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斷骨)의 싹, 바위를 움켜쥐다
사각, 사각.
축축한 흙바닥을 밟는 발소리가 제9갱도의 무거운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정강이뼈가 완전히 박살 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던 강태벽의 전신이 일순간 얼어붙었다. 뼈 속 깊숙이 침투한 철골고(鐵骨膏)의 지독한 열기가 온몸을 불태우고 있었기에, 지금의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최악의 무방비 상태였다. 만약 순찰을 돌던 간수나 마두식의 사냥개라면 이대로 꼼짝없이 자해 수련 사실이 들통나 목이 날아갈 터였다.
태벽은 가쁜 호흡을 억지로 죽이며 왼손 손가락을 바닥에 밀착시켰다. 다리는 움직이지 않더라도, 습격이 가해지는 순간 상체의 반동만으로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겠다는 야수 같은 독기가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단단한 암반 바닥을 긁으며 둔탁한 마찰음을 냈다.
그때, 어둠을 뚫고 희미한 등불 불빛이 공동 안쪽을 비추었다. 가죽 등롱의 은은한 불빛 사이로 나타난 실루엣은 장대하고 위협적인 간수의 체구가 아니었다.
삐쩍 마르고, 얼굴에 검은 쳇가루가 잔뜩 얼룩진 작은 체구.
“태, 태벽 형……?”
조심스럽고 가녀린 목소리. 태벽을 걱정하며 제9갱도의 좁은 틈새를 기어 들어온 인물은 다름 아닌 소년 노예, 돌이였다.
태벽은 그제야 잔뜩 긴장시켰던 상체의 힘을 미세하게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강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심한 고열 때문에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돌이…… 너가 왜 여기에……”
태벽의 갈라진 목소리에 돌이가 깜짝 놀라 등롱을 내려놓고 급히 달려왔다. 돌이는 태벽의 몰골을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신이 피와 땀, 그리고 정체불명의 검고 끈적이는 고약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오른쪽 정강이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주저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형! 다, 다리가 왜 이래요? 설마 낙석에 깔린 거예요? 내가 간수들을 불러올게요! 약손 사부님이라도——”
“시끄럽다. 조용히 해.”
태벽이 으스러진 이빨 사이로 차가운 명령을 뱉어냈다. 그 서리발 같은 안광에 돌이는 순간 숨을 턱 들이쉬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겁이 많으면서도 태벽의 앞에서는 어떻게든 용기를 쥐어짜던 소년이었기에, 돌이는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은 채 눈물만 그렁그렁 흘렸다.
“간수들을 부르면…… 나와 너, 둘 다 개죽음이다. 저기 떨어진 단지부터 치워라.”
태벽이 턱 끝으로 가리킨 곳에는 뚜껑이 열린 채 검은 연고가 묻어 있는 철골고 단지가 놓여 있었다. 돌이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광산의 금기이자 밀수된 약재임을 눈치채고, 떨리는 손으로 단지를 수거해 공동 구석의 바위 틈새 깊숙이 숨겼다. 그리고 주변의 핏자국을 흙으로 덮어 은폐했다.
“형, 진짜 괜찮은 거예요? 뼈가 완전히 부러졌잖아요…… 어떻게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참았어요?”
돌이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태벽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기이한 일이었다. 철골고의 검붉은 연고가 골수 속으로 스며들면서, 태벽의 몸속에 잠재되어 있던 특이 체질인 야수골(野獸骨)의 생명력이 폭발적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보통 인간이라면 평생 다리를 절어야 할 치명적인 골절이었지만, 그의 정강이뼈 세포들은 비정상적인 속도로 증식하고 있었다.
우드득, 우두득.
피부 아래에서 뼈마디가 스스로 움직이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괴한 소리가 정적 속에서 울렸다. 부러진 정강이뼈의 미세한 균열 틈새마다 철골고의 단단한 철 성분이 스며들어 골밀도를 무한히 압축하고 있었다. 뼈가 다시 붙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발열 발작은 태벽의 전신을 태워버릴 듯 뜨거웠지만, 재생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동이 트기 직전의 묘한 시간, 태벽은 천천히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었다.
기적 같게도, 완전히 주저앉았던 다리가 몸을 지탱하기 시작했다. 태벽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을 딛자, 둔탁하고 묵직한 마찰음이 갱도 바닥을 울렸다. 정강이뼈가 이전보다 비정상적으로 두껍고 단단하게 재생되어 있었다. 피부 겉면에는 검붉은 철골고의 기운이 융합되면서 기이하고 단단한 켈로이드 흉터가 길게 남았다.
단골 초기(斷骨 初期).
