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의 내습과 몽유병 검무
식인 호랑이 ‘범이’가 청명검종의 수호신수로 귀순했다는 소식은, 그날 밤 청명산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그 기적을 일구어낸 장본인인 한시우는 영혼이 반쯤 가출한 상태였다. 가시덤불에 긁혀 도포 자락은 누더기가 되었고, 아버지가 고향에서 보내준 소중한 비상식량인 생감자마저 호랑이의 목구멍 속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공복감과 피로, 그리고 사기극이 들통날지 모른다는 극도의 스트레스가 그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대사형, 수호신수 범이를 처소 옆 대나무 숲에 안착시켰사옵니다. 참으로 대사형의 자비로움은 끝이 없으십니다.”
진소희 사매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보고를 올렸지만, 시우는 그저 굳어버린 얼굴로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하나, ‘배고파 죽겠는데 이제 난 뭘 먹고 도망치냐’는 절망적인 생각뿐이었다.
“……알았으니 다들 돌아가서 쉬어라. 나도 깊은 정좌(명상)에 들어야겠구나.”
시우는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며 처소인 뒤뜰 창고방으로 기어 들어갔다. 제자들은 그 한숨 소리를 ‘천하의 안위를 걱정하는 지존의 고독한 탄식’으로 오역하며 감격스럽게 물러났다.
창고방 문을 걸어 잠근 시우는 낡은 침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매일 밤낮으로 이어지는 억까와 착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의 정신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시우는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 밑 구석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곳이 그나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은신처였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자마자, 극심한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혼절에 가까운 깊은 잠이 그를 덮쳐왔다.
***
같은 시각, 청명산 기슭의 짙은 안개 속.
검은 야행복을 입고 서슬 퍼런 안광을 번뜩이는 무리들이 소리 없이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거대한 체구에 검은 가죽 옷을 입고, 등 뒤에 묵직한 흑철검을 멘 사내가 서 있었다. 인근 철검문의 문주이자 일류 극성의 고수, 사도광이었다.
그의 옆에는 구리빛 거구에 상반신을 탈의하고 백 근짜리 무쇠 철퇴 ‘맹호퇴’를 어깨에 멘 원로 장로 맹호가 험악한 인상을 쓰며 따르고 있었다.
“문주님, 수석제자인 팽표 녀석마저 만검굴에서 허무하게 제압당했다 들었습니다. 청명검종의 가짜 대사형 한시우라는 자, 정말로 소문대로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한 괴물이란 말입니까?”
맹호의 물음에 사도광이 이빨을 부득부득 갈며 흑철검의 자루를 꽉 쥐었다.
“흥, 무형검은 무슨 얼어 죽을 무형검! 내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범인이라는 첩보가 있었다. 필시 고도의 위장술이거나, 청명검종 늙은이들이 꾸며낸 허상일 뿐이다. 오늘 밤 내 직접 그 가짜 천재의 목을 베어 철검문의 위세를 천하에 알릴 것이다!”
사도광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지독한 의심과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만검굴의 기습 실패와 당뇌의 독살 음모 분쇄는 철검문의 존립을 흔드는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이번 야간 습격은 그 모든 패배를 만회하기 위한 마지막 도박이었다.
사도광과 철검문 무사들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청명검종의 담벼락을 넘었다. 마침 시우가 제정하게 만든 ‘대사형 수련 방해 금지령’ 덕분에, 보초 무사들은 시우의 처소에서 멀리 떨어진 문파 외곽에만 배치되어 있었다. 사도광의 눈에는 이 허술한 경비가 자신들을 유인하려는 고도의 덫처럼 보여 침을 꿀꺽 삼켰다.
“장로, 방심하지 마라. 연무장 한가운데에 함정이 있을지 모른다.”
사도광과 맹호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청명검종 대연무장 청석 바닥을 밟았다. 달빛이 구름 사이로 비쳐 내리며 연무장 바닥을 차갑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익—.
대연무장 구석에 위치한 시우의 처소, 창고방의 낡은 나무문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사도광과 맹호는 본능적으로 신형을 웅크리며 바위 그늘 뒤로 숨었다. 그들의 매서운 시선이 열린 문틈을 향해 집중되었다.
안개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사내가 있었다. 회색 잡역부 도포를 대충 걸치고, 지푸라기로 묶은 머리를 산발한 채 몽당빗자루를 손에 쥔 사내. 청명검종의 대사형, 한시우였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지극히 기이했다. 시우의 두 눈은 완벽하게 감겨 있었고,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모습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강시와도 같았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만성 신경쇠약이 자아낸 질병, ‘몽유병’ 상태였다.
시우는 자신이 자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의 잠재의식 속에는 낮 동안 위지관 장로가 내린 “대사형 처소 주변의 청결을 유지하라”는 잔소리가 거대한 강박관념으로 남아 있었다. 잠결에 청소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의 육체를 강제로 움직인 것이었다.
