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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50냥과 대증축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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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강의 눈물 어린 자백은 백련각 내당을 뒤흔들었다. 무림맹의 날카로운 칼날이라 불리던 감사단장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제 발로 횡령 장부와 비밀 금고의 위치를 불어대는 광경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이들이라면 평생 잊지 못할 기괴한 희극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기적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한시우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이 아저씨가 진짜 왜 이러는 거야? 난 그냥 물 좀 달라고 헛기침을 했을 뿐인데, 왜 갑자기 자기 무덤을 알아서 파고 난리야!’


시우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탁자 위에 놓인 모용강의 비밀 장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전신을 적신 식은땀이 차가운 밤바람에 식어가며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모용강은 시우의 그 멍한 표정마저 ‘모든 죄상을 꿰뚫어 보고 처벌의 수위를 저울질하는 지존의 무심한 눈빛’으로 오독하고는 더욱 격렬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대사형…… 부디 가문과 무림맹의 명예를 생각해 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이 장부에 적힌 모든 비리를 밝히고, 내일 당장 감사단을 철수시키겠습니다!”


모용강의 애원 소리가 백련각 내당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다. 시우는 굳어버린 턱관절을 겨우 움직여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알았으니, 그만 일어나시지요.”


그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는 한마디는 모용강에게 면죄부나 다름없었다. 모용강은 눈물을 훔치며 황급히 일어섰고, 그 길로 백련각의 문을 열고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철면장로 위지관과 남궁세가 가주 남궁벽이 백련각 안으로 들이닥친 것은 그로부터 찰나의 순간이었다. 위지관은 탁자 위에 놓인 비밀 장부를 발견하고는 가슴을 움켜쥐며 오열했다.


“아아, 대사형! 저 사악한 감사단장의 숨겨진 비리마저 무언의 압박으로 털어내시다니! 이 장부 하나로 우리 청명검종은 물론, 무림맹 내부의 부패까지 일거에 척결하셨습니다! 참으로 천하의 등불이십니다!”


남궁벽 역시 시우의 어깨를 꽉 잡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과연 내 생명의 은인이자 청명의 대사형이시로다! 이 사실이 황실에 전해지면 옹주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오!”


시우는 어깨를 짓누르는 남궁벽의 묵직한 손길에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통통한 고통을 느끼며 비굴하게 웃어 보였다. 속으로는 이미 고향 감자밭의 흙냄새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래, 감사단 소동도 끝났고, 오진태도 감옥에 처넣었으니 이제 문파는 안전하다. 그리고 감사단장이 뇌물 장부까지 바쳤으니 문파는 이제 엄청난 공을 세운 셈이지.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내가 퇴직금을 받고 도망칠 최고의 타이밍이다!’


시우의 머릿속은 오직 하나, ‘퇴직금 은자 50냥’을 챙겨 이 끔찍한 오해의 늪을 탈출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청명검종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모용강이 자수하며 바친 비밀 장부의 파장은 실로 엄청났다. 무림맹 감사단은 자신들의 단장이 저지른 추악한 비리가 백일하에 드러나자, 압류 영장을 찢어발기고 밤을 틈타 청명현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청명검종은 졸지에 무림맹의 부패를 척결한 정의의 수호자로 칭송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오후, 청명산 초입에 황실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웅장한 가마 행렬이 당도했다.


시우를 짝사랑하는 황실의 셋째 옹주, 주예린이 보낸 특별 전령이었다.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황실 관리가 연무장 중앙에서 황제의 조서를 낭독했다.


“청명검종의 대사형 한시우는 무림맹 내부의 반역 음모를 척결하고, 옹주를 구출한 공로가 지대하므로, 황실의 이름으로 순금과 황실 공식 어음으로 구성된 황실 하사금 1,000냥을 하사하노라!”


연무장에 모인 사제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황실 하사금 1,000냥! 중소 문파 하나를 통째로 매입하고도 남을 가공할 만한 거액이었다. 붉은 비단으로 포장된 거대한 상자들이 연무장 중앙에 쌓이자, 금빛 광채가 청명산의 가을 하늘을 눈부시게 물들였다.


사제들의 환호성 너머로, 시우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번뜩였다.


‘천, 천 냥……? 황실 하사금이 무려 천 냥이라고?!’


시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문파가 이토록 엄청난 거부가 되었으니, 자신이 평생의 은퇴 자금으로 삼으려던 ‘은자 50냥’ 정도는 그야말로 먼지 한 톨에 불과할 터였다.


‘됐다! 문파 금고에 천 냥이 들어왔는데, 내가 내 몫의 퇴직금 50냥을 가져간다고 해서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이건 훔치는 게 아니다. 문파를 구한 대사형으로서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퇴직금이자 severance package란 말이다!’


