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갱도의 유령, 악질의 종말
마두식의 매서운 안광이 어둠 속에서 자는 척 엎드려 있는 태벽의 등덜미를 향해 무섭게 내리꽂혔다.
막사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 차가워졌다. 타오르는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흙벽 위에서 일렁일 때마다, 노예들의 거친 숨소리가 잘게 조각나 흩어졌다. 칠성은 거적때기 밑에서 몽둥이를 쥔 채 온몸의 근육을 터질 듯이 긴장시키고 있었고, 돌이는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제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고 있었다.
뚜벅. 뚜벅.
마두식의 가죽 군화가 축축한 흙바닥을 짓밟으며 태벽의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그의 품에서 풍기는 독한 술 냄새와 피비린내가 막사 안의 매캐한 쳇가루 공기와 뒤섞였다. 마두식은 횃불을 낮추어 태벽의 등덜미를 비추었다. 낮에 매질을 당해 갈기갈기 찢어졌던 살가죽은 급하게 발라둔 고약 덕분에 겨우 지혈되어 있었으나, 여전히 흉측한 몰골이었다.
“흐음…….”
마두식이 코를 킁킁거렸다. 그의 쥐새끼 같은 눈망울이 기이하게 빛났다.
“이 비린내는 뭐지? 단순한 쳇가루 냄새가 아니야. 묘하게 알싸한 약초 향이 나는군. 상화고(尙和膏)잖아? 노예 놈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귀한 고약 냄새가 왜 이 쓰레기 막사에서 풍기는 거지?”
마두식의 날카로운 다그침에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아영의 어깨가 사정없이 떨렸다. 거적 밑에 숨겨둔 상화고 단지가 발각되는 순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즉결 처형을 면치 못할 터였다.
태벽은 어둠 속에서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왼손 손바닥을 흙바닥 깊숙이 밀어 넣었다. 낮에 마두식의 채찍을 맨손으로 잡을 때 찢어졌던 생살에서 다시금 뜨거운 피가 울컥 배어 나왔다. 그는 고통을 삼키며 손가락을 굳게 쥐어 짜냈다. 상화고의 약초 냄새를 덮기 위해, 자신의 피비린내와 바닥의 썩은 흙먼지를 억지로 짓이겨 섞어버린 것이다.
“나리…….”
태벽이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비굴하게 읊조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석탄가루와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낮에 나리께 가차 없는 태형을 맞고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아, 갱도 구석에서 자라는 개똥쑥을 뜯어다 짓이겨 발랐을 뿐입니다. 천한 노예 놈의 몸에서 썩은 쑥 냄새가 나 나리의 고귀한 코를 더럽혔다면 죽여주십시오.”
태벽은 쇠사슬을 쩔렁이며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철저히 힘없고 굴복한 노예의 연기였다. 마두식은 태벽의 비굴한 태도를 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횃불을 태벽의 얼굴바닥 가까이 대고 그의 왼손을 거칠게 낚아채려다, 손가락 사이로 시커먼 진흙과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더럽다는 듯 손을 뿌리쳤다.
“퉤! 뼈다귀만 남은 쓰레기 놈이 개똥쑥은 무슨. 가문에서 버림받은 개새끼답게 바닥을 기는 꼴이 아주 어울리는구나.”
마두식은 군화발로 태벽의 어깨를 거칠게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태벽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정강이뼈가 어긋나며 단골 초기(斷骨 初期) 수련의 후유증인 시린 마찰통이 일었으나, 태벽은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묵묵히 고통을 삼켰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마. 하지만 잊지 마라. 광산의 율법은 엄하다. 쥐새끼처럼 딴마음을 품는 놈이 있다면, 내 손으로 직접 목뼈를 부러뜨려 혈골동에 던져버릴 테니.”
마두식은 품 안의 단도를 만지작거리며 막사 안의 노예들을 한 번 더 훑어본 뒤, 사병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횃불의 불빛이 사라지자, 막사 안은 다시 짙은 암흑과 안도의 한숨으로 가득 찼다.
“태벽아, 정녕 괜찮으냐?”
칠성이 어둠 속에서 다가와 태벽의 어깨를 붙잡았다. 태벽은 흙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손바닥에 감긴 가죽 붕대를 다시금 조여 매었다. 그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간이 없소. 마두식은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소. 최현도에게 정식으로 고해바치기 전에 오늘 밤 삼경(三경), 제9갱도에서 놈의 숨통을 끊어야 하오.”
