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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마왕녀와 배덕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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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돌가루 먼지와 탄화된 유황 냄새가 예배당의 가라앉은 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지유한은 반사적으로 소매를 들어 입가를 가로막았다. 콜록이는 숨결 사이로 비린 혈향이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가슴팍의 파문 성흔이 욱신거리며 경고를 보냈지만, 유한의 청색 눈동자는 제단 한가운데의 참상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달빛이 부서진 천장 틈새로 쏟아져 내렸다. 은백색의 광휘가 비춘 곳에는 처참하게 무너진 석조 더미와, 그 한가운데에 쓰러진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존재가 있었다.


"...마족인가."


유한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녀의 머리칼은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처럼 눈부신 은빛이었고, 찢어진 가죽 옷 사이로 드러난 살결은 백옥처럼 창백했다. 하지만 가장 유한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등에 돋아난 거대한 날개였다. 한쪽은 칠흑 같은 어둠의 깃털로 뒤덮인 온전한 타락 천사의 날개였으나, 다른 한쪽은 뼈마디가 완전히 으스러진 채 피떡이 되어 바닥에 꺾여 있었다.


스스스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안개—마기(魔氣)가 예배당의 차가운 바닥을 적시며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마력이 아니었다. 생명력을 스스로 불태우며 폭주하는 나락의 에너지였다.


"인간... 놈들...!"


갈라진 목소리가 돌더미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으스러진 잔해를 밀쳐내며 일어선 여인의 붉은 안광이 유한을 향해 번뜩였다. 그녀의 손에는 칼날이 반쯤 날아간 칠흑의 마검이 쥐어져 있었다. 꺾인 마검의 표면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그녀는 타락 천사 출신의 제1마왕녀, 루시엘라였다.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려 한다면... 영혼까지 찢어 발겨 주마!"


루시엘라는 비틀거리면서도 오만한 기세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대지를 박차고 도약했다. 비록 한쪽 날개가 꺾여 균형이 무너졌으나, 마검을 휘두르는 속도는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검은 검기가 유한의 목덜미를 향해 수평으로 그어졌다.


유한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양안에 미세한 성력을 집중했다.


웅웅.


유한의 맑은 청색 눈동자가 투명하게 빛나며 고유 기예인 '진실의 안광'이 가동되었다. 그의 시야 속에서 세상의 색깔이 반전되었다. 루시엘라의 휘두르는 검로와, 그녀의 체내에서 뒤틀린 채 날뛰고 있는 검붉은 마력의 흐름이 실시간으로 투시되었다.


'오른쪽 날개 뿌리에서 마기가 역류하고 있어. 중심 핵이 과부하 상태다.'


유한은 검기가 목을 스치기 직전, 진안이 제시한 사각지대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콰아앙! 검은 검기가 유한의 머리칼을 스치며 뒤편의 석조 기둥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낙석이 떨어지는 혼란 속에서 루시엘라는 다시 한 번 검을 치켜들려 했으나, 스스로의 마기 폭주를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크윽, 아아악...!"


그녀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체내의 마기가 통제를 잃고 혈맥을 역류하며 그녀의 살결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심장 핵이 파열되어 폭사할 터였다.


제국의 교리는 마족을 발견하는 즉시 소멸하라 가르쳤다. 하지만 유한은 요한 사제의 일지를 떠올렸다. 제국이 섬기는 신은 사신이었고, 마족의 멸절은 그저 제물 수급에 불과했다. 이 눈앞의 마왕녀를 살리는 것이야말로 제국의 위선에 맞서는 첫걸음이자 배덕의 시작이었다.


유한은 품속에서 은제 상자를 꺼냈다. 늙은 사제 요한의 유품인 '백옥 침선'이었다. 영롱한 백색 빛을 발하는 침들이 달빛 아래 드러났다.


"무슨... 짓이냐, 더러운 사제 놈...!"


루시엘라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유한이 다가오자 그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마검을 찔러왔다.


유한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마검의 칼날 측면을 타격했다. 쨍강! 이미 균열이 가 있던 마검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동시에 유한은 그녀의 턱밑을 파고들어 대지에 눕혔다. 백옥처럼 창백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어깨를 억누르는 순간, 차가운 마기와 유한의 온화한 체온이 부딪치며 기묘한 전율이 일었다.


"살고 싶다면 가만히 있어라. 네 심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유한의 단호한 목소리에 루시엘라는 순간적으로 붉은 눈동자를 크게 흔들었다. 인간에게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오만하면서도 한없이 깊은 자비심이 서린 눈빛이었다.