스스로 자신의 다리뼈를 부러뜨리고 철골고를 발라 골밀도를 압축하는 철기단골공의 첫 단계가 마침내 태벽의 육체에 그 싹을 틔운 것이다. 아직은 완벽한 강철 뼈는 아니었지만, 일반 성인 장정 세 명의 완력을 지탱할 수 있는 질량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또한, 밤새 통증을 참기 위해 바위 바닥을 짓개기며 움켜쥐었던 손가락 뼈 역시 미세하게 밀도가 상승하여, 악력을 극대화하는 ‘철포악(鐵포악)’의 기초가 다져지고 있었다.
“형…… 걸을 수 있는 거예요?”
돌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벽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가 회복된 것은 다행이었지만, 몸무게가 미세하게 증가한 듯 발걸음이 이전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뼈 속에 침투한 철 성분의 무게 때문이었다. 발목에 채워진 흑철 쇠사슬이 걸을 때마다 둔탁한 쇳소리를 냈다.
“가자. 날이 밝기 전에 막사로 돌아가야 한다.”
태벽은 돌이의 어깨를 짚으며 갱도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지옥 같은 서산령 광산은 그들에게 그리 쉽게 안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제9갱도의 좁고 가파른 출구를 빠져나와 중앙 통로로 접어든 순간, 저 멀리서 음산한 불빛과 함께 비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거기 기어 나오는 쥐새끼들은 누구냐?”
태벽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통로 모퉁이를 돌아서 나타난 인물은 붉은 가죽 옷을 걸치고 가시 박힌 쇠채찍을 허리에 찬 사내, 악질 간수 마두식이었다.
마두식은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횃불을 높이 들어 태벽과 돌이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의 뱀 같은 눈매에 의심과 가학적인 탐욕이 번뜩였다.
“오호라, 청엽검종의 고귀하신 사생아 도련님 아니신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삐쩍 마른 놈은 쥐새끼처럼 어딜 쏘다니는 거지? 야간 통행은 즉각 태형이라는 광산의 규칙을 잊었나 보군.”
마두식이 천천히 다가오며 허리춤에서 가시 박힌 쇠채찍을 풀어냈다. 채찍의 철편 마디들이 바닥에 쓸리며 쇳소리를 냈다. 돌이는 공포에 질려 태벽의 등 뒤로 몸을 숨겼고, 태벽은 마두식의 걸음걸이와 어깨의 각도를 예리하게 주시했다.
어린 시절 가문에서 단전이 폐기당하고 이곳으로 팔려 오던 날, 자신을 조롱하며 첫 채찍질을 가했던 자가 바로 눈앞의 마두식이었다. 태벽의 등에 새겨진 수많은 채찍 흉터의 절반은 이 자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두식 간수님…… 제9갱도 붕괴 조짐이 보여 정찰을 다녀온 것뿐입니다.”
태벽은 철저히 힘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무력한 노예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하지만 마두식은 속아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태벽의 몸에서 풍기는 기묘한 철골고의 비린내와, 다리를 절지 않고 똑바로 서 있는 기이한 자세에 강한 의구심을 품었다.
“정찰? 하, 노예 놈이 핑계는 좋구나. 내 눈은 속이지 못한다. 어제 분명 무거운 바구니를 짊어지다 다리가 완전히 꺾여 주저앉은 것을 보았는데, 지금은 멀쩡히 서 있군. 꾀병을 부리며 노역을 피하려 한 것이 분명해!”
마두식의 목소리에 독기가 서렸다. 사실 그는 태벽의 몸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완력의 기운에 미세한 경계심을 느끼고 있었다. 내공 한 줌 없는 폐물이라 여겼던 놈이 하루아침에 다른 기상을 풍기자,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 것이다. 마두식은 그 경계심을 가혹한 폭력으로 짓눌러 굴복시키고자 했다.
“오늘 네놈의 그 고집스러운 눈깔과 뼈마디를 완전히 으스러뜨려 주마!”
쉬이익——!
마두식이 내력을 돋우며 쇠채찍을 공중으로 휘둘렀다. 삼류 초입의 미약한 내공이었지만, 채찍 끝에 실린 파괴력은 성인의 두개골을 단숨에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가시 박힌 흑철 채찍이 좁은 갱도 벽면을 스치며 불꽃을 일으켰고, 이내 태벽의 안면을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다.
“형! 피해요!”
돌이가 비명을 질렀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머리가 깨져 즉사할 궤적이었다. 하지만 태벽의 눈에는 마두식의 채찍이 날아오는 어깨의 회전 각도와 발끝의 방향이 너무나 선명하게 읽혔다. 어린 시절부터 매질을 당하며 뼈에 새겨두었던 마두식의 공격 습관이었다.
태벽은 피하는 대신 신체 제어술인 ‘연골보(軟骨步)’를 전개했다.
