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밸브의 임계점
콰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폭음이 제8구역의 어둠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틱, 틱" 소리를 내며 흔들리던 제3 보일러의 비상 감압 장치 제어핀이 완전히 파열되는 순간, 인장력을 견디지 못한 강철 핀의 파편이 고압 증기에 밀려 총탄처럼 배관 벽면을 때렸다. 그 직후, 주철로 짜인 거대 배관의 이음새가 쩍 갈라졌다.
"우, 우악! 피해라!"
보일러 감시인 잭의 처절한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배관 틈새에서 붉고 걸쭉한 액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800도에 달하는 초고열의 마력 용융액(Slag).
그것은 단순한 쇳물이 아니었다. 고농도의 마력과 끓어오르는 중금속이 결합된, 아스테리아 요새의 가장 추악하고 가공할 폐열의 결정체였다. 용융액이 바닥에 닿는 순간, 최하층 슬래그 구역의 철판 바닥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며 무시무시한 백색 유독가스가 피어올랐다. 닿는 모든 것을 분자 단위로 녹여버릴 듯한 기세였다.
치이이이이익!
"모두 대피하십시오! 기어 스퀘어 방향으로 달려요!" 에단이 소리쳤다. 그의 목에 채워진 1급 기계 노예의 구리 칼라가 뜨거운 열기에 달아올라 목덜미를 지져댔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의 왼팔은 외벽 데드 앵커에서 얻은 인대 부상으로 인해 가죽 끈으로 가슴팍에 단단히 묶여 고정된 상태였다. 오직 오른손 하나만으로 수동식 밸브 차단 기어 렌치를 꽉 쥐고 버텨야 했다.
쿠구구구구묵!
동시에 요새 전체가 거대한 비명을 지르며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발밑의 강철 바닥이 걷잡을 수 없이 기울어졌다.
15도에서 18도, 그리고 순식간에 22도.
"으아아악!"
보일러실 구석에 쌓여 있던 무거운 석탄 수레들과 예비 철골 자재들이 22도의 급격한 경사를 이기지 못하고 에단 일행이 서 있는 아래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수십 톤의 금속 잔해들이 경사면을 타고 구르는 광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산사태와 같았다. 쇠사슬이 끊어지고 기어들이 맞물려 부서지는 금속성 파열음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에단 형님! 위험합니다!"
거구의 석탄 화부 빌리가 온몸에 석탄 그을음을 묻힌 채 에단의 앞을 막아섰다. 빌리는 숀 영감에게 물려받은 거대한 무쇠 가마솥 뚜껑을 급조 방패 삼아 양손으로 꽉 쥐었다.
콰아앙!
미끄러져 내려오던 거대 증기 파이프 파편이 빌리의 방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빌리의 우람한 어깨 근육이 터질 듯 팽창했고, 그의 단단한 가죽 방호 장비가 마찰열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빌리는 이빨을 악물고 버텼지만, 덮쳐오는 열기와 파편의 충격으로 인해 그의 등에 가벼운 화상과 함께 방호복 일부가 찢겨 나갔다.
"빌리! 버텨야 하오!"
에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지금 멈추면 모두가 용융액에 잠겨 몰살당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공학적 직관'을 발동했다.
안대를 끼지 않은 그의 오른쪽 눈 너머로 힘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3번 보일러실 전체를 관통하는 하중의 전달 경로가 적색의 압축력과 청색의 인장력 선으로 뇌리에 꽂혔다. 요새가 22도까지 기울어지면서 고대 부유석의 양력 축이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만약 여기서 25도를 넘어서면, 요새를 허공에 묶어두던 중력 평형이 완전히 무너져 영구 추락 궤도로 진입하게 된다. 남은 시간은 단 몇 분뿐이었다.
"오티스! 비상 차단 밸브의 위치를 인도하시오!"
수석 밸브 제어공 오티스는 이미 유독가스로 인해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그는 땀과 윤활유에 절어 있는 목의 수건을 고쳐 매며 소리쳤.
"저기입니다! 3번 보일러 하부 용융 구역의 중심부요! 하지만 열기가 너무 강해서 수동 핸들이 이미 벌갛게 달아올랐습니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어요!"
