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채찍의 습격, 뼈를 잠그다
쿵——!
서산령의 차가운 아침 공기를 찢어발기며 노예 막사의 나무문이 부서져 나갔다. 문짝이 바닥에 나뒹굴며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고, 그 너머로 시뻘건 가죽 갑옷을 걸친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얼굴에 멧돼지 같은 기세를 뿜어내는 사내. 제3구역의 경비대장이자 채찍질의 명수로 악명 높은 가열(加烈)이었다.
가열의 손에는 가시가 촘촘히 박힌 붉은 쇠채찍이 들려 있었다. 채찍이 바닥을 쓸 때마다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그의 뒤로는 창과 노궁으로 무장한 사병 수십 명이 늘어섰다. 막사 내부의 노예들은 공포에 질려 거적때기 속으로 몸을 웅크렸다.
“마두식이 사라졌다.”
가열의 목소리는 쇳가루가 섞인 듯 거칠었다. 그의 매서운 안광이 막사 안을 훑었다.
“어젯밤 삼경, 제9갱도 최하단 구역에서 대규모 붕괴 사고가 있었다. 마두식이 그곳을 순찰하던 시간이지. 쥐새끼 같은 노예 놈들 중 누군가 마두식의 실종과 연관이 있거나, 붕괴를 사주한 것이 분명하다. 광산주 최현도 나리께서 진상을 밝히라 명하셨다.”
가열이 쇠채찍을 가볍게 휘둘렀다. 찰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채찍 끝의 날카로운 가시들이 노예들의 얼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말하지 않는다면, 오늘 이 막사에 있는 놈들 중 절반은 혈골동의 시체 더미로 갈 것이다. 누가 먼저 매를 벌겠느냐?”
노예들은 숨을 죽였다. 칠성은 은밀히 바닥에 엎드린 채 주먹을 쥐었고, 만수는 영악한 눈빛을 빛내며 기회를 엿보았다. 태벽 역시 자는 척 거적때기 위에 엎드려 있었다. 어깨의 단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 쓰라렸고, 정강이뼈에서는 단골 초기 수련의 후유증으로 지독한 관절통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품 안에는 어젯밤 마두식의 품에서 빼앗은 청엽검종의 비밀 지시서가 단단히 숨겨져 있었다.
“아무도 없단 말이지?”
가열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비열하고 잔혹한 미소였다. 그의 눈길이 막사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왜소한 소년, 돌이에게 멈췄다.
“그럼 저 쥐새끼부터 시작하지. 뼈가 부러지고 살가죽이 찢어지면 벙어리라도 입을 열게 마련이다.”
“안 돼요! 돌이는 아무것도 몰라요!”
구석에 있던 벙어리 침모 아영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돌이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사병들의 거친 발길질에 뒤로 밀려났다. 가열이 쇠채찍을 높이 치켜들었다. 채찍 끝에 삼류 극성의 강맹한 붉은 내공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벽력편법(霹靂鞭法)의 시초였다. 저 채찍이 소년의 몸에 닿는 순간, 뼈가 으스러지고 장기가 파열되어 즉사할 것이 자명했다.
“죽어라, 천한 놈.”
휘이이익——!
채찍이 공기를 가르며 파멸적인 파공음을 내뿜었다. 돌이는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다.
바로 그 순간, 검은 흙먼지 속에서 거구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쏘아져 나왔다.
타앗!
태벽이었다. 그는 쇠사슬이 쩔렁이는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돌이의 머리 위를 온몸으로 덮쳐 가로막았다.
퍼어억——!
가열의 붉은 쇠채찍이 태벽의 넓은 등을 정확히 직격했다. 살을 찢는 파열음과 함께 시뻘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채찍에 박힌 쇠가시들이 태벽의 등가죽을 갈가리 찢어발겼으나, 태벽은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
가열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보통 노예라면 비명을 지르며 척추가 부러졌을 타격이었다. 그러나 태벽은 굳건히 두 발로 버티고 서 있었다.
태벽은 몸 안에서 전신의 관절과 뼈마디를 유기적으로 맞물려 고정하는 외가 방어 심법, 폐골결(閉骨結)을 발동하고 있었다.
‘우드득, 우두득!’
태벽의 피부 아래에서 뼈들이 쇠사슬처럼 단단하게 맞물리는 기괴한 소리가 울렸다. 그의 척추와 갈비뼈가 마치 하나의 강철 방패처럼 단단히 결착되었다. 가열의 채찍에 실린 강맹한 삼류 내공의 충격파가 태벽의 등을 때렸으나, 폐골결로 고정된 강철 같은 늑골에 가로막혀 내부 장기로 흘러들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이놈…… 쓰레기 사생아 놈이 감히 내 채찍을 몸으로 막아서?”
