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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타는 은빛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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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전체가 푸른빛의 살기 어린 전류로 가득 차며 공기가 비명 지르듯 웅웅거렸다. 녀석은 절벽 전체를 통째로 가루로 만들어버릴 대규모 뇌전 폭풍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한! 피해야 해! 저 벼락을 정면으로 맞으면 정령의 장막으로도 버틸 수 없어!”


바람의 정령 실프가 유한의 귓가에서 다급하게 비명을 질렀다. 실프가 전개한 바람의 장막(Wind Barrier)이 폭풍의 압력에 밀려 미세하게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피투성이가 된 양손의 가죽은 바위에 쓸려 쓰라렸고, 전류의 잔해에 그을린 단전은 성력의 역류로 인해 타는 듯이 아파왔다.


하지만 지유한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의 청색 눈동자는 하늘에서 번개를 머금고 포효하는 은빛 번개 매를 고요하게 응시했다.


‘도망칠 곳은 없다. 그리고 시간도 없다.’


성당에서 마기 독에 잠식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루시엘라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그녀의 심장 핵이 붕괴하기 전에 이 천선초를 가지고 복귀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눈앞의 영수를 반드시 제압하거나, 혹은 가라앉혀야만 했다.


유한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가슴에 집중했다. 배덕의 성흔이 그의 심장 박동에 맞춰 욱신거리며 검붉은 기류를 뿜어냈다. 수명이 깎여 나가는 영혼의 마모감이 전신을 타고 흘렀지만, 유한은 오히려 그 고통을 기폭제 삼아 양안에 성력을 집중시켰다.


‘진실의 안광(眞實의 眼光).’


유한의 눈동자가 깊고 투명한 청색으로 빛나며 세상의 마력 흐름이 시각화되었다. 폭풍 속에서 은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매의 신체가 붉고 푸른 마력의 선으로 해체되어 보였다. 그리고 유한의 시선이 녀석의 오른쪽 날개 뿌리에 머무는 순간,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은빛 깃털 사이에 기괴하게 뒤틀린 검붉은 타락의 기운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제국군 성기사단의 제식 화살에 맞아 감염된, 빛의 이름을 위장한 추악한 신성 부식독이었다.


“과연…….”


유한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빛의 신을 섬긴다는 자들이 영수에게까지 이런 더러운 짓을 저질렀군.”


녀석은 인간의 침입에 분노한 것이 아니었다. 제국의 성직자들에게 입은 상처의 극통 때문에 광기에 휩싸여 덤벼드는 것이었다. 녀석이 머금은 푸른 번개는 살육의 의지가 아닌, 비명에 가까운 단말마였다.


키이이이이익!


번개 매가 마침내 수십 갈래의 낙뢰를 이끌고 유한을 향해 급강하했다. 절벽 전체가 무너져 내릴 듯한 파괴적인 기세였다. 실프가 겁에 질려 유한의 머리카락 속으로 숨어들었다.


유한은 피하지 않았다. 검을 뽑지도, 방어막을 더 견고히 치지도 않았다. 그는 오히려 바위 틈새에서 걸어 나와 양팔을 활짝 펼쳤다. 무방비하게 녀석의 낙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다.


콰르릉! 콰아아앙!


첫 번째 번개 줄기가 유한의 어깨를 스쳤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극통과 함께 전신의 근육이 마비되는 충격이 밀려왔다. 유한은 ‘신성력 역류 억제 호흡’을 필사적으로 전개하며 단전에 몰려드는 전류를 억눌렀다. 입가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그의 시선은 번개 매의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너라.”


유한의 목소리가 폭풍을 뚫고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강철 같은 발톱이 유한의 가슴팍을 찢기 직전, 유한은 도약했다. 그는 녀석의 살기 어린 공격을 피하는 대신, 거대한 번개 매의 목덜미를 온몸으로 껴안았다.


지지지직! 콰아앙!


녀석의 온몸에서 방출되는 푸른 전류가 유한의 전신을 관통했다. 뼈가 바스러지고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유한은 녀석의 오른쪽 날개 뿌리, 검붉게 썩어가던 상처 부위에 피투성이가 된 오른손을 꽉 얹었다.


“아프겠지. 빛의 위선자들에게 속아 고통받았을 테니.”


유한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끝에서 눈부신 은백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성스러운 정화 광휘(聖─ 淨化 光輝).’


제국의 강제 소멸식 정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상처받은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는 구원의 빛이었다. 은빛의 미세한 입자들이 번개 매의 썩어가는 상처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녀석의 상처를 유린하던 제국의 부정한 성력이 은빛 정화 광휘에 녹아내리며 검은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갔다.


키이익……?!


광폭하게 날뛰던 번개 매의 비명이 기묘한 의문조로 변했다. 평생 자신을 아프게 하던 인간의 빛과 달랐다.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던 고통이 사라지고,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상처를 메워주고 있었다.


푸른 낙뢰로 사납게 요동치던 녀석의 눈동자에 서서히 맑은 은빛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날개 끝을 장식하던 사나운 전류가 부드러운 은빛 스파크로 정화되며 유한의 몸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이제 괜찮다.”


