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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의 숨겨진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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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연과 석탄 가루가 밤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린 최하층 슬래그 구역의 통로는 평소보다 훨씬 더 무겁고 차가웠다.


어깨에 새겨진 마력 채찍의 상흔이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길에 데인 것처럼 화끈거렸다. 월터가 휘두른 채찍에 실려 있던 미세한 마력 전류가 상처 언저리에서 끈질기게 맴돌며 근육을 뒤틀어대고 있었다. 에단은 이를 악물고 갈색 작업복 자락을 여몄다. 옷감이 상처에 쓸릴 때마다 가느다란 신음이 비어져 나오려 했으나, 그는 입술을 깨물어 삼켰다.


지금 그를 괴롭히는 것은 신체적인 고통만이 아니었다.


“어이, 에단. 네놈이 감시관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우리 배급까지 반 토막이 났잖아!”

“그 잘난 주둥이로 보고서니 뭐니 나불대더니 꼴좋다. 당장 내일부터 애들한테 뭘 먹이라는 거야?”


어둠 속에서 노역을 마치고 돌아가던 화부들이 흘리는 원망 섞인 시선이 에단의 등에 꽂혔다. 세바스찬 감시관이 내린 배급 식량 절반 감소 처분은 제8구역 전체에 즉각적인 기근의 공포를 불러왔다. 톱밥과 전분이 섞인 거친 수수빵 한 조각마저 귀해진 이곳에서, 노예들의 생존을 위협한 주동자로 몰리는 것은 칼날 위에 서는 것과 다름없었다.


“다들 닥쳐! 에단이 아니었으면 느들 오늘 아침에 천장에 깔려 죽었어!”


거구의 화부 빌리가 석탄 삽을 바닥에 쾅 내리치며 으르렁거렸다. 빌리의 험악한 기세에 원망을 쏟아내던 노예들이 슬금슬금 흩어졌다. 한스 역시 잉크 묻은 손을 꼭 쥐며 에단의 곁을 지켰다.


“에단 형, 괜찮아? 진료소에 가서 레오나 선생님한테 약이라도……”

“괜찮다, 한스. 그것보다 다들 굶주림 때문에 예민해져 있어. 이대로는 보수 공사는커녕 며칠 버티기도 힘들어질 거다. 세바스찬 놈이 노리는 게 바로 이거겠지.”


에단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세바스찬은 요새의 붕괴 위험을 은폐하기 위해 하층민들의 물리적 결속을 굶주림으로 와해시키려 하고 있었다. 합법적인 행정 계통이 완전히 차단된 지금, 이 기울어가는 거대 도시를 살릴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지배층의 눈이 미치지 않는 지하 깊은 곳에서 독자적인 보강 계획을 세우는 것.


그를 위해서는 선대 설계 노예였던 바르도의 흔적이 필요했다. 요새의 숨겨진 배선과 진짜 설계도를 손에 넣지 못한다면, 다음 붕괴가 시작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보일러실 모퉁이의 좁은 배관 틈새에서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오빠!”


다람쥐처럼 날렵하게 몸을 숨기고 있던 고아 소녀 루시와 마사 아주머니의 아들 토비였다. 루시는 낡은 가죽 조끼 주머니에서 꼬질꼬질한 손수건을 꺼내 에단의 찢어진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경비병들이 사방에 깔렸어. 세바스찬이 보일러실 주변 순찰을 두 배로 늘렸대. 하지만 내가 아무도 모르는 통로를 찾았어.”


루시가 큰 눈망울을 반짝이며 에단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8번 보일러실 뒤쪽 벽 있지? 거긴 화강암 지지대가 꽉 막고 있어서 아무도 안 가잖아. 그런데 그 화강암 벽 틈새에서 엄청 깨끗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오고 있어. 아래쪽 배수관이랑 연결된 바람이 아니야. 요새 아주 깊은 곳에서 나오는 바람이야.”


에단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차가운 바람이라고?’


