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천(寒鐵川)의 담금질, 열독을 식혀라
가열이 물러갔다. 경비대장의 무거운 발소리가 막사 밖으로 완전히 사라진 순간, 강태벽을 지탱하던 거대한 지지대가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컥……!”
태벽의 입에서 검붉은 선혈이 울컥 쏟아졌다.
동시에 전신을 지배하던 무통각 임계(無痛覺 臨界)가 신기루처럼 해제되었다. 뇌를 마비시켰던 차가운 이성이 걷히자,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듯한 가혹한 격통이었다. 가슴과 등을 사선으로 찢어놓은 가열의 채찍 자국이 마치 숯불을 얹어놓은 듯 벌갛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외상이 아니었다. 가열의 붉은 쇠채찍에 실려 있던 화염성 내공, 즉 삼류 극성의 화독(火毒)이 찢어진 살가죽을 타고 뼈 속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 열기가 뼈의 미세한 균열 틈새에 발라두었던 철골고(鐵骨膏)의 잔재와 결합했다는 점이었다. 뼈를 압축하고 단단하게 만들던 비약이 화독과 만나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골수가 불타는 듯한 격통에 태벽의 전신이 활처럼 휘청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아, 아아……!”
벙어리 침모 아영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태벽의 무너지는 몸을 받아 안았다. 태벽의 몸은 이미 평범한 인간의 체온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 닿은 아영의 손끝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피부 아래의 핏줄들이 시커멓게 도드라지며 기이하게 요동쳤다.
“형! 정신 차려요! 형!”
돌이가 겁에 질려 태벽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으나, 태벽의 눈동자는 이미 초점을 잃고 위로 풀려 있었다. 잇새에서는 뜨거운 김과 함께 쇳가루 냄새가 섞인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뼈 속의 철 성분이 화독에 녹아내려 혈액과 융합되는, 치명적인 열독 발작(熱毒 發作)이었다. 이대로 두면 그의 모든 피가 철가루와 함께 시커멓게 굳어 심장을 멈추게 할 것이 자명했다.
바로 그때, 막사의 어두운 문틀을 밀치고 꾀죄죄한 몰골의 노인이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술 냄새와 약초 향. 광산의 돌팔이 의원이자 태벽의 은밀한 수련을 돕던 약손 사부였다.
“이, 이 미친 독종 놈이 결국 일을 저질렀구나!”
약손 사부가 태벽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맥박을 짚는 그의 손가락 끝이 사정없이 떨렸다. 맥박은 1 마디에 수십 번을 요동치다 가도,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뼈 속의 골독(骨毒)이 화독과 뒤엉켜 심장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서고 있었다.
“단전도 없는 놈의 몸뚱이에 삼류 극성의 화독이 직격했어! 게다가 철골고의 약독이 화로처럼 타오르고 있으니…… 이대로 반 시진만 지나면 장기가 모조리 타서 숯덩이가 될 게다!”
“사부님! 제발 형을 살려주세요! 제발요!”
돌이가 약손 사부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원했다. 아영 역시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간절히 손짓했다.
약손 사부는 품 안에서 은침 주머니를 꺼내 들었으나, 이내 이빨을 악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 은침술로 철독의 흐름을 늦출 수는 있어도, 이 엄청난 열기를 근본적으로 식힐 수는 없다! 쇠를 달구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붉게 달아오른 무쇠를 그대로 두면 뒤틀려 깨질 뿐이야!”
“찬물에…… 담금질해야지.”
어둠 속에서 지팡이를 짚은 장대한 실루엣이 걸어 나왔다. 양눈이 멀어 초점 없는 눈동자를 지닌 백발의 거인, 스승 철무진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무겁고 낮았다.
“태벽이의 뼈는 지금 가열의 불꽃에 달궈진 날붙이와 같다. 급속도로 식히지 않으면 야수골(野獸骨)의 기틀마저 녹아내려 평생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이 될 터. 약손, 그곳으로 데려가야 한다.”
