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도 기운 세계의 슬래그
“콜록! 컥, 으흑……!”
폐포 깊숙한 곳을 사정없이 긁어대는 매캐한 탄가루와 유황 냄새에 송진우는 비틀거리며 눈을 떴다.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목을 부여잡으려던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갑고 둔중한 금속의 감촉이었다.
“……이게 뭐야?”
목을 단단히 구속하고 있는 것은 거칠게 제련된 구리 칼라였다. 쇠사슬을 연결할 수 있는 둥근 고리가 고정되어 있고, 전면에는 조잡한 숫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제8구역-1024].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낯선 기억들이 폭포수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대한민국 초고층 빌딩과 대형 교량 설계를 도맡던 엘리트 토목공학자 송진우. 그리고 이세계의 거대 공중요새 ‘아스테리아’의 최하층에서 하루 16시간씩 석탄을 나르던 ‘1급 기계 노예’ 에단.
두 존재의 영혼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하나로 융합되고 있었다.
진우, 아니 에단은 흙먼지투성이인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다 중심을 잃고 옆으로 미끄러졌다. 본능적으로 발목에 힘을 주어 버텼지만, 아킬레스건을 타고 시큼한 통증이 올라왔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았다.
수평계가 없어도 토목공학자로서의 신체가 즉각적으로 경사도를 감지해 냈다.
‘15도.’
바닥이 우측 하단으로 정확히 15도 기울어져 있었다.
천장에서는 붉고 푸른 녹물이 섞인 더러운 액체가 불규칙하게 떨어져 바닥의 고철 더미를 적시고 있었다. 사방이 거대한 철판과 화강암 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아스테리아 공중요새의 가장 버림받은 밑바닥, ‘슬래그 구역 8번 구획’이었다.
웅웅웅웅.
요새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저주파 진동이 뼈마디를 흔들었다. 동력로가 손상되어 서서히 추락하고 있다는 기억이 머릿속에서 경고음을 울렸다. 15도라는 기괴한 기울기는 이 거대한 철옹성이 공중에서 균형을 잃고 지상을 향해 미끄러지고 있다는 물리적인 증거였다.
“어이, 에단! 거기서 멍청하게 자빠져 있지 말고 석탄 자루나 날려라! 감시관 놈들이 채찍 들고 오기 전에!”
저 멀리서 온몸에 그을음을 뒤집어쓴 거구의 화부 노예가 붉게 달아오른 보일러 문을 열며 소리쳤다. 그들의 눈에는 이 기울어진 세계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녹물이 그저 일상적인 불편함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에단의 눈은 달랐다.
쿠구구구.
천장에서 아주 미세한, 그러나 기분 나쁜 파열음이 들려온 순간이었다. 에단의 시야가 급격히 번지더니, 세상이 전혀 다른 색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이건…… 힘의 흐름인가?’
그것은 현대 공학도 시절 컴퓨터 모니터로 보던 유한요소해석(FEA) 프로그램의 화면과 같았다.
거대한 화강암 천장보(Beam)와 그것을 지탱하는 노후화된 철골 지지대들을 따라 형형색색의 가상 선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하중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짓눌리는 부위는 핏빛처럼 붉은 ‘압축력(Compression)’의 선으로 타올랐고, 찢어질 듯이 인장력을 받는 부위는 서늘한 청색 ‘인장력(Tension)’의 선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에단의 영혼에 각성한 ‘공학적 직관’이었다.
에단은 넋을 잃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직관이 보여주는 시각적 데이터는 절망적이었다.
요새가 15도 기울어지면서, 원래 수직으로 곧게 전달되어야 할 천장의 자중(Dead Load)이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편심 하중(Eccentric Load)이다.’
설계 한계를 초과한 횡방향 힘이 노후화된 리벳 접합부에 집중되고 있었다. 붉은색 선들이 접합부 볼트 주위로 뭉치며 검붉은 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응력 집중(Stress Concentration) 현상이었다. 이미 철골 지지대는 영구적인 변형이 일어나는 항복 강도(Yield Strength) 임계점을 돌파해 소성 변형 단계에 진입해 있었다.
“안 돼…….”
에단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대로 두면 무너진다. 저 지지 기둥의 전단 파괴(Shear Failure)가 임박했어.”
“개소리 말고 석탄이나 퍼, 이 미친놈아! 요새가 하루 이틀 삐걱거린 줄 알아?”
화부 노예가 코방귀를 뀌며 석탄 삽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다른 노예들도 에단의 말을 그저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치부하며 제 할 일만 할 뿐이었다. 마법과 기적이 판치는 이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역학 수식을 늘어놓는 노예의 경고를 귀담아들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에단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저 접합부에 가해지는 편심 하중을 분산시키지 않으면, 도미노처럼 천장 전체가 무너져 내려 이 구역에 있는 수백 명의 노예가 흔들리는 요새의 잔해 속에 그대로 깔려 압사할 것이다.
도구도, 자재도 없었다. 주어지는 것은 오직 맨손과 널브러진 고철뿐.
에단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부 노예가 내팽개친 숀 영감의 낡은 석탄 삽이었다. 자루는 질긴 참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삽날은 무쇠로 제련되어 꽤 묵직했다.
‘지렛대의 원리(Leverage)를 쓴다.’
에단은 삽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거친 나무의 질감과 함께 차가운 땀이 배어 나왔.
그는 공학적 직관이 가리키는 가장 치명적인 응력 집중 지점, 즉 철골 지지대와 화강암 벽면이 만나는 미세한 틈새로 질주했다.
“비켜! 다들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
에단은 비명을 지르며 지지대 틈새로 무쇠 삽날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쇠약한 노예 몸뚱이의 무게를 전부 실어 삽 자루를 아래로 강하게 눌렀다.
지렛대의 반력(Reaction Force)을 이용해, 접합부에 집중된 편심 하중의 작용선을 강제로 몇 밀리미터 옆으로 이동시키려는 무모하고도 정밀한 시도였다.
“으으으윽……!”
에단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목에 걸린 구리 칼라가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그의 시야 속에서, 접합부를 시뻘겋게 물들이던 압축력의 붉은 선들이 삽날을 타고 우회하며 아주 미세하게 청색의 인장 영역으로 분산되는 것이 보였다.
성공이다. 하중 경로(Load Path)가 바뀌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엄청난 반발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숀 영감의 낡은 석탄 삽 자루가 단발마 같은 비명과 함께 두 동강으로 부러져 나갔다. 에단은 강한 반동으로 인해 비탈진 바닥으로 사정없이 굴러떨어졌다.
“에단!”
부러진 나무 파편이 허공을 날아다니고, 사방에 자욱한 석탄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직후.
콰직, 콰과광!
에단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바로 그 발치 위 천장에서, 성인 남성의 머리통만 한 거대한 화강암 파편이 굉음과 함께 떨어져 내렸다. 무쇠 바닥과 충돌한 석재가 사방으로 붉은 불꽃과 돌가루를 뿜어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먼지 구름 속에서 에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부러진 삽 자루를 꽉 쥐었다.
일시적인 응력 분산으로 대규모 연쇄 붕괴는 지연시켰으나, 이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지지 기둥의 물리적 수명은 길어야 앞으로 12시간.
머리 위의 거대한 천장이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요새의 추락을 막기 위한 첫 번째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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