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연금술실의 참상
“크으으…… 끄으윽……”
지하 석실 가장 깊은 곳, 철창 구석에서 들려오는 신음은 쇠사슬이 바닥을 긁는 서늘한 마찰음과 뒤섞여 기괴한 공명을 만들어냈다.
갈색 머리와 회색 눈동자로 철저히 정체를 숨긴 지유한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로엔의 환각 위장술’로 외양을 바꿨음에도, 가슴팍에 새겨진 ‘배덕의 성흔’은 참혹한 피비린내를 감지한 듯 심장 깊은 곳을 찌르는 통증을 유발했다. 유한은 입가에 고이는 뜨거운 피를 삼키며 철창 안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호랑이 수인 전사 칸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묶여 있었다. 가죽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가혹한 채찍질을 당했음에도, 녀석의 충혈된 붉은 눈동자에는 인간을 향한 맹목적인 적대감과 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쇠사슬을 움켜쥔 칸의 억센 손귀가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인간…… 사제 놈들…….”
칸이 이빨 사이로 피침을 뱉어내며 으르렁거렸다.
바로 그 순간, 실험실 중앙의 대형 가마솥 너머에서 신경질적인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 어떤 쥐새끼들이 감히 남작님의 성역에 발을 들였나 했더니, 하찮은 침입자들이었군!”
안경 너머로 광기 어린 눈빛을 빛내는 창백한 청년, 남작의 수석 제자이자 연금술 천재라 불리는 펠릭스였다. 그의 곁에는 피 묻은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온갖 고문 도구를 허리에 찬 크로이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마침 새로운 실험체가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발걸음을 해주다니, 아주 기특하구나.”
크로이가 음산하게 중얼거리며 손가락 사이로 은빛 고문 바늘들을 끼워 넣었다. 그 바늘 끝에는 닿는 즉시 온몸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성력을 오염시키는 사악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칼스, 한스. 위장은 풀렸다. 전투를 준비해라.”
유한의 나지막한 명령과 동시에, 펠릭스가 연금술 시약 벨트에서 녹색 병들을 꺼내 바닥으로 사정없이 던졌다.
콰아아앙!
병이 깨지며 지독한 연기와 함께 녹색 산성 가스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쉭쉭 소리를 내며 돌벽과 철창이 녹아내리는 지독한 강산성이었다. 동시에 크로이가 손목을 튕겨 칼스의 관자놀이와 심장을 향해 마비 바늘들을 일제히 날렸다.
“성자님, 제 뒤로 물러서십시오!”
칼스가 천을 찢어발기며 거대한 제식 흑강 대검을 뽑아 들었다. 묵직한 투기가 검신을 감싸 안으며 날아오는 바늘들을 가볍게 쳐냈다. 깡! 까강!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지만, 사방을 가득 채운 산성 가스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치이이익!
“크윽……!”
칼스가 짓눌린 신음을 뱉었다. 칼날을 스쳐 지나간 산성 액체 몇 방울이 그의 가죽 갑옷 왼쪽 어깨 부위에 닿아 순식간에 가죽을 부식시키고 살갗을 태워 들어갔다. 지독한 고통이 칼스의 미간을 일그러뜨렸으나, 그는 대검을 쥔 손을 결코 늦추지 않았다.
“키메라들을 깨워라! 저 불순분자들의 뼈를 갈아 성수의 촉매로 삼겠다!”
펠릭스의 외침에 따라, 철창 속에 갇혀 있던 기괴한 개조 마수들이 눈을 붉게 물들이며 일제히 포효했다. 수인들의 사체와 뒤틀린 마기가 융합된 키메라들이 철창을 부수고 유한 일행을 향해 달려들 기세였다. 마수들의 마력 핵이 폭주 직전의 붉은 광채를 뿜어냈다.
유한은 흔들리지 않았다. 위장된 회색 눈동자 너머로 투명한 청색 빛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진실의 안광(眞實의 眼光).’
