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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의 사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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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요새 아스테리아의 척추, 수직 하중 전달 기둥의 진입 해치를 나선형으로 감아 올라가던 에단의 손끝이 차가운 철판에 닿았다. 기둥 내부의 매캐한 기계 오일 가스와 미세한 분진을 뚫고 도달한 곳은 요새의 가장 바깥쪽 경계선, 바로 외벽 데드 앵커로 통하는 강풍 격벽 문 앞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지옥입니다, 형님.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비계 설치공 피터가 허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황동 도르래와 가죽 끈들을 매만지며 경고했다. 피터는 평소 하층민들 사이에서 고공 공포증이 전혀 없는 기인으로 통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의 쾌활한 얼굴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치이이이익!


에단이 바르도의 마스터 키를 보조 제어반에 꽂고 레버를 당기자, 두꺼운 이중 격벽 문이 수압 실린더의 비명 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렸다.


그 순간, 폭풍 같은 기압 차가 에단의 전신을 덮쳤다.


“끄윽……!”


초속 20미터가 넘는 매서운 돌풍이 격벽 내부로 휘몰아치며 에단의 작업복을 사정없이 찢어발길 듯 흔들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바람 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에단은 본능적으로 벽면에 설치된 고정 가이드 레일을 움켜쥐었다. 목에 채워진 1급 기계 노예의 구리 칼라가 바람에 부딪히며 차가운 쇳소리를 냈다. 뺨에 남은 유압유 열상 흉터와 오른손의 마력 부식 상흔이 매서운 칼바람에 얼어붙듯 아려왔다.


격벽 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아찔한 사선(死線)이었다.


수백 미터 상공의 허공. 발밑에는 요새를 떠받치는 구름바다 ‘네뷸라 비스’가 거대한 백색의 파도처럼 요동치고 있었고, 구름의 틈새 사이로 과거 대재앙으로 황폐해진 지상의 황무지 ‘디케이드’가 기괴하게 뒤틀린 검붉은 균열의 모습으로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추락하면 뼈 한 조각도 남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날 심연이었다.


“발판 설치합니다! 제 움직임을 잘 보십시오!”


피터는 바람 속에서도 날렵하게 몸을 날려 외벽 철갑 절벽에 고정된 고대 쇠사슬 앵커 주변으로 가설 와이어를 던졌다. 그의 허리에 달린 특제 고속 하강 도르래가 날카로운 금속음을 내며 회전했다. 피터가 바람을 등지고 허공에 임시 발판(비계)을 설치하는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로 신속했다. 단 몇 분 만에, 외벽 데드 앵커의 거대한 주철 프레임 옆으로 한 사람이 간신히 발을 디딜 수 있는 좁고 흔들리는 목재와 강철 혼합 발판이 완성되었다.


에단은 자신의 허리에 감긴 ‘특제 내열 아라미드 안전벨트’의 이중 잠금 고리를 피터가 설치한 가이드 레일에 찰칵 소리가 나도록 결속했다. 대장장이 칼이 주조한 고강도 버클과 침모 클라라가 이중으로 기운 아라미드 섬유의 묵직한 질감이 그의 골반과 어깨를 단단히 지탱해 주었다. 이 안전벨트야말로 이 허공 위의 세계에서 그의 생명을 지켜줄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피터, 발판의 수평 상태는?”


“강풍 때문에 우측으로 3도 정도 편심이 생겼지만, 가이드 와이어가 인장력을 지탱하고 있으니 무너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에단은 흔들리는 발판 위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발밑의 철판이 요새의 15도 기울어짐과 바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그는 품속에서 ‘바르도의 은제 제도 자’와 ‘휴대용 중력 측정 추’를 꺼냈다.


은제 자를 쥐는 순간, 에단의 영혼에 각인된 ‘공학적 직관’이 깨어났다.


웅ーーーー.


그의 시야가 순식간에 적색과 청색의 응력선으로 재구성되었다. 요새 내부의 수직 기둥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틀림 응력이 이 외벽 데드 앵커의 접합부로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가상의 선들이 입체적으로 가시화되었다. 앵커를 고정하는 거대 볼트 주위로 핏빛처럼 붉은 압축 응력의 선들이 소용돌이치며 검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비틀림 변형 각도가 이미 허용 한계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기둥의 비틀림이 외벽 앵커의 횡하중을 비대칭으로 만들고 있어. 이대로 두면 앵커 주변의 화강암 석벽이 통째로 뜯겨 나간다.’


에단은 흔들리는 중력 측정 추의 각도를 은제 자의 눈금과 대조하며 정밀 측정을 시작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추가 불규칙하게 진동했지만, 그의 머릿속 슬라이드 룰은 바람의 외력을 소거하고 순수한 구조적 변형률만을 정확하게 수치화해 냈다. 고강도 와이어 인장 보강법을 적용하기 위한 최적의 정착점 각도를 산출해야 했다.


그때였다.


격벽 문 안쪽의 어두운 통로에서 청색 경비대 제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하층 경비대의 제복이었지만, 에단의 날카로운 감각은 즉각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사내의 체구는 보통 경비병들보다 마르고 왜소했으며, 무엇보다 가죽 장갑 사이로 살짝 드러난 그의 손가락 끝이 너무나도 매끄러웠다. 하루 종일 거친 무기를 다루거나 하층의 매연을 만지는 경비병의 손이 아니었다.


그는 경비병으로 위장한 사보타주 전문가, 더글라스였다.


