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초옹의 쓴 약과 야식 만두의 기적
“아아, 대사형…… 저토록 고결한 눈물을 흘리시며 대지의 아픔을 달래고 계시다니. 소장, 대사형의 그 숭고한 자비심에 온몸이 떨릴 뿐입니다.”
청명산 뒤뜰 감자밭 구석. 황실 금위군 대장 강백은 허리를 구십 도로 꺾은 채 감격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뒤에 도열한 50명의 정예 근위대원들 역시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정작 흙바닥에 주저앉아 호미를 쥔 한시우의 속마음은 피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자비는 무슨 얼어 죽을 자비야! 내 개구멍! 내 필생의 도주로를 황실 초소로 만들어놓고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고, 이 미친 과잉 충성 살수 녀석아!’
시우는 흙 묻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흙투성이가 된 감자를 신경질적으로 캐냈다. 가난해서 문파를 망가뜨려 쫓겨나려던 그의 소박한 은퇴 계획은 이미 철검문의 자진 귀순과 황실 옹주 주예린의 대대적인 재정 후원으로 인해 완벽하게 파멸해 있었다. 수중에 든 은자 50냥은 위지관 장로에 의해 문파 대증축 예산으로 전액 동결되었고, 유일한 도망로였던 뒤뜰 개구멍마저 군사 초소로 변해버렸다.
이제 시우에게 남은 것은 24시간 자신을 감시하는 50명의 무시무시한 금위군 무사들과, 들통나면 사기죄로 가죽이 벗겨질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뿐이었다.
“강 대장…… 나 정말 피곤해서 그러는데, 이제 방에 들어가서 좀 쉬어도 되겠소?”
시우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묻자, 강백은 즉시 고개를 번쩍 들며 외쳤다.
“그렇지 않아도 대사형의 옥체에 피로가 쌓이실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처소로 드시지요! 저희 금위군이 한 치의 소음도 대사형의 명상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방 삼십 장을 철저히 봉쇄하겠습니다!”
‘제발 봉쇄 좀 하지 마…….’
시우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낡은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청명검종 뒤뜰 창고방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파 전역이 황실 하사금으로 번쩍이는 새 전각을 짓느라 쿵쾅거리는 소음으로 가득했지만, 시우의 아늑한 창고방만큼은 강백의 삼엄한 경비 덕분에 기묘할 정도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와 침상에 풀썩 쓰러진 시우는 베개를 머리에 얹고 끙끙거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가다간 진짜 남궁 영지 회합이라는 무서운 곳으로 끌려가서 가짜 실력이 백일하에 들통나 목이 날아갈 텐데…….’
바로 그때였다.
쾅!
창고방의 낡은 나무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짙은 흙 냄새와 지독하게 쓰고 비린 한약재 냄새가 방안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시우는 코를 움켜쥐며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 앞에는 나뭇가지처럼 마르고 굽은 손가락에 누더기 약초 망태기를 메고 있는 괴팍한 대머리 노인, 청명산의 은거 약초꾼 백초옹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아궁이에서 내온 듯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검고 걸쭉한 액체가 담긴 사발이 들려 있었다.
“흐흐흐, 대사형. 내 오늘 그대의 기묘한 기맥을 완전히 뚫어주기 위해 일생일대의 명약을 달여왔네!”
백초옹의 눈빛이 광적인 흥분으로 번뜩였다. 시우는 그 사발에서 풍겨 나오는 지옥의 유황천 같은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엉금엉금 물러섰다.
“백, 백초옹 어르신……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무엇이긴! 청명산 깊은 계곡의 절벽 틈새에서 백 년 동안 묻혀 있던 천년 만년삼의 뿌리와, 온갖 희귀 영초의 엑기스를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짜내어 삼일 밤낮을 달여낸 극상의 영약일세! 내 그대의 맥을 짚어보니 기맥이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꽉 막혀 있더군. 보통의 범인이라면 진작에 숨이 끊어졌을 기이한 상태야! 이 약을 마시면 그 막힌 혈도가 폭포수처럼 뚫릴 걸세!”
백초옹이 약사발을 들이밀며 시우의 턱을 억지로 붙잡으려 다가왔다. 시우는 그 걸쭉한 검은 액체 속에서 기괴한 거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건 약이 아니라 사약이다! 마시는 즉시 내 위장이 먼저 녹아내릴 게 분명해!’
실제로 시우의 기맥이 막힌 것은 영맥 폭발의 충격으로 시멘트처럼 영구 동결된 상태라, 이 영약을 마셔봤자 아무런 효과도 없고 그저 지독한 위장 장애와 설사만 유발할 뿐이었다. 하지만 백초옹은 그것을 ‘선천무결체’의 기묘한 방어 기전으로 오해하고 기어코 약을 먹이려 들었다.
