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력을 제어하는 구멍
콰아아아앙!
부서진 화강암 파편이 무쇠 바닥을 강타하며 사방으로 붉은 스파크와 비명 같은 돌가루를 뿜어냈다. 지독한 매연과 석탄 먼지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콜록! 콜록! 오빠……!”
자욱한 먼지 구멍 너머에서 쇳소리가 섞인 가냘픈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갈비뼈 부근이 욱신거렸지만 머릿속은 오직 한 사람의 안위만을 외치고 있었다.
“릴리!”
에단은 먼지 구름을 헤치며 기어갔다. 마른 체구에 잿빛 머리칼을 양 갈래로 묶은 소녀, 그의 유일한 혈육인 릴리가 낡은 먼지 마스크를 목에 걸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이웃집 마사 아주머니가 릴리를 품에 안고 공포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에단! 천장이, 천장이 무너진다!”
마사 아주머니의 외침과 동시에, 머리 위에서 기분 나쁜 파열음이 다시 한번 고막을 찔렀다.
쿠구구구구!
에단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고유 능력, ‘공학적 직관’이 어둠 속에서 붉고 푸른 빛의 선들로 세상을 재구성했다.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최악이었다.
15도 기울어진 요새의 자중이 우측 하단으로 쏠리며 발생한 편심 하중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였다. 방금 전 삽 자루를 이용해 하중 경로를 강제로 비틀어 연쇄 좌굴은 늦췄지만, 그 반동으로 인해 화강암 대들보 중앙에 발생한 미세 균열이 이제는 스스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직관의 시야 속에서, 균열의 가장 맨 끝부분인 ‘균열 선단(Crack Tip)’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적색 선으로 번뜩였다. 그 붉은 선은 마치 살아있는 괴물의 촉수처럼 옆의 지지 기둥을 향해 야금야금 기어가는 중이었다.
‘남은 시간은 12시간이 아니야. 균열 전파 속도가 지수함수적으로 빨라지고 있어. 이대로 두면 30분도 못 가.’
“오빠…… 무서워…….”
릴리가 에단의 옷자락을 잡고 바르르 떨었다. 릴리의 숨소리에서 거친 천식 음이 섞여 나왔다. 슬래그 구역의 독한 유황 가스에 노출된 허파가 한계에 달한 것이다.
에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무너져가는 공중 감옥에서 도망칠 곳 따위는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머리 위의 이 거대한 바위를 물리적으로 멈춰 세워야만 했다.
‘파괴역학(Fracture Mechanics)의 기본 법칙이다.’
에단의 뇌세포가 현대 토목공학자 송진우의 지식을 빠른 속도로 인출해 내기 시작했다.
균열이 계속해서 전파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균열 선단의 곡률 반경(Radius of Curvature)이 0에 가깝기 때문이다. 곡률 반경이 제로에 수렴할수록, 그 끝에 걸리는 응력(Stress)은 기하학적으로 무한대에 가깝게 치솟는다. 아무리 단단한 화강암이라도 무한대의 힘 앞에서는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구멍을 뚫는다.’
균열이 진행되는 방향의 바로 그 끝자락, 균열 선단에 정밀하게 둥근 원형 구멍을 가공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곡률 반경을 넓혀주면(Stop Hole), 무한대로 치솟던 응력 집중 계수가 극적으로 감소하며 힘의 흐름이 둥근 면을 타고 부드럽게 우회하게 된다. 학부 시절 귀가 닳도록 들었던 ‘하중 분산 크랙 홀 가공법’이었다.
에단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스! 빌리! 당장 정(Chisel)이랑 망치 가져와!”
저만치서 넋을 잃고 서 있던 견습 기계공 한스와 거구의 석탄 화부 빌리가 에단의 뜬금없는 외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 무슨 소리야, 에단? 천장이 무너지는데 망치는 왜?”
더벅머리에 둥근 안경을 쓴 한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설명할 시간 없어! 저 천장의 균열 끝에 구멍을 뚫어야 해! 당장 대장간에서 가장 단단한 강철 정이랑 무거운 해머를 가져와!”
“미쳤어?!”
주변에서 숨 죽이고 있던 다른 노예들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안 그래도 무너져 내리는 돌대가리에 구멍을 뚫겠다고? 충격을 주면 그 자리에서 통째로 무너질 거야! 저 미치광이 노예 놈이 결국 머리가 돌았구나!”
“닥치고 내 말 들어!”
에단이 목에 걸린 구리 칼라가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빛에는 평소의 유약한 노예 에단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수식과 계산을 지배하는 설계자로서의 압도적인 권위가 서려 있었다.
“돌이 갈라지는 건 힘이 갈라진 틈새 끝으로 몰리기 때문이야! 그 끝을 둥글게 만들어주면 힘이 흩어져! 내 계산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어!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가져와!”
그 기세에 눌린 한스가 침을 꿀컥 삼켰다. 한스는 에단의 시야 속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결심한 듯 대장간 연장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우직한 빌리 역시 에단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무언가 홀린 듯, 구석에 뒹굴던 거대한 타격용 해머를 양손으로 쥔 채 다가왔.
“에단, 내가 뭘 하면 되지?”
빌리의 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빌리, 저 화강암 보의 우측 하단, 균열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저 지점을 봐. 내가 정을 대면, 네 온 힘을 다해 해머로 내려쳐야 해. 각도가 틀어지면 돌이 깨진다. 무조건 수직으로 쳐야 해.”