유한의 시야 속에서 날뛰는 키메라들의 체내 마력 흐름이 선명한 붉은 궤적으로 투시되었다. 마수들의 심장부에 위치한 뒤틀린 마력 핵들이 폭주를 유도하는 펠릭스의 연금술 마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유한은 오른손을 허공을 향해 뻗으며 단호하게 외쳤.
“얼어붙어라.”
‘마기 폭주 강제 억제(魔氣 暴走 强制 抑制).’
유한의 손끝에서 방출된 미세하고 정교한 신성의 쐐기들이 키메라들의 심장부로 정확히 파고들었다. 순간, 폭발적으로 회전하던 마력 핵들이 일시적으로 정지하며 얼어붙었다. 붉게 빛나던 괴수들의 눈빛이 흐려지더니, 이내 텅 빈 인형처럼 바닥에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뭐, 뭐라고?! 내 키메라들의 제어를 끊었다고?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펠릭스가 경악하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자신의 정교한 연금술 제어 장치가 단 한 마디의 진언에 무력화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유한은 펠릭스의 경악을 무시한 채, 품속에서 은빛으로 조각된 고대 백색 교단의 유물, ‘정화의 성배’를 꺼내 들었다. 성배의 표면에 새겨진 신성 기하학 문양들이 유한의 마력에 반응하여 찬란한 은백색 빛을 발산했다.
“성배여, 위선의 독기를 거두어라.”
유한이 성배를 가볍게 흔들자, 성배 내부에서 맑고 투명한 정화수가 솟구쳐 오르더니 순식간에 기화하여 눈부신 은빛 안개가 되어 실험실 전체로 퍼져나갔다.
치이이이익!
실험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녹색 산성 가스가 은빛 안개와 접촉하는 순간, 지독한 부식성 독기가 백색의 맑은 이슬로 변환되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돌벽을 녹여 가던 강산성의 악취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석실 안은 맑고 온화한 정화의 향기로 가득 찼다.
펠릭스가 뿌린 맹독 가스가 완벽하게 무력화된 것이다.
“말도 안 돼…… 내 비장의 산성 가스를 정화했다고? 제국의 평범한 사제 놈이 부릴 수 있는 권능이 아니다!”
펠릭스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은빛 안개는 일시 정지해 있던 키메라들의 몸속으로도 깊숙이 침투했다. 마수들의 뒤틀린 체내 마기와 유한의 순수한 정화 에너지가 충돌하자, 괴수들의 마력 핵이 급격한 과부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콰쾅!
실험실 곳곳에서 키메라 괴수들이 백색 불꽃을 뿜어내며 일제히 폭사했다. 부정한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으나, 유한이 전개한 은빛 안개 장벽에 가로막혀 단 한 방울도 아군에게 닿지 못하고 재가 되어 바닥에 내려앉았다. 통쾌하고 압도적인 정화의 기적이었다.
“지금이다, 칼스!”
유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칼스가 안개를 뚫고 번개처럼 도약했다. 그의 흑강 대검이 어둠 속에서 거대한 반월을 그리며 호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크로이가 다시 한 번 마비 바늘을 던지려 비열하게 손을 뻗었으나, 칼스의 대검이 더 빨랐다.
서걱!
“아아악!”
크로이의 오른손목이 단숨에 잘려 나가며 바닥에 뒹굴었다. 칼스는 멈추지 않고 검 손잡이로 크로이의 턱을 타격해 그를 처형대 위로 메치고, 품속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그의 심장을 향해 깊숙이 찔러 넣었다.
푸욱!
“커, 헉…… 네, 네놈들…… 교단의 심판이…….”
크로이는 눈을 부릅뜬 채 말을 맺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의 몸에서 새어 나오려던 부정한 원혼의 마기가 칼스의 칼날에 흡수되며 연기처럼 소멸했다. 수인들을 잔혹하게 고문해 온 심문관의 비참한 종말이었다.
“펠릭스, 남아서 죄를 고해라.”