시우는 오늘 밤이야말로 야반도주를 감행할 최고의 적기라고 확신했다. 그는 처소인 뒤뜰 창고방으로 돌아와 은밀하게 도망칠 준비를 시작했다. 낡은 삼베 보따리에 팽가가 챙겨준 단단한 비상식량용 감자 몇 알과, 장만복에게 받은 푼돈을 챙겨 넣었다. 그의 심장이 은퇴를 향한 설렘으로 두근거렸다.


‘기다려라, 고향의 감자밭아! 이 대사형이 드디어 은자 50냥을 품에 안고 돌아간다!’


***


깊은 밤, 청명산은 고요한 정적에 잠겼다.


시우는 보따리를 등 뒤에 단단히 묶고, 이 빠진 목검을 허리에 찬 채 슬며시 창고방 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위지관 장로가 제정한 ‘대사형 수련 방해 금지령’ 덕분에 보초들조차 숨을 죽이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제자들은 대사형이 밤낮으로 천기를 해독하느라 정좌 수련(낮잠)에 들었다고 믿고 있었기에, 처소 주변은 기묘할 정도로 한적했다.


시우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문파의 재정 금고가 있는 장문각 지하 창고로 향했다.


삐걱.


낡은 나무 계단을 밟을 때마다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시우는 전신에 내공이 전혀 없는 ‘살기 제로 신체’였기에, 오히려 발소리를 죽이는 은신력만큼은 어지간한 살수를 능가했다. 마침내 지하 금고 문 앞에 도달한 시우는 쇠자물쇠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다행히도 낮에 황실 하사금을 정리하느라 열쇠가 느슨하게 채워져 있었다.


철컥.


자물쇠가 열리고 문이 스르륵 열렸다. 창고 내부에는 낮에 들어온 황실 하사금 상자들이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우는 그 거대한 황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황실의 돈을 건드렸다간 금위군의 추적을 받아 평생 도망자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공포 때문이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오직 하나, 구석에 먼지 쌓인 채 방치되어 있던 청명검종의 아주 오래된 재정 상자였다.


시우는 떨리는 손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투박하고 묵직한 은자 50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달빛이 창살 사이로 들어와 은색의 고결한 표면을 비추었다.


“아아…….”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으며 은자 주머니를 품에 안았다. 차갑고 묵직한 은자의 감촉이 그의 전신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것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 50냥만 있으면 고향 마을에서 비옥한 감자밭 두 마지기를 사고, 평생 일하지 않고도 유유자적하게 낮잠을 즐기며 은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내 은퇴…… 내 감자…… 드디어 성공했다.”


시우가 은자 주머니를 도포 품속 깊은 곳에 쑤셔 넣고 뒤를 돌아선 순간이었다.


“늦은 밤에 홀로 문파의 재정을 살피시다니, 참으로 그 헌신하심이 눈물겹사옵니다, 대사형.”


“으아악!”


어둠 속에서 툭 튀어나온 웅장한 목소리에 시우는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품속의 은자 주머니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가슴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던 그의 눈앞에, 어둠을 뚫고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철면장로 위지관이었다.


위지관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장로 도포를 입고, 한 손에는 청명검종의 규율 장부를 쥔 채 엄숙한 눈빛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우는 사기꾼 정체가 들통나 현장에서 체포당했다는 공포에 질려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망했다! 장로님한테 현장에서 도둑질하다가 걸렸어! 이제 난 끝이야! 가죽이 벗겨져서 청명산 식인 호랑이 밥으로 던져질 거라고!’


극도의 공포감이 시우의 얼굴을 완벽하게 얼려버렸다. 그의 눈빛은 초점을 잃고 흐려졌고, 입술은 일자로 굳게 다물어졌다. 만성 피로와 공포가 결합하여 자아낸 전설적인 ‘오해 유발 아우라’가 백련각 지하 창고의 어두운 공기를 차갑게 얼려버렸다.


위지관은 시우의 그 떨리는 손끝과 굳어진 얼굴 표정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웅장한 전율을 느꼈다.


‘보아라! 낮에 들어온 황실 하사금 1,000냥의 눈부신 황금 앞에서도 단 1푼의 흔들림도 없으시구나! 오히려 그 황금들을 등진 채, 문파의 가장 낡고 초라한 은자 상자 앞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 계시다니! 이것이야말로 재화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만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존의 청빈함(淸貧)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위지관은 감격에 겨워 서서히 무릎을 꿇으려 했다. 시우는 뇌 정지가 찾아온 상태에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 합법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비굴하게 머리를 굴렸다.


“저, 장로님…… 실은 제가 요즘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더 이상 대사형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낡은 은자 50냥만 제 퇴직 위로금으로 챙겨주시고, 저를 공식적으로 파문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시우는 목소리를 바들바들 떨며 애원했다. 제발 자신을 쓸모없는 낙제생으로 여겨 쫓아내 달라는 처절한 고백이었다.


