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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업힌 백토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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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요의 아침을 뒤흔든 것은 거친 엔진 소리가 아니라, 비겁한 침묵이었다.


수민은 작업실 마당 한구석에서 가동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는 점토 공급 트럭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붉은 황토와 뽀얀 고령토 포대를 한가득 부려놓아야 할 트럭의 적재함은 텅 비어 있었다. 운전석에서 내린 중년의 기사는 수민의 매서운 눈빛을 피하며 연신 담배 연기만 뿜어댔다.


"미안하게 됐어, 안 작가. 백토재의 강태오 씨가 도예촌 전체에 말을 맞춰놨더라고. 백산요에 흙이나 장작을 대주는 공방은 앞으로 이천 도예가 협회 주관 전시에서 영구 배제하겠다고 말이야. 나 같은 뜨내기 운송업자가 무슨 힘이 있겠나. 대기업 한주그룹의 연줄을 잡은 백토재 눈 밖에 나면 당장 내일부터 굶어 죽어."


기사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흙먼지를 일으키며 백산요를 떠나갔다. 마당에 홀로 남겨진 수민의 휠체어 바퀴 아래로 마른 흙먼지가 쓸쓸하게 흩어졌다. 손가락 끝에 염증이 도져 붕대를 감은 수민의 손목이 잘게 떨렸다.


백토재의 후계자 강태오. 그 보수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내는 휠체어를 탄 수민이 백산요의 후계자로 인정받는 것을 처음부터 동정표라며 폄하해 왔다. 이제는 한주그룹의 비호 아래 아예 백산요의 목줄을 죄어 고사시키려는 것이 분명했다. 당장 다음 주까지 장애 예술인 지원금 유지를 위한 포트폴리오용 백자 대접 50점을 빚어내야 하는데, 물레 위에 올릴 최상급 백토가 단 한 줌도 남지 않았다.


"비겁한 자식들."


작업실 문가에 서 있던 강준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는 양팔의 전자의수를 벗어던진 상태였다. 길게 늘어진 빈 소매 끝이 아침 바람에 쓸쓸하게 흔들렸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빛만큼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제 맨발로 진흙을 디디며 조각가로서의 야성적 본능을 되찾은 그는, 이제 백산요의 위기를 자신의 일처럼 느끼고 있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수민이 휠체어 바퀴를 돌려 강준을 응시했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비장한 결의가 서렸다.


"백사천 계곡 상류, 설봉산 자락 깊은 곳에 우리 가문이 대대로 지켜온 비밀 광산이 있어요. 아버지가 안태환 명장 명의로 단독 등록해 둔 '백사천 상류 백토 광산 채굴권' 서류가 아직 유효해요. 한주그룹도 법적으로는 침범하지 못하는 영토죠. 그곳 지하에 묻힌 천연 고령토는 구웠을 때 독특한 푸른빛과 거친 흙 맛을 내는 백산요의 심장이에요."


"그럼 당장 거기로 가자고. 흙 포대 몇 개쯤은 내 다리로 실어 나를 수 있으니까."


강준의 말에 수민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마비된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험준한 산길이에요. 가파른 바위 계곡과 흙더미로 둘러싸여 있어서... 내 휠체어로는 초입조차 갈 수 없어요. 내 다리로는 평생 도달할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죠."


작업실 내부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휠체어 없이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여인과, 양손이 없어 도구를 쥘 수 없는 남자의 결핍이 차가운 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는 듯했다.


하지만 강준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덜렁거리는 빈 소매를 어깨 위로 묶어 고정하며 수민의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넓고 단단한 어깨가 아침 햇살을 받아 묵직한 음영을 만들어냈다.


"내가 당신의 다리가 되겠다고 약속했잖아. 휠체어가 갈 수 없다면, 내 등에 업혀서 가자."


"최강준 씨... 하지만 거긴 너무 가파르고 미끄러워요. 양손도 없이 나를 업고 오르는 건 목숨을 거는 일이에요."


"손은 없어도 내 척추와 허벅지 근육은 멀쩡해. 어제 흙을 디디면서 내 발바닥이 대지의 무게를 기억해 냈어. 가자, 안수민. 백산요의 심장을 가지러."


