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단장의 자수와 식은땀
어스름한 밤공기가 청명검종의 내당, 백련각(白蓮閣)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백련각은 평소 상급 제자들이 모여 정좌 수련을 하거나 문파의 중대사를 논하는 엄숙한 전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이곳은 무림맹 감사단장 모용강이 대사형 한시우를 신문하기 위해 마련한 비밀 취조실로 탈바꿈해 있었다.
“대사형, 부디 몸을 보존하십시오. 저 사악한 감사단의 농간에 결코 흔들리지 마소서.”
백련각의 웅장한 목조 문 앞까지 시우를 배웅한 철면장로 위지관은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비장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그의 두 눈에는 대사형을 향한 맹목적인 신뢰와, 저 사악한 무림맹 감사단의 압박에 맞서 문파의 자존심을 지켜내리라는 결의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전각 바깥 어둠 속에는 다리가 완치되어 펄펄 날아다니는 남궁세가 가주 남궁벽과 수십 명의 무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며 모용강을 압박하고 있었다.
‘제발…… 장로님, 그렇게 비장하게 보지 마세요. 나 지금 진짜 무서워서 오줌 지릴 것 같으니까…….’
시우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백련각 내부로 발을 디뎠다.
쿵.
등 뒤에서 무거운 목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마치 도살장의 쇠창살이 내려앉는 소리처럼 들렸다.
내당 내부는 어두웠다. 탁자 위에 놓인 단 한 자루의 초가 흔들리며 벽면에 기괴하고 긴 그림자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탁자 맞은편에, 화려한 무림맹 감사관 관복을 입은 모용강이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콧대는 여전히 높아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눈동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남궁벽의 기적적인 완치로 인해 심리적으로 완전히 위축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앉으시오, 대사형.”
모용강이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말하며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시우는 도살장으로 향하는 소처럼 터덜터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그의 다리는 이미 제 통제를 벗어나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으나, 시우는 이를 숨기기 위해 도포 자락을 무릎 위로 꾹 눌러 내렸다.
의자에 앉자마자 시우의 머릿속에는 지독한 뇌 정지가 찾아왔다.
‘끝났다. 단둘이 있는 이 방에서 저 자가 내 맥을 짚거나 무공을 시험하려 들면, 내가 단 1g의 내공도 없는 순도 100%의 잡역부 범인이라는 사실이 1초 만에 들통날 거야. 그러면 사기죄로 목이 날아가겠지? 아니, 무림맹 지하 감옥에 갇혀 평생 썩을지도 몰라!’
극도의 공포감이 시우의 얼굴 근육을 완벽하게 얼려버렸다. 눈빛은 초점을 잃고 흐려졌고, 입술은 일자로 굳게 다물어졌다. 만성 피로로 인해 눈가에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어두운 촛불 빛을 받아 묘한 음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바로 시우의 전설적인 ‘오해 유발 아우라’였다.
모용강은 시우의 그 무심하고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보아라. 단둘이 있는 취조실 안에서도 저토록 태연자약하다니. 내공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살기 제로 신체’…… 역시 소문대로 기운을 완벽하게 갈무리한 반박귀진의 괴물이 분명하구나. 남궁벽을 아군으로 포섭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나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속셈인가?’
모용강은 침을 꿀꺽 삼키며, 테이블 위에 놓인 가죽 장부와 압류 도장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일부러 날카로운 목소리로 포문을 열었다.
“대사형 한시우. 소문은 익히 들었소. 졸음 속에서 영맥을 뚫고, 빗자루 하나로 적을 제압하며, 방금 전에는 끓는 소금물로 남궁 가주의 고질병까지 고치셨더군. 실로 대단한 신통력이오. 하지만 무림맹 감사단은 바보가 아니오. 청명검종의 갑작스러운 재정 부흥과 오진태 장로의 실각, 그리고 그 역모 밀서의 발견……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정교하게 짜 맞춘 듯 흘러가고 있소. 마치 누군가가 배후에서 모든 것을 설계한 것처럼 말이오.”
모용강은 시우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묻겠소. 그 역모 밀서는 어떻게 그리 정확한 타이밍에 확보한 것이오? 그리고 남궁 가주의 다리 혈도를 단번에 저격한 그 뜨거운 소금물…… 그 물에 녹아 있던 정화 성분은 대체 무엇이었소? 평범한 잡역부가 끓였다고 하기엔 너무나 치밀한 독문 해독제였소. 무림맹 내부에서 정보를 흘려주는 고위 조력자가 있는 것 아니오?”
모용강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그는 시우가 당황하여 꼬리를 밟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우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어 질문의 뜻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모 밀서? 소금물? 무림맹 내부의 조력자? 그게 다 무슨 개소리야…… 난 그냥 만두 먹으려고 구르다가 부딪힌 거고, 손가락이 뜨거워서 찻잔을 떨어뜨린 것뿐인데! 왜 저 아저씨는 나를 자꾸 무서운 음모가로 모는 거지?’
시우는 억울하고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다. 질문에 대답을 잘못했다간 꼬투리가 잡혀 당장 숙청당할 터였다. 침묵이 금이라 했던가. 시우는 입을 꾹 다물고 오직 살려달라는 생각만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백련각 내당 내부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단 한 자루의 촛불만이 흔들리며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대변했다.