그사이 한스가 벼려진 강철 정을 들고 숨을 헐떡이며 복귀했다.
“가, 가져왔어!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거야? 한 번만 잘못 쳐도 우린 전부 쥐포가 된다고!”
“나만 믿어.”
에단은 한스의 손에서 정을 빼앗아 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강철의 감각이 그의 뇌 신경을 더욱 명징하게 깨웠다.
에단은 15도 기운 바닥을 딛고 서서,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철골 비계 위로 올라섰다. 머리 위의 거대한 화강암 대들보가 불과 수십 센티미터 앞에 있었다.
‘공학적 직관, 가동.’
그의 시야에 다시 한번 적색의 하중 선들이 들이닥쳤다. 균열 선단부, 아주 미세하게 바스러지고 있는 화강암의 결 속에서 가장 붉게 빛나는 점이 보였다. 그 점이 바로 응력이 집중되는 특이점(Singularity Point)이었다.
에단은 정의 끝날을 그 시빨간 특이점에 정확히 밀착시켰다.
“빌리! 준비해! 내가 신호를 주면 때려!”
“알았어!”
빌리가 거대한 근육을 부풀리며 해머를 뒤로 젖혔다. 주변의 노예들은 무서워 눈을 가리거나 아예 구석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린 토비만이 마사 아주머니의 품에 안겨 침을 삼키며 에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이다! 쳐!”
에단의 외침과 동시에 빌리의 해머가 허공을 갈랐다.
깡!
날카로운 금속음이 제8구역의 좁은 보일러실을 가득 채웠. 충격이 정의 몸체를 타고 에단의 손바닥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으윽!”
손바닥의 살가죽이 찢어지며 붉은 피가 흘러내려 정을 적셨다. 극심한 정신적 피로와 육체적 통증이 동시에 덮쳐왔지만, 에단은 정을 쥔 손을 1밀리미터도 흩트리지 않았다.
‘아직 부족해. 곡률 반경을 형성하려면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해.’
“한 번 더! 강하게!”
깡!
두 번째 타격. 화강암 표면에 미세한 홈이 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한스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에단의 다리를 붙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에단, 멈춰! 균열 옆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있어! 미세 박리(Spalling)야! 무너진다고!”
실제로 정의 타격 충격으로 인해 균열 주변의 석재 껍데기가 쩍쩍 갈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적색 선들이 마치 폭발하듯 붉은 빛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한스, 내 다리 놔! 이건 단순한 표면 박리일 뿐이야! 내부의 주 응력선(Principal Stress Line)은 아직 깨지지 않았어! 나를 믿어!”
에단은 흔들리는 한스를 호통치며 정을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의 눈은 오직 직관이 가리키는 붉은 특이점만을 쫓고 있었다.
“빌리, 마지막이다! 네 인생에서 가장 강한 힘으로 내리쳐!”
빌리가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해머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굽은 척추가 일순간 꼿꼿이 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 해머 끝에 실렸다.
“흐아아아압!”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정의 끝부분이 화강암 대들보를 관통하며 지름 5센티미터의 정밀한 원형 구멍을 뚫어냈다.
석재 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에단의 얼굴을 덮쳤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정적이 제8구역을 지배했다.
“……어?”
한스가 뚫린 구멍과 천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멍청한 소리를 냈다.
늘 하층 노예들의 머리를 지옥처럼 짓누르던 천장의 기분 나쁜 삐걱거림과 바스러지는 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춰 있었다.
에단의 시야 속에서, 균열의 끝을 향해 촉수처럼 뻗어가던 시뻘건 압축력의 선들이 둥근 구멍의 가장자리를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며, 지지 기둥의 청색 인장 영역으로 안전하게 분산되는 하중 경로가 완성되어 있었다.
안정적인 청색 선들이 천장을 굳건히 지탱하고 있었다.
“성공…… 한 건가?”
빌리가 해머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땀을 닦았다.
구석에 숨어 있던 노예들이 하나둘 머리를 내밀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여전히 15도 기울어져 있지만, 더 이상 돌가루를 흘리지 않고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천장이었다.
“무너지지 않아…….”
“진짜로 멈췄어! 저 미치광이 노예의 낙서 같은 계산이 진짜였단 말인가?”
경탄과 안도의 한숨이 광장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한스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에단이 뚫어낸 완벽한 원형의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 공학이라는 미지의 학문에 대한 경외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에단은 피가 흐르는 손을 작업복에 슥슥 문질러 닦으며 비계에서 내려왔다. 극심한 정신적 피로로 인해 무릎이 꺾일 것 같았지만, 릴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괜찮아, 릴리.”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쿵! 쿵! 쿵!
제8구역의 무거운 철제 격벽 문을 군화발로 거칠게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을 가득 채우던 안도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철컥!
문이 열리며, 가시가 돋친 강철 채찍을 손에 쥔 잔혹한 경비병 월터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 더러운 노예 새끼들이 감시관님의 허가도 없이 여기서 무슨 불법 집회를 벌이고 있는 거냐? 게다가 요새의 시설물에 무단으로 구멍을 뚫어 훼손해?”
월터가 채찍을 바닥에 가볍게 내리치자, 파지직하는 마력 전류의 스파크가 튀었다. 그의 살기등등한 눈빛이 비계 위에 서 있는 에단을 정확히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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