약손 사부의 눈이 크게 번뜩였다.
“그곳이라니…… 설마 귀곡동(鬼谷洞) 지하 최심부의 한철천(寒鐵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거기는 만년 한기가 서려 있어 보통 무인도 오 장 육부가 얼어 죽는 곳입니다!”
“이놈의 뼈는 이미 보통의 경지를 넘어섰다. 한기가 심장을 얼리기 전에, 뼈 속의 화독이 한기를 밀어낼 게다. 시간이 없다. 업어라!”
철무진의 단호한 명령에 칠성이 군말 없이 태벽의 거구뚱이를 등에 업었다. 태벽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칠성의 등 가죽이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일었으나, 칠성은 이빨을 악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간수들의 야간 순찰 동선을 피해, 광산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금지구역, 귀곡동의 입구로 들어섰다. 굵은 쇠사슬이 쳐진 경계선을 넘어 어둠 속으로 깊숙이 기어내려 갈수록, 공기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캐한 유황 냄새 대신, 살을 에는 듯한 서늘한 음기(陰氣)가 사방에서 들이닥쳤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만수의 안내를 따라 좁은 바위 틈새를 기어내려 가자, 마침내 귀곡동 최심부의 거대한 지하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의 중앙에는 푸르스름한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지하 암반수 흐름이 흐르고 있었다. 수면 위로 하얀 서리가 피어오르는 혹한의 얼음굴, 한철천(寒鐵川)이었다. 물가에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속눈썹에 하얗게 서리가 맺힐 정도의 극심한 추위였다.
“태벽아, 정신 차려라!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철무진이 소리쳤다.
칠성이 태벽을 한철천의 푸른 물가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물에 발끝이 닿는 순간, 태벽의 의식이 아주 미세하게 돌아왔다. 그의 전신은 뜨거운 불길과 차가운 얼음의 경계에서 사정없이 뒤틀리고 있었다.
풍덩——!
태벽은 스스로의 몸을 한철천의 깊은 물속으로 던졌다.
그 순간, 기이하고도 소름 끼치는 소리가 지하 공동을 가득 채웠다.
치이이이익——!
달궈진 붉은 무쇠를 차가운 물속에 처박을 때 발생하는 거대한 기화음이었다. 태벽의 몸이 물에 닿자마자, 그의 상처 입은 등과 가슴팍에서 하얀 수증기가 폭포처럼 뿜어져 나왔다. 물의 표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거품이 일었다.
“으그극…… 으아아아악!”
무통각 임계가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 태벽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뼈 속을 태우던 화독의 열기와, 피부를 찢고 들어오는 한철천의 만년 한기가 그의 골격 한가운데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것은 영혼을 반으로 갈라놓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었다. 뜨거운 불길이 뼈를 녹이려 하면, 차가운 냉기가 그 뼈를 순식간에 얼려 깨뜨리려 했다. 뼈마디가 팽창과 수축을 극한으로 반복하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물 밖까지 선명하게 울렸다.
“약손! 지금이다!”
철무진의 외침에 약손 사부가 한철천 물가로 뛰어들었다. 얼음물에 다리가 닿자마자 그의 이빨이 딱딱 마주쳤으나, 그는 망설임 없이 은침 주머니에서 붉은빛이 도는 특제 은침들을 뽑아냈다.
“태벽아! 정신줄 놓지 마라! 내 침이 길을 열 테니, 너는 철기단골공의 냉천안정법(Naengcheonanjeongbeop) 구결을 돌려라! 뼈 속의 철분을 정렬해야 살아남는다!”
슉! 슉! 슉!
약손 사부의 손끝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태벽의 척추와 어깨, 무릎 관절 등 골독과 화독이 가장 심하게 뒤엉킨 주요 관절 혈도에 장침들이 깊숙이 박혔다. 침 끝을 통해 태벽의 체내에 갇혀 있던 탁한 철독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사방으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태벽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붉게 충혈된 눈을 부릅떴다.