보일러의 열기로 가득한 최하층에서 인위적인 냉각이나 정화 장치 없이 깨끗하고 차가운 공기가 흐른다는 것은, 그 배후에 외부 기류와 직접 연결된 거대한 중공(Cavity)이나 밀폐된 기계실이 존재한다는 명백한 물리적 증거였다.


“안내해라, 루시. 토비는 복도 끝에서 경비병들의 랜턴 불빛이 보이는지 감시하고.”


에단은 품 속에서 숀 영감이 남겨준 녹슨 나침반을 꺼내 쥐었다. 바르도의 숨겨진 유산을 찾아 나설 시간이었다.


***


8번 보일러실의 배후는 그야말로 버려진 세계였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온의 증기와 기름때가 화강암 벽면에 눌어붙어 기괴한 검은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요새가 15도 기운 탓에 바닥은 미끄러웠고, 천장에서는 뜨거운 녹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깨의 상처가 고열의 열기에 노출되자 욱신거리는 통증이 배로 치솟았다.


“여기야.”


루시가 가리킨 곳은 두 거대한 보일러 본체 사이에 끼어 있는 좁은 화강암 벽의 균열이었다. 어른 한 명이 간신히 어깨를 들이밀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틈새였다.


에단은 품 속의 녹슨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침이 사방으로 미친 듯이 회전하더니, 이내 균열 안쪽의 어둠을 똑바로 가리키며 고정되었다. 나침반 내부의 중력 소자가 미세한 중력장의 왜곡 방향, 즉 요새의 진짜 무게 중심이 위치한 깊은 공동을 감지한 것이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 내 몸은 작으니까 쉬워.”


루시가 고양이처럼 유연하게 몸을 굽히더니 화강암 틈새로 쏙 빨려 들어갔다. 에단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왜소한 몸을 틈새로 밀어 넣었다.


“윽……!”


비좁은 돌벽이 어깨의 채찍 상처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찢어진 가죽 작업복 사이로 붉은 피가 다시 배어 나왔지만, 에단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 뼈마디가 비틀리는 고통 끝에, 몸이 앞으로 툭 쓰러지며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나 그 먼지 속에는 슬래그 구역 특유의 매연 냄새가 없었다. 지독할 정도로 건조하고 정적인 공기.


에단이 고개를 들자, 루시가 미리 켜둔 초소형 구리 손전등의 불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오빠, 여기 봐. 엄청나지?”


그곳은 자연적인 동굴이 아니었다.


사방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화강암 석벽으로 둘러싸인 완벽한 직사각형의 밀실. 벽면에는 수많은 구리 파이프와 황동 기어들이 복잡한 격자망을 이루며 고정되어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참나무 제도가 놓여 있었다.


“바르도의 비밀 제도실…….”


에단은 경외감에 젖어 혼잣말을 내뱉었다. 선대 설계 노예 바르도가 생전에 감시관들의 채찍과 경비대의 삼엄한 눈초리를 피해 홀로 깎아 만든 공학의 성역이었다.


제도판 위에는 수십 년 동안 쌓인 두꺼운 기름때와 gray dust가 이불처럼 덮여 있었다. 에단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끝으로 먼지를 쓸어내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누런 양피지 도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아스테리아 하부 동력 분배 및 양력 제어 계통도]


고대 에테리아어로 쓰인 정밀한 기하학적 룬 문자들이 도면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현대의 배선도와 완벽히 일치하는 아날로그식 회로 흐름선. 요새의 동력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흐름과 비상 밸브들의 위치가 소수점 단위의 수치와 함께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에단은 떨리는 손으로 제도판 옆에 놓인 가죽 표지의 일지첩을 펼쳤다. 바르도가 남긴 마지막 일지였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로 갈겨쓴 글씨들이 에단의 눈동자에 박혔다.


