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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침수, 빗속의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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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감싸 안은 대나무 숲 사이로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순간, 저 멀리 가마터 쪽에서 불길한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아—!


하늘이 뚫린 듯한 장대비가 설봉산 자락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방금 전까지 두 사람의 뺨을 스치던 따스한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폭우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강준은 등에 업힌 수민을 더욱 단단히 고정하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양손이 없는 그에게 빗속의 하산길은 매 순간이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발가락 끝의 감각을 곤두세워 이끼 낀 바위의 미찰력을 읽어내며, 그는 오직 하체의 근력만으로 버텼다.


"최강준 씨, 조심해요! 오른쪽 바위가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


수민이 강준의 귀가에 외쳤다. 그녀의 빗물 젖은 목소리가 어깨 너머로 가늘게 떨렸다. 강준은 대답 대신 이를 악물고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의 넓은 등 근육이 활처럼 긴장하며 수민의 가슴팍을 짓눌렀다. 붉은 흙탕물이 그들의 발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래쪽 차고지에 세워둔 수동 수레에는 오늘 채취한 백산요 천연 고령토 포대가 실려 있었다. 비에 젖으면 흙의 점력이 흐트러져 1년 동안 자연 숙성해야 하는 수비 공정이 완전히 망가질 터였다.


천신만고 끝에 백산요 마당으로 돌아왔을 때, 가마터 주변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백사면 산사태 위험 구역으로 지정된 가마 뒤편의 가파른 절벽에서 흘러내린 황토 진흙이 배수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안채 살림을 돕는 이영순 아주머니는 수민의 부친 안태환 명장의 진폐증 악화로 이천 시내 병원에 간병을 하러 가 공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두 사람만이 이 거대한 자연의 폭력 앞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지하 숙성고...! 지하 숙성고에 물이 차오르고 있어요!"


수민이 휠체어로 옮겨 타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백산요 지하 옹기 저장고는 반지하 형태로 설계되어 있어, 배수로가 막히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그대로 고여드는 치명적인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었다. 그곳에는 안태환 명장이 평생 모아둔 최고급 점토 옹기들과 유약 비법 노트가 보관되어 있었다. 만약 그곳이 침수된다면 백산요의 심장이 영원히 멈추는 것과 같았다.


수민은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릴 새도 없이 휠체어 바퀴를 미친 듯이 굴렸다. 하지만 빗물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마당 바닥은 휠체어의 낡은 바퀴를 사정없이 미끄러뜨렸다.


"안수민, 위험해! 들어가 있어!"


강준이 소리쳤지만, 수민은 고집스럽게 지하 저장고 입구의 경사로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지하 계단 아래로 이미 누런 흙탕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수민은 휠체어 바퀴를 움켜잡고 계단 난간을 붙잡으며 옹기들을 조금이라도 안전한 선반 위로 옮기려 분투했다.


철퍽, 철퍽.


지하 수장고 바닥은 이미 무릎 높이까지 차가운 물이 차올라 있었다. 수민이 상체의 힘을 쥐어짜 무거운 점토 옹기를 들어 올리려던 찰나, 휠체어 바퀴가 물속에 잠겨 있던 미끄러운 진흙 찌꺼기에 걸려 헛돌았다.


"아앗!"


균형을 잃은 휠체어가 옆으로 크게 기울어졌다. 수민의 몸이 차가운 흙탕물 속으로 사정없이 추락했다. 하반신의 감각이 없는 그녀의 몸은 수중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물속에 잠겼다. 귓가로 차가운 물줄기가 들이닥치며 숨이 턱 막혔다. 동시에 차가운 온도에 노출된 골반과 척추 신경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 마비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만성 하지 신경통, 뼛속을 칼로 후벼 파는 듯한 타는 듯한 통증 발작이 수민의 전신을 엄습했다.


"허윽...! 으아아!"


수민이 물을 들이켜며 비명을 질렀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물속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물속에 잠긴 그녀의 마비된 다리는 그저 차가운 모래주머니처럼 무겁게 그녀를 짓누를 뿐이었다.


그 순간, 어둠을 뚫고 거대한 그림자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최강준이었다.


그는 양손의 전자의수를 완전히 벗어던진 맨몸이었다. 덜렁거리는 셔츠 소매를 어깨 위로 질끈 묶은 채, 그는 오직 단단한 허벅지와 넓은 가슴의 힘만으로 수민이 가라앉은 흙탕물 속으로 거침없이 기어 들어왔다.


"안수민! 내 목을 안아! 당장!"


