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관의 붉은 장부
화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웠다. 온도가 1200도를 넘나드는 칼의 대장간은 그 자체로 거대한 용광로의 심장부 같았다. 공기 중에는 벌갛게 달아오른 쇳가루와 매캐한 유황 냄새가 뒤섞여 떠돌았고, 쇠망치가 모루를 때릴 때마다 사방으로 불꽃이 비산했다.
반스 총감에게 제8구역의 임시 안전 보수 권한을 공식 부여받은 지 불과 반나절. 에단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칼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의 손에는 총감의 붉은 공인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양피지 문서가 들려 있었다. 양지의 권한을 얻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속도전이었다. 요새는 매초 미세하게 기울어지고 있었고, 바르도의 경고대로라면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형님! 이 정도 규격이면 되겠습니까?”
대장간 한편에서 마르코가 우람한 팔뚝을 뽐내며 갓 성형된 강철 H빔의 표면을 식히고 있었다. 치이이익! 차가운 냉각수가 닿자마자 하얀 수증기가 폭발하듯 피어오르며 철골의 푸르스름한 단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면 이차 모멘트를 극대화하여 휨 강성을 높인, 에단의 현대 구조역학 설계가 그대로 반영된 규격재였다.
천재 대장장이 칼은 용광로 앞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에단, 네가 말한 대로 탄소 함량을 조절해서 주조했더니 강도가 이전 고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웬 놈이 밀수해 준 정제 무연탄 덕분에 화력도 아주 끝내주는군. 이 정도 속도라면 제8구역의 균열 부위를 전부 덧대고도 남을 거다.”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칼.”
에단은 품속에서 바르도의 은제 자를 꺼내 H빔의 플랜지 두께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공학도의 고집이었다.
“우리가 양지에서 보수 권한을 얻었다는 건, 그만큼 상층부의 눈길이 이곳에 집중된다는 뜻입니다. 세바스찬이 몰락했으니, 그의 배후에 있는 헤르만 기술관이 가만히 있을 리—”
쾅!
에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장간의 육중한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바닥을 때렸다. 외부의 차가운 슬래그 매연과 함께 빳빳한 제복을 입은 경비병 무리가 들이닥쳤다. 그들의 중앙에는 쥐새끼 같은 수염을 기르고 비뚤어진 안경을 쓴 사내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두꺼운 가죽 장부를, 다른 손에는 날카롭게 다듬은 깃털 펜을 쥔 사내.
중간층 세무국 최하층 담당 수석 세무공무원, 찰스였다.
“이거, 이거. 쥐새끼들이 모여서 불법 제련을 하고 있었군.”
찰스는 대장간 내부의 열기에 불쾌한 듯 코를 찌푸리며 깃털 펜으로 사방을 가리켰다. 그의 눈빛에는 탐욕과 오만함이 가득했다.
“세무국 감사 결과, 이 대장간에 비축된 대량의 강철 빔과 고순도 석탄은 정식 신고를 거치지 않은 불법 자산으로 판명되었다. 세무 징수법 제8조에 의거, 이 자재들을 전부 ‘사치성 금속 및 미신고 연료’로 규정하고 즉각 압수하겠다.”
“뭐라!? 이 쥐새끼 같은 세무관 놈이!”
칼이 분노로 가득 차 거대한 제련 망치를 치켜들었다. 핏대가 선 그의 팔뚝이 부르르 떨렸다. 평생을 흘린 땀방울의 결과물인 H빔과, 목숨 걸고 구해온 정제 무연탄을 통째로 빼앗기게 생겼으니 이성이 날아가는 것도 당연했다.
스릉!
찰스의 뒤에 서 있던 경비병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공무 집행 방해는 즉결 처형 사유다, 천한 대장장이 놈아.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네놈의 목을 대장간 모루 위에 올려놓아 주지.”
찰스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가죽 장부에서 붉은색 세무 압류 딱지를 꺼내 들었다. 그는 가장 가까운 H빔의 표면에 딱지를 턱 하니 붙였다. 이어서 용광로 옆에 쌓인 정제 무연탄 포대들에도 붉은 인장이 찍히기 시작했다.
