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덕의 성흔, 영혼의 속박
가슴의 낙인이 살을 태우듯 붉게 타오르는 순간, 유한의 귓가에 수백 년간 잠들어 있던 사악하고도 오만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려 퍼졌다.
[크하하하! 이 무슨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결합이란 말이냐! 가장 성결해야 할 성자의 육신에 마왕녀의 태초의 어둠이 흘러들다니!]
예배당 지하 깊은 곳, 겹겹이 봉인된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음산한 웃음소리였다. 유한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제국 교단이 그의 심장에 새겨놓았던 파문의 낙인이 내부에서부터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그 균열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루시엘라의 칠흑 같은 마기였다.
"크윽...!"
유한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심장이 마치 용암을 들이마신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은발이 사방으로 휘날렸고, 맑았던 청색 눈동자는 붉은 마기와 백색 성력이 뒤엉켜 보라색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대지에 누워 있던 루시엘라 역시 영혼을 관통하는 충격에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붉은 안광이 극심한 공포와 본능적인 저항으로 흔들렸다.
"이 손... 치워라, 인간...! 감히 내 영혼을... 네까짓 비천한 종족에게 얽매려 드는 것이냐!"
루시엘라는 자신의 영혼이 인간 사제의 신성력에 강제로 귀속되려 하자 온몸을 비틀며 저항했다. 타락 천사로서의 오만한 긍지가 인간에게 굴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는 체내의 마력 핵(魔力 核)을 스스로 폭주시켜 계약을 깨부수려 했다.
두 힘이 충돌하는 파동에 성당 예배당의 석조 바닥이 갈라지며 먼지가 솟구쳤다. 이대로 그녀가 마기 핵을 자폭시킨다면, 두 사람 모두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이 날 터였다.
"죽으려고 발버둥 치지 마라."
유한은 피를 토하면서도 그녀의 어깨를 누른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깍지를 끼듯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뜨거운 체온과 차가운 마기가 손끝에서부터 얽혀들었다.
"널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살리려는 것이다. 제국의 위선자들에게 죽임당하기 전에, 나와 함께 그들을 무너뜨릴 힘을 원하지 않는가?"
유한의 차갑고도 단호한 목소리가 루시엘라의 뇌리에 직접 꽂혔다. 그 눈빛에는 지독한 현실주의와 함께, 그녀가 평생 제국군에게서 받아보지 못했던 진짜 구원의 진정성이 서려 있었다.
루시엘라의 눈동자가 흔들린 찰나, 유한은 요한 사제의 비법을 떠올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신성력 역류 억제 호흡(神聖力 逆流 抑制 呼吸).'
유한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단전에 남아있던 백색 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루시엘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광포한 마기를 자신의 단전으로 부드럽게 유도했다. 그의 '시원의 성체(始原의 聖體)'는 수천 년에 한 번 태어나는 절대적인 신성 적합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고결한 육신이 마기를 받아들여 정화의 필터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아, 아아악...!"
마기가 유한의 혈맥을 타고 흐르자, 온몸의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양손에 새겨진 마기 부식의 검은 흉터가 더욱 짙어지며 살갗이 타들어 갔다. 하지만 유한은 이성을 잃지 않고 마력의 주파수를 미세하게 조율했다.
루시엘라는 경악했다. 자신을 지배하기 위해 계약을 맺는 줄 알았건만, 이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폭주하는 마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녀의 심장 핵을 보호하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그녀의 목소리에서 오만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은 혼란과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평생 어둠이라며 자신을 멸절하려 들던 빛의 성직자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영혼을 조율하고 있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결속이 정점에 달했다.
콰아아앙!
예배당을 채우고 있던 백색과 흑색의 나선 광채가 두 사람의 가슴으로 수렴되었다. 유한의 가슴팍에 새겨져 있던 파문의 상처가 완전히 지워지며, 백색과 흑색의 광선이 기하학적으로 교차하는 기이하고도 성스러운 문양이 새겨졌다.
'배덕의 성흔(背德의 聖痕).'
제국의 신성 탐지망이 결코 감지할 수 없는, 신성과 마성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초월적인 에너지의 낙인이었다. 동시에 루시엘라의 가슴에도 동일한 문양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하아... 하아..."
결속이 완료되자, 루시엘라의 체내를 뒤틀던 마기 폭주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백옥 침선들이 그녀의 혈맥에서 스르륵 빠져나와 석조 바닥에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녀의 부러진 날개는 완벽하게 접골되어 은은한 칠흑빛 윤기를 발하고 있었다.
루시엘라는 유한의 가슴에 새겨진 성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유한을 향한 거부할 수 없는 맹목적인 신뢰와, 미칠 듯한 집착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제 유한의 존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영혼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너는...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서린 것은 적대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한 종속과, 그 속에서 피어난 소유욕의 빛이었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한은 가슴을 쥐어짜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쿨럭! 그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크하하! 어리석고 고결한 성자여. 마왕녀를 살려낸 대가가 무엇인지 이제야 깨달았느냐!]
성당 지하 깊은 곳의 봉인석에서 보라색 안개가 피어오르며, 거대한 악마의 환영이 예배당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대 마왕 아스타르의 영혼이었다. 그의 붉게 빛나는 두 눈이 유한을 내려다보며 조소했다.
[그 성흔은 축복이 아니다. 마족의 마기를 정화해 성흔을 강화할 때마다, 네 필멸자로서의 수명은 무참히 깎여 나갈 터. 네 영혼은 이미 안에서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아스타르의 말대로 유한은 자신의 생명력이 성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가슴의 성흔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며 타는 듯한 통증이 잔존했다.
유한은 입가에 묻은 피를 거칠게 닦아내며, 차가운 청색 눈동자로 마왕의 잔혼을 쏘아보았다.
"수명이 단축되든 상관없다. 제국을 무너뜨릴 힘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유한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아스타르는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좋구나, 타락한 성자여. 그 오만한 신념이 어디까지 버텨낼지 지켜보마. 하지만 그 몸을 유지하고 싶다면, 제국이 독점하고 있는 천상성수(天上聖水)를 가장 먼저 손에 넣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 심장은 일 년도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릴 테니까!]
아스타르의 사악한 경고가 예배당에 무겁게 내려앉는 순간, 성당 외부 방어막 너머 안개 숲 속에서 불길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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