강준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수민의 가슴이 세차게 요동쳤다. 평생 타인의 동정과 도움을 혐오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켜 왔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강준이 내미는 것은 값싼 동정이 아니었다. 서로의 결핍을 완벽하게 메워 하나의 걸작을 완성하려는 예술가 대 예술가의 숭고한 공조이자,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었다.


두 사람은 마동철의 트럭 차고지에서 빌린 낡은 손수레와 흙 포대를 챙겨 설봉산 계곡 초입으로 향했다.


산길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울창한 대나무 숲을 지나 백사천 계곡 상류로 접어들자, 흙길은 사라지고 물이 이끼 낀 거대한 화강암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계곡물 소리가 고요한 산속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덜컹, 콰직!


갑자기 수민이 타고 있던 낡은 휠체어의 우측 바퀴가 날카로운 바위 틈새에 단단히 끼어버렸다. 수민이 상체의 힘을 쥐어짜 바퀴를 밀어보려 했으나, 휠체어 프레임이 비틀리는 불길한 소리만 날 뿐 바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과도한 힘을 쓰자 척추 신경을 찌르는 타는 듯한 만성 통증이 다시금 수민의 어깨를 덮쳐왔다.


"아윽..."


수민이 신음하며 핸들을 놓쳤다. 휠체어가 옆으로 기우뚱하며 미끄러운 바위 바닥으로 전복될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 강준이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는 양손 대신 자신의 넓은 가슴과 단단한 오른쪽 어깨로 수민의 휠체어 등받이를 강력하게 받쳐냈다.


"조심해!"


강준의 가슴뼈가 수민의 어깨에 밀착되며 거친 숨결이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강준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땀 냄새와 뜨거운 체온이 수민의 차갑게 굳어 있던 뺨을 붉게 물들였다. 강준은 숨을 헐떡이며 수민의 휠체어를 안전한 평지로 밀어 올린 뒤, 그녀의 앞에 등을 보이고 무릎을 꿇었다.


"여기서부터는 내 등에 업혀야 해. 부끄러워할 시간 없어. 백토재의 강태오가 언제 감시 카메라로 우리를 감시할지 모르니까."


수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는 평생 자신의 쓸모없는 다리를 타인에게 보이는 것을 죽음보다 싫어했다. 하지만 강준의 넓고 우직한 등은 마치 가마의 뜨거운 황토 벽돌처럼 따뜻하고 단단해 보였다. 수민은 떨리는 팔을 뻗어 강준의 목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스윽.


수민의 가냘픈 몸이 강준의 등에 밀착되는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침묵이 흐르고 심장박동 소리가 서로의 살결을 통해 동조되기 시작했다. 강준은 어깨 근육을 활처럼 팽팽하게 긴장시키며, 하반신의 감각이 없어 힘없이 늘어진 수민의 두 다리를 자신의 잔존하는 양팔 뼈와 넓은 옆구리 사이에 단단히 끼워 고정했다.


"꽉 잡아."


강준이 허벅지 힘으로 지면을 밀어내며 단숨에 일어섰다. 수민은 강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그의 가쁜 숨소리를 공유했다. 강준의 등 근육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역동적으로 요동치는 것이 수민의 가슴뼈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것은 완벽한 인체 해부학적 골격의 움직임이었다. 강준은 머릿속으로 '해부학적 골격 입체 투영' 능력을 발동하여, 수민의 몸무게와 자신의 무게중심이 완벽한 수평 대칭을 이루도록 코어 근육의 힘을 미세하게 조율해 나갔다.


철퍽. 스윽. 철퍽. 스윽.


강준의 맨발이 미끄러운 이끼 낀 바위 표면을 디딜 때마다, 발가락 끝의 예민한 촉각 신경이 바위의 굴곡과 마찰력을 정밀하게 읽어냈다. 어제 맨발 반죽법을 통해 각성한 그의 하체 감각은 대지의 미끄러움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양손이 없어 균형을 잡기 힘든 상태였지만, 그는 오직 단단한 다리 힘과 수민과의 완벽한 신체적 밀착만을 무기 삼아 한 걸음씩 가파른 계곡 상류를 향해 올라갔다.


"힘들지 않아요? 나... 생각보다 무거울 텐데."


