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입로의 사투, 덤프트럭의 연대
가마의 붉은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차가운 새벽빛 속에서, 수민의 떨리는 손가락이 강준의 붉게 덴 어깨 흉터를 어루만졌고, 두 사람의 숨결은 마침내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 뜨거웠던 입맞춤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백산요를 둘러싼 대나무 숲의 고요를 깨뜨린 것은 저 멀리 진입로에서부터 들려오는 육중한 디젤 엔진의 거친 포효였다. 가마터의 아침은 평화롭게 오지 않았다.
“수민 선배! 강준 형! 큰일 났어요!”
대학생 인턴 김민우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작업실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황두식 놈들이에요! 성진 C&D의 대형 덤프트럭 세 대가 백산요로 들어오는 유일한 외길 진입로를 완전히 가로막았어요! 윤동철 사장님의 무진동 트럭이 나갈 틈이 전혀 없어요!”
수민은 새로 개조된 카본 보강형 휠체어의 바퀴를 꽉 움켜쥐었다. 가슴 지지 벨트가 그녀의 상체를 단단히 붙잡아 주었지만, 심장박동이 가파르게 치솟는 것까지 막아줄 수는 없었다. 등 뒤에 서 있던 강준이 소매 없는 셔츠 사이로 화상 자국이 붉게 진물러 터진 어깨를 움츠리며 앞으로 나섰다. 어젯밤의 화재로 그의 고가 전자의수는 뼈대만 남은 채 아궁이 앞 진흙바닥에 찌그러져 버린 상태였다. 양손을 잃은 사내의 뭉툭한 손목이 허공에서 파르르 떨렸다.
“결국 올 것이 왔군.”
강준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불길에 그을린 야수의 그것처럼 번뜩였다.
마당 한편에는 어제 하루 동안 목숨을 걸고 구워낸 최초의 공동 걸작, ‘무언의 고백(Silent Confession)’이 담긴 거대한 나무 운송 상자가 윤동철의 무진동 트럭 적재함에 간신히 실려 있었다. 이 작품이 오늘 아침까지 서울 설봉공원 전시장으로 가지 못하면 공모전 출품 자체가 무산된다. 황두식은 백산요의 목숨줄을 끊어놓기 위해 가장 치명적인 타이밍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가봐야겠어.”
수민이 휠체어 기어를 밀며 단호하게 말했다. 강준은 대답 대신 그녀의 휠체어 등받이를 자신의 단단한 허벅지와 몸통으로 밀며 뒤에서 발이 되어주었다.
백산요의 외길 진입로는 가파른 경사와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흙길이었다. 그 길목에 황두식의 용역업체 성진 C&D 소속의 거대한 황색 덤프트럭 세 대가 지그재그로 배치되어 길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트럭 앞에는 가죽 재킷을 걸친 황두식과 쇠파이프를 손에 쥔 행동대장 배만수가 거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배만수는 윤동철의 무진동 트럭 앞유리를 쇠파이프로 툭툭 두들기며 비열하게 웃었다.
“어이, 기사 양반. 여기 사유지인 거 몰라? 우리 사장님이 오늘 이 길 보수 공사 하신단다. 알아서 차 돌려.”
윤동철이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구리빛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
“보수 공사는 무슨! 길을 완전히 막아놓고 무슨 헛소리야! 당장 차 안 빼면 경찰에 신고할 줄 알아!”
“신고? 해봐, 이 새끼야. 단순 토지 분쟁이라 경찰이 와도 쌍방 합의하라고 하고 갈 테니까.”
황두식이 침을 뱉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시선이 휠체어에 앉은 수민과, 양손 없이 화상 흉터를 드러낸 강준에게 머물렀다.
“안수민이, 그리고 손 없는 병신 조각가 놈. 대상을 받겠다고 서울까지 기어가시려고? 꿈 깨라. 오늘 이 길은 절대로 안 열리니까.”
강준의 가슴이 분노로 들썩였다. 그는 수민의 휠체어 앞을 가로막으며 황두식을 향해 걸어 나갔다. 손가락이 없는 뭉툭한 팔끝이 허공에서 살벌하게 요동쳤다.
“황두식, 당장 그 더러운 트럭 치워.”
“치우지 않으면 어쩔 건데, 이 병신 새끼야?”
배만수가 비웃으며 쇠파이프를 치켜들었다. 강준은 이성을 잃고 맨몸으로 돌진하려 했다. 양손이 없는 상태에서 오직 단단한 어깨와 체중만을 실어 배만수를 들이받으려 한 무모한 시도였다.
“강준 씨, 안 돼요!”
수민이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배만수는 비열하게 웃으며 몸을 가볍게 피하더니, 강준의 화상 입은 왼쪽 어깨를 쇠파이프 손잡이로 거칠게 밀쳐냈다.
“윽!”
중심을 잃은 강준의 거구가 옆으로 크게 휘청이며 차가운 진흙바닥 위로 무참히 쓰러졌다. 쇠파이프가 닿은 어깨의 화상 상처가 다시 터지며 붉은 피가 셔츠를 적셨고, 강준은 입안 가득 차가운 흙먼지를 삼켜야 했다. 양손이 없는 그는 바닥을 짚고 일어설 수조차 없어 흙바닥에서 처절하게 버둥거렸다.
“강준 씨!”
수민은 휠체어 바퀴를 밀어 강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진입로의 울퉁불퉁한 돌뿌리에 바퀴가 걸려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자신의 신체적 무력감과 강준의 처절한 모습이 겹치며 수민의 눈에서 분노의 눈물이 솟구쳤다. 황두식 일당은 그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웃어댔다.
“하하하! 손 없는 놈이랑 다리 없는 년이 아주 눈물겨운 쇼를 하는구나!”