시우는 몽당빗자루를 양손으로 꽉 쥐고, 대연무장 중앙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사도광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저, 저 자가 한시우인가? 그런데 어찌 기운의 흐름이 단 1푼도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 내공을 완벽하게 갈무리해 대자연의 일부로 동화된 반박귀진의 경지…… 살기 제로 신체(살기 제로 신체)가 진짜였단 말인가!’
사도광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일류 고수로서의 직감이 경고음을 울려대고 있었다. 저 무방비해 보이는 걸음걸이와 감긴 눈이야말로, 자신들의 살기를 미리 읽고 비웃는 절대자의 여유로운 태도처럼 비쳤기 때문이었다.
시우는 연무장 중앙에 멈춰 서더니, 몽당빗자루를 허공을 향해 흐물흐물하게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대나무 빗자루 끝이 청석 바닥을 긁으며 기묘한 마찰음을 냈다. 시우는 그저 꿈속에서 빗자루질을 방해하는 모기들을 쫓아내기 위해 무작위로 휘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달빛 아래서 흩날리는 흙먼지와 빗자루가 그리는 불규칙한 곡선의 궤적은, 사도광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검로를 무력화하는 전설의 무학으로 둔갑했다.
‘저, 저것은……!’
사도광의 동공이 극도로 축소되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철검문의 비전 검법들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시우의 빗자루질과 대입되기 시작했다.
‘바람의 결을 따라 먼지를 일으켜 내 시야를 가리는 동시에, 빗자루 끝의 헐렁한 흐름이 내 철검폭렬참의 모든 공격 궤적을 미리 차단하고 있다! 검의 형태를 초월하여 허공을 베는 청명검종 최고의 비전 검법, 무형공무검(無形空無劍)의 극의로다!’
사도광은 침을 삼켰다. 자신이 칼을 뽑아 드는 순간, 저 무심한 빗자루 끝이 자신의 목덜미 혈도를 정확하게 꿰뚫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환각이 뇌리를 스쳤다. 똑똑하고 의심이 많은 고수일수록, 시우의 무반응과 무작위 동작을 신의 한 수로 오판해 스스로 자멸하는 착각의 메커니즘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문주님, 왜 굳어 계십니까? 내 저 가짜 녀석을 내 철퇴로 단숨에 으깨버리겠소!”
무식하고 단순한 장로 맹호가 참지 못하고 철퇴를 휘두르며 앞으로 난입하려 했다.
그 순간, 자고 있던 시우가 잠결에 캑캑거리며 기침을 크게 내뱉었다.
“에취! 켁!”
기침의 반동으로 시우의 몸이 뒤로 힁 돌면서, 들고 있던 몽당빗자루가 대연무장 바닥을 크게 쓸어내렸다. 빗자루 끝에 걸려 있던 청석 파편과 흙먼지가 엄청난 속도로 맹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악! 내 눈!”
날아온 먼지와 돌가루가 맹호의 눈을 정확히 직격했다. 시야가 가려진 맹호가 당황하여 비틀거리다가, 발이 꼬여 중심을 잃고 자빠졌다. 그 와중에 어깨에 메고 있던 백 근짜리 무쇠 철퇴 ‘맹호퇴’를 놓쳤고, 떨어진 철퇴가 맹호의 발등을 정확하게 내리찍었다.
쾅!
“으아아아아악! 내 발가락! 발가락이 으스러졌다!”
맹호는 비명을 지르며 대연무장 바닥을 뒹굴었다.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빗자루질 한 번으로 일류 고수 맹호를 자멸시킨 가공할 무위였다.
그 광경을 정면에서 목격한 사도광의 정신은 완벽하게 붕괴되었다.
‘보지도 않고…… 기침 한 번과 빗자루질 한 번으로 일류 고수 맹호의 철퇴 궤적을 역이용해 스스로 발등을 찍게 만들다니! 저 자는 인간이 아니다! 천기를 읽고 인과율을 조작하는 괴물이다!’
극도의 공포감이 사도광의 전신 기맥을 강타했다. 두려움으로 인해 그의 심장 박동이 폭주했고, 내력이 역류하며 스스로 주화입마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뒤틀리는 극심한 통증에 사도광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끄으으윽…… 내, 내 패배다…….”
사도광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의 오만한 흑철검이 청석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시우는 여전히 잠결에 취해 있었다. 기침을 한 번 크게 한 덕분에 목구멍이 시원해진 그는, 빗자루를 든 채 크게 하품을 내쉬었다.
“하아아암—.”
그 깊은 하품 소리는 사도광의 귀에는 자신들의 보잘것없는 도전을 비웃는 지존의 준엄한 조롱으로 들렸다.
“철검문은…… 오늘부로 패배를 인정하오. 청명검종의 위대한 대사형이시여,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시오! 우리 철검문을 청명검종의 하급 지부로 바치고 평생 충성을 맹세하겠소!”
사도광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울부짖었다. 맹호 역시 발가락을 움켜쥔 채 눈물을 흘리며 함께 머리를 조아렸다.
그 소란스러운 비명과 울부짖음 소리에, 마침내 시우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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