“어서 마시게! 대사형의 옥체가 건강해져야 우리 청명검종이 천하를 지배할 것 아닌가!”
“잠깐! 잠깐만요, 어르신!”
시우는 턱을 꽉 쥔 채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가려 발악했다. 백초옹의 끈질긴 손길이 그의 목덜미를 낚아채려던 찰나, 시우의 뇌리에 번개 같은 꾀병의 꼼수가 스쳐 지나갔다.
“어르신! 지금 이 약을 마시면 안 됩니다! 제 몸 상태를 보십시오!”
시우는 품속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내 백초옹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것은 이전에 청명현의 돌팔이 허 의원에게 은자 한 푼을 주고 끊어온 ‘가짜 내상 진단서’였다.
“이것은……?”
백초옹이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진단서를 받아들었다. 시우는 즉시 이마에 손을 얹고 콜록콜록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 의원이 말하길, 제 내상은 전신 영기가 고갈되어 유리그릇처럼 극도로 취약한 상태라 했습니다. 이토록 강한 약력을 지닌 영약을 지금 갑자기 들이켰다간…… 제 단전이 약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 주화입마에 빠질 것이라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조금만 더 내력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시우의 창백한 안색(사실은 공사 소음과 굶주림으로 인한 영양실조)과 짙은 다크서클을 바라보던 백초옹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음…… 과연. 지존의 육체는 그 기묘함이 범인과 달라 약력을 받아들이는 타이밍도 극도로 섬세해야 하는 법이로군. 내가 잠시 서둘렀던 모양일세.”
백초옹은 약사발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엄숙하게 경고했다.
“하지만 이 천년 만년삼의 약력은 내일 아침이 지나면 증발해 버리네. 그러니 오늘 밤 내력이 조금이라도 안정을 찾는 즉시, 단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반드시 마셔야 하네. 알겠는가?”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
시우는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렸고, 백초옹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창문을 통해 신속하게 사라졌다.
방안에 홀로 남겨진 시우는 탁자 위에서 썩은 시체 같은 냄새를 풍기며 부글거리는 검은 약사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미쳤어. 저걸 어떻게 마셔? 하지만 내일 아침에 백초옹이 와서 약사발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려 들 텐데…… 그냥 창밖으로 버릴까?’
시우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창밖 어둠 속에는 횃불을 든 황실 호위무사 강백과 10명의 근위대원들이 눈을 번뜩이며 개구멍 초소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만약 이 귀한 영약을 창밖으로 버리다 걸리기라도 한다면, 강백이 ‘대사형께서 선계의 기운을 대지에 하사하신다’며 그 흙을 파먹거나 장로들에게 보고할 것이 뻔했다.
‘버릴 수도 없고, 마실 수도 없고…… 완전 범죄로 흔적을 지워야 해.’
시우의 머릿속에 기막힌 야식 동맹 주방장 팽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주방이다! 지금 팽가가 사제들의 야식 만두를 만들고 있을 시간이지. 그 거대한 만두 속재료 통에 이 약을 몰래 섞어버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게다가 팽가의 그 기름진 돼지고기와 부추 냄새라면 이 지독한 약 냄새도 가려지겠지!’
시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약사발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야반도주를 위해 자신이 제정하게 만들었던 ‘대사형 수련 방해 금지령’ 덕분에, 보초 무사들은 시우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으려 처소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만 배치되어 있었다. 시우는 고양이처럼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어두운 복도를 지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문을 슬쩍 열자, 거대한 가마솥에서 뽀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팽가가 야식으로 빚으려 준비해 둔 거대한 고기 속재료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주방장 팽가는 마침 추가 땔감을 구하기 위해 뒤뜰 창고로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나이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시우는 신속하게 주방 안으로 침투했다. 그리고 탁자 위의 거대한 만두 속재료 통 앞으로 다가갔다. 다진 돼지고기와 으깬 두부, 향긋한 부추가 가득 담긴 통에 시우는 품속의 검고 걸쭉한 백초옹의 영약을 주르륵 부어버렸다.
치이이익—.
차가운 고기 반죽에 뜨거운 약물이 섞이며 기이한 거품이 일어났지만, 시우는 옆에 있던 대형 무쇠 주걱을 들고 미친 듯이 반죽을 저어 섞었다. 검은 액체는 붉은 돼지고기와 초록빛 부추 사이로 흔적도 없이 녹아들어, 그저 고기 반죽의 색깔이 평소보다 약간 짙어 보이는 정도로 변했다.
“완벽해! 팽가는 그냥 고기가 좀 오래되어 색이 변했다고 생각하겠지! 이로써 약사발은 깨끗하게 비워졌고, 나는 지옥의 쓴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
시우는 빈 사발을 대충 씻어 품에 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처소 창고방으로 은밀하게 복귀했다. 그는 침상에 누워 텅 빈 은자 주머니를 만지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팽가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만두 맛이 아주 살짝 쓸 뿐이겠지. 어차피 사제들은 대사형이 주는 거라면 돌멩이도 맛있게 먹는 녀석들이니까 상관없어.’