강준이 소리쳤다. 수민은 본능적으로 물 위로 솟아오른 강준의 단단한 목덜미를 두 팔로 꽉 움켜쥐었다. 강준은 손가락이 없는 잔존하는 양팔 뼈로 수민의 허리와 골반을 단단히 감싸 안았다. 그의 탄탄한 가슴 근육이 수민의 젖은 가슴에 밀착되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읍...!"


강준은 허리를 활처럼 굽히며 수민의 몸을 물 위로 들어 올렸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솟구치고, 빗물과 땀방울이 뒤섞여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이 없는 그가 한 사람의 신체를 들어 올리는 것은 온몸의 뼈마디가 어긋나는 듯한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넓은 등을 지지대 삼아 무너져 내리는 옹기 저장고의 나무 선반 잔해를 몸으로 막아서며, 수민을 가슴에 품은 채 한 걸음씩 가파른 지하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정신 차려, 안수민! 눈 떠!"


강준의 거친 음성이 빗소리를 뚫고 수민의 뇌리를 때렸다. 수민은 강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전신을 휘감는 신경통의 고통 속에서 겨우 숨을 들이쉬었다. 강준은 그녀를 안고 마당을 가로질러 자신의 임시 거처인 사랑채 온돌방으로 달려갔다.


쾅!


발로 문을 차서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선 강준은 수민을 따뜻한 온돌 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방 안에는 마동철이 미리 켜두었던 온수 매트와 온돌의 잔열이 가득해, 바깥의 폭우와는 전혀 다른 아늑한 온기가 흘렀.


수민은 바닥에 누워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젖은 옷이 몸에 감겨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고, 하반신의 만성 신경통은 극에 달해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강준은 급히 욕실로 들어가 자신의 턱과 어깨를 이용해 마른 수건 몇 장을 겨우 챙겨 나왔다.


그는 수민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양손이 없는 사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강준은 마른 수건을 자신의 입으로 물어 고정하고, 잔존하는 양팔의 뭉툭한 끝부분으로 수민의 젖은 어깨와 목덜미를 조심스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최, 최강준 씨... 내가 할게요..."


수민이 떨리는 손을 들어 수건을 빼앗으려 했지만, 손가락 마디마디가 추위와 통증으로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손끝 하나 못 움직이면서 고집 부리지 마."


강준의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지만, 수민의 피부에 닿는 그의 이마와 뺨의 온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강준은 수민의 젖은 면 셔츠 단추를 어깨로 밀어 젖히며, 물기를 닦아내고 허리춤에 감겨 있던 '온열 점토 패드'를 확인했다. 이미 차가운 흙탕물에 젖어 패드는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다.


강준은 서랍장에서 새 온열 패드를 꺼내 입으로 물어 온수를 부어 데운 뒤, 수민의 골반과 허리 아래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뜨거운 점토의 원적외선 열기가 수민의 마비된 하반신으로 스며들자, 타는 듯하던 신경통 사슬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한 구원이 찾아왔.


"아..."


수민의 입에서 안도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강준이 수민의 물에 젖은 양 다리를 마른 수건으로 감싸 닦아내기 시작했다. 감각이 없는 다리였지만, 수민은 자신의 쓸모없는 신체를 남자가 만지고 있다는 사실에 극도의 수치심과 묘한 감정적 전율을 동시에 느꼈다. 그녀의 긴 생머리가 온돌 바닥에 흐트러져 있었고, 빗물에 젖어 살ꄊ에 밀착된 리넨 셔츠 아래로 그녀의 가냘픈 신체 곡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준 역시 숨을 들이쉬었다. 수민의 마비된 다리를 닦아내던 그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느려졌다. 손가락이 없는 그의 팔끝이 수민의 가냘픈 발목과 무릎을 스칠 때마다, 방 안에는 바깥의 폭우 소리를 압도하는 숨 막히는 침묵과 묘한 관능적 텐션이 차올랐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수민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에 사랑채의 은은한 주황빛 전등 불빛이 투영되어 황금빛으로 빛났다. 강준은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의 동정을 거부하며 독하게 버텨온 여도예가의 눈동자 속에 담긴 날것의 약함과 외로움이, 그의 심장을 거세게 두드렸다.


강준은 조용히 몸을 숙였다. 그의 젖은 머리칼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수민의 뺨 위로 툭 떨어졌다. 두 사람의 숨결이 닿을 듯 가까워진 순간, 강준의 뜨거운 입술이 수민의 뺨을 타고 내려와 그녀의 굳게 다문 입술 바로 위에서 멈춰 섰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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