“멈추십시오, 칼.”
에단이 칼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고요했다. 대장간의 고열 속에서도 에단의 이성은 얼음처럼 차갑게 유지되고 있었다.
“에단! 저 놈들이 우리 자재를 전부—”
“힘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저들이 원하는 건 우리가 먼저 폭력을 행사해 법적 명분을 주는 것입니다.”
에단은 찰스를 똑바로 응시하며 걸어 나갔다. 목에 채워진 1급 기계 노예의 구리 칼라가 짤랑이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지만, 그의 당당한 태도는 세무관 찰스를 압도했다.
“찰스 수석 세무관님. 제국의 법률을 집행하시는 분께서 법의 가장 기본적인 예외 조항을 망각하신 모양이군요.”
“예외 조항? 노예 놈이 감히 제국 세법을 논하는가?”
찰스가 코웃음을 치며 깃털 펜을 흔들었다.
“하층의 모든 자재는 중간층 세무국의 징수 대상이다. 예외란 없다.”
“그렇다면 이것도 예외가 아닌지 보십시오.”
에단은 품속에서 반스 총감이 서명한 ‘제8구역 임시 안전 보수 권한 문서’를 꺼내 찰스의 눈앞에 펼쳤다. 선명한 청색 기술위원회의 인장과 반스 총감의 친필 서명이 드러나자, 찰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 문서가 보이지 않습니까? 반스 총감님께서 직접 승인하신 공식 보수 권한입니다. 그리고 제국 세법 제21조 4항을 읊어드리지요.”
에단은 머릿속에 저장된 제국 법전의 텍스트를 정확하게 인출해 냈다. 토목공학자 시절, 수많은 정부 발주 공사와 시방서를 분석하며 법 조항의 자구 하나하나를 뜯어보던 습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제국 안전위원회 또는 그 대리인이 공식 승인한 공공 구조물 및 안전 보수 구역 내에서 사용되는 모든 자재와 연료는, 공공의 안녕을 위한 예외재로 규정하여 일체의 세금과 압류를 면제한다.’ 공공 구조물 면세 조항입니다.”
에단은 찰스가 붙여둔 붉은 압류 딱지를 손 끝으로 툭 건드렸다.
“우리가 비축한 H빔과 정제 무연탄은 제8구역의 붕괴를 막기 위한 보수 자재입니다. 즉, 이 자재들은 제국 세법에 의거하여 완벽한 면세 대상이자 압류 불가 물품입니다. 당신의 이번 압류 집행은 제국 특별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불법 행정 갈취’에 해당합니다.”
대장간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칼과 마르코는 에단의 청산유수 같은 법률 낭독에 입을 다물지 못했고, 경비병들은 뽑아 든 검을 어정쩡하게 쥔 채 찰스의 눈치를 보았다.
찰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쥐새끼 같은 수염을 파르르 떨며 이빨을 갈았다.
“교활한 노예 놈이 감히 말장난을 하는구나! 이 대장간은 사설 철공소다! 노예와 평민들이 사적으로 운영하는 곳에서 생산된 자재가 어떻게 공공재란 말이냐? 이 자재들이 제8구역의 보수에 쓰일지, 너희가 암시장에 팔아넘길지 누가 보증한단 말이냐!”
찰스의 반박은 억지에 가까웠지만, 행정관 특유의 교묘한 법적 맹점을 파고들고 있었다. 실질적인 시공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자재의 용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허점이었다.
“그 보증은 제가 합니다.”
에단은 물러서지 않고 품속에서 또 다른 가죽 장부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세바스찬의 몰락 과정에서 확보한 하층 세무 거래 내역서의 사본이었다. 에단은 수치 조작 감지 능력을 발휘해 장부의 특정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찰스 세무관님. 당신이 이 대장간의 자재 용도를 의심하시니, 저 역시 당신이 작성한 지난 3년간의 세무 장부의 ‘용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군요.”
에단은 찰스의 코앞으로 장부를 들이밀었다.