만수가 어둠 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련님, 마두식은 삼경 교대 시간 직전에 제9갱도 최하단 구역을 혼자 순찰하오. 그곳은 천장이 낮고 암벽이 좁아 검이나 채찍을 크게 휘두를 수 없는 막다른 길이지요. 도련님의 외가 힘을 쓰기에 가장 적합한 전장입니다.”
“알겠소. 칠성 형님은 제9갱도 입구에서 경비병들의 접근을 감시해 주시오. 쥐새끼 한 마리도 갱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걱정 마라. 내 목숨을 걸고 입구를 지키마.”
칠성이 굳은 의지를 다지며 주먹을 쥐었다. 태벽은 아영을 바라보았다. 아영은 말을 하지 못한 채,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태벽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태벽은 그녀의 고운 손 위에 자신의 거친 손을 잠시 얹었다가, 단호하게 몸을 돌려 제9갱도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삼경(三更). 대지가 가장 깊은 어둠에 잠기는 시간.
제9갱도 최하단 구역은 유황 냄새와 축축한 냉기가 가득한 무덤 같은 공간이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릴 뿐,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마두식은 한 손에 희미한 등불을 들고, 다른 손에는 예리하게 갈린 단도를 쥔 채 갱도 내부를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발소리가 동굴 벽에 부딪쳐 기분 나쁜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흐흐, 그 쓰레기 사생아 놈. 아무리 생각해도 낮에 내 채찍을 잡았던 힘은 평범한 노예의 완력이 아니야. 최현도 나리께 보고하기 전에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 사고사로 위장하는 편이 뒤탈이 없겠지.”
마두식은 비열하게 중얼거리며 단도를 굳게 쥐었다. 낮에 당한 굴욕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태벽이 단전이 파괴된 폐물이라는 사실을 맹신하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일방적인 사냥을 하러 간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휘익——!
어둠 속에서 미세한 공기의 파동이 일었다. 마두식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단도를 휘둘렀다.
깡!
단도날이 날카로운 암벽 모서리를 긁으며 불꽃이 튀었다. 등불의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 낡은 마의를 입고 발목에 무거운 사슬을 찬 태벽의 실루엣이 유령처럼 솟아올랐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역시 숨어서 요술을 부리고 있었구나!”
마두식이 살기를 뿜으며 단도를 찔러왔다. 그의 단도 끝에는 삼류 수준의 미세한 푸른 내공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좁은 암벽 사이에서 단도가 태벽의 목덜미를 향해 번개처럼 쇄도했다.
태벽은 당황하지 않았다. 1화에서 마두식에게 모진 매질을 당하며 뼈에 새겨두었던 그의 공격 습관이 뇌리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졌다. 마두식은 찌르기 직전 오른쪽 어깨가 미세하게 들리고, 발끝이 안쪽으로 꺾이는 고질적인 버릇이 있었다.
태벽은 전신의 관절을 기이한 각도로 꺾는 ‘연골회피(軟骨回避)’를 전개했다. 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어깨와 목뼈가 찰나의 순간 뒤로 비껴갔다. 마두식의 예리한 단도날이 태벽의 뺨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가며 암벽에 박혔다.
쿵!
“이, 이 기괴한 움직임은 뭐냐!”
마두식이 경악하며 단도를 회수하려 했으나, 태벽은 이미 좁은 갱도 지형지물 활용법(갱도 지형지물 활용법)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 태벽은 좁은 동굴 벽면을 다리로 강하게 차며 마두식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두식은 급히 왼손에 내공을 모아 태벽의 가슴을 향해 장풍을 내질렀다. 푸른 기운이 태벽의 흉폭한 골격을 직격했다.
콰웅!
내공의 타격이 태벽의 가슴뼈를 흔들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내장이 파열되어 즉사할 충격이었다. 하지만 태벽은 전신의 강철 뼈대를 접지체 삼아 충격을 발바닥을 통해 대지 깊숙이 흘려보내는 ‘철기접지(鐵器接地)’를 발동했다. 그의 발목에 채워진 흑철 사슬이 쩔렁이며 바닥의 돌가루를 사방으로 튕겨냈다. 마두식의 내공 충격파는 태벽의 몸을 통과해 동굴 바닥으로 고스란히 소멸했다.
“어, 어떻게 내공 한 줌 없는 놈이 내 타격을 정면으로 버텨내는 거지?”
