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의 스포트라이트
서울 톨게이트의 차가운 회색 불빛이 무진동 트럭의 전면 유리를 어둡게 물들이며 쏟아져 내렸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도심의 빌딩 숲으로 들어서는 동안, 안수민은 조수석에서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최강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던 손끝에 힘을 주었다.
트럭의 좁은 조수석 공간에서 전해지는 강준의 체온은 뜨거웠고, 그의 찢어진 셔츠 사이로 보이는 왼쪽 어깨의 화상 상처는 여전히 붉은 피와 진물이 뒤섞여 처절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전자의수가 소실된 그의 뭉툭한 손목이 수민의 허벅지 위에서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수민은 가슴이 저려오는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아파할 시간조차 사치였다. 저 멀리 설봉공원 세계도자센터의 거대한 유리 외벽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차갑고 인위적인 빛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 왔습니다, 수민 씨. 강준 씨.”
운전대를 잡은 윤동철의 굵직한 목소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트럭이 전시장 입구의 하역장에 멈춰 서자, 수민은 스스로 카본 보강형 휠체어의 바퀴를 밀어 내릴 준비를 했다. 가슴 지지 벨트가 그녀의 마비된 상체를 단단히 고정해 주었지만, 하반신의 무감각함은 차가운 가죽 시트 너머로 여전히 무겁게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하역장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을 맞이한 것은 삼엄한 분위기의 검은 정장 차림을 한 한주 파인아트의 사설 경비원들이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한주 파인아트 소속의 신진 도예가이자 수민의 대학 동기인 서채원이 서 있었다. 청담동 스타일의 세련된 트위드 재킷을 걸치고 완벽한 메이크업을 한 채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흙먼지와 그을음으로 얼룩진 수민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어머, 수민이 아니니? 결국 그 부서진 몸을 이끌고 서울까지 기어 올라왔네.”
서채원이 코를 찡긋하며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수민의 카본 휠체어를 지나, 양손 없이 피 묻은 셔츠를 입고 있는 강준에게 머물렀을 때 그녀의 눈빛은 차가운 경멸로 가득 찼다.
“게다가 저 손 없는 병신은 또 뭐고? 설마 저런 조잡한 몰골의 인간들과 협업을 했다고 이 신성한 설봉공원 세계도자센터 전시홀에 발을 들이려는 건 아니겠지? 이번 공모전은 한국 현대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자리야. 장애인들의 구걸 상자 같은 조잡한 공예품을 올려놓는 자리가 아니라고.”
서채원의 독설이 하역장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잔인하게 울렸다. 강준의 가슴이 분노로 크게 들썩였다. 그의 뭉툭한 손목끝이 허공을 찌르듯 살벌하게 요동쳤고, 어깨의 화상 상처가 다시 벌어지며 붉은 피가 셔츠의 깃을 적셨다. 강준은 이성을 잃고 채원의 앞을 막아서려 했다. 양손이 없는 신체적 한계 속에서 오직 자신의 육중한 체중과 분노만을 실어 그녀를 밀쳐내려 한 무모한 시도였다.
“이 더러운 입 당장 닥쳐—”
“강준 씨, 안 돼요! 멈춰요!”
수민이 신속하게 자신의 카본 휠체어 바퀴를 밀어 강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휠체어의 브레이크를 ‘찰칵’ 소리가 나도록 강력하게 잠그며 강준의 허벅지를 자신의 단단한 상체로 받쳐 멈추어 세웠. 만약 여기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서진우가 파놓은 ‘폭력 작가’ 프레임에 걸려 작품을 공개하기도 전에 실격당할 것이 분명했다. 수민은 강준의 굳게 다문 턱끝을 올려다보며 눈빛으로 애원했다.
‘제발요, 강준 씨. 저들의 비열한 도발에 우리 예술을 더럽히지 마세요.’
강준은 수민의 떨리는 눈망울과 자신의 몸을 지탱해 주는 카본 휠체어의 묵직한 안정감을 느끼며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그의 거친 호흡이 수민의 머리칼을 스치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수민은 고개를 돌려 서채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휠체어에 앉아 올려다보는 시선이었지만, 그 안에는 흙을 만지는 장인 특유의 범접할 수 없는 단단함과 고결한 품격이 서려 있었다.
“채원아, 예술의 정수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구나.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가식적인 정장과 뻔지르르한 말로 포장한다고 해서 썩은 영혼이 구워지지는 않지. 우리 작품이 조잡한지 아닌지는 대중과 심사위원들이 판단할 거야. 비켜줘.”