더글라스는 격벽 문 그늘에 숨어 에단과 피터가 외벽에 매달려 측정에 몰두하는 모습을 차갑고 간사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그의 품속에서 꺼내진 것은 세바스찬이나 일반 경비병들이 쓰는 채찍이 아니었다. 놋쇠로 정교하게 제작된 초소형 주입기—볼트를 소리 없이 녹여 기계를 오작동시키는 특제 마법 산성 액체 주입기였다. 주입기의 표면에는 중간층 기술위원회의 수석 기술관이자 배후의 권력자인 헤르만의 직속 기술부서 인장이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저 자식, 경비병이 아니야.’


에단은 측정 추의 미세한 진동을 읽는 와중에도 외벽 철판에 비친 사내의 그림자와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했다.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매캐한 유황 냄새 사이로, 기묘하게 톡 쏘는 화학 약품의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공학적 직관이 그의 뇌리에 비상 경보를 울렸다.


‘산성 반응이다! 저놈이 발판의 지지 조인트를 노리고 있어!’


“피터! 당장 피해!”


에단의 외침과 동시에, 더글라스가 가설 발판의 메인 와이어 로프가 고정된 우측 앵커 볼트를 향해 산성 액체를 정밀 분사했다.


치이이이익!


강철 볼트가 초록색 거품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다. 수십 톤의 인장력을 버티고 있던 메인 와이어 로프의 결속부가 힘을 잃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쾅ーーー!


대포가 발사되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우측 고정 볼트가 완전히 파단되며 튕겨 나갔다. 지탱력을 잃은 가설 발판의 오른쪽 바닥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꺼지며 비계가 45도 아래로 급격히 기울어졌다.


“으아아아악!”


피터가 비명을 지르며 아래쪽 심연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발판 위에 있던 계측 장비들과 공구 가방들이 중력의 법칙을 따라 구름바다 밑 까마득한 지상으로 사정없이 추락했다.


피터는 다람쥐 같은 반사신경으로 기울어진 발판의 강철 프레임을 움켜쥐었지만, 그의 몸은 이미 수백 미터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였다. 피터가 자신의 장기인 고속 하강 도르래를 가동해 아래로 피신하려 했으나, 요새 외벽을 타고 불어오는 시속 80km의 돌풍이 그의 몸을 거세게 흔들었다. 이 속도로 하강했다가는 외벽의 날카로운 장갑판에 몸이 부딪쳐 뼈가 으스러질 것이 분명했다.


“도르래 쓰지 마, 피터! 벽면에 충돌한다! 그대로 매달려 있어!”


에단 역시 발판이 뒤집히는 충격으로 허공으로 던져졌다.


“윽……!”


몸이 허공에 붕 뜨는 순간, 그의 몸을 잡아챈 것은 오직 허리에 감긴 특제 내열 아라미드 안전벨트뿐이었다. 가이드 레일에 묶인 메인 와이어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에단의 골반을 강하게 죄어왔다. 급격한 낙하 저지 충격으로 인해 에단의 왼쪽 어깨 인대가 쩍 갈라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번질 정도의 고통이었지만, 그는 이성을 잃지 않았다.


위쪽의 격벽 해치 입구에 선 더글라스는 하층민 쥐새끼들이 드디어 추락사할 것이라 확신한 듯,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무음 주입기를 품속에 쑤셔 넣었다. 그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위해 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에단의 눈은 이미 추락의 공포를 넘어 다음 역학적 계산을 끝마치고 있었다.


‘진자 운동(Pendulum Motion)의 주기를 계산해야 해. 이대로 가이드 와이어에만 매달려 있으면 바람의 외력 때문에 외벽에 부딪쳐 낙하 충격으로 사망한다. 고정점을 추가해야 한다!’


에단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왼쪽 어깨를 억누르며, 오른손으로 안전벨트에 내장된 보조 와이어 고리를 풀어 쥐었다. 칼이 특수 제련한 고강도 아라미드 보조 와이어의 끝에는 강한 자성을 띤 황동 갈고리가 매달려 있었다.


그는 공학적 직관으로 가시화된 외벽 데드 앵커의 하부 보조 고리(Auxiliary Hook) 위치를 포착했다. 바람의 고유 주파수와 자신의 흔들림 주기가 일치하는 찰나의 순간, 즉 상대 속도가 제로(0)에 수렴하는 그 노드(Node) 점을 향해 에단은 오른팔을 팽팽하게 뻗었다.


“걸려라……!”


에단이 보조 와이어를 허공을 향해 힘껏 던졌다. 검붉은 와이어가 초속 20미터의 강풍을 뚫고 사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깡!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는 맑은 타격음이 폭풍우 속을 뚫고 울려 퍼졌다. 아라미드 보조 와이어의 황동 갈고리가 외벽 데드 앵커의 보조 고리에 정확하고 견고하게 물려 들어갔다.


팽팽하게 당겨진 보조 와이어가 에단의 몸을 대각선 방향으로 잡아당기며, 진자 운동의 궤적을 강제로 억제했다. 에단과 피터의 몸이 허공에 고정되며 추락의 위기는 간신히 모면했지만, 그들의 발밑에는 여전히 디케이드의 황무지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에단은 뒤틀린 비계 잔해에 한 손으로 매달린 채,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격벽 문 해치 너머로 도망치려는 더글라스의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그의 정체를 밝히고 이 붕괴하는 앵커를 응급 고정해야 하는 이중의 시한부 압박이 에단의 숨통을 조여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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