에단은 오티스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800도의 열기가 아지랑이를 만들어내며 배관 주변의 공기를 왜곡시키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이라면 마법 결계를 펼쳐 열기를 막았겠지만, 마력이 없는 노예인 에단에게는 오직 물리적인 계산과 도구뿐이었다.
"빌리가 진입로를 확보해 주었으니, 내가 직접 들어갑니다. 오티스, 당신은 여기서 증기 압력 게이지를 감시하며 감압 파이프의 역류 주기를 내게 신호로 알려주시오!"
"알겠습니다, 형님! 제발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에단은 한쪽 팔이 묶인 기형적인 자세로, 오른손에 수동식 밸브 차단 기어 렌치를 쥐고 붉게 끓어오르는 용융 구역의 중심부로 몸을 던졌다. 발밑의 철판 비계가 열기로 인해 흐물거렸고, 부츠 밑창이 녹아내리는 지독한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열팽창 계수를 고려해야 해.'
에단은 머릿속으로 기계식 응력 계산 슬라이드 룰을 돌렸다. 800도의 초고열 속에서 밸브의 나사산은 이미 팽창할 대로 팽창해 고착되어 있을 터였다. 이를 억지로 돌리려면 보통 성인 남성 수십 명의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에단이 직접 설계하고 칼이 주조한 이 기어 렌치는 지렛대의 원리를 다단계 유성 기어로 연결하여, 가해지는 힘을 64배로 증폭시킬 수 있도록 정밀 제작되어 있었다.
화르르륵!
배관 틈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 용융액의 불꽃이 에단의 뺨을 스쳤다. 세바스찬에게 맞았던 뺨의 상처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에단은 이빨을 악물고 밸브 구동축 앞으로 다가갔다. 벌갛게 달아오른 밸브 휠이 마치 악마의 눈동자처럼 빛나고 있었다.
"오티스! 지금입니까?"
"지금입니다! 압력 역류 주기 3초 전! 돌리십시오!"
에단은 오른손으로 무거운 기어 렌치의 헤드를 밸브 구동축에 조준했다. 왼팔을 쓸 수 없어 몸의 중심을 잡기가 극도로 어려웠지만, 그는 온 체중을 실어 렌치를 결속했다.
딸칵!
기어 렌치의 역방향 나사산이 벌갛게 달아오른 밸브 축과 맞물렸다. 에단은 숨을 들이쉬며 렌치의 다단계 회전 레버에 손을 얹었다. 그의 오른손 손등에 새겨진 마력 부식 흉터가 열기와 마력 파동에 반응하여 푸른빛을 내며 욱신거렸다.
'돌아가라…… 제발!'
에단이 오른손에 힘을 꽉 쥐고 레버를 잡아당겼다. 1대 64의 기어비가 작동하며 렌치 내부의 유성 기어들이 맞물려 돌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익!
벌갛게 고착되어 있던 밸브 축이 엄청난 금속성 마찰음을 내며 아주 미세하게, 단 몇 밀리미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밸브가 잠기며 쏟아지던 용융액의 유량이 아주 조금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공학의 법칙은 자비가 없었다.
800도의 초고열은 밸브 축을 타고 에단이 쥐고 있는 기어 렌치의 헤드로 고스란히 전도되고 있었다. 렌치를 구성하는 강철 합금 역시 열을 받으면 팽창한다. 특히 기어 렌치 내부의 정밀한 유성 기어들은 아주 미세한 열팽창만으로도 기어 사이의 간극(Backlash)이 사라져 물리적으로 완전히 고착될 수 있었다.
쩍!
기어 렌치의 내부 깊은 곳에서 불길하고 날카로운 균열음이 울려 퍼졌다.
에단의 공학적 직관이 렌치 내부의 소형 기어 이빨들이 초고열에 팽창하여 서로를 짓이기고 있는 핏빛 응력 집중선을 생생하게 비추었다. 레버가 굳어버려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아, 안 돼……!"
오티스의 절망적인 비명이 증기 속에서 울렸다.
에단이 기어 렌치를 밸브에 결속하고 힘을 주는 순간, 렌치의 기어 이빨이 초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쩍 갈라지는 소리를 낸다. 밸브는 아직 반도 잠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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