸우지 않소. 도(道)는 투쟁에 있지 않으니, 그만 돌아가시오.”
실제로는 ‘나 진짜 뼈 부러지기 싫으니까 제발 그냥 가라’는 애원이었지만, 위지관 장로는 가슴을 쥐어짜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보아라! 화산파의 날카로운 도발 앞에서도 결코 살기를 풍기지 않으시고, 중생의 피 흘림을 막기 위해 비무를 거부하시는 대사형의 저 숭고한 평화주의를! 참으로 살아있는 보살이로다!”
“대사형! 대사형!”
연무장이 다시 한번 광신적인 연호 소리로 뒤덮이자, 화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비무를 거부하신다면, 내 그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밀착 감시하며 그 고결한 실력의 실체를 직접 파헤치겠소. 거짓 명성이라면 내 검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화영은 검을 칼집에 소리 나게 밀어 넣으며 연무장 구석의 소나무 가지 위로 날아올랐다. 그녀는 그곳에 정좌하고 앉아 시우의 처소를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24시간 밀착 감시의 시작이었다.
***
그날 이후, 시우의 삶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었다.
처소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기만 하면, 소나무 가지 위나 지붕 모퉁이에서 분홍빛 매화 도포를 입은 화영의 차가운 눈빛이 시우의 정수리를 뚫어버릴 듯이 쫓아다녔다. 시우가 밥을 먹을 때도, 마당을 쓰는 시늉을 할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비틀거리며 걸어갈 때도 화영의 매서운 시선은 단 1초도 거두어지지 않았다.
‘미치겠네, 진짜! 저 스토커 같은 여자 때문에 오줌도 마음 편히 못 누겠잖아! 이러다 진짜 피 말라 죽겠어!’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시우의 육체를 짓눌렀다. 밤마다 도망칠 궁리를 하느라 잠을 설친 데다, 낮에는 화영의 감시를 피하느라 신경이 바짝 곤두서 두통이 머리를 깨부술 듯이 밀려왔다. 시우는 어떻게든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고, 화영의 매서운 시선이 닿지 않는 완벽한 은신처를 찾아야만 했다.
늦은 오후, 문파 사제들이 연무장에서 단체로 ‘대사형 어록’을 암송하며 수련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 시우는 몽당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는 척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보초 무사들과 화영의 시선이 찰나의 순간 어긋난 틈을 타, 문파 구석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목조 탑, 청명검종 천장각(天莊閣)의 무거운 나무문을 열고 은밀하게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끼이이익, 쾅.
천장각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시우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천장각은 과거 청명검종의 수천 권의 비급서와 고서들이 보관되어 있던 서고였으나, 문파가 쇠락한 이후 먼지만 자욱하게 쌓인 채 방치되어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공간이었다. 쾨쾨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시우에게는 이곳이야말로 화영의 매서운 시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지상 최고의 낙원이었다.
“살았다…… 여기라면 절대 못 찾겠지.”
시우는 먼지가 두껍게 쌓인 거대한 비급 책장들 사이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서가 뒤편, 햇빛조차 닿지 않는 아늑한 공간에 낡은 가죽 도포를 바닥에 깔고 스르륵 주저앉았다. 전신의 긴장이 풀리자 지독한 피로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시우는 알지 못했다.
천장각의 높은 천장 대들보 위, 그림자가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분홍빛 도포 자락을 숨긴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화영의 존재를.
화영은 화산파 비전의 은형 경공을 펼치며 시우의 뒤를 소리 없이 밟아 천장각 내부까지 침투해 있었다. 그녀는 들보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아, 아래에서 허둥지둥 숨을 몰아쉬는 시우를 매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한시우. 사제들의 눈을 피해 이 어두운 서고 깊은 곳으로 숨어들다니. 필시 무공을 전혀 못 하는 사기꾼의 실체가 들통날까 봐 도망친 것이 분명하다. 내 오늘 밤 네놈의 그 나약한 실체를 완벽하게 잡아내어 화산파의 이름으로 단죄하리라.’
화영은 검자루를 잡은 손에 내력을 가볍게 실으며, 시우가 방심하여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만을 조용히 기다렸다.
바닥에 누운 시우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방이 고요했으나, 왠지 모르게 등 뒤가 오싹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기분 탓인가? 왜 이리 춥지? 자객이 또 들어온 건 아니겠지?’
공포감이 엄습하자 시우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좁은 서가 틈새에서 긴장한 채 숨을 죽이고 있자니 산소가 급격히 부족해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몽롱해지며 뇌 정지가 찾아왔다. 시우는 산소를 보충하기 위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깊고 무기력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아…….”
그 무기력한 날숨이 천장각의 고요한 공기를 가볍게 진동시켰다.
들보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화영은 찰나의 순간 안광을 번뜩였다.
‘……! 방금 저 한숨은 무엇이지? 단순한 날숨이 아니다. 전신의 기운을 완벽하게 이완시키며 주변의 탁기를 정화하는 평화의 오라……! 내 매화검의 살기가 저 날숨 한 번에 완전히 흔적도 없이 정화되어 사라졌어!’