마두식의 눈에 처음으로 극도의 공포가 서렸다. 그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태벽의 검붉은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내공의 힘만이 전부가 아님을, 네놈의 뼈로 증명해 주마.”
태벽의 무쇠 같은 오른손이 마두식의 단도를 쥔 손목을 맹수처럼 움켜잡았다. 철포악(鐵포악)의 가공할 아귀힘이 마두식의 살가죽을 파고들었다.
“으아아악! 놔라! 이 괴물 같은 놈!”
마두식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으나, 태벽의 손아귀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태벽은 손가락 뼈마디의 밀도를 극한으로 압축하며 손아귀를 비틀었다.
우드득! 바스락!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좁은 갱도 내부를 가득 채웠다. 마두식의 손목 관절뼈가 태벽의 완력에 의해 형체도 없이 으스러져 가루가 되어버린 것이다. 골쇄수(骨碎手)의 잔혹한 위력이었다. 마두식의 손에서 단도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아악! 내 손! 내 손이!”
마두식은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지르며 최후의 발악으로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에 실린 마지막 내공이 태벽의 어깨 가죽을 스치며 얕은 검상을 입혔다. 붉은 피가 흘러내렸으나, 태벽은 고통을 차단하는 무통식 상태였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태벽은 주먹에 칭칭 감긴 무겁고 녹슨 흑철 쇠사슬을 꽉 쥐었다. 그의 전신 골격이 팽팽한 활시위처럼 수축했다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지옥으로 가라.”
태벽의 시그니처 타격기인 철기타(鐵器打) 주먹이 마두식의 가슴 정중앙을 직격했다.
콰아앙——!
동굴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마두식의 가슴뼈가 태벽의 무식한 철권의 질량에 밀려 안쪽으로 완전히 함몰되었다. 대동맥이 파열되고 갈비뼈 조각들이 폐와 심장을 사정없이 찔렀다. 마두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눈알을 부릅뜬 상태로 뒤로 날아가 암벽에 처박혔다.
털썩.
마두식의 신체가 바닥으로 무너지며 검은 피를 울컥 토해냈다. 그의 사지가 몇 번 경련하더니, 이내 완벽한 죽음의 침묵이 찾아왔다. 단전이 깨진 쓰레기라 멸시받던 노예의 주먹에, 광산의 악질 간수가 처참하게 종말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태벽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두식의 시신 앞으로 다가갔다. 무통식이 해제되자 어깨의 검상과 정강이뼈의 발열통이 지독하게 밀려왔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시신의 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부스럭.
마두식의 안감 깊숙한 곳에서 가죽으로 꼼꼼히 싸인 서류 뭉치가 손에 잡혔다. 태벽이 가죽을 벗겨내자,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는 청색 문양이 나타났다. 가주의 상징인 청엽검종(靑葉劍宗)의 낙화 비단 문양이었다.
태벽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서류를 펼치자, 친부인 가주 강무현의 직인이 찍힌 비밀 지시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산령 광산주 최현도는 들으라. 폐기된 서자 강태벽의 생존을 철저히 감시하되, 만에 하나 단전의 흔적이나 기이한 외가 무공의 기미를 보인다면 즉각 극비리에 처단하여 혈골동에 묻으라. 가문의 순수한 혈통에 한 치의 오점도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강무현.”
태벽의 이빨 사이로 피 섞인 저주가 새어 나왔다. 단전이 깨져 노예로 팔려 온 이 지옥에서조차, 가문은 자신을 지우기 위해 감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보다 더 깊은 배신의 한(恨)이 그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태벽은 지시서를 품 안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마두식의 죽음을 완벽한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는 주먹에 사슬을 감고, 갱도 천장을 지탱하고 있던 낡은 목조 지지대를 향해 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콰직! 콰르릉!
목조 빗장이 부러지며 균열이 일어났다. 태벽이 신속하게 뒤로 물러서는 순간, 수만 톤의 낙석과 거대한 바위들이 쏟아져 내리며 마두식의 시신을 흔적도 없이 덮쳐버렸다. 완벽한 광산 붕괴 사고의 현장이었다.
태벽은 어둠 속으로 퇴각하며, 무너진 돌더미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복수의 첫걸음은 끝났다. 하지만 가문의 거대한 음모를 확인한 이상, 이제 서산령 광산 전체를 피로 물들여야 할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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