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검문소의 덫
새벽의 푸르스름한 어둠이 국경지대의 기암협곡 사이로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가문비나무 숲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채 가시지 않은 밤의 한기를 머금어 칼날처럼 차가웠다.
지유한은 바위 그늘 아래 몸을 숨긴 채, 멀리 협곡의 입구를 거대한 성벽처럼 가로막고 있는 국경 제7검문소를 내려다보았다. 높이 솟구친 목책 요새 위로는 붉은빛을 발하는 신성 탐지 장치들이 기괴한 눈동자처럼 사방을 훑고 있었다.
가슴팍의 사제복 안쪽에서 배덕의 성흔이 미세하게 요동치며 타오르는 듯한 열기를 뿜어냈다. 전날 남작 성채를 폭파하고 수인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성력을 짜낸 탓에, 심장 언저리가 욱신거리는 통증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어깨의 부식 자상 역시 루시엘라의 마력 주입으로 겨우 억제해 둔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한의 맑고 푸른 눈동자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히려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과 굳건한 분노만이 그 안을 채우고 있었다.
“형님, 준비는 끝났습니다.”
옆에서 납작하게 엎드려 있던 한스가 소리 죽여 속삭이며 품속에서 번쩍이는 은빛 물건을 꺼내 보였다. 그것은 남작의 성채에서 전리품으로 탈취했던 성도 백야단의 인장이었다. 한스의 손재주로 정교하게 위조된 공문서가 그 옆에서 희미한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백야단의 인장과 위조 통행증입니다. 놈들의 하급 경비병 수준이라면 이 공문서 한 장으로도 넋을 놓고 문을 열어주겠지요. 하지만…….”
한스가 침을 꿀꺽 삼키며 검문소 요새의 상층부를 가리켰다.
“초소장 카터는 돈 냄새를 맡는 데 귀신인 부패한 놈이지만, 그 곁에 매복해 있는 백인장 브란트는 다릅니다. 이종족 학살을 신의 계시라 믿는 광신도 놈입니다. 제7검문소 주변의 마법 탐지 결계가 평소보다 세 배는 더 촘촘하게 가동되고 있습니다. 기만책이 통하지 않는다면 정면 돌파밖에 없는데, 놈들의 방어선이 너무 삼엄합니다.”
유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양부이자 위선의 원흉인 대주교 마르쿠스가 유한을 유인하기 위해 친여동생 지유아를 국경 감시탑으로 이송한다는 극비 정보. 그것이 자신을 낚기 위한 함정임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유한은 이곳으로 왔다. 유아는 그의 유일한 역린이자 가문의 비극 속에서 지켜내야 할 마지막 등불이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요새는 없다, 한스.”
유한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력 감지 장치는 특정한 주파수의 신성 파동만을 탐지한다. 우리가 탈취한 백야단의 인장은 그 파동을 교란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열쇠다. 하지만 놈들이 파놓은 덫은 결계만이 아니야.”
유한은 천천히 양안에 힘을 주었다. 단전에 고여 있던 은밀한 성력이 시신경을 타고 흐르며 그의 맑은 청색 눈동자가 투명하고 신비로운 은백색의 광채를 발하기 시작했다.
‘진실의 안광(眞實의 眼光).’
순식간에 유한의 시야 속에서 세상의 색조가 반전되었다. 칠흑 같은 밤의 어둠은 사라지고, 국경 제7검문소를 둘러싼 모든 마력의 흐름이 기하학적이고 세련된 선들로 재구성되어 뇌리에 직접 각인되었다.
웅웅웅.
요한 사제가 남긴 결계 분석법에 따라, 검문소의 높은 목책 주변을 가로지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성력 탐지망들이 붉은색 실루엣의 실타래처럼 선명하게 투시되었다. 목책 요새의 중앙 탑에 설치된 성력 감지 장치가 방출하는 미세한 진동 파동이 사방으로 그물을 치고 있었다.
“형님, 제가 저 결계의 측면 연결고리를 만능 열쇠로 해제하고 침투로를 열어보겠습니다.”
한스가 몸을 일으키며 단검을 고쳐 잡으려 했다. 결계의 흐름이 미세하게 약해지는 사각지대를 포착한 모양이었다.
“기다려라.”
