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대장장이와 H빔
화강암 벽면의 좁은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붉은 랜턴 불빛은 마치 굶주린 야수의 눈빛 같았다.
쿵. 쿵. 쿵.
월터 조장과 경비병들의 무거운 장화 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울렸다. 화강암의 미세한 틈새를 타고 전해지는 진동은 에단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하게 흘러내렸다. 15도 기울어진 요새의 구조 탓에, 아주 작은 소리조차 벽면을 타고 비정상적으로 증폭되어 들려왔다.
루시가 에단의 작업복 소매를 쥔 채 숨을 흡 가로막았다. 아이의 작은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에단은 어깨의 마력 채찍 상처가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아내며, 조심스럽게 루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피가 배어 나오는 손바닥이 아려왔지만 지금은 단 일 밀리미터의 움직임도 허용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에단은 품 속에서 ‘바르도의 은제 제도 자’를 가만히 쥐었다.
‘빛의 굴절 각도는 대략 45도. 랜턴의 광원은 화강암 돌출부의 모서리에 부딪혀 산란하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서 공학적 직관이 차갑게 가동되었다. 랜턴의 빛이 이 좁은 틈새 안쪽을 완전히 비추기 위해서는 경비병이 균열의 정면에서 랜턴을 수평으로 들이밀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월터의 위치는 균열의 중심축에서 좌측으로 약 1.5미터 벗어나 있었다. 돌출된 화강암 모서리가 완벽한 물리적 차폐막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어이, 월터 조장! 거긴 그냥 노후화로 생긴 단순 균열이야. 쥐새끼 한 마리 지나갈 틈도 없다고!”
“쳇, 기분 나쁜 바람이 불어 나와서 말이지. 8번 보일러실 놈들이 쓸데없는 짓을 꾸미는 게 아닌가 싶었다.”
월터의 투덜거림과 함께 랜턴 불빛이 서서히 멀어졌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서늘한 소리가 통로 저편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에단은 참았던 숨을 길게 내뿜었다.
“하아…….”
루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에단은 어두운 제도실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참나무 제도판을 내려다보았다. 바르도의 일지에 적힌 ‘5년 내 추락’이라는 시한부 수식과 요새의 진짜 기원인 ‘방주’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머리 위의 화강암 천장보를 임시방편으로 고정해 두었지만, 요새 전체가 15도 기울어져 발생하는 편심 하중은 매 순간 하부의 철골 지지대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근본적인 하중 전달 경로(Load Path)를 바꾸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제8구역 전체가 붕괴할 터였다.
“이 구조를 지탱하려면…… 규격화된 강철 지지대가 필요해.”
에단은 은제 자로 도면 위의 수치를 정밀하게 측정하며 중얼거렸다. 그가 머릿속으로 설계한 부재는 현대 토목공학의 정수인 ‘H형강(H-Beam)’이었다. 하지만 가문도 마력도 없는 설계 노예인 그에게 고강도 강철을 마음대로 주조할 권한 따위는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최하층 슬래그 구역에서 고철을 녹여 연장을 만드는 외골수 천재 대장장이, 칼(Karl)을 포섭하는 것.
***
슬래그 구역의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구석에 위치한 ‘칼의 대장간’은 요새의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뜨겁고 파괴적인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화르륵! 콰아아아!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800도가 넘는 열기가 공기를 벌갛게 달구고 있었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둔탁한 망치 소리와 쇳물 타는 냄새가 고막과 코를 마비시킬 듯했다. 공중에 날리는 미세한 쇳가루와 그을음 때문에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칼칼했다.
“비켜! 쇳물 들어간다!”
가죽 앞치마를 두른 거구의 철공들이 벌갛게 달아오른 철편을 나르고 있었다. 그 거친 사내들 사이에서, 산만 한 덩치에 숱이 많은 검은 수염을 기른 사내가 거대한 제련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가 바로 천재 대장장이 칼이었다.
쿵! 쿵!
칼이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붉은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의 정교한 타격은 금속의 결을 따라 정확하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에단은 그의 망치질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대단한 힘과 직관이군. 금속의 밀도를 감각적으로 맞추고 있어.’
에단이 대장간 안으로 발을 들이밀자, 주변의 철공들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가로막았다. 목에 채워진 구리 칼라와 찢어진 갈색 작업복은 그가 최하급 ‘1급 기계 노예’임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예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당장 꺼지지 못해!”
철공들의 험악한 외침에 칼이 망치질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땀과 그을음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에 오만한 빛이 스쳤다.