수민이 미안함과 떨림이 뒤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준의 목덜미에 닿는 그녀의 따뜻한 입김에 강준의 어깨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조각가는 평생 몇 톤짜리 대리석과 사투를 벌이는 직업이야. 당신 무게는 깃털 같아.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흙이 묻힌 동굴 위치나 잘 가리켜."


강준의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핀잔에 수민은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웃음을 터뜨렸다. 평생 장애라는 굴레 속에서 겪었던 고독과 외로움이, 강준의 넓고 뜨거운 등에 기대어 있는 이 순간만큼은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계곡 상류의 울창한 수풀 속에 숨겨진 작은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길선 명장 시절부터 백산요의 후계자들에게만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비밀 광맥 터였다. 동굴 내부로 들어서자, 외부의 뜨거운 햇살 대신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어두운 동굴 벽면 한쪽으로, 촛불 빛을 받지 않아도 은은하게 푸른 아우라를 뿜어내는 우윳빛의 점토 광맥이 대동맥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백산요 천연 고령토였다.


"찾았어... 이게 바로 백산요의 심장이에요."


수민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강준은 수민을 동굴 바닥의 정갈한 바위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수민은 하반신의 감각이 없어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그녀의 손끝은 벌써 흙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강준은 어깨에 매고 온 포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양발과 단단한 어깨뼈를 이용해 광맥 주변의 부드러운 백토 덩어리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없어 섬세한 도구 조작은 불가능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쐐기 삼아 광맥을 타격했다. 수민은 옆에서 '대추나무 조각 칼'로 흙의 결을 읽어내며, 강준이 파내야 할 위치를 1mm 단위로 정밀하게 지시했다.


"최강준 씨, 그쪽 우측 5cm 아래에 가장 점력이 높은 맥이 흘러요. 거기를 어깨로 강하게 내리쳐요!"


강준이 몸을 돌려 전신 체중을 실어 흙벽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100년 동안 어둠 속에 잠들어 있던 눈부신 우윳빛 백토 덩어리들이 툭툭 떨어져 내렸다. 수민은 초감각적인 손끝 촉각으로 떨어지는 흙의 수분량과 점도를 판별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완벽해요... 이 흙이라면 물레 위에서 3mm 이하로 얇게 빚어도 가마 안에서 터지지 않고 견뎌낼 수 있어요!"


두 사람은 협동하여 준비해 온 포대에 백토 덩어리들을 가득 채워 넣었다. 포대가 묵직해질 때마다 백산요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의 무게 역시 단단해졌다. 하지만 무리한 육체노동으로 인해 강준의 무릎 관절에는 심한 무리가 가기 시작했고, 수민 역시 감각이 없는 하반신 다리에 날카로운 돌가루로 인한 미세한 찰과상이 생긴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가슴이 아려왔다.


채취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계곡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채취한 흙 포대를 수동 수레에 싣고, 강준은 다시 수민을 등에 업었다.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훨씬 위험했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바위를 디딜 때마다 강준의 허벅지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계곡 중간쯤 내려왔을 때, 산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며 대나무 숲이 서글픈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차가운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해 마음이 급해졌다. 수민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강준의 목을 더욱 단단히 감싸 안았다. 그녀의 가슴과 그의 등이 밀착되는 면적이 넓어질수록,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호흡은 점점 가빠졌다.


"최강준 씨... 이거 알아요?"


수민이 강준의 귀밑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계곡의 물소리를 뚫고 강준의 뇌리로 스며들었다.


"우리 어머니, 이정숙 여사가 남긴 유약 비밀의 마지막 조각 말이에요. 어머니가 쓰시던 그 신비로운 황금빛 요변 유약의 핵심 재료는... 바로 우리가 방금 지나온 영월사의 오래된 소나무 재였어요. 대자연의 불길이 만든 그 재가 흙 속의 구리 성분과 만나면 천년의 푸른빛을 구현해 내는 거래요."


수민의 비밀스러운 고백이 이어지는 순간, 강준은 걸음을 멈추었다. 가파른 바위 계곡 한가운데서, 두 사람의 뺨이 미세하게 밀착되었다. 수민의 부드러운 살결과 강준의 거칠고 뜨거운 피부가 맞닿는 순간, 주변을 휘감던 거센 산바람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멈추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숨결과 서로를 향해 쿵쾅거리는 심장박동만을 온전히 느끼며 차갑게 얼어붙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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