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의 아리아, 1300도의 밤
지하 저장고를 밝히던 마지막 촛불이 툭 꺼진 후, 암전된 공간에 남은 것은 서로의 살결을 스치는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수민은 카본 보강형 휠체어에 몸을 묶은 채,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준의 뜨거운 체온에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방금 전까지 물레 위에서 두 사람의 상처를 깎아내며 빚어낸 공동 대작, ‘무언의 고백’이 어둠 속에서 축축하고 묵직한 흙내음을 풍기며 숨을 쉬고 있었다.
“강준 씨….”
수민이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준은 뭉툭한 소매 끝으로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손가락이 없는 그의 어깨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자의수의 유압 액이 누출되면서 흘러나온 차가운 기계 냄새가 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과 뒤섞였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감정의 정점에서 멈춰 서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완성된 생도자기를 깨뜨리지 않고 건조한 뒤, 1300도의 화염이 기다리는 가마터로 안전하게 이동시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임무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지하 저장고 밖에서 불침번을 서던 김민우가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수민 선배, 강준 형. 황두식 놈들의 기척은 아직 없어요. 하지만 서둘러야 해요. 가마에 불을 지필 적송 장작은 마 형님이 벌써 가마터에 다 쌓아두셨습니다.”
수민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오일장에서 생활 자기를 피눈물 나게 팔아 마련한 현금 500만 원으로 장목상 장성필에게 구매한 최상급 적송(赤松) 장작들이었다. 가마터 마당에는 바짝 마른 붉은 소나무들이 산처럼 쌓여 밤이슬을 맞고 있었다.
수민과 강준은 극도로 조심스럽게 ‘무언의 고백’을 가마터로 옮겼다. 휠체어에 앉은 수민의 무릎 위에 조각을 얹고, 강준이 뒤에서 그녀의 어깨와 휠체어를 단단히 지탱하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흙으로 빚은 남녀의 얽힌 손가락 조각이 산산조각 날 수 있는 위험한 운반이었다. 마침내 도자기가 가마의 명당인 중앙부에 안착하자, 백산요의 늙은 옹기장 오필성이 보청기를 매만지며 가마 아궁이 앞으로 다가왔.
“불을 지핀다. 수민아, 정신 바짝 차려라. 날이 차서 가마 안팎의 온도 차가 크다. 조금만 방심해도 유약이 다 흘러내려 흙이 주저앉을 게야.”
귀가 먹은 노장의 목소리는 투박했지만 단호했다. 오필성은 가마 내부의 미세한 공기 흐름을 소리로 읽는 ‘오필성식 청각적 가마 불꽃 진단법’의 대가였다. 그가 아궁이 아래에 첫 불씨를 던져 넣자, 마른 적송 장작이 ‘탁, 타닥!’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백산요 전통 장작 가마터의 100년 된 황토 벽돌들이 서서히 붉은빛을 머금으며 열기를 뿜어냈다.
시간이 흐르며 가마 내부의 온도는 급격히 상승했다. 수민은 방열 고글을 쓴 채 가마 구멍 안쪽의 화염을 응시했다. 불꽃의 색깔이 붉은색에서 주황색으로, 다시 황색으로 변해가는 미세한 스펙트럼을 읽어내는 ‘시각적 화염 스펙트럼 온도 판별’ 기술이 발동되었다.
“현재 950도. 성화(成火) 제어 단계로 진입합니다. 강준 씨, 아궁이 좌측 창구멍을 막아주세요!”
수민의 지시에 강준이 몸을 움직였다. 전자의수의 유압 누출로 인해 한쪽 팔의 구동이 원활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단단한 허벅지와 몸통의 회전력을 이용해 젖은 황토 진흙을 창구멍에 밀착시켰다. 가마 내부의 산소가 차단되며 유약 속의 금속 성분이 흙과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환원염 상태가 조성되었다. 가마 안은 이제 지옥 같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온도가 1100도를 돌파한 깊은 밤, 대참사는 한순간에 찾아왔다.
수민이 앉아 있던 임시 작업 의자는 과거 황두식 일당의 사보타주로 파손된 것을 임시로 용접해 둔 낡은 물건이었다. 1000도가 넘는 가마 아궁이의 무시무시한 복사열이 좁은 가마터 공간을 가득 채우자, 의자 하부의 조잡한 용접 부위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붉게 달아오르며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쩡—!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이 가마터의 공기를 찢었다.
“앗!”
지지 축이 부러지며 수민의 작업 의자가 옆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하반신의 감각이 없는 수민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가마 아궁이의 시뻘건 화구 쪽으로 쓰러졌다. 아궁이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1100도의 불길이 그녀의 얼굴과 옷자락을 삼키기 직전이었다.
“수민아!”
강준의 눈동자가 극단적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유압 액이 누출되어 오작동을 일으키던 그의 왼쪽 전자의수가 뜨거운 복사열에 노출되자 서보모터가 과열 경고음을 울리며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다. 금속 손가락이 허공에서 굳어버린 한계 상황.
강준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망가진 기계 팔을 버려두고, 자신의 단단한 온몸을 던져 수민을 향해 돌진했다.
양손이 없는 사내의 거대한 체구가 수민의 몸을 감싸 안으며 가마 앞 진흙바닥 위를 굴렀.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이 아궁이 앞의 뜨거운 재 구덩이를 스치며 벽면으로 처박혔다. 강준은 자신의 잔존하는 양팔과 가슴으로 수민의 머리와 몸을 완전히 덮어씌워 방패가 되었다.