하지만 위지관의 뇌내망상은 이미 은하계 저편까지 폭주하고 있었다.


‘아아! 대사형! 이 무슨 눈물겨운 성자(聖者)의 마음이란 말인가! 황실 하사금 천 냥이라는 거액이 들어오자마자, 자신은 오직 문파의 가장 가난하던 시절의 은자 50냥만을 챙겨 조용히 은거하려 하시다니! 권력과 명예를 탐하지 않고, 오직 문파의 재정을 온전히 사제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스스로 파문을 청하시는 저 고결한 희생정신!’


위지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는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통곡에 가까운 소리로 외쳤다.


“대사형! 어찌 그런 서글픈 말씀을 하십니까! 대사형의 그 청빈함과 깊은 배려에 이 위지관,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결코 안 됩니다! 천하가 대사형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거늘, 어찌 이 초라한 은자 50냥만을 들고 은거하려 하십니까!”


“아니, 장로님…… 전 진짜 청빈한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대사형께서는 언제나 스스로를 낮추며 돈을 멀리하셨지요! 하지만 이제 문파의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남궁세가의 남궁벽 가주님께서 대사형을 가문의 명예 사위로 삼고 싶다며 온 무림에 공표하셨습니다! 게다가 황실의 주예린 옹주님께서도 대사형께 마음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위지관은 품속에서 웅장한 목조 건물의 청사진이 그려진 거대한 두루마리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보십시오, 대사형! 황실과 남궁세가, 그리고 전 무림의 이목이 우리 청명검종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사형께서 이 낡은 창고방에 머무시는 것은 황실과 남궁세가에 대한 결례입니다! 이에 저와 태상장로님은 오늘 낮에 들어온 황실 하사금 1,000냥 전액을 동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시우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심하게 흔들렸다.


“……동결이요? 전액을요?”


“예! 황실 하사금 1,000냥과 문파의 기존 재정, 그리고 대사형께서 방금 쥐고 계시던 은자 50냥까지 단 1푼도 남김없이 전액 동결하여, 청명검종의 정문과 전각들을 초호화로 대증축하는 예산으로 즉시 입금 처리했습니다!”


위지관은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청사진의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이곳이 바로 대사형의 고결한 무위자연 사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될 웅장한 ‘대사형 기념 전각’입니다! 정문은 황실의 금색 실로 치장하고, 전각의 기둥은 남해의 귀한 적목(赤木)으로 세울 것입니다! 이 대증축 공사를 통해 우리 청명검종은 무림의 신흥 명문 대기업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시우는 품속에 있던 은자 주머니를 위지관에게 강제로 빼앗기는 순간,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는 듯한 극심한 허탈감을 느꼈다.


‘내 은자…… 내 감자밭…… 내 평화로운 은퇴…….’


시우가 멍하니 서서 입만 벙긋거리자, 위지관은 이를 ‘문파의 장엄한 미래를 보며 깊은 사색에 잠긴 지존의 묵직한 침묵’으로 오해하고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또한, 대사형께서 가장 사랑하시던 저 뒤뜰 창고방은 대사형이 도를 깨달으신 신성한 성지, ‘한시우 대사형 오도처(悟道處)’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내일부터 그곳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성지 보존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오니, 대사형께서는 공사 기간 동안 임시 처소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우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고 싶었다. 은퇴 자금은 단 1푼도 건지지 못했고,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낮잠의 성지였던 낡은 창고방마저 빼앗겨 버린 것이다. 돈 한 푼 없이 삼엄한 황실 경호원들과 사제들의 감시 속에 갇혀버린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


다음 날 아침, 동이 트기가 무섭게 청명검종 전체가 요란한 굉음으로 가득 찼다.


“깡! 깡! 깡! 깡!”

“쓱싹쓱싹! 쓱싹쓱싹!”


수백 명의 인부들이 동원되어 청명검종의 정문과 전각들을 허물고 새로 짓는 대증축 공사가 시작되었다. 웅장한 나무망치 소리와 톱질 소리가 온 산을 메아리쳤고, 뽀얀 흙먼지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시우는 창고방에서 쫓겨나 공사 현장 바로 옆에 급조된 허름한 임시 처소 침상에 누워 있었다.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지옥 같은 소음 때문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깡! 깡! 깡!”


망치 소리가 그의 단전(?)을 직접 타격하는 듯한 환각이 일었다. 시우는 침대 위에서 뒹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은퇴 자금 50냥은 공사비로 공중분해 되었고, 조용히 잠을 잘 수 있는 평화마저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으아아악! 제발 그만해! 제발 조용히 좀 하자고!”


시우가 베개를 뒤집어쓰고 절망 어린 비명을 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웅장한 공사 소음 속에 허무하게 묻혀버렸다. 은퇴의 꿈이 처참하게 무너진 대증축의 비극 속에서, 시우는 눈물을 흘리며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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