두 발은 대지에 굳건히 고정된 채, 그의 척추와 목뼈가 순간적으로 기이한 각도로 꺾였다.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상체가 나뭇가지처럼 부드럽게 뒤로 비껴갔다. 흑철 채찍의 날카로운 가시가 태벽의 코끝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채찍이 가르는 서늘한 바람 소리가 갱도 내부를 찢었다.
“뭐, 뭐냐?!”
마두식이 경악했다. 인간의 관절 구조상 도저히 불가능한 각도로 기습을 회피한 것이다. 당황한 마두식이 급히 채찍을 회수하기 위해 손목을 튕기며 내력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태벽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태벽의 왼손이 번개처럼 허공을 가르며 뻗어 나갔다. 밤새 손가락 뼈를 으스러뜨리며 단련했던 악력 기예, 철포악(鐵포악)의 손아귀가 날아드는 채찍 끝을 정면으로 움켜쥐었다.
철컥——!
가시 돋친 흑철 채찍의 끝자락이 태벽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미친 노예 놈이 맨손으로 채찍을……!”
마두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리 내공이 약하다 한들, 쇠가시가 촘촘히 박힌 채찍을 맨손으로 잡는 것은 손가락이 통째로 잘려 나갈 미친 짓이었다. 마두식은 이빨을 악물며 단전에 남은 모든 내력을 폭발시켜 채찍을 뒤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으랴앗! 놔라!”
채찍에 실린 내공의 진동이 태벽의 손바닥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날카로운 쇠가시들이 태벽의 손바닥 가죽을 깊숙이 파고들며 찢어발겼다. 붉은 피가 채찍 마디를 타고 뚝뚝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극심한 통증이 손끝을 타고 뇌로 흘러들었지만, 태벽은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깊은 심연처럼 고요했다. 다리뼈가 박살 나던 고통에 비하면, 손바닥 가죽이 찢어지는 통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태벽은 새로이 제련된 오른쪽 정강이뼈에 온 힘을 실어 대지를 단단히 디뎠다. 단골 초기의 골밀도가 압축된 다리가 쐐기처럼 지면에 고정되자, 마두식이 아무리 힘을 써도 태벽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순수한 골격의 질량과 지면 접지력이 마두식의 삼류 내공을 완벽히 상쇄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태벽은 왼손 손가락에 철포악의 아귀힘을 집중했다.
피부 아래의 손가락 뼈마디들이 쇠사슬처럼 단단하게 맞물리며 기괴한 압력을 뿜어냈다.
끼이이익——! 콰직!
소름 끼치는 금속의 파열음이 제9갱도를 메웠다.
마두식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태벽의 손아귀 안에서, 그 단단한 흑철 채찍 끝의 쇠가시들이 물리적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찌그러지며 납작하게 으스러지고 있었다. 채찍을 이루던 철편 마디마디가 태벽의 무식한 골격 경도에 밀려 형체도 없이 구겨졌다.
“아, 아앗…… 으아악!”
마두식은 채찍을 통해 전해지는 기괴한 진동과 완력에 압도당해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그의 손에 쥐여져 있던 채찍은 이미 끝부분이 뭉개진 고철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태벽은 피투성이가 된 왼손을 천천히 내리며, 찌그러진 채찍 조각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쇳조각이 구르는 소리가 유난히 차갑게 울렸다. 태벽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마두식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살기와 무쇠 같은 기상이 마두식의 목을 조여왔다.
“마두식 간수님.”
태벽의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으나, 그 안에는 뼈를 부수는 무인의 서늘한 독기가 가득 차 있었다.
“다시는 이 아이를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를 자극하지 마십시오.”
마두식은 바닥을 기며 뒤로 물러섰다. 평생 짐승처럼 짓밟고 조롱했던 노예 놈의 눈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초인의 기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단전이 파괴된 폐물이 어떻게 이런 괴물 같은 완력을 구사하는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몸을 지배하는 생리적인 공포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이, 이 괴물 같은 놈…… 감히 간수를 습격하다니…… 최현도 나리께서 가만두지 않으실 거다!”
마두식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찌그러진 채찍을 수거하고는, 도망치듯 어두운 통로 너머로 굴러 가 버렸다. 그의 다급한 발소리가 멀어지는 동안, 태벽은 찢어진 손바닥을 꽉 쥐었다. 상처 틈새로 흐르는 피가 뜨거웠지만, 뼈는 단 한 마디도 상하지 않았다.
돌이가 경외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태벽을 바라보았다.
“형…… 방금 그건 대체 무슨 힘이에요?”
태벽은 대답 대신 멀어지는 마두식의 발소리를 노려보았다. 마두식은 겁을 먹고 물러갔지만, 이 기이한 사실을 반드시 광산주 최현도에게 밀고할 터였다. 시간이 없었다. 가혹한 지옥에서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태벽의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