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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바닥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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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벨트의 버클이 찰칵 소리를 내며 채워지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붉은 아침 햇살이 백산요 작업실의 통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두 사람의 땀방울 맺힌 얼굴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강준의 아랫입술에서 흘러내린 미세한 핏방울이 수민의 하얀 리넨 셔츠 깃 위로 툭 떨어졌다.


숨결이 서로의 입술에 닿을 듯 가까워진 그 찰나의 침묵 속에서, 수민은 자신도 모르게 마비된 하반신 대신 가슴 지지 벨트에 의지해 상체를 앞으로 조금 기울였다. 밤새 손가락 대신 입으로 렌치를 물고 볼트를 조이느라 찢어지고 부르튼 강준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수민은 떨리는 손끝을 들어 그의 입술 가에 맺힌 핏방울을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살갗이 맞닿는 순간, 강준의 단단한 어깨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피가 나요, 강준 씨. 나 때문에... 당신의 그 소중한 기계 손까지 전부 해체해 가면서...”


“괜찮아.”


강준이 낮고 서늘한, 그러나 어딘가 젖어 있는 목소리로 수민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양손 의수가 사라져 뭉툭해진 소매 끝을 애써 등 뒤로 숨기며, 오직 단단한 눈빛만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이따위 쇳덩이 손가락으로 내 입에 밥숟가락 처넣는 것보다, 당신이 물레 앞에 똑바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내게는 천 배는 더 가치 있어.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 안수민.”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로맨틱 텐션이 공방의 흙먼지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려던 찰나, 마당에서 요란한 경적 소리와 함께 낡은 트럭의 엔진음이 들려왔다. 백산요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트럭 운전사인 마동철이었다. 그는 헐레벌떡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수민아! 큰일 났다! 그 고집불통 적송 장작쟁이 장성필이 녀석이... 갑자기 외상 거래는 절대 안 된다고 자빠졌다!”


수민은 휠체어의 고정 기어를 풀고 동철을 향해 바퀴를 굴렸다. 새로 개조된 카본 보강형 휠체어는 미끄러짐 없이 부드럽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성필 삼촌이요? 평생 우리 백산요랑 신용으로 거래해 온 분이잖아요. 갑자기 왜 그러시는 건데요?”


“그게... 한주 파인아트 녀석들이 손을 쓴 모양이여. 이천 바닥 장작 상인들한테 백산요에 장작 대주는 놈들은 앞으로 대기업 리조트 자재 납품에서 영원히 배제하겠다고 협박을 넣었다나 봐. 성필이 그 녀석도 먹고살아야 하니 눈치를 보는 거지. 오늘 당장 현금 500만 원을 주지 않으면, 창고에 쟁여둔 최상급 적송 장작을 다른 대형 공방에 통째로 넘겨버리겠단다.”


장작 값 500만 원. 전통 장작 가마를 한 번 때기 위해선 한반도 전역에서 공수한 바짝 마른 붉은 소나무 장작이 필수적이었다. 당장 현금이 없으면 다음 소성 작업은커녕, 백산요의 가마 불은 영원히 꺼질 위기였다.


수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갈 때, 작업실 한구석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강준이 걸어 나왔. 그의 눈빛에는 자본의 비열한 횡포에 대한 깊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우리가 구워둔 생활 도자기들이 있어.”


강준의 말에 수민이 고개를 들어 선반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수민이 물레를 차고, 강준이 맨발로 온몸의 체중을 실어 밟아 다진 고밀도 점토로 빚어낸 머그잔과 둥근 접시들이 수백 개 넘게 쌓여 있었다. 비록 예술용 대작은 아니었지만, 백산요 특유의 단단하고 푸른 흙 맛이 살아있는 고결한 일상 식기들이었다.


“오늘이 이천 전통시장 오일장날이야. 마 형, 트럭에 이 도자기들 전부 실어줘요. 시장 바닥에서 직접 현금으로 팔아서 장작 값을 만들겠어.”


강준의 단호한 지시에 마동철은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용역 놈들이 길목을 막기 전에 얼른 싣자고!”


몇 시간 뒤, 활기찬 활기와 억척스러운 삶의 냄새가 가득한 이천시 전통시장 한구석. 수민의 단짝 친구이자 도예마을 입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서유리가 노란 앞치마를 두른 채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수민아! 여기야, 여기!”