“세무국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제8구역에서 징수된 ‘광산 보수 특별세’의 총액은 142,850실링입니다. 하지만 이 사본 장부에 적힌 실질 징수액은 163,240실링이군요. 그 차액인 20,390실링은 대체 제국의 어느 금고로 들어갔습니까?”
“이, 이건…… 단순한 회계상의 오차다! 노예 놈이 세무국의 장부를 위조해 나를 모함하려 드는구나!”
찰스의 목소리가 급격히 뒤집혔다. 안경 너머 그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지진을 일으켰다.
“오차라고 하시기엔 수치가 너무나 정밀하군요.”
에단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슬라이드 룰을 꺼내 들어 대장간의 불빛 아래에서 가볍게 회전시켰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찰스의 심장박동을 옥죄는 경고음처럼 울렸다.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계산해 드리지요. 당신이 작성한 이중 장부의 오차율은 정확히 ‘14.285%’입니다. 제국의 회계 감사 기준에 따르면 오차율 3% 이상은 즉각적인 직무 정지 및 자산 동결 사유이며, 10%를 초과하는 횡령은 지상 유배가 아닌 ‘즉결 처형’에 해당합니다. 총감님께서 이 이중 장부의 오차율을 보신다면, 과연 단순한 회계상의 오차로 넘기실 것 같습니까?”
찰스는 숨을 쉬는 법조차 잊은 듯 굳어버렸다. 에단이 조목조목 읊어대는 숫자의 정밀함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목숨줄을 단숨에 끊어놓을 수 있는 완벽한 사법적 단두대였다.
“너, 너…… 네놈이 감히 나를……”
찰스의 손에 쥐어져 있던 깃털 펜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벌벌 떨리는 그의 손끝이 장부의 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한 채 허공을 헤맸다. 그는 에단의 안대를 낀 왼쪽 눈과 차가운 미소를 바라보며,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존재가 단순한 노예 기계공이 아니라 자신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는 괴물임을 깨달았다.
“선택하십시오, 찰스 세무관님.”
에단은 찰스의 귓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이 압류 딱지들을 전부 떼어내고 조용히 대장간을 나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이 장부를 들고 지금 당장 반스 총감님의 집무실로 가 수식의 무결성을 검증받을까요?”
찰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제복을 적셨다. 명분도, 실리도, 목숨줄도 전부 에단의 손에 쥐여 있었다.
“……철수한다.”
찰스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딱지 다 떼어내! 당장!”
경비병들은 황급히 H빔과 무연탄 포대에 붙어 있던 붉은 압류 딱지들을 뜯어냈다. 찰스는 바닥에 떨어진 깃털 펜을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뒷걸음질 치며 대장간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 경비병들이 그 뒤를 이어 허둥지둥 철수하자, 뜨거운 대장간 내부에는 다시 정적과 용광로의 열기만이 남았다.
“으오오오! 에단! 네가 진짜 저 쥐새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었구나!”
칼이 치켜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으며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마르코와 대장간 노동자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에단의 어깨를 두드렸다. 법과 숫자를 무기로 지배층의 권위를 완벽하게 무력화한 통쾌한 승리였다.
하지만 에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찰스의 깃털 펜을 주워 들어 쓸쓸히 바라보았다.
“자재는 무사히 보존했지만, 아직 기뻐하긴 이릅니다.”
에단은 대장간 구석에 쌓인 H빔들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찰스를 굴복시켰지만, 상층부의 독점 상인 그레고리가 하층의 모든 철강 유통망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H빔을 고정할 고성능 와이어 자재 수급이 완전히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요새의 비틀린 척추를 보강하려면 더 강력한 인장력을 견디는 와이어가 필수적인데 말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님?”
한스가 안경을 고쳐 쓰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에단은 품속에서 바르도의 비밀 마스터 키를 만지작거렸다. 차갑고 묵직한 구리의 감각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요새 건설 초기 이후 영구 봉인되었다는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0번 도크…….”
에단은 어둠이 짙게 내린 폐쇄 구역의 해치 방향을 바라보았다. 요새의 비틀린 척추를 바로잡기 위한 진짜 모험이, 그 금단의 심연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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