유한이 도망치려는 펠릭스를 향해 성스러운 신성 사슬을 방출했다. 은빛 사슬이 펠릭스의 발목을 감싸려던 찰나, 펠릭스는 역시 남작의 수석 제자다운 기민함을 발휘했다. 그는 품속에서 붉은색 연금술 용액을 꺼내 사슬 위에 뿌렸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강력한 산성 시약이 신성 사슬의 마법 회로를 부식시켰고, 사슬이 일시적으로 끊어졌다.
“으윽, 미친 괴물 놈들! 남작님께서 너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펠릭스는 비명을 지르며 실험실 뒷벽의 제어 장치 쪽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쳐 몸을 숨겼.
유한은 펠릭스를 무리하게 쫓는 대신, 철창 속에 갇힌 호랑이 수인 전사 칸에게 다가갔. 칸은 쇠사슬에 묶인 채 여전히 붉은 눈으로 유한을 잔뜩 경계하며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 사제 놈…… 나를 정화라는 이름으로 불태워 죽이러 왔나? 제국의 위선자들과 다를 바 없는 가증스러운 불빛이군.”
칸의 목소리에는 인간을 향한 뼈에 사무친 증오와 불신이 가득했다.
유한은 대답 대신 칸의 거대한 몸을 옭아매고 있던 굵은 철제 쇠사슬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가슴속의 ‘배덕의 성흔’을 미세하게 공명시키며 온화한 성력을 손끝으로 흘려보냈다.
‘성스러운 정화 광휘(聖스러운 淨化 光輝).’
유한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빛은 차갑고 파괴적인 제국의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고통을 흡수하는, 햇살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은백색의 진짜 구원의 광채였다.
철컥, 콰직!
칸의 단단한 육체를 옥죄고 있던 구속구와 쇠사슬들이 유한의 정화 광휘에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붉은 녹이 슬며 힘없이 바스러져 내렸다. 동시에 칸의 전신에 가득했던 피투성이 채찍 자국과 불에 덴 고문 상처들이 눈에 띄게 아물며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칸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보며 붉은 눈동자를 크게 흔들었다.
“이…… 이 따뜻한 기운은 대체 뭐지? 제국의 성력이 왜 나를 치유하는 거냐?”
“나는 제국의 거짓 구원을 파괴하러 온 자다.”
유한이 위장된 회색 눈동자로 칸을 똑바로 응시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와 함께 저 위선적인 교단을 무너뜨리고 동족들을 구하고 싶다면, 내 손을 잡아라.”
칸은 유한의 눈동자 속에서 흔들림 없는 진정성과 압도적인 신마 융합의 힘을 보았다. 거친 호랑이 수인 전사의 야성이 본능적으로 유한을 자신의 진짜 우두머리이자 구세주로 인정했다.
“……좋다. 내 칼날을 네게 빌려주지, 은빛의 성자여.”
칸이 거대한 구릿빛 손을 뻗어 유한의 손을 꽉 맞잡았다. 새로운 강력한 동맹이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유한은 고개를 돌려 가마솥 옆 연금술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펠릭스가 기록해 둔 가죽 두루마리 비망록이 놓여 있었다. 유한은 주저 없이 비망록을 집어 품속에 넣었다. 남작 발렌타인과 제국 교단이 숨겨온 ‘가짜 성수 제조법의 진실’이 담긴 결정적인 증거였다.
바로 그 순간, 실험실 구석 제어 장치 벽면에 도달한 펠릭스가 광기 어린 비소를 지으며 붉은색 마법 수정 장치 위에 손을 얹었다.
“하하하! 이단 놈들, 이곳과 함께 모두 잿더미가 되어라! 남작님의 비밀은 결코 가져가지 못한다!”
펠릭스가 장치를 강하게 내리누르자, 사방의 석벽에 새겨진 붉은색 마법 진언들이 폭발적인 광채를 뿜어내며 성채 전체가 무섭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자폭 마법 장치가 가동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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