모용강은 시우의 침묵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대답이 없다……? 내 질문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군. 아니, 섣불리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먼저 패를 까게 만들려는 고도의 심리전인가? 저 무심한 눈빛은 마치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비밀을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격언대로, 모용강의 내면에서 거대한 공포가 싹트기 시작했다. 사실 모용강은 청렴한 감사관이 아니었다. 그는 청명검종의 이장로였던 오진태와 결탁하여 거액의 뇌물을 받고, 청명검종의 영석 광산 소유권을 허위 비리로 압류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던 부패한 관리였다. 그의 품속에는 오진태에게 받은 황금의 내역과, 무림맹 내부의 자금 세탁 경로가 적힌 비밀 장부가 숨겨져 있었다.
‘설마…… 저 한시우가 내가 오진태와 결탁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건가? ‘무림맹 내부의 조력자’라는 내 질문에 그가 단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는 것은, 이미 내 배후를 완벽히 털어놓고 나를 비웃고 있기 때문인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모용강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편, 시우 역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밀폐된 방안의 무거운 공기와 모용강의 날카로운 안광에 압도당한 시우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로 인해 그의 전신에서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그 결과, 시우의 이마와 전신에서 비 오듯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뚝. 뚝.
굵은 땀방울이 시우의 굳어버린 턱선을 타고 흘러내려 청석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전신이 미세하게 바르르 떨렸다. 시우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아, 땀이 왜 이렇게 나지? 들통나면 진짜 죽는다. 목이 날아간다. 제발 살려줘 조상님! 나 고향 감자밭으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살고 싶단 말이야!’
시우의 전신에서 흐르는 그 처절한 식은땀과 미세한 떨림을 바라보며, 모용강의 뇌내망상은 완전히 폭주하기 시작했다.
‘저, 저 땀은……! 두려움의 땀이 아니다! 저 자는 지금 내력을 극한으로 순환시키며 전신으로 무형의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촛불의 흔들림이 멈춘 것은 저 자가 내뿜는 강력한 영역(領域) 때문인가? 저 엄청난 양의 식은땀은 전신 기맥을 활성화해 나를 단숨에 소멸시키기 위한 준비 동작이 분명하다!’
모용강의 눈에는 시우가 흘리는 식은땀이 마치 절대자가 심판을 내리기 전, 전신의 영기를 끌어올리는 무서운 전조 증상으로 보였다. 시우의 굳어진 무표정은 ‘더 이상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말고 이실직고하라’는 무언의 최후통첩이었다.
“대사형…… 왜 말이 없으시오? 내 질문이 틀렸단 말이오?”
모용강의 목소리가 꼴사납게 갈라졌다.
시우는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가 갈증을 느꼈다. 아까 연회장에서 들이킨 뜨거운 소금물의 염분과, 지금 흘린 엄청난 양의 식은땀 때문에 목이 찢어질 듯 아팠다. 시우는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싶어 목을 가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목에서는 웅장하고 묵직한 헛기침 소리가 흘러나왔다.
“흠흠…….”
시우는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 내며, ‘정신 붕괴 대화법’의 극의를 본의 아니게 시전했다. 그는 그저 이 무서운 신문을 빨리 끝내고 물을 마시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만하시지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 나지막하고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는 한마디는, 모용강의 정신을 완전히 박살 내는 마지막 쐐기가 되었다.
‘그만하라니……! 이미 모든 증거를 쥐고 있으니 더 이상 추악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라는 뜻이구나! 뇌물 장부의 위치까지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던 게 분명해!’
모용강의 심장박동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머릿속에서 자신이 무림맹 사법 단상에 서서 참수당하는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남궁벽이라는 거대한 우군을 등에 업은 한시우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반역죄와 뇌물수수죄로 즉시 처단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공포가 극에 달하자, 모용강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털썩!
모용강은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차가운 백련각 청석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화려한 관복이 바닥의 먼지를 쓸어내렸으나, 그는 체면 따위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대, 대사형……!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모용강은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시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닥에 엎드린 모용강을 내려다보았다.
‘……응? 이 아저씨 갑자기 왜 이래? 왜 무릎을 꿇고 울고 난리야?’
시우는 너무 어이가 없어 뇌 정지가 한 번 더 찾아왔다.
모용강은 시우의 침묵을 자비를 구걸하는 자를 향한 준엄한 심판의 눈빛으로 오해하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과거의 모든 비리를 자발적으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제가 오진태의 황금 500냥에 눈이 멀어 청명검종을 파멸시키려 했습니다! 무림맹 감사단의 권한을 남용해 거짓 비리 장부를 꾸민 것도 모두 저의 죄입니다! 대사형의 그 추상같은 안광 앞에서는 그 어떤 거짓도 통하지 않는군요! 제발…… 제발 무림맹주님께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 주십시오!”
모용강은 품속을 뒤져 오진태에게 받은 황금 내역이 적힌 진짜 비밀 횡령 장부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복 안감을 가리켰다.
“여기…… 이 비밀 장부와, 제가 그동안 무림맹 감사단장으로 일하며 모은 모든 뇌물 황금이 숨겨진 비밀 금고의 위치가 적힌 지도가 있소이다! 무림맹 본산 제3구역 소나무 아래에 묻어둔 철상자 안에 장부가 하나 더 있소! 그 장부의 위치까지 모두 밝힐 테니 부디 목숨만은……!”
모용강이 횡령 장부의 위치까지 스스로 불며 눈물을 흘리자, 시우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라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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