그 순간, 진입로 너머에서 거대한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빠아앙—! 빠아아아앙—!
흙먼지를 뚫고 나타난 것은 마동철의 파란색 5톤 화물 트럭이었다. 동철은 황두식의 덤프트럭 바로 뒤꽁무니에 차를 바짝 들이대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하는 굉음과 함께 차가 멈춰 섰다. 동철이 트럭 문을 열고 내렸다. 그의 두꺼운 손에는 대형 쇠파이프 렌치가 쥐어져 있었다.
“이 개자식들이 어디서 행패야!”
동철이 거구의 몸을 이끌고 배만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황두식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동철이, 너 오늘 우리랑 피 볼래? 너 혼자서 이 트럭 세 대를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아?”
마동철은 무모하게 렌치를 휘두르는 대신, 품속에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나 혼자? 황두식, 너 우리가 이천 바닥에서 평생 흙만 나르고 산 줄 아냐? 우리 화물차 지부 동료들이 네놈들이 여기서 알박기 한다는 소식 듣고 다들 이빨 갈고 있단다.”
동철이 무전기 버튼을 꾹 눌렀.
“여기는 백산요 진입로! 성진 C&D 양아치 새끼들이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우리 도예 명장님의 작품 운송을 막고 있다! 근처에 있는 형제들, 지금 당장 덤프 끌고 백사면 진입로로 집결해라!”
무전기 너머로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수십 명의 거친 목소리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
— “오케이, 동철이 형! 당장 간다!”
— “감히 백산요를 건드려? 3지부 대기조 출발한다!”
황두식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쿠우우웅—!
얼마 지나지 않아, 대나무 숲길 저편에서 땅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10톤, 15톤에 달하는 대형 덤프트럭들과 화물차들이 붉은 먼지를 일으키며 좁은 외길 진입로로 무섭게 밀려들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마침내 열 대에 달하는 거대한 화물차들이 황두식의 덤프트럭 세 대를 앞뒤로 완벽하게 포위해 버렸다.
좁은 외길은 순식간에 거대한 강철의 장벽으로 가득 찼다. 황두식의 트럭들은 사방이 꽉 막혀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는 완벽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다.
마동철이 황두식의 멱살을 잡듯 다가서며 렌치로 그의 가슴을 툭툭 쳤다.
“어때, 황두식? 불법 도로 점거로 다 같이 경찰서 가볼까? 저기 윤 사장 무진동 트럭에는 실시간으로 경찰서에 전송되는 고화질 블랙박스가 사방에 달려 있단다. 네놈들이 쇠파이프 휘두르고 협박한 거, 이미 다 녹화됐어. 그리고 내가 방금 경찰서에 정식으로 특수공갈 및 불법 도로 폐쇄로 신고 접수했다.”
황두식은 이빨을 갈았지만, 사방을 에워싼 열 대의 거대한 화물차 대열과 험악한 표정의 화물 기사들이 트럭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결국 기가 꺾였다. 배만수 역시 쇠파이프를 슬그머니 내렸다.
“윤 사장! 틈새 열렸으니까 가속 페달 밟고 돌파해!”
마동철의 호령과 함께, 화물차 한 대가 미세하게 길을 비켜주며 좁은 틈새를 만들어냈다. 윤동철은 놓치지 않고 무진동 트럭의 기어를 올리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육중한 트럭이 황두식의 트럭 옆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굉음과 함께 진입로를 빠져나갔다.
“안수민! 최강준! 반드시 대상을 받아와라!”
뒤편에서 마동철과 화물 기사들의 우렁찬 함성이 대나무 숲을 뒤흔들었다. 수민은 백산요의 가마터가 멀어지는 모습을 백미러로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평범한 이웃들의 뜨거운 연대가 그들에게 세상 밖으로 나갈 길을 열어준 것이다.
무진동 트럭은 이천의 국도를 벗어나 마침내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차가운 아침 풍경을 바라보며, 수민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조수석 옆에 앉은 강준을 바라보았다.
강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전자의수가 없어진 그의 비어 있는 소매 끝이 가볍게 떨렸고, 찢어진 셔츠 틈새로 보이는 어깨의 화상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진흙 먼지와 엉겨 붙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고통과 분노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수민은 휠체어에서 상체를 미세하게 앞으로 숙였다. 그녀는 가슴 지지 벨트에 의지한 채,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강준의 피 묻은 오른발과 그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강준의 붉게 타들어 간 왼쪽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살을 맞대는 순간, 강준의 몸이 흠칫 놀라며 굳어졌다. 그러나 수민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이내 그의 타는 듯한 화상 통증과 마음속의 깊은 자괴감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강준 씨… 많이 아프죠? 미안해요. 나 때문에 또 이렇게 상처만 입고….”
수민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강준은 고개를 돌려 수민의 맑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의 처연한 눈빛 속에 수민의 얼굴이 담겼다. 강준은 손이 없는 뭉툭한 팔을 조심스럽게 들어 수민의 손등 위에 자신의 팔목을 겹쳐 얹었다. 비록 기계 손도, 인간의 손가락도 없었지만, 서로의 체온을 통해 전해지는 심장박동은 그 어떤 걸작보다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프지 않아. 당신을 지킬 수만 있다면, 내 몸 따위는 몇 번이고 부서져도 상관없어.”
강준의 갈라진 목소리가 트럭 엔진의 낮은 진동 소리와 섞여 수민의 귓가를 울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무진동 트럭의 차창 밖으로 서울의 차갑고 거대한 빌딩 숲이 멀리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자신들을 파멸시키려 대기 중인 한주 파인아트와 서진우 관장의 삼엄한 음모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서로의 상처를 움켜쥔 두 사람의 결의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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