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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를 가로막은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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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푸른 안개가 백산요 마당을 무겁게 덮었다. 수민은 간밤의 낙상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신음하며 잠에서 깼다. 무릎과 손목에 감긴 붕대 새로 붉은 피가 살짝 배어 나와 있었다. 상체를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척추를 타고 목덜미까지 날카로운 통증이 뻗쳐올라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하지만 쉴 틈이 없었다. 그녀의 손에는 안수호가 도망치며 떨어뜨리고 간 붉은 인주 묻은 위조 도장이 꼭 쥐어져 있었다. 한주그룹과 사채업자 마광태가 결탁해 꾸민 비열한 토지 강탈 음모의 결정적 증거물. 어떻게든 조현우 변호사에게 전달해 법적 방어벽을 쳐야 했다.


그때, 고요한 도예마을의 정적을 깨뜨리는 거대하고 금속성 짙은 엔진 소리가 백산요 마당을 흔들었다. 쿵, 쿵, 땅바닥이 요동쳤다. 단순한 차량의 소리가 아니었다. 수민은 황급히 낡은 휠체어의 바퀴를 굴려 안채 마당으로 향했다.


백산요 앞마당 이천 도예마을 광장의 초입, 거대한 포크레인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백산요의 흙담 벽을 사정없이 들이받고 있었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백 년의 세월을 버텨온 황토 담장이 무참히 허물어지며 뿌연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그 앞에는 깎아두른 듯한 짧은 스포츠머리에 금목걸이를 찬 사내, 철거 용역 대표 황두식이 인부들을 거느리고 오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멈춰요! 당장 멈추지 못해요!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수민이 휠체어 바퀴를 필사적으로 굴려 포크레인 앞으로 다가갔다. 먼지투성이 바람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때렸다. 황두식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붉은 인주가 번진 계약서 복사본을 흔들어 보였다.


"안수민 씨, 법대로 집행하는 거니까 소리 지르지 마쇼. 당신 친오빠 안수호 씨가 서명하고 날인한 양도 계약서에 따라 이 부지는 이제 우리 태산개발의 소유요. 잔말 말고 당장 가마터 비우고 꺼지시지."


"그건 오빠가 아버님의 도장을 도용해 만든 위조 계약서예요! 이미 조현우 변호사님을 통해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접수했습니다!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이면 무단 침입과 불법 철거로 형사 고소할 거예요!"


수민은 가슴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며 포크레인의 거대한 강철 삽날 바로 앞을 휠체어로 가로막았다. 목숨을 건 대치였다. 황두식의 눈가에 서늘한 광기가 스쳤다.


"이 앉은뱅이 년이 제법 쫑알거리네. 야, 휠체어째로 밀어버려."


황두식의 지시를 받은 용역 행동대원 배만수가 험악한 얼굴로 다가와 수민의 휠체어 바퀴를 거칠게 발로 찼다. 쿵 하는 충격과 함께 휠체어가 뒤로 밀려나며 수민의 상체가 크게 흔들렸다. 척추의 마비된 부위에서 타는 듯한 신경통 발작이 다시금 뇌를 찔렀다.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려던 찰나, 수민은 부러진 휠체어 카본 프레임을 필사적으로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빠아앙! 빠아아앙!


그 순간, 귀가 찢어질 듯한 경적 소리가 백산요 진입로를 가득 채웠다. 먼지 구덩이를 뚫고 돌진해 온 것은 마동철의 거대한 5톤 파란색 화물 트럭이었다. 동철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포크레인과 수민의 휠체어 사이를 거칠게 비집고 들어와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하는 굉음과 함께 타이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트럭의 육중한 강철 범퍼가 포크레인의 궤도와 불과 몇 센티미터 거리에서 멈춰 서며 완벽한 물리적 방어벽을 형성했다.


"어떤 개자식들이 남의 신성한 가마터에 쇠붙이를 들이밀어!"


185센티미터의 거구, 마동철이 트럭 문을 박차고 내렸다. 기름때 묻은 면장갑을 낀 그의 두꺼운 손에는 대형 쇠파이프 렌치가 쥐어져 있었다. 핏발 선 눈으로 용역들을 노려보는 그의 야성적인 기세에 배만수와 인부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황두식은 침을 뱉으며 뒤로 물러섰지만 여전히 뻔뻔했다.