“무슨 일이냐, 1급 노예? 대장간의 열기가 네놈의 머리라도 녹여버린 모양이지?”
칼은 에단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노예 주제에 감히 신성한 대장간에 발을 들인 것이 불쾌한 모양이었다.
에단은 주위의 위압적인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차분하게 목소리를 낮추었다.
“당신이 칼이군. 제8구역의 천장 붕괴를 막고 요새의 하중을 지탱할 새로운 규격 철골을 만들기 위해 왔소.”
“뭐라? 규격 철골?”
칼이 황당하다는 듯 껄껄 웃었다.
“노예 주제에 쇠를 논하겠다고? 하하하! 야 이 멍청한 놈아, 요새의 보수 자재는 상층부의 기술 관료들이 설계하고 내려보내는 마법 석판과 철골이 전부다. 우리 같은 하층민은 그저 시키는 대로 두드릴 뿐이야.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그들이 내려보내는 자재는 쓰레기요.”
에단의 단호한 한마디에 대장간의 망치 소리가 일순간 뚝 끊겼다. 칼의 눈빛이 무섭게 가라앉았다.
“방금 뭐라고 했냐?”
“그들이 보내는 단순 사각형 단면의 철골은 비틀림과 횡하중에 극도로 취약하오. 요새가 15도 기운 상태에서 발생하는 편심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꺾여 나갈 자재들이지. 내 말이 틀렸소? 당신도 최근 주조한 철골들이 하중을 받자마자 휘어지는 것을 보았을 텐데.”
칼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실제로 최근 상층부의 지시에 따라 제작한 철골들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어지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칼은 대장장이로서의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건 마법 결계의 조율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쇠의 강도가 부족한 게 아니야!”
“틀렸소.”
에단은 칼의 호통을 가볍게 자르며, 바닥에 뒹굴고 있던 숯더미에서 검은 탄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대장간 바닥의 흙먼지 위에 거침없이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슥. 스스슥.
에단의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정교한 도면이 바닥에 그려졌다. 그것은 가운데가 얇고 위아래가 넓은 완벽한 비율의 ‘H’자 모양 단면이었다.
“이게 뭐지? 가운데를 이렇게 파내면 강도가 더 떨어질 게 뻔하지 않으냐! 쇠는 무조건 두껍고 꽉 차 있어야 튼튼한 법이다!”
칼이 코방귀를 뀌며 도면을 비웃었다. 전형적인 경험주의 장인의 편견이었다.
에단은 은제 자를 들어 도면의 중심축을 가리키며 수식을 써 내려갔다.
“단면 이차 모멘트(Moment of Inertia, $I$)의 공식이오.”
$$\text{I} = \frac{bĥ3}{12} - \frac{b_1h_1^3}{12}$$
에단이 모래바닥에 써 내려간 기하학적 수식과 역학 기호들을 보며 칼은 미간을 찌푸렸다. 글자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수식이 담고 있는 차가운 논리는 장인의 직관과는 전혀 다른 영역의 언어였다.
“구조 부재가 휨 작용(Bending)을 받을 때, 부재의 중심축 부근은 힘을 거의 받지 않는 중립축(Neutral Axis)이 되오. 실제로 가장 큰 인장력과 압축력을 받는 곳은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상하단 외곽이지. 즉, 쓸모없이 무게만 차지하는 중심부의 쇠를 파내고, 그 질량을 상하단의 플랜지(Flange)로 집중시킨 것이 바로 이 H형 단면이오.”
에단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이렇게 설계하면 동일한 단면적의 사각형 철골에 비해 휨 저항 강도는 최대 4배 이상 증가하고, 자체 무게는 40% 이상 가벼워지오.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은 요새 전체의 하중을 줄여 추락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뜻이지. 쇠를 무작정 두껍게 만드는 것은 요새를 더 빨리 가라앉히는 자살 행위요.”
칼은 멍하니 바닥의 도면과 수식을 번갈아 보았다. 평생 용광로 앞에서 쇠를 만지며 체득한 금속의 성질이, 에단이 말하는 기하학적 수식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쇠가 휘어질 때 어느 부위가 가장 먼저 찢어지고 찌그러지는지, 그의 손끝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쇠의 형태만으로 그런 강도 차이가 난다고?”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실험해 봅시다.”
에단은 대장간 구석에 버려져 있던 얇고 길쭉한 ‘저급 연성 강철 빔’ 조각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이 철판을 그냥 눕혀놓고 위에서 힘을 가하면 어떻게 되겠소?”