유한이 철회하듯 한스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진안(眞眼)의 붉은 시야 속에서, 한스가 밟으려던 대지 바로 밑에 교묘하게 숨겨진 이중의 마법 각인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밟는 순간 침입자의 마력을 강제로 흡수해 폭발하는 정밀 탐지 덫이었다.
그리고 그 덫의 마력 실타래는 목책 위, 가장 높은 초소의 어둠 속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유한의 시선이 그 실타래의 끝을 향했다. 진안의 줌 렌즈가 당겨지듯 숲의 높은 나뭇가지와 목책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날렵한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백색 은광 가죽 수트를 입고, 한쪽 눈에 정밀 조준용 렌즈를 착용한 차가운 인상의 여성. 백야단의 천재 저격수 렌(렌)이었다. 그녀는 거대한 은빛 활(백야의 은빛 거대 활)에 신성 관통 마력이 깃든 은 화살을 장전한 채, 한치가 흐트러짐도 없는 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숨결마저 바람의 흐름에 동화시킨 완벽한 매복이었다.
“저 위에 저격수가 매복해 있다.”
유한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한스, 네가 저 결계에 손을 대는 순간 저격수의 경보 덫이 작동하고, 렌의 은 화살이 네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다. 그리고 검문소 내부의 경보 포탑이 우리 전체를 포격했겠지.”
한스는 유한이 가리킨 허공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 육안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저격수의 위치를, 유한은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정확히 짚어내고 있었다.
“과연…… 제국의 사냥개들이 우릴 낚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그물을 짜두었군.”
유한의 등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섰다. 제식 흑강 대검을 어깨에 멘 방랑 검사 칼스였다. 그의 흉터 가득한 얼굴에 비장한 살기가 스쳤다. 그 옆에는 상처를 완전히 회복하고 구릿빛 근육을 드러낸 호랑이 수인 전사 칸이 야수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성자님, 지시만 내리십시오. 저 요새의 목책째로 적들의 방진을 부수고 들어가겠습니다.”
“아니, 정면 돌파는 유아의 신변을 위험하게 만든다. 적들의 시야를 교란하고 우리의 존재를 숨긴 채 사각지대로 침투해야 한다.”
유한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품속에서 낡고 빛바랜 은빛 성경을 꺼냈다. 건국 초기 태양신의 축복이 깃들어 있어, 제국의 신성 탐지망을 일시적으로 왜곡하고 아군에게 초월적인 정화 버프를 내릴 수 있는 가문 전승의 성물이었다.
유한은 검문소의 성력 주파수와 은빛 성경의 파동을 맞추기 시작했다. 가슴의 성흔이 다시 한 번 찢어지는 듯한 저릿한 고통을 토해냈지만, 유한은 이빨을 악물고 내면의 성력을 성경 위에 쏟아부었다.
이윽고 유한이 성경을 펼쳤다. 그의 은발이 새벽녘의 차가운 미풍을 타고 눈부시게 휘날렸다.
“……어둠 속에서 길 잃은 칼날이여, 시원의 빛을 받아 그 날카로움을 숨기고 대지를 가르라.”
유한의 입술 사이로 단호하고 고결한 영창이 흘러나왔다.
‘은빛 성경 낭독 영창법(은빛 성경 낭독 영창법).’
성경의 페이지에서 은빛으로 타오르는 미세한 마법 문자들이 허공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 문자들이 나비 떼처럼 날아가 칼스의 거대한 대검과 칸의 구릿빛 손톱, 그리고 한스의 단검에 스며들었다. 아군 전체의 무기에 일시적으로 제국의 신성 탐지망을 우회하면서도, 적의 성력 장벽을 단번에 부식시켜 해제할 수 있는 백흑의 정화 속성 버프가 깃드는 순간이었다.
칼스와 칸은 자신의 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하고도 예리한 은빛 광채를 바라보며 경외감에 젖어들었다.
“준비해라.”
유한이 진안의 은백색 눈동자로 요새의 사각지대를 가리키며 칼스에게 최종 기습 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 순간, 요새 내부의 웅장한 대리석 정문이 삐걱거리는 거친 금속음과 함께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검문소의 중앙 광장으로, 두꺼운 쇠사슬과 성력 결계로 겹겹이 묶인 거대한 철갑 이송 마차가 무거운 바퀴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마차의 작은 철창 틈새로, 아침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이는 가녀리고 아름다운 은발의 자락이 유한의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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