"마동철이,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한주그룹의 부동산 개발 계획 조례안이 통과되면 어차피 여긴 철거될 운명이야. 법대로 하자고."


"법? 이 양아치 새끼가 어디서 법을 논해! 아가리 닥치고 내 마당에서 그 포크레인 안 빼면 대가리를 이 렌치로 조각내 줄 테니까!" 동철이 렌치를 치켜들며 포효하자, 소란을 듣고 모여든 도예마을 주민들이 스마트폰을 들어 현장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불법 철거 장면이 SNS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황두식은 결국 이빨을 갈며 포크레인 운전수에게 퇴각 신호를 보냈다.


"진입로 사유지인 거 알지? 다음엔 아예 길을 막아버릴 테니까 두고 보자고."


용역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철수하자 마당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일차 방어선은 구축했으나 가마터 벽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마동철이 혀를 차며 잔해를 치우는 동안, 수민의 폴더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복지관 관장 김희경이었다. 수민은 불안한 예감 속에 전화를 받았다.


"수민 씨, 큰일 났어요... 시청 도시개발과의 박성준 팀장이 한주 쪽 로비를 받았는지, 이번에 신청한 '장애 예술인 창작 특별 지원금'을 보류시켰어요. 상주하는 보조 인력(어시스턴트)이 없어서 실제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유령 공방'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어요. 당장 상주 어시스턴트를 등록하지 않으면 지원금이 전면 취소된대요."


수민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장작 한 번 때는데 들어가는 소나무 장작 값만 500만 원. 지원금 300만 원이 끊기면 백산요는 당장 이번 달 사채 이자조차 내지 못하고 파산할 터였다. 서진우 관장과 한주그룹의 보이지 않는 자본의 손길이 백산요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수민은 휠체어 바퀴를 천천히 굴려 백산요 사랑채로 향했다. 문을 열자, 어둠이 짙게 깔린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최강준이 보였다. 그의 양손 의수는 어젯밤 안수호를 밀쳐낼 때의 과부하로 인해 미세하게 타는 냄새를 풍기며 관절이 마비되어 있었고, 존재하지 않는 손가락의 환상통 때문에 그의 넓은 어깨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철저한 무력감과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다.


수민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최강준 씨."


강준은 초점 없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학적인 가시가 돋아 있었다. "꺼져. 동정할 시간 있으면 네 부서진 다리나 걱정해.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는 병신한테 뭘 바라는 거야?"


수민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의 상처받은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단단했다.


"동정 아니에요. 철저한 거래를 제안하러 왔어요. 최강준 씨, 내 임시 상주 어시스턴트로 등록해 주세요."


강준은 허탈한 실소를 터뜨렸다. "어시스턴트? 손가락도 없는 퇴물 조각가를 데리고 장애인 지원금이나 타 먹겠다는 건가? 서로를 이용하는 비열한 거래군."


"맞아요, 비열한 거래예요." 수민이 단호하게 맞받아쳤다. "당신은 서진우의 감시를 피해 숨을 안전한 안식처가 필요하고, 난 가마를 지키기 위해 당신의 신체와 이름이 필요해요. 이건 동정이 아니라 철저한 비즈니스 계약이에요. 당신의 자존심을 짓밟으려는 게 아니에요. 서로의 깨진 조각을 메워 살아남자는 거예요."


강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자신의 결핍을 '동정'이 아닌 철저한 '비즈니스적 필요'로 정의하는 그녀의 당당한 태도에,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오만함과 열정이 묘하게 자극받았다. 강준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매를 길게 내린 채, 그는 묵묵히 사랑채 문을 열고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마당에는 아까 포크레인이 부수고 간 흙담 잔해와 진흙더미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휠체어를 탄 수민이 이동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거친 길이었다.


강준은 수민의 휠체어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양손을 쓸 수 없었지만, 단단한 다리와 발을 이용해 휠체어 바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거운 돌과 진흙 덩어리들을 묵묵히 밀어내기 시작했다. 거친 흙이 그의 맨발과 바지깃을 더럽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강준이 발바닥으로 빚어낸 거친 길 위로 수민의 휠체어가 서서히 굴러갈 수 있는 틈새가 열렸다.


강준은 뒤를 돌아보며 낮게 읊조렸다. "거래는 성립됐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 난 네 다리가 되어주는 대가로 흙을 만질 뿐이니까."


두 사람의 불완전한 공생, '1단계: 일방적 의존'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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