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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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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교향악단 제1리허설룸의 공기는 차갑고도 무거웠다. 사방을 둘러싼 방음벽과 거대한 전면 거울은 리허설룸 내부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마저 왜곡 없이 반사하고 있었다.


은수현은 지휘대 단상 위에 서서 지휘봉을 가볍게 쥐었다. 주머니 속에는 평창동에서 오성환 교수에게 돌려받은 아버지의 낡은 소리굽쇠가 묵직한 무게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마뼈를 흔들던 그 처절한 진동의 기억이 아직도 관자놀이 부근에 희미한 신경통으로 남아 있었지만, 수현은 흐트러짐 없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단원들은 언제든 그녀의 약점을 잡아 끌어내릴 준비가 되어 있는 하이에나들이었기 때문이다.


수현이 지휘봉을 들어 올리자 리허설룸 내부에 팽팽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녀는 시각적 호흡 동조법을 가동했다. 굳이 소리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제1바이올린 악장 자리에 앉은 한지원의 어깨가 긴장으로 가볍게 솟아올랐고, 목관 파트의 서채원은 삐딱한 자세로 플루트를 쥔 채 수현을 시험하듯 응시하고 있었다.


수현의 손끝이 허공을 갈랐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격정적인 서주가 시작되었다. 현악기 단원들의 활이 일제히 일사불란한 각도로 움직였고, 수현은 그 시각적인 움직임의 궤적과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단상의 미세한 진동만으로 오케스트라의 템포를 칼같이 조율해 나갔. 지원의 바이올린이 웅장한 선율로 합주를 견인하며 리허설은 완벽한 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콰르릉!


리허설룸의 육중한 이중 방음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바닥을 흔드는 강력한 진동이 수현의 맨발을 타고 척추까지 수직으로 주입되었다. 깜짝 놀란 단원들의 활이 멈추었고, 일순간 음악이 중단된 정적이 합주실을 지배했다.


수현은 지휘봉을 멈추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문가에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리허설룸 안으로 무단 침입하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충혈된 눈에 헝클어진 머리, 고가의 명품 정장을 걸쳤으나 삼류 도박꾼의 초라함을 숨기지 못한 사내와 화려한 금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부진 팔근육을 드러낸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삼촌 은태우, 그리고 영등포 사채업자 두목 장도식이었다.


장도식의 부하들이 리허설룸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서며 보면대와 악보대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철제 보면대들이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진동을 만들어냈고, 겁에 질린 단원들이 악기를 품에 안은 채 뒤로 물러섰다.


은태우는 이성을 잃은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지휘대 위의 수현을 가리키며 입술을 거칠게 움직였다. 수현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구화술을 이용해 그의 일그러진 입술 모양을 날카롭게 읽어내렸다.


‘은수현...! 네년이 감히 아버지를 죽여놓고... 유산까지 독차지해? 남동생 병원비 대가로 차도현 이사장한테 몸뚱이를 팔아 이 자리를 낙하산으로 꿰차?’


은태우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노골적이고 더러운 폭언들이 수현의 눈을 통해 뇌리로 선명하게 해독되었다. 리허설룸의 단원들이 일제히 동요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수현은 시야각을 넓혀 단원들의 입술을 읽었다.


‘아버지를 죽였다고?’, ‘이사장 노리개라는 소문이 진짜였어?’, ‘더러운 낙하산년...’


경멸과 의심으로 가득 찬 단원들의 시선이 수현의 온몸에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이 난입은 우연이 아니었다. 도현과의 쇼윈도 계약 관계를 폭로하고 자신을 음악계에서 완전히 매장하기 위해 한정혜가 삼촌 은태우를 사주해 기획한 더러운 공작이 분명했다.


악장 한지원이 참지 못하고 은태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입술을 움직였다.

“당장 나가세요! 여기는 신성한 리허설룸입니다!”


그러나 장도식의 거구의 부하가 지원의 어깨를 거칠게 밀쳐버렸다. 지원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고, 그녀가 쥐고 있던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대리석 바닥에 둔탁한 진동을 내며 나뒹굴었다.


수현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단상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채, 주머니 속 소리굽쇠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분노로 심장이 요동쳤지만, 이 적들 앞에서 약점을 노출해서는 안 되었다.


장도식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지휘대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그는 품 안에서 붉은 인감이 찍힌 서류 한 장을 꺼내 수현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은태우가 수현의 명의를 도용해 작성한 3억 원 상당의 가짜 연대보증 서류였다.


“은수현 씨. 삼촌 빚은 조카가 갚는 게 상도덕이지? 당장 이 서류에 서명하고 지휘자 급여 가압류 신청에 동의해. 아니면 매일 이 리허설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장도식의 비열한 입술 모양이 수현의 눈앞에서 조롱하듯 움직였다. 수현은 스스로 이 폭력배들을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있었다.


수현은 차도현과 체결했던 ‘침묵의 쇼윈도 계약서’ 제12조를 떠올렸다.

[을(은수현)의 예술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위협으로부터 갑(차도현)은 을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수현은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장도식을 똑바로 응시한 채,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포커페이스로 도현의 개인 번호를 단축키로 눌렀. 신호가 가기도 전에 수현은 폰을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지휘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도현이 이 통화를 통해 현장의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도록 유도한 뒤, 장도식을 향해 입술을 천천히 떼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그녀였지만, 발성만큼은 정확하고 차가웠다.


“장도식 씨. 이 계약서의 독소 조항이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드리죠. 지금 내 신변을 보장해야 할 ‘갑’이 이 전화를 듣고 있습니다.”


수현의 도도하고 차가운 태도에 장도식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수현의 포커페이스에 이성을 잃은 장도식은 가짜 보증 서류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거친 손으로 수현의 셔츠 깃을 움켜잡았다.


지휘대 단상 위에서 수현의 가녀린 몸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아래로 끌려 내려왔다.


장도식이 멱살을 잡은 채 다른 한쪽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수현의 뺨을 내려치려는 무자비한 손짓이었다. 단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고, 수현은 감각이 차단된 무음의 공포 속에서도 눈을 감지 않고 장도식의 번뜩이는 폭력적인 눈동자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바로 그 순간, 리허설룸의 두꺼운 방음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리며, 싸늘한 살기를 뿜어내는 차도현이 어둠을 뚫고 등장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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