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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겨눈 지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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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뿜어낸 첫 선율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1리허설룸의 퀴퀴한 침묵을 찢어발기는 황금빛 진동이자, 단상 위에 선 은수현의 발바닥을 타고 올라와 척추를 관통하는 거대한 파동이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수현의 세계에서, 그 진동은 차가운 물속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처럼 선명하게 번져 나갔다. 지원의 용기 있는 동조 연주에 자극받은 현악 파트 단원들이 하나둘 활을 들어 올렸다. 첼로와 비올라가 합류하고, 마침내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현악 세션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현은 방심하지 않았다. 서채원의 플루트 태업을 지휘봉 끝으로 짓밟아 첫 음을 강제로 뱉게 만들었지만, 노조 지부장 박태수를 비롯한 강민우의 추종자들은 여전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수현이 아주 미세한 박자라도 놓치기를, 그래서 ‘소리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낙하산’이라는 치부를 천하에 드러내기를 갈망하며 매서운 눈빛으로 지휘봉 끝을 노려보고 있었다.


‘흔들리지 마. 박자는 내가 지배한다.’


수현은 심폐 자율 제어 호흡법을 가동하며 가슴속의 요동을 억눌렀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절대 템포 유지(Metronome Mind)’ 능력을 활성화했다. 메트로놈의 규칙적인 추가 좌우로 흔들리는 황금빛 궤적이 눈앞에 반투명하게 투사되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의 기준 속도, 정확히 분당 108비트(bpm). 단 0.0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인간 메트로놈의 경지가 수현의 온몸을 지배했다.


수현은 도현이 선물한 카본 하이테크 지휘봉을 가볍게 쥔 손가락 끝에 힘을 뺐다. ‘지휘봉 손끝 미세 진동 전도법’이었다. 탄소 섬유로 특수 제작된 초경량 지휘봉은 공기의 미세한 저항과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는 음압의 파동을 손가락 끝의 감각 세포로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다.


현악기들의 활이 현을 마찰할 때 생기는 미세한 공기의 떨림이 지휘봉을 타고 수현의 손끝으로 흘러들었다. 소리를 귀로 들을 수는 없었지만, 지휘봉을 타고 전해지는 떨림의 강도와 주파수만으로도 수현은 지금 단원들이 어떤 셈여림으로 연주하고 있는지 완벽하게 감각할 수 있었다.


수현의 지휘봉이 허공을 크게 가르며 웅장한 발전부(Development)의 포문을 열었다. 현악 파트의 격정적인 연주가 리허설룸의 바닥을 흔들었다. 수현은 맨발로 단상을 딛고 서서, 목조 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더블베이스와 첼로의 저음역대 공명을 온몸으로 흡수했다.


그러나 곡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수현의 뇌 신경에 가해지는 과부하는 상상을 초월했다.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그녀는 오직 ‘시각’과 ‘촉각’만으로 오케스트라 전체를 모니터링해야 했다.


시야각을 180도로 넓혀 제1바이올린부터 저 멀리 호른 파트까지 동시에 감시하는 안구 초점 분할 추적은 수현의 시각 피질을 극한으로 갉아먹었다. 단원들의 가슴 호흡 주기, 현악기 활의 각도, 관악기 연주자들의 볼 팽창 정도를 동시에 연산하는 동안 뇌 속에서 경고음이 울리는 듯했다.


관자놀이 부근에서 시작된 미세한 통증이 이내 머리 전체를 깨부술 듯한 극심한 편두통으로 번져 나갔다. 눈앞이 가끔씩 핑 돌며 초점이 흐려졌다. 뇌리 속에 완벽하게 구축해 두었던 3차원의 총보(Full Score) 홀로그램이 지직거리며 깨지기 시작했다. 음표들이 서로 겹쳐 보이고, 마디 번호가 흐릿해졌다.


‘아직 안 돼.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게 끝장이야.’