유한은 먼저 정통 신성 마법으로 그녀의 폭주를 억제하려 손을 얹었다.


쉬이이익!


하지만 유한의 백색 성력이 그녀의 피부에 닿는 순간, 루시엘라의 체내 마기가 맹렬하게 반발하며 그녀의 가슴 속 심장 핵이 찢어질 듯 팽창했다. 루시엘라가 피를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정통 신성은 마기를 파괴하려 들기 때문에, 폭주하는 상태의 마족에게 주입하면 오히려 심장을 폭발시키는 독약이 될 뿐이었다.


'역시 평범한 방식으로는 안 돼. 마력을 속여야 한다.'


유한은 즉시 손을 거두고 백옥 침선을 집어 들었다. 요한 사제의 비법을 떠올리며, 유한은 그녀의 어깨와 쇄골 주변의 주요 혈맥에 침을 정밀하게 박아 넣기 시작했다.


틱, 틱, 틱.


백옥 침선이 그녀의 살결을 뚫고 들어가 혈맥에 고정되었다. 유한은 침을 매개로 자신의 '성스러운 정화 광휘'를 아주 미세하고 부드러운 주파수로 조율하여 흘려보냈다. 그것은 대상을 소멸시키는 제국의 빛이 아니었다. 상처받은 어둠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본래의 흐름으로 되돌리는 진짜 정화의 광채였다.


"아... 흐읏...!"


루시엘라의 입에서 고통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틀려 날뛰던 검붉은 마기가 백옥 침선을 타고 흘러드는 은빛 정화력에 길들여지며 서서히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거칠게 요동치던 그녀의 심장 박동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유한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정화 에너지가 그녀의 혈맥을 타고 흐를 때마다, 루시엘라는 난생처음 느끼는 기묘한 쾌감과 안도감에 몸을 떨었다. 평생 자신들을 소멸시키려 들던 인간의 빛이, 자신을 가장 부드럽고 따뜻하게 치유하고 있었다.


"이제 꺾인 날개를 맞추겠다. 비명이 나올 거다."


유한은 그녀의 뒤편으로 자리를 옮겨 으스러진 칠흑의 날개를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타락 천사의 날개 깃털은 거칠고 어두운 마기를 품고 있었으나, 만지는 감촉은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유한의 손길이 날개의 꺾인 뼈마디에 닿자 루시엘라의 전신이 굳어졌다.


"하, 하지 마... 인간의 더러운 손으로 내 날개를...!"


"참아라. 흉터가 남는 건 원치 않겠지."


유한은 '성스러운 구원의 손길' 기예를 기동했다. 그의 양손에서 눈부신 은빛 광채가 흘러나와 꺾인 날개뼈를 감쌌다.


드드득!


어긋나 있던 날개뼈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며 뼈 맞춰지는 소리가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루시엘라는 유한의 사제복 자락을 꽉 쥐며 비명을 참아냈다. 그녀의 하얀 이빨이 아랫입술을 깨물어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유한은 정밀한 외과 수술을 집행하듯 미세한 성력으로 찢어진 날개의 신경과 미세 혈관들을 하나하나 봉합해 나갔다. 타락 천사 출신인 그녀의 마기는 제국의 악마들과 달리, 본질적으로 빛의 성질을 일부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한의 순수한 정화 광휘와 결합할 때, 상호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보다 기묘할 정도로 부드럽게 융합되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날개 상처 부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부정한 독소들이 정화되어 날아갔다. 으스러졌던 날개 뼈가 기적처럼 접골되고, 칠흑의 깃털들이 다시금 생기를 되찾으며 은은한 윤기를 발하기 시작했다.


치유 의식이 정점에 달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루시엘라의 체내에 잔존하던 태초의 어둠 마기와, 유한의 심장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시원의 신성력이 서로의 존재를 완전히 인지했다. 두 거대한 에너지는 서로를 밀어내는 대신, 마치 자석처럼 이끌리며 폭발적인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예배당의 바닥이 흔들리고, 사방의 깨진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이 진동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성당 전체를 감싸고 있던 고대 정화 결계가 두 힘의 격렬한 충돌과 공명에 반응하여 거대한 백흑의 빛의 기둥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이것은?!"


유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두 힘의 융합 반동이 유한의 심장을 향해 사정없이 몰아쳤다. 숨이 턱 막히며 단전의 마나가 뒤틀렸다. 동시에 유한의 가슴팍, 파문 성흔이 새겨져 있던 자리가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는 듯한 극통과 함께 붉고 검은 빛을 뿜어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배덕의 낙인이 두 사람의 영혼을 강제로 묶어내려는 듯, 무서운 기세로 요동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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