[……요새의 기울어짐은 단순한 노후화가 아니다. 상층부의 귀족들이 자신들의 성역에 에테르 가든과 대형 분수대를 무분별하게 증축하면서, 요새의 수직 하중 전달 경로가 완전히 붕괴했다. 편심 하중이 최하층의 8번 구획 기둥으로 과집중되고 있다. 측정 결과, 아스테리아는 매년 정확히 1.2도씩 지상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다. 이 비틀림 응력을 상쇄할 구조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요새는 앞으로 5년 내에 지상과 충돌하여 완전히 산산조각 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추락이 아니다. 대지와의 충돌은 곧 하층민 모두의 영구적인 소멸을 의미한다…….]


바르도가 남긴 마지막 경고였다.


에단의 등줄기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5년. 이 거대한 하늘 도시가 지상과 충돌하기까지 남은 시한부의 시간이었다. 요새의 추락은 먼 미래의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정밀한 물리학적 수치로 계산된 명확한 시한폭탄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일지의 첫 페이지 구석에는 아주 희미한 잉크로 기묘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방주는 본래 하늘에 떠 있기 위해 만들어진 성역이 아니다. 대재앙의 날, 지상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설계된……]


글씨는 거기서 얼룩져 끊겨 있었다. 방주. 아스테리아 요새의 진짜 기원에 대한 거대한 복선이 에단의 머릿속을 강하게 때렸다. 귀족들이 주장하는 신성한 천공의 낙원이라는 역사는 완전히 조작된 위선일 가능성이 높았다.


에단은 숨을 죽인 채 제도판 위에 놓인 은빛 물체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은도금 처리가 된, 묵직하고 정교한 제도용 자였다. 자의 표면에는 일반적인 길이 눈금 외에도 미세한 마력의 흐름과 구조적 왜곡을 감지할 수 있는 특수한 룬 눈금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바르도의 은제 제도 자.’


에단은 침을 삼키며 은제 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끝이 차가운 은빛 금속 표면에 닿는 순간.


웅웅웅!


귓가에서 거대한 기계적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에단의 시야가 폭발하듯 번쩍이며 뒤틀렸다. 그의 영혼에 각성해 있던 ‘공학적 직관’이 은제 자의 마력 감지 기능과 공명하며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킨 것이다.


스우우우.


비밀 제도실의 사방 석벽이 투명하게 변하더니, 요새 최하층 제8구역 전체의 구조적 뼈대가 3차원 홀로그램처럼 에단의 뇌리에 다이렉트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붉은색 압축력의 선들과 푸른색 인장력의 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요새의 거대한 하중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8번 보일러실의 균열 부위에서 응력이 어떻게 요동치고 있는지, 어느 볼트가 전단력을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지기 일보 직전인지가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한 수치와 기하학적 벡터로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이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철저한 물리학과 구조역학의 법칙이 가시화된 공학의 극치였다.


“이 자만 있으면…… 요새의 모든 균열을 정확히 짚어내고 보강할 수 있어.”


에단이 전율 어린 목소리로 자를 움켜쥐며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쿵. 쿵. 쿵.


비밀 제도실의 화강암 벽 너머, 어두운 복도에서 묵직한 가죽 장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마력 전류가 흐르는 경비병들의 철제 갑옷이 부딪히는 서늘한 금속음이 벽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봐, 분명히 이 근처에서 불빛이 번쩍이는 걸 봤다니까?”

“8번 보일러실 뒤쪽은 폐쇄 구역이잖아. 쥐새끼 같은 노예 놈들이 숨어든 거 아냐? 샅샅이 수색해!”


월터의 가학적인 목소리가 틈새를 타고 흘러들었다. 붉고 노란 랜턴 불빛이 화강암 균열 틈새로 길게 새어 들어오며 어두운 제도실 벽면을 훑기 시작했다.


루시가 겁에 질려 에단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극도의 긴장감이 밀실 안을 얼려버렸다. 복도에 멈춰 선 경비병들의 그림자가 틈새로 길게 늘어지며, 에단 일행의 목을 죄어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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