화영은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시우가 내쉰 깊은 한숨은 실제로는 ‘귀찮아 죽겠다, 집에 가고 싶다’는 절망의 날숨이었지만, 화영의 고도로 예민한 내력 감지기에는 주변의 모든 살기를 정화하는 평상심시도의 극의로 비쳤다.
그 순간, 시우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며칠 동안 화영의 감시 때문에 단 1초도 편히 자지 못했던 육체가 한계에 달한 것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자객이 와서 날 죽이든 말든…… 일단 잠 좀 자자. 잠자다 죽는 게 안 자고 고통받는 것보다 낫겠어.’
시우는 머리맡에 낡은 책 한 권을 대충 베개 삼아 베고, 옆으로 몸을 웅크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단 3초 만에, 시우의 정신은 완벽한 무의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들보 위의 화영은 숨을 죽인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잠에 빠진 건가? 아니, 저토록 무방비한 자세로? 사방에 자객이 도사리고 있는 무림에서, 일체의 방어 기세도 없이 저렇게 흐물흐물하게 누워 자다니……!’
화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볍게 신형을 날려 바닥으로 내려섰다.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완벽한 화산파의 경공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시우에게 다가갔다. 자는 척하며 자신을 유인하려는 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화검을 반쯤 뽑아 든 채 시우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검끝이 시우의 목전 3촌 앞까지 다다랐으나, 시우는 정말로 깊은 잠에 빠져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동공은 완전히 풀려 있었고, 입은 반쯤 벌어진 채 침이 흐르기 일보 직전이었다.
화영은 당황했다.
‘진짜 자는 건가? 이 거리에서 검을 겨누었는데도 심장 박동에 단 1푼의 흔들림도 없다니. 살기를 아예 감지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내 검 따위는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는 오만함인가!’
그녀의 이마에 미세한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시우의 완벽한 무방비 상태가 오히려 화영에게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공포로 다가왔다.
바로 그 순간, 정적만이 가득하던 천장각 내부를 뒤흔드는 거대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드르렁————!!!”
시우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웅장하고 거친 코골이 소리였다. 지독한 피로로 인해 기도가 좁아진 시우가 폭발적인 콧바람을 뿜어낸 것이었다.
“드르렁…… 퓨-우우우우우우.”
그 소리는 단순한 코골이가 아니었다. 천장각의 오래된 목조 벽면에 부딪힌 소리 파동이 웅장하게 공명하더니, 서가에 쌓여 있던 수십 년 묵은 먼지들을 사방으로 밀어내며 규칙적인 기류의 파동을 만들어냈다.
화영은 귀청을 때리는 그 거대한 공명에 기겁하며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이, 이것은……!!!’
그녀의 두 눈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장되었다. 화영의 머릿속에 화산파의 장문인이 구두로 전수해 주었던 전설의 태고 심법의 한 구절이 벼락같이 스쳐 지나갔다.
[태초의 기운은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며, 그 소리가 대지를 흔들고 먼지를 쓸어내릴 때 비로소 단전의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 대도의 문이 열리느니라.]
화영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녀의 심장은 폭발할 듯이 고동치고 있었다.
‘틀림없다…… 이것은 화산파의 시조들조차 도달하지 못했다는 전설의 호흡법, 태식코골이법(胎息鼻骨法)이다! 겉보기에는 추잡하게 코를 고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단전 깊은 곳의 막힌 기맥을 소리의 진동을 통해 강제로 뚫어내고 천지의 음양 기운을 완벽하게 순환시키는 우주적인 호흡법이야!’
화영은 시우의 코골이 소리의 일정한 주기를 귀를 기울여 분석하기 시작했다.
“드르렁(내쉬고)…… 퓨-우(들이마시고)……”
놀랍게도, 시우의 코골이 주기와 콧바람이 만드는 기류의 파동은 화영이 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던 화산파 내공 호흡법의 막힌 구절인 ‘매화삼십육검’의 마지막 병목 구간과 완벽하게 기하학적 궤적을 같이하고 있었다.
화영은 홀린 듯이 시우의 옆바닥에 무릎을 꿇고 정좌했다. 그리고 시우의 우렁찬 코골이 박자에 맞춰 천천히 자신의 호흡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드르렁……”
화영이 단전의 내력을 시우의 소리 파동에 실어 길게 내쉬었다.
“퓨-우……”
천지의 음기가 화영의 코끝을 통해 단전으로 폭포수처럼 빨려 들어갔다.
시우의 코골이 진동이 천장각 벽면을 타고 화영의 전신 기맥을 부드럽게 자극하기 시작하자, 십 년 동안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던 화영의 화산파 내공 병목 구간이 기적처럼 균열을 일으키며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화영의 전신에서 분홍빛 매화 검기가 후광처럼 피어오르며 연무장 바닥을 가볍게 휩쓸기 시작했고, 그녀의 안색이 급격히 붉어지며 기의 폭풍이 천장각 내부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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