‘정신 차려라. 여기서 무너지면 가문의 그 위선자들의 목을 부러뜨릴 수 없다. 강무현…… 강지훈…… 너희들의 칼날을 내 주먹으로 깨부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
한(恨)과 분노가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태벽은 끓어오르는 투지를 쥐어짜며, 머릿속으로 냉천안정법의 구결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천지 철기, 냉천에 안정되니…… 뼈의 뒤틀림을 멈추고 무쇠의 성질을 취한다. 팽창을 멈추고, 수축하여 굳건히 하라…….’
구결이 돌기 시작하자,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한철천의 푸른 냉기가 태벽의 찢어진 가슴 상처를 통해 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냉독(冷毒)은 뼈를 파괴하는 대신, 화독에 녹아내리던 철골고의 성분들을 급속도로 식히며 고정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온도가 가라앉으면서, 으스러지고 미세하게 균열이 가 있던 태벽의 정강이뼈와 갈비뼈 세포들이 강철의 밀도로 단단하게 굳어 들어갔다.
우드득, 우두득!
그의 전신 골격이 청동의 경도에서 단단한 무쇠의 경도로 진화하는 뼈의 마찰음이 물속에서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피부 아래의 검붉은 켈로이드 무늬들이 더욱 짙어지며 기이한 강철 무늬처럼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한기의 기세가 너무도 강렬했다. 화독이 급격히 식어가자, 이제는 한철천의 냉독이 태벽의 심장을 향해 마수를 뻗쳐왔다. 태벽의 심장박동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사부님! 태벽이 형의 몸이 얼어가고 있어요!”
물가에서 지켜보던 돌이가 비명을 질렀다. 실제로 태벽의 입술은 푸르게 질려 있었고, 그의 눈꺼풀 위로 하얀 얼음막이 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심장이 완벽히 얼어붙어 즉사할 터였다.
“이런, 한기가 너무 강해! 화독이 완전히 진압되기도 전에 심장이 얼어붙으려 한다!”
약손 사부가 다급히 태벽의 가슴 정중앙, 전중혈에 마지막 은침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독소 중화침법의 극의였다. 침 끝이 뼈를 건드리자, 태벽의 심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분노의 기열이 일시적으로 폭발했다.
쿵——!
태벽의 심장이 거차게 한번 요동쳤다. 그의 뼈 속에 융합되어 있던 만년현철의 기운과 분노의 열기가 냉독을 밀어내며 기적적인 한열의 균형을 이루었다. 뼈를 태우던 열독이 가라앉고, 심장을 얼리려던 냉독이 상쇄되는 순간이었다.
체온이 마침내 안정을 찾았다. 비록 한독의 깊은 침투로 인해 평생 비가 올 때마다 뼈마디가 시려오는 영구적인 만성 관절통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의 전신 뼈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무쇠의 경도로 거듭났다.
태벽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철천의 차가운 수면 아래로 깊숙이 몸을 가라앉혔다. 뼈 속의 열기를 완전히 다스리기 위해 묵묵히 물속에 잠겨 있던 그때였다.
어두운 물속 바닥에서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태벽이 왼손을 아래로 뻗었다.
지하수의 거친 모래 바닥을 짚던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이끼가 잔뜩 낀 딱딱하고 앙상한 물체가 닿았다.
‘……이것은?’
태벽은 눈을 부릅뜨고 물속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돌멩이가 아니었다. 기이한 각도로 굳어 있는 인간의 손가락 뼈대였다.
수백 년 전, 이 혹한의 한철천에 몸을 던져 외가 무공을 연마하다 고통과 한기를 이기지 못하고 숨진 고대 외가 대종사의 백골 유골이었다. 백골의 굳어버린 손아귀 틈새로, 차가운 물속에서도 기이하게 검은빛을 내뿜는 낡은 철판 조각 하나가 태벽의 손끝에 스치듯 만져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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