에단이 철판을 평평하게 놓자, 아주 가벼운 힘에도 철판은 툭 휘어졌다.
“하지만 이것을 접어서 ‘H’자 형태로 만든 후 세워두면 어떻게 될 것 같소? 칼, 당신의 그 제련 망치로 이 얇은 H 철판의 상단을 힘껏 내리쳐 보시오.”
칼은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에단이 급조한 작은 H형 철편을 단단한 모루 위에 올렸다. 그리고 어깨 근육을 부풀리며 거대한 망치를 힘껏 내리쳤다.
깡ーーー!
맑은 금속음이 대장간을 울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얇은 철판으로 접어 만든 아주 가벼운 H형 철편은, 칼의 가공할 망치질에도 찌그러지지 않고 모루 위에서 꼿꼿하게 버텨냈다. 힘의 흐름이 상하단 플랜지를 타고 고르게 분산되어 바닥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칼은 망치를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철편을 집어 들었다. 그의 날카로운 안목은 이 단순한 형태의 변화가 지닌 가공할 위력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것은 대장간의 역사를, 아니 이 요새의 보수 공학을 뿌리째 뒤흔들 혁명이었다.
“네놈…… 대체 정체가 뭐냐? 어떻게 이런 기하학적 계산을 노예 신분으로 해낸 거지?”
칼의 오만했던 눈빛은 이제 경악과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에단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은제 자를 품에 넣었다.
“나는 그저 요새의 붕괴를 막고 살아남으려는 설계자일 뿐이오. 칼, 나와 손을 잡고 이 H빔을 대량 생산합시다. 최하층의 뼈대를 우리가 직접 바꾸는 거요.”
칼은 침을 크게 삼키며 바닥의 H형 도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심장이 대장장이로서의 순수한 열망으로 뜨겁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장인의 자존심을 꺾은 것은 무력이 아닌 완벽한 공학적 진실이었다.
“좋다……! 이 수식대로라면 요새 전체를 지탱할 강철 빔을 만들 수 있어. 내 기술과 대장간을 네놈에게 빌려주마!”
칼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며 에단에게 굳은살 박인 거친 손을 내밀었다. 에단은 기꺼이 그 손을 맞잡았다. 최하층을 살릴 가장 든든한 기술 파트너십이 체결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업의 기쁨도 잠시, 칼이 어두운 표정으로 용광로를 돌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에단. 이 고강도 규격 H빔을 제대로 제련하려면 일반 석탄의 화력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해. 금속의 결정 구조를 조밀하게 다지려면 최소 1200도 이상의 초고온을 유지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대장간에는 그만한 연료가 없다.”
“연료가 부족하다니? 요새의 동력을 돌리는 석탄들이 매일 수송되지 않소?”
에단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칼이 이빨을 갈며 분노를 터뜨렸다.
“그 부패한 보급 감독관 토마스 놈이 상층부 귀족들과 짜고 고품질의 ‘정제 무연탄’을 전부 빼돌려 암시장에 팔아치우고 있어! 우리에게 배급되는 건 불순물이 가득해 열량도 낮은 저급 갈탄뿐이다. 이 쓰레기 연료로는 용광로의 온도를 높일 수가 없어!”
정제 무연탄의 부재.
H빔 생산이라는 거대한 계획이 시작되기도 전에 현실적인 자원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에단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의 뇌세포가 다시 한번 빠르게 회전하며 요새 하부의 자원 유통 경로와 인맥들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토마스의 감시망을 우회해 무연탄을 조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에단의 머릿속에 한 사내의 이름이 떠올랐다. 연료 수송대의 조장이자, 최하층의 은밀한 밀수 경로를 훤히 꿰뚫고 있는 석탄 보급원 오웬(Owen)이었다.
“방법이 있소, 칼. 용광로의 불을 꺼뜨리지 말고 대기하고 있으시오.”
에단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대장간의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슬래그 구역의 석탄 하역장 저편, 매연과 먼지 속에서 석탄 포대를 정리하고 있는 오웬의 왜소한 실루엣이 에단의 시야에 들어왔다. 에단은 품 속의 은제 자를 꽉 쥐며, 어둠을 틈타 오웬의 배후로 은밀하게 다가갔다.
감시관 세바스찬의 순찰조가 이 구역을 돌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30분. 에단은 오웬의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낮고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웬 조장, 당신이 감시관들의 눈을 피해 고순도 무연탄을 밀수할 수 있는 비밀 경로를 알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소만.”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