수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목관 파트에서 미세한 균열이 발생했다. 서채원이 이끄는 플루트 세션이 수현의 시야가 흐려진 틈을 타 교묘하게 템포를 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미세한 딜레이였지만, 방치하면 오케스트라 전체의 박자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터였다.


설상가상으로 수현의 눈앞에 일시적인 암전(Blackout) 증상이 찾아왔다. 시야의 가장자리부터 검은 그림자가 조여들며 단원들의 모습이 흐릿한 형체로 변해갔다. 서채원의 손가락 움직임도, 활의 각도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무음의 어둠 속에 홀로 갇힌 듯한 극단적인 공포가 수현의 덜미를 낚아챘다.


그때, 수현의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오직 한 사람, 악장 한지원의 눈동자만이 맹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원은 수현의 지휘봉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녀의 신체적 위기를 직감했다.


수현은 마지막 정신력을 쥐어짜 ‘악장 한지원과의 눈빛 수동 신호 규약’을 발동했다. 그녀는 감겨오려는 왼쪽 눈썹을 의도적으로 강하게 내리눌렀다.


‘지원아, 템포가 밀린다. 강제로 당겨!’


눈빛만으로 전해진 처절한 명령을 지원은 정확히 수신했다. 지원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스트라디바리우스 활을 현 위에 짓이기듯 강하게 그어 내렸다.


깡-!


소름 끼치도록 날카롭고 웅장한 바이올린의 고음이 리허설룸의 공기를 찢었다.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강력한 진동의 충격파에 수현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원은 수현의 절대 템포에 맞춰 활 긋기 속도를 극도로 끌어올리며 현악 파트 전체를 강제로 리드했다. 지원이 앞에서 버티며 박자의 방파제 역할을 해주자, 서채원이 의도적으로 밀려던 엇박의 흐름이 현악 파트의 거대한 음압에 짓눌려 강제로 교정되었다.


수현은 흐려지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입안의 혀끝을 사정없이 깨물었다.


비릿하고 뜨거운 철경의 감각이 입안 가득 번져 나갔다. 극심한 자해적 통증이 뇌 신경을 강제로 때리며 일시적인 아드레날린을 뿜어냈다. 굳어가던 전신의 감각 세포가 번개에 맞은 듯 다시 깨어났고, 검게 물들던 시야가 기적적으로 다시 걷혔다.


수현의 눈앞에 다시 단원들의 호흡 주기가 선명하게 들어왔. 수현은 입가에 고인 핏방울을 삼키며, 도도하고 여유로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녀의 차가운 미소 뒤에 숨겨진 처절한 사투를 단원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강민우의 얼굴이 굳어지는 모습이 수현의 눈에 들어왔.


‘내 음악을 멈출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너희도, 내 망가진 육체도.’


곡은 마침내 1악장의 종막을 향해 치달았다. 모든 악기가 일제히 울부짖는 웅장한 피날레의 투티(Tutti)였다. 수현은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지휘봉의 공기 저항을 온전히 지배하며, 마지막 에너지를 오른팔에 실었다.


그녀는 단상 위에서 온몸의 근육을 극도로 수축시켰다. 지휘봉을 쥔 손끝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침묵의 지배력이 리허설룸 전체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마지막 피날레의 강렬한 다운비트를 내리꽂기 위해 수현이 지휘봉을 높이 치켜들었다.


바로 그 순간, 수현의 왼쪽 가슴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폭발했다. 뇌 신경의 과부하가 심장 신경망까지 기습적으로 타격한 것이다. 숨이 턱 막히며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쳤다.


수현은 이를 악물고 마지막 다운비트를 허공에 강하게 내리꽂았다.


지휘봉 끝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연주가 칼로 자른 듯 완벽한 정적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정적과 동시에, 수현의 시야가 완벽한 암전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수현의 다리가 힘없이 풀리며, 그녀의 가냘픈 신체가 단상 아래 차가운 나무 바닥을 향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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