유리는 수민과 강준이 탄 휠체어와 손수레가 들어서자 얼른 가판대를 정리하며 마중을 나왔다. 유리 역시 백산요가 처한 위기를 전해 듣고 자신의 카페 영업도 제쳐둔 채 달려온 참이었다. 이들은 시장 통로 한구석에 낡은 돗자리를 깔고, 우윳빛과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백산요의 생활 도자기들을 정갈하게 진열하기 시작했다.


“어머, 도자기가 어쩜 이렇게 맑고 단단해 보인대?”


지나가던 시장 상인들과 장을 보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며 가판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수민은 카본 휠체어에 몸을 고정하고 앉아 손님들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도자기의 쓰임새를 설명했다. 강준은 소매를 길게 늘어뜨린 채 묵묵히 수민의 등 뒤를 든든하게 지탱하고 섰다. 생활 도자기 플리마켓 판매 대금이 조금씩 수민의 앞치마 주머니로 쌓여가며, 장작 값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던 찰나였다.


“자, 비키세요! 뉴스 팩트 취재 중입니다!”


날카롭고 야비한 목소리가 시장의 활기를 깨뜨렸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며 군중을 헤집고 나타난 사내는 인터넷 황색 매체의 기자, 정경식이었다. 그의 뒤에는 황두식의 사주를 받은 험악한 인상의 용역 프락치 세 명이 거만하게 껌을 씹으며 따라붙어 있었다.


정경식은 수민의 카본 휠체어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향해 노골적으로 초고배율 렌즈를 들이대며 셔터를 눌러댔다. 번쩍이는 플래시 광원에 수민은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안수민 씨 맞으시죠? 대상을 수상한 백산요의 후계자가 왜 이런 시장 바닥에서 구걸하듯 장사를 하고 계십니까? 옆에 있는 사내는 양손이 없는 장애인 같은데, 혹시 장애인 부부라는 타이틀로 대중의 동정심을 자극해 불량 도자기를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감성 팔이 구걸 쇼 아닌가요?”


자극적이고 모멸적인 질문들이 시장 한복판에 폭탄처럼 떨어졌다. 주변에 모여 있던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이 양아치 같은 자식이 어디서 카메라를 들이대!”


분노한 서유리가 정경식의 앞을 막아서며 그의 카메라 포커스를 손으로 가로막았다. 하지만 정경식의 뒤에 서 있던 용역 프락치 한 놈이 유리를 거칠게 밀쳐냈다.


“어이, 기자가 정당한 취재를 하겠다는데 왜 방해야? 그리고 이 컵들 좀 봐라. 밑바닥에 균열이 간 게 딱 봐도 불량품이잖아!”


문신이 가득한 프락치의 손이 가판대 위의 머그잔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수민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손을 놓아버렸다.


“깡—! 쨍그랑!”


맑은 소리와 함께 백산요의 영혼이 담긴 머그잔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사방으로 튀는 하얀 흙 파편들을 보며 수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짓이에요! 깨끗한 도자기를 왜 깨뜨려요!”


수민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참으며 휠체어 바퀴를 앞으로 강하게 밀었다. 휠체어 회전력 동조 물레 제어를 위해 개조된 강력한 카본 바퀴가 프락치의 발을 밟아 막으려 돌진했다. 그러나 프락치는 비열하게 웃으며 발을 빼고는, 수민의 카본 휠체어 측면 유압 지지대를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이 앉은뱅이 년이 누굴 치려고 해?”


“꺄악!”


강한 충격과 함께 휠체어가 옆으로 크게 기우뚱하며 가판대 옆으로 쓰러질 뻔했다. 하반신의 감각이 없는 수민으로서는 중심을 잃고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찧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낙상 위기였다.


그 순간, 강준의 단단한 신체가 바람처럼 수민의 곁을 파고들었다. 양손이 없는 그는 자신의 넓은 가슴과 어깨로 수민의 기우는 휠체어 프레임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강준의 척추가 충격을 흡수하며 버텨냈다.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그의 두 눈은 수민의 안전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빛을 띠었다.


“서유리, 당장 경찰에 신고해. 그리고 시장 상인회 대장님들 불러와!”


유리가 악을 쓰며 프락치의 멱살을 잡고 늘어졌고, 정경식은 이 자극적인 난장판을 특종이라도 잡은 듯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시장 주민들과 상인들이 웅성거리며 백산요 가판대 주변을 겹겹이 포위하며 일촉즉발의 대치 국면이 형성되었다.