유한이 녀석의 깃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번개 매는 낮게 가르랑거리며 유한의 어깨에 자신의 거대한 부리를 살포시 기댔다. 영적인 복종이자, 평생의 충성을 맹세하는 의식이었다.


“실버(Silver). 그것이 너의 새로운 이름이다.”


유한의 말에 은빛 매, 실버가 기쁘다는 듯 날개를 크게 퍼덕였다. 녀석의 날개는 이제 부정한 마기 독에서 벗어나 눈부신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실버. 성당으로 가야 해.”


실버는 유한의 말을 알아들은 듯 몸을 낮추었다. 유한은 실버의 넓고 단단한 등에 올라타 깃털을 꽉 쥐었다.


키이이이익!


실버가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치며 토르의 손가락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번개 폭풍을 뚫고 내려가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바람을 가르는 은빛 날개가 밤하늘에 한 줄기 은색 궤적을 그리며 안개 숲을 향해 초고속으로 강하했다. 유한의 은발이 바람에 휘날렸고, 그의 품속에 보관된 천선초는 실버의 마력 장벽 덕분에 단 한 잎도 손상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


황폐한 고대 성당의 예배당.


“성자님! 제발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미카엘이 눈물을 흘리며 제단 옆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제단 위에는 루시엘라가 전신을 검붉은 마기 독에 침식당한 채 밭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 부근에 새겨진 배덕의 성흔이 불길하게 깜빡이며 그녀의 생명력이 종말에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때, 성당의 천창을 뚫고 은빛의 거대한 실루엣이 내려앉았다.


쾅!


“성자님!”


미카엘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가, 실버의 등에서 내리는 지유한을 보고 안도의 눈물을 터뜨렸다.


“미카엘, 즉시 정화의 샘물을 가져와라!”


유한은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품속에서 천선초를 꺼냈다. 그는 곧바로 요한 사제의 유품인 은빛 절구에 약초를 넣고, 미카엘이 가져온 정화의 샘물을 부었다.


‘천선초 독성 제거 정제법.’


유한은 양손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약초에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손끝에 미세한 성력을 집중했다. 은빛 절구 안에서 천선초가 빻아지며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정제액이 추출되었다. 약초가 지닌 특유의 환각 독성이 백색 성력에 정화되어 하얀 김이 되어 사라졌다.


“루시엘라, 조금만 참아라.”


유한은 제단으로 다가가 루시엘라의 상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그녀의 창백한 입술 사이로 에메랄드빛 천선초 정제액을 흘려보냈다.


꿀꺽.


정제액이 그녀의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루시엘라의 전신을 뒤덮고 있던 검붉은 마법 회로가 순식간에 안정을 찾으며 가라앉았다. 심장 핵을 갉아먹던 타락 천사의 마기 독이 천선초의 약효와 유한의 정화력에 녹아내리며 정화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칠흑 같은 날개가 부드럽게 이완되며 제단 아래로 가라앉았다.


“으음…….”


가쁜 숨을 몰아쉬던 루시엘라의 호흡이 마침내 평온해졌다. 이윽고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서서히 열렸다. 그녀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자신을 안고 있는 유한의 피투성이 손과 안도하는 미소였다.


“유한…… 그대였나…….”


루시엘라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이전의 오만함 대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번개 절벽을 다녀온 남자를 향한 깊은 감동과 씻을 수 없는 집착이 서려 있었다.


“무사해서 다행이군, 루시엘라.”


유한이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제단에 편히 눕혀주려 했다.


그러나 루시엘라는 유한의 낡고 찢어진 사제복 자락을 꽉 움켜쥐며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붉은 안광이 유한의 청색 눈동자를 집요하게 옭아맸다.


“다시는…… 나를 혼자 두고 가지 마라. 그대의 생명은 이제 나와 묶여 있으니.”


배덕의 성흔이 두 사람의 가슴 사이에서 은은하게 공명하며 따뜻한 온기를 내뿜었다. 마왕녀의 마음이 이 인간 구원자에게 완벽하게 종속되는 순간이었다.


평화로운 침묵도 잠시, 고요하던 성당의 무거운 참나무 정문이 거칠게 두드려졌다.


쿵! 쿵! 쿵!


“성자님! 안에 계십니까! 큰일 났습니다!”


예배당의 문이 열리며,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수인족 상인 바르토가 다급하게 뛰어들어왔다. 그의 날카로운 표정에는 전례 없는 두려움과 심각함이 가득 차 있었다.


“바르토? 무슨 일인가?”


유한이 루시엘라를 엄호하듯 앞을 가로막으며 차갑게 물었다. 바르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유한을 바라보았다.


“국경지대의 슬럼가, 하인즈 빈민가에 정체불명의 역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역병에 걸린 수인들과 유민들이 피부가 썩어가며 좀비처럼 폭주해 동족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국경지대 전체가 괴물들의 지옥이 될 겁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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