하지만 시우는 백초옹이 달여온 약이 진짜로 천년 만년삼의 가공할 약력을 지닌 신화 급 영약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기맥만 막혀 있을 뿐 다른 제자들의 기맥은 이 약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다.
얼마 후, 주방으로 돌아온 주방장 팽가는 만두 속재료의 색이 약간 어두워진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고기 색깔이 왜 이러지? 아, 대사형께서 아까 주방 근처를 지나가시던데…… 필시 내 야식 만두에 축복을 내리시기 위해 선계의 비밀 향료를 몰래 뿌려두고 가신 게 분명하다!”
팽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그 기이한 고기 반죽을 정성스럽게 빚어 거대한 가마솥 찜통에 넣고 불을 지폈다.
한 시진 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팽가 특제 만두가 야간 수련을 하던 사제들과 정문을 지키던 금위군 무사들에게 야식으로 배포되기 시작했다.
대연무장 한구석에서 검술을 연마하던 광신도 사매 진소희와 분석형 천재 육청풍도 만두 한 접시를 받아들었다.
“와, 오늘 만두는 향이 아주 독특하네? 뭔가 깊은 산속의 영기 같은 냄새가 나.”
진소희가 눈을 반짝이며 만두 하나를 크게 베어 물었다. 약간 쓸쓸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지만, 돼지고기의 풍부한 기름진 맛과 조화를 이루어 묘한 중독성을 자아냈다.
“맛있어! 몸이 갑자기 따뜻해지는 것 같아!”
육청풍 역시 만두를 씹으며 자신의 안경을 치켜올렸다.
“으음, 이 만두 피의 두께와 속재료의 비율…… 그리고 이 쌉싸름한 약초의 맛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다. 이것은 인체의 기맥 흐름을 활성화하기 위한 고도의 연금술적 배합이 분명해!”
그들이 만두를 두세 개 더 삼킨 바로 그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대격변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구!
진소희의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영기의 파도가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던 기류가 푸른 빛을 발하며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어, 어라? 내공이…… 단전이 끓어올라!”
진소희의 비명과 함께, 그녀의 막혀 있던 이류 초입의 병목이 유리창이 깨지듯 쩡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전신을 관통하는 순수한 내력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며 그녀의 경지가 단숨에 이류 극성으로 수직 상승했다.
옆에 있던 육청풍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안경 너머 동공이 황금빛 기운으로 물들더니, 단전에서 십 년 동안 묵혀두었던 기맥의 찌꺼기들이 하얀 김이 되어 모공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전신 기맥이 완벽하게 청소되며 그의 뇌 연산 능력이 세 배로 치솟았다.
“이, 이것은…… 천년 만년삼의 약력이다! 대사형께서…… 대사형께서 우리의 미천한 자질을 안타까워하사, 밤낮으로 직접 연단하신 선계의 영약을 만두 속에 숨겨 우리에게 하사하신 것이다!”
육청풍이 자리에 주저앉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연무장 곳곳에서 만두를 먹은 사제들의 내공이 폭발하며 푸른 영기의 기둥들이 밤하늘을 향해 웅장하게 솟구쳐 올랐다. 정문을 지키던 황실 근위대원들 역시 만두를 먹고 전신 기맥이 뚫려 창을 쥔 채 덜덜 떨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아! 대사형 한시우! 그분은 참으로 살아있는 보살이시로다!”
처소 창고방 침상에 누워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있던 시우는, 갑자기 대지가 진동하고 창밖이 푸른 빛으로 번쩍이자 기겁하며 일어났다.
‘뭐, 뭐야? 또 무슨 사고가 터진 거야?!’
시우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슬쩍 열었다.
그의 처소 앞마당에는, 내공이 폭발해 전신에서 푸른 후광을 풍기는 진소희와 육청풍을 비롯한 수십 명의 사제들과, 붉은 제복을 입은 황실 근위대원들이 횃불을 든 채 단체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감격과 광신, 그리고 맹목적인 은혜 보답의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사형 한시우! 저희에게 선계의 영약 만두를 하사하신 그 끝없는 은혜, 골수 깊이 새기겠습니다!”
100여 명의 무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지르는 사자후가 청명산의 밤하늘을 웅장하게 뒤흔들었다.
시우는 씻어놓은 빈 약사발을 손에 쥔 채, 창틀을 붙잡고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의 눈가에서 처절한 절망의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팽가 이 미친 주방장 자식아…… 그걸 진짜 만두로 만들어서 애들한테 먹이면 어떡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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