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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움직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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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소리 없는 세계를 뒤흔든 것은 고막을 때리는 음향이 아니었다. 발바닥이 닿아 있는 리허설룸의 목조 바닥을 타고, 척추를 거쳐 뇌하수체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오는 육중한 진동이었다.


두꺼운 방음용 이중 철문이 굉음을 내며 안쪽으로 우그러지는 궤적이 은수현의 시야에 느리게 박혔다. 사채업자 두목 장도식의 거친 손에 멱살을 잡힌 채 단상 아래로 끌려 내려왔던 수현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그 문가를 응시했다.


비바람의 차가운 습기와 함께 리허설룸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은 차도현이었다.


포마드로 단정하게 넘긴 흑발이 빗물에 젖어 몇 가닥 이마 위로 흘러내려 있었고, 피트가 완벽한 다크 네이비 슈트 위로 서늘한 살기가 아우라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검은 선글라스를 낀 경호팀장 강성태와 거구의 사설 경호원들이 그림자처럼 늘어섰다.


도현의 시선이 장도식의 더러운 손이 수현의 찢어진 셔츠 깃과 하얀 살결에 닿아 있는 것을 포착한 순간, 그의 조각 같은 이목구비가 잔혹하게 일그러졌다.


수현은 도현의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가쁘게 들썩이는 것을 보았다. 그의 가슴속 심장이 박동기의 한계를 시험하듯 빠르고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음이, 공기의 미세한 파동을 통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분노였고, 동시에 통제되지 않는 광기였다.


멱살을 쥐고 있던 장도식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수현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그의 입 모양을 읽었다.


‘차... 차도현 이사장...?’


상황을 파악한 장도식이 겁에 질려 수현의 멱살을 쥔 손을 풀고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도현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닥이자, 그의 뒤에 서 있던 경호팀장 강성태가 맹수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 성태의 움직임에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불필요한 궤적도 없었다.


퍼억-!


소리 없는 타격음이 리허설룸의 거울을 흔들었다. 강성태의 단단한 주먹이 장도식의 턱뼈를 정확히 가격했다. 거구의 사채업자 두목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뒤이어 장도식의 부하들이 칼을 꺼내려 주머니로 손을 뻗었지만, 도현의 사설 경호원들이 삼단봉을 휘두르며 그들의 손목과 무릎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리허설룸은 순식간에 비명과 신음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수현은 귀를 막지 않았다. 어차피 들리지 않는 침묵의 공간이었지만,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뼈가 부러지고 몸이 부딪히는 둔탁한 진동만으로도 현장의 잔혹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이봐! 차 이사장! 내가 이 애 삼촌이야! 친척이라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삼촌 은태우가 도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 기어왔다. 그의 비열한 입술이 비굴하게 움직이는 것을 수현은 차갑게 응시했다.


도현은 은태우가 자신의 구두에 손을 대기도 전에, 더럽다는 듯 발끝으로 그의 가슴을 걷어찼다. 퍽 하는 진동과 함께 은태우가 뒤로 자빠졌다.


도현이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져 있던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은태우가 수현의 명의를 도용해 작성했던 3억 원 상당의 가짜 연대보증 서류였다. 도현은 서류를 차갑게 훑어본 뒤, 주머니에서 은색 듀폰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치익.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고, 종이 끝자락이 순식간에 검은 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불꽃의 붉은 빛이 도현의 얼음처럼 차가운 눈동자에 반사되어 기묘하게 일렁였다. 도현은 타들어 가는 서류를 장도식의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장도식은 뜨거운 재를 뒤집어쓴 채 바닥을 기며 신음했다.


도현이 장도식의 머리맡으로 다가가, 그의 손가락을 구두 굽으로 지그시 짓밟았다. 수현의 눈에 장도식의 입술이 찢어질 듯 벌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들어왔다. 도현의 입술이 천천히, 그리고 아주 명확하게 움직였다. 수현은 그의 입술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내렸다.


“영등포 대진 파이낸스. 한정혜 여사의 돈을 받고 내 물건에 손을 댄 대가는... 내일부터 네놈들의 조직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지워지는 것으로 치르게 될 겁니다. 불법 사채, 공갈 협박, 그리고 공동 상해 교사 혐의로 검찰 특별수사부에 기소장을 접수하도록 조치해 두었으니.”


장도식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도현은 시선을 돌려 은태우를 바라보았다. 은태우가 살려달라며 손을 싹싹 빌었지만, 도현의 얼굴에는 단 한 줌의 자비도 없었다.


“은태우 씨. 사문서 위조 및 무단 주거 침입 혐의로 경찰이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평생 감옥에서 도박 빚을 갚으며 사시길.”


도현의 손짓 한 번에 경호원들이 은태우와 장도식 일당의 덜미를 잡아 리허설룸 밖으로 끌고 나갔다. 들이닥쳤던 불청객들이 순식간에 청소되듯 사라지자, 리허설룸 내부에는 폭풍이 지나간 자리 같은 지독한 정적이 찾아왔다.


수현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악장 한지원을 부축해 일으켰다. 지원은 무서움에 전신을 떨면서도 수현의 찢어진 셔츠 깃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수현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리허설룸의 단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휘대와 도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경멸과 의심 대신, 거대 자본과 폭력의 절대적 지배자 앞에 완전히 굴복한 공포와 경외심만이 서려 있었다. 이제 그 누구도 수현을 단순한 ‘낙하산 노리개’로 함부로 대할 수 없을 터였다. 도현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보여준 무자비함이 온 공간을 얼어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현이 천천히 수현을 향해 걸어왔다. 그의 구두 굽이 바닥을 딛을 때마다 규칙적인 떨림이 수현의 맨발을 타고 올라왔다.


도현은 단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현의 어깨를 넓은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의 손길은 지독하리만치 소유욕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맞닿은 그의 가슴팍을 통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는 그의 부정맥 진동이 수현의 뺨과 쇄골뼈를 타고 적나라하게 전해졌다.


수현은 그의 심장 소리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도현의 저택 지하 깊숙한 곳에서 발견했던, 자신의 전성기 시절 과거 사진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 남자의 집착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자신을 구원한 이 손길이, 결국 자신을 가둔 가장 잔혹한 올가미임을 수현은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했다.


도현은 단원들을 향해 서늘한 시선을 던진 뒤, 수현의 어깨를 이끌고 리허설룸 뒤편의 개인 대기실로 걸어 들어갔다.


육중한 방음문이 닫히자, 세상의 모든 소음과 공기가 일시에 차단된 완전한 무음의 밀실이 완성되었다.


도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수현을 응시하더니, 손에 끼고 있던 가죽 장갑을 천천히 벗어 던졌다. 장도식의 부하를 제압할 때 묻은 듯한 붉은 핏자국이 가죽 표면에 검붉게 번져 있었다. 도현은 그 피 묻은 가죽 장갑을 수현의 맨발 바로 앞 바닥에 툭, 던져버렸다.


가죽이 바닥에 떨어지는 미세한 진동이 수현의 발끝을 스쳤다.


도현이 한 걸음 다가와 수현의 가녀린 턱을 차가운 손가락 끝으로 꽉 움켜쥐고 위로 치켜 올렸다. 도현의 얼굴이 수현의 코앞까지 밀착되었다. 그의 차가운 숨결의 진동이 수현의 입술 피부에 닿았다. 도현의 입술이 잔인하고도 느리게 움직였다. 수현은 그의 눈동자에 서린 광기 어린 집착을 마주하며 그의 입술 모양을 똑똑히 읽어내렸다.


“말했을 텐데. 넌 내 허락 없이 다쳐서도 안 된다고.”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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