“하, 뻔뻔한 년. 어디 끝까지 버텨봐.”
서채원이 콧방귀를 뀌며 길을 비켰다. 윤동철과 김민우가 조심스럽게 무진동 트럭에서 나무 완충 상자를 내렸다. 상자의 틈새로 은은한 나무 향과 함께, 가마의 뜨거운 열기를 견뎌내고 탄생한 걸작의 아우라가 새어 나오는 듯했다.
전시장 중앙 홀. 현대적인 대리석 바닥과 화려한 통유리 너머로 서울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차갑고 미래적인 공간이었다. 수민은 카본 휠체어에 당당히 앉아, 전시장 정중앙의 메인 스포트라이트가 내리쬐는 전시대 위에 작품을 배치하도록 민우에게 지시했다.
마침내 나무 상자가 해체되고, 흰색 비단 베일이 걷히는 순간 전시홀 내부의 공기가 일시에 얼어붙었다.
그것은 높이 1.2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도조 작품, ‘무언의 고백(Silent Confession)’이었다.
전통 장작 가마의 1300도 불길 속에서 구워진 백자의 표면은 인위적인 전기 가마의 백색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은은한 푸른빛과 백색의 경계에서 소나무 재가 날려 앉아 형성된 황금빛 요변(窯變)의 그라데이션이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아 마치 살아있는 오로라처럼 요동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백자의 우아한 곡선 위에 양각으로 조각된 인간의 육체였다. 강준의 천재적인 입체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빚어진 남녀의 손길과 요동치는 근육의 결들은, 마치 차가운 도자기 피부를 뚫고 금방이라도 살아 숨 쉬며 튀어나올 듯 역동적이었다. 서로의 깨진 손을 움켜잡으려는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남녀의 형상은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두 인간의 영혼의 합일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주변에 모여 있던 미술 평론가들과 관람객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탄식과 침묵이 이어졌다. 가벼운 현대식 오브제 도자들에 눈이 피로해져 있던 그들에게, 흙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인간 육체의 해부학적 미학이 완벽히 결합된 이 대작은 거대한 시각적 충격 그 자체였다.
“이건… 기적입니다.”
군중을 헤치고 우아한 실크 스카프를 두른 노부인이 걸어 나왔다. 상록문화재단의 이사장이자 이번 공모전의 핵심 후원자인 박정자였다. 그녀는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무언의 고백’의 표면을 닿을 듯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깊은 경탄의 눈물이 고였다.
“전통 도예가 가진 흙의 정직한 질감 위에, 현대 조각의 가장 숭고한 해부학적 아름다움이 융합되었군요. 상처와 결핍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예술의 뼈대로 삼았어. 올해 내가 본 작품들 중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정직한 걸작입니다.”
박정자 이사장의 극찬이 떨어지자, 얼어붙어 있던 전시홀은 이내 뜨거운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와 관람객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무명의 은둔 도예가와 손을 잃은 비운의 조각가가 빚어낸 걸작이 주류 미술계의 오만한 편견을 단숨에 깨부수고 기선을 제압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영광의 중심에서, 수민은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소름을 느꼈다.
전시장 저편, 대리석 기둥 그늘 속에서 완벽한 포마드 헤어와 최고급 맞춤 정장을 입은 사내가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한주 파인아트의 관장이자 강준의 영혼을 짓밟았던 장본인, 서진우였다. 그의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진 서늘하고 잔인한 눈빛이 수민의 휠체어를 지나 강준의 피 묻은 왼쪽 어깨 흉터에 가닿았다. 강준의 찢어진 셔츠 사이로 보이는 참혹한 화상의 흔적과 손목의 부재를 확인한 서진우의 눈동자가 기괴할 정도로 가늘어졌다.
서진우는 옆에 서 있던 차가운 인상의 비서 서은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입술만 미세하게 움직여 속삭였다.
“저 손 없는 퇴물 놈이 어떻게 저런 비례를 조각해 냈는지 당장 파헤쳐. 그리고 저 계집의 장애를 이용한 대필 사기극의 실체를 낱낱이 조사해라. 과거 강준이 밑에 있던 조수 최진섭을 수소문해. 그 녀석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그림을 다시 그려줄 테니까.”
지시를 마친 서진우가 구두 굽 소리를 내며 수민과 강준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가로막으며 수민의 휠체어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수민은 강준의 뭉툭한 소매 끝을 자신의 손으로 더욱 꽉 움켜쥐며, 다가오는 거대한 악의 심장부를 향해 비장하게 눈빛을 쏘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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