가열이 격노하여 채찍을 거칠게 회수했다. 채찍이 빠져나가며 태벽의 등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하지만 태벽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맺힌 가문에 대한 한(恨)과, 자신을 감시하고 죽이려 했던 가주 강무현의 비밀 지시서가 뇌리를 스치며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불꽃이 타올랐다.
화아아악!
분노가 극에 달하자, 태벽의 어깨에 새겨져 있던 흑철 낙인, ‘노(奴)’ 자 흉터가 기이하게 붉은빛을 뿜으며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평생을 지워지지 않는 치욕의 표식이, 이제는 세상을 향한 분노의 기폭제가 되어 요동치고 있었다.
태벽은 정신력이 육체의 고통을 완전히 초월하는 무통각 임계(無痛覺 臨界) 상태에 진입했다. 등 가죽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끔찍한 고통이 머릿속에서 완벽히 차단되었다. 오직 적을 찢어 죽이겠다는 차가운 이성만이 남았다.
“더 쳐봐라.”
태벽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닌, 쇠가 긁히는 듯한 기괴한 소리였다.
“이 괴물 같은 놈이 미쳤구나! 벽력초풍!”
가열이 광분하며 벽력편법의 초식을 전개했다. 붉은 쇠채찍이 허공에서 수십 개의 잔상을 만들어내며 태벽의 전신을 향해 폭풍처럼 쏟아졌다.
팍! 팍! 팍! 팍!
무자비한 채찍질이 태벽의 가슴, 어깨, 옆구리를 사정없이 난타했다. 매 타격마다 피가 비산했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막사 안은 비린 피 냄새와 채찍이 가죽 옷을 찢을 때 발생하는 매캐한 화약 냄새로 가득 찼다.
그러나 태벽은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폐골결을 유지한 채, 가열을 향해 천천히 한 걸음씩 걸어가기 시작했다. 쇠사슬이 쩔렁이는 발소리가 묵직하게 막사 바닥을 울렸다. 채찍 가시가 그의 가슴팍 피부를 찢어발겼지만, 철골고와 야수골의 재생력으로 제련된 그의 단단한 늑골은 채찍의 가시를 물리적으로 튕겨냈다. 깡! 깡! 하는 기괴한 금속성 마찰음이 태벽의 몸에서 울려 퍼졌다.
태벽은 끓어오르는 분노 속에서 가열의 채찍을 무력화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채찍의 손잡이를 잡는다.’
태벽이 가열의 채찍 끝을 맨손으로 잡으려 손을 뻗은 찰나, 가열의 채찍에 실려 있던 불꽃 같은 열독(熱毒) 내공의 기운이 태벽의 손끝을 스쳤다.
치이익!
순간 태벽의 손가락 끝 피부가 타들어 가며 검게 그을렸다. 내공이 한 모금도 없는 태벽의 육체로는 적의 화염성 발경을 맨손으로 완벽히 제어하기 어려웠다. 태벽은 냉철하게 손을 거두었다. 지금 무리하게 채찍을 잡으려다가는 손가락 뼈가 녹아내릴 수 있었다. 또한, 지금 가열을 이 자리에서 때려눕히면 막사 밖을 포위한 사병들의 노궁 일제 사격에 돌이와 아영, 동료들이 몰살당할 터였다.
태벽은 오직 기세와 무시무시한 맷집만으로 가열을 질리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괴, 괴물…….”
가열의 채찍질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십 대의 치명적인 채찍을 정면으로 맞고도, 신음 소리 하나 없이 피를 흘리며 다가오는 태벽의 모습은 인간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사병들의 얼굴에도 극도의 공포심이 서렸다.
가열은 이를 악물며 마지막 남은 내공을 채찍에 끌어모았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죽어라아아!”
붉은 쇠채찍이 태벽의 가슴팍을 사선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콰아앙——!
가장 강력한 폭음과 함께 태벽의 낡은 마의가 완전히 찢겨 나갔고, 그의 가슴팍 가죽이 가로로 갈가리 찢어지며 시뻘건 선혈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찢어진 상처 틈새로 검붉은 켈로이드 흉터가 남은 단단한 무쇠빛 갈비뼈가 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태벽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서 있었다.
그는 붉게 달아오른 어깨의 ‘노(奴)’ 자 낙인을 드러낸 채, 피비린내 나는 가슴을 펴고 묵묵히 서서 가열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고통이 아닌, 머지않아 가열의 목뼈를 부러뜨리겠다는 잔혹한 약속만이 서려 있었다.
막사 안에는 오직 태벽의 상처에서 바닥으로 뚝, 뚝 떨어지는 피 한 방울의 무게감 있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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