“아으윽!”
강준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궁이에서 역류한 화염의 불똥들이 그의 등과 어깨, 넓은 가슴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옷감이 타들어 가며 살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의 고가 전자의수는 열기에 녹아내려 검은 플라스틱 잔해로 변해가며 완전히 파손되었고, 그의 맨살에는 씻을 수 없는 깊은 화상의 고통이 새겨졌다.
그러나 쓰러진 수민을 품에 안은 강준의 눈빛은 무너지지 않았다.
“수민아…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수민은 자신을 감싸 안은 강준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고통스러운 심장박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강준 씨… 어깨가… 어깨가 다 탔잖아요! 왜 나 때문에 이런…”
“시끄러워. 당신만 무사하면 돼.”
그때, 가마 내부에서 ‘쩍—!’ 하는 불길한 균열음이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궁이의 열기 균형이 깨지고 차가운 외부 공기가 급격히 유입되면서 가마 내벽의 황토 벽돌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디지털 온도계의 수치가 순식간에 900도 아래로 급락했다. 이대로 온도가 떨어지면 일 년 치 피땀이 서린 도자기들과 공동 대작 ‘무언의 고백’은 가마 안에서 산산조각 나거나 칙칙한 회색 폐기물로 변해버릴 터였다.
“온도가 떨어져요! 가마 안의 산소 농도가 급변하고 있어요!”
수민이 가마 창구멍 너머로 요동치는 불꽃을 보며 절규했다. 화염의 끝자락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불길이 죽어가며 가마 내부가 산화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는 위험한 신호였다.
“지금 장작을 교차로 던져야 해요! 1300도까지 끌어올리지 못하면 도자기가 다 터져요!”
강준은 이를 악물었다. 화상을 입은 어깨와 가슴의 통증이 뼛속까지 시려 왔고, 양손 의수는 녹아내려 단 한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체적 결핍에 무릎 꿇지 않았다.
“내가 던질게. 수민아, 불꽃의 색을 보고 타이밍을 알려줘.”
강준은 맨몸으로 가마 앞으로 다시 나섰다. 손이 없는 그는 단단한 허벅지와 무릎으로 붉은 적송 장작을 받쳐 올린 뒤, 잔존하는 양팔 어깨 사이에 장작을 단단히 끼워 넣었다. 그리고 온몸의 반동을 이용해 장작을 아궁이 속으로 정확히 조준해 던져 넣기 시작했다. ‘적송 장작 교차 투입 연소법’이었다.
“우측 창구멍 아래로 더 깊숙이! 지금이에요!”
수민의 날카로운 시각적 온도 지시에 맞춰, 강준의 몸이 화염 속에서 춤을 추듯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장작이 격자 모양으로 교차하여 투입될 때마다, 가마 내부의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열효율이 극대화되었다.
늙은 옹기장 오필성 역시 가마가 숨 쉬는 미세한 바람 소리를 귀로 판독하며, 젖은 진흙을 양손 가득 쥐고 가마 뒤편의 공기 구멍들을 막아 기압을 안정시켰다.
“올라간다! 불꽃이 살아난다!”
오필성의 노호성과 함께, 가마 내부의 온도가 다시 1200도를 돌파하여 마침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1300도 ‘극열(極熱) 제어’의 경지에 도달했다. 아궁이 너머로 백색에 가까운 황금빛 불꽃이 회오리치며 ‘무언의 고백’ 표면에 바른 유약을 완벽하게 녹여내기 시작했다. 흙과 불, 그리고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집착이 하나로 녹아내리는 성스러운 밤이었다.
새벽녘, 가마의 미세한 연소 작업이 끝나고 잔열 냉각 주기에 접어들자 가마터에는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마동철과 김민우가 뒷정리를 위해 자리를 비워준 가마터 한구석. 붉은 잔열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아궁이 앞에서 수민과 강준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수민은 휠체어 바퀴를 굴려 강준의 곁으로 다가갔다. 강준의 셔츠는 불길에 그을려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고, 그의 넓은 가슴과 왼쪽 어깨에는 붉고 검게 덴 참혹한 화상 흉터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고가의 전자의수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녹아내려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왜 그랬어요….”
수민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려 강준의 그을린 뺨 위로 떨어졌다.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 끝이 강준의 상처 입은 어깨 흉터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살을 베는 듯한 통증 속에서도 강준은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그녀의 손길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말했잖아. 저들이 당신의 바퀴를 부수면 내가 날개가 되겠다고. 내 기계 손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당신이 다치지 않았다면 그걸로 된 거야.”
강준의 묵직하고 갈라진 목소리가 수민의 귓가를 울렸다. 그의 처연하고 깊은 눈동자 속에는 오직 안수민이라는 존재만이 가득 차 있었다.
수민은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녀는 상체를 앞으로 숙여 강준의 목덜미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강준 역시 잔존하는 양팔로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으며 그녀의 몸을 자신에게 밀착시켰.
가마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차가운 새벽빛 속에서, 두 사람의 입술이 마침내 뜨겁게 겹쳐졌다. 탄내와 진흙 먼지, 그리고 눈물의 짠맛이 섞인 키스였지만, 그 어떤 예술품보다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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