강준은 수민을 똑바로 일으켜 세운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바닥에 깨진 머그잔 파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심장박동이 거칠게 요동쳤다. 분노로 인해 양팔 어깨의 잔존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환상통을 쏘아 올렸다. 주먹이 있었다면 당장 저 비열한 자들의 얼굴을 짓뭉개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강준은 이내 차갑게 이성을 되찾았다. 여기서 폭력을 쓰면 저들이 원하는 ‘폭력 장애인 사기꾼’ 프레임에 완벽히 말려들 뿐이었다. 예술가로서, 지적 카리스마를 지닌 조각가로서 이 위기를 정면 돌파해야 했다.


강준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소매 끝, 해체되어 뼈대만 남은 기계 장치의 금속 팁을 활용해 바닥에 깨진 도자기 파편 중 가장 큰 조각을 정밀하게 가리켰다. 그리고 시장 바닥 전체를 압도하는 차분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 이 깨진 단면을 똑똑히 보십시오.”


그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예술적 권위와 지적 카리스마가 서려 있어, 요란하던 시장 바닥이 한순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정경식 기자 역시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 렌즈를 강준이 가리키는 파편의 단면으로 가져갔다.


“이 도자기는 현대식 가스 가마에서 화학 유약을 발라 공장식으로 찍어낸 모조품이 아닙니다. 이 깨진 단면의 미세한 입자들을 보십시오. 백사천 상류의 고밀도 천연 백토를 맨발로 수천 번 디뎌 기포를 완벽히 제거한 흙입니다. 단 하나의 미세한 공기 방울도 존재하지 않는 이 완벽한 밀도와 조밀한 결합력이 보이십니까?”


강준은 뭉툭한 소매 끝으로 파편 표면에 흐르는 깊은 비취빛 유막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유약의 두께는 정확히 0.3mm 이하로 얇고 균일하게 입혀졌습니다. 휠체어에 몸을 묶은 도예가가 자신의 상체 무게중심을 완벽히 분산시켜 빚어낸, 기계보다 더 정밀한 수공예의 극치입니다. 이 단면의 정직한 밀도가 증명합니다. 만약 이 도자기가 불량품이고 쓰레기라면, 그것은 당신들의 미학적 무지와 자본의 때가 묻은 눈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입니다.”


강준의 거침없고 논리적인 미학적 분석과 당당한 태도에 정경식은 침을 삼키며 뒤로 주춤 물러섰고, 도자기를 깨뜨린 프락치들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장 상인들과 관광객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어머, 듣고 보니 정말 단면이 유리처럼 매끄럽고 단단해 보이네.”


“장애가 저렇게 당당한 예술의 무기가 될 수 있다니... 저 사내 눈빛 좀 봐. 진짜 보통 사람이 아니야.”


대중의 여론이 한순간에 백산요의 편으로 완벽하게 돌아섰다. 아주머니들과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지갑을 열며 가판대 앞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나 이거 세트 하나 줘요! 아니, 두 세트!”


“나도 머그잔 다섯 개만 포장해 줘요! 이 귀한 걸 여기서 사네!”


서유리는 신이 나서 도자기를 신속하게 포장하기 시작했고, 수민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거스름돈을 챙겼다. 강준은 의수가 없는 뭉툭한 어깨로 수민의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불과 3시간 만에 가판대 위에 진열되었던 수백 개의 생활 도자기가 단 하나도 남김없이 완판되었다. 수민의 앞치마 주머니는 500만 원의 현금 뭉치로 묵직해졌다. 마침내 가마를 지필 최상급 적송 장작 값을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하게 마련해 낸 순간이었다.


“수민아, 강준 씨! 우리가 해냈어! 완판이야!”


유리가 환호성을 지르며 수민을 껴안았고, 수민은 강준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강준 역시 그의 굳게 닫혀 있던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리며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영광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시장 골목 어두운 그늘 속에서 정경식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방금 전 밀착 촬영한 강준의 어깨 흉터와 해체된 기계 의수 잔해, 그리고 그의 날카로운 옆얼굴이 선명하게 담긴 초고해상도 사진들을 한주그룹 서은아 비서의 개인 메신저로 전송했다.


[전송 완료: 최강준이 이천 백산요에 살아있습니다. 현재 무명 여도예가의 휠체어를 개조해 주며 공생 중인 정황을 완벽히 포착했습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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