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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 관군의 포위, 민초들의 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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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령의 차가운 새벽바람이 성벽 위를 쓸고 지나갔다.


성벽 위에 우뚝 선 강태벽의 전신에서는 얼음장 같은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철천의 깊은 냉천수 속에서 뼈를 담금질한 이후, 그의 체온은 영구적으로 낮아져 있었다. 검붉은 철색 무늬가 피부 아래의 굳건한 골격을 따라 기이한 문양처럼 짙게 고착화되어 있었다. 그가 아주 미세하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성벽의 거친 석판이 수백 근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쩍쩍 비명을 질렀다.


태벽의 오른손에는 장님 대장장이 철무진이 남긴 평생의 유산, 백 근 무게의 대장간 망치가 쥐여 있었다. 왼손목과 주먹에는 피와 쇳가루가 용융되어 검붉은 빛을 뿜어내는 철기 패왕 사슬이 칭칭 감겨 있었다. 전날 배신자 임가를 처단할 때 막아섰던 손바닥의 가벼운 자상에서 흘러내린 피가 사슬의 틈새를 적셔 차갑게 굳어 있었다.


성채 연무장 바닥에는 방금 전 처단된 배신자 임가의 시신이 가마적때기에 대충 덮인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 비참한 종말을 내려다보는 노예들의 눈빛에는 서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태벽아.”


옆에 서 있던 거구의 의형제, 칠성이 흑철 곤봉을 단단히 움켜쥐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긴장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안개 너머를 보아라. 저놈들, 장난이 아니구나.”


성벽 아래, 서산령의 황량한 대지 위로 횃불의 붉은 바다가 일렁이고 있었다. 서산령 포도청 현감이 직접 이끌고 온 일천 명의 정예 관군과 도성에서 은밀히 고용된 잔혹한 용병들이 철기 성채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찰갑과 철제 방패가 횃불 빛을 받아 서늘한 도광을 사방으로 뿜어냈고, 군마들의 거친 콧김 소리가 지면을 타고 성벽 위까지 둔탁하게 전해졌다.


스으으으.


관군의 선두에서 방패병들이 대형 철제 장방패를 맞물리며 철벽 같은 군진을 형성했다. 그 뒤편으로 대형 발석차(發石車) 서너 대가 기괴한 기계음을 내며 성채를 향해 포신을 들어 올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쇠뇌 부대의 시위 소리가 밤하늘의 정적을 찢어발겼다.


다닥, 다닥.


화려한 관복 위에 가벼운 철갑을 덧댄 사내가 기마를 몰아 군진 앞으로 나섰다. 서산령의 부패한 기득권이자, 최현도와 밀거래를 통해 노예들의 고혈을 짜내던 포도청 현감이었다. 현감은 황동으로 만든 확성기를 입에 대고 성채를 향해 오만하게 소리쳤다.


“성 안의 비천한 도망자 놈들은 들어라! 너희를 선동한 가문의 사생아 강태벽은 이미 대역죄인으로 지정되었다! 지금 당장 성문을 열고 최현도의 금고에서 훔친 비자금 장부와 청엽검종의 백옥 인장을 바쳐라! 그리고 순순히 목에 사슬을 찬다면, 현감인 나의 자비로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현감의 목소리가 협곡을 타고 성채 내부로 무겁게 울려 퍼졌다.


그 기만적인 항복 권고에 성벽 아래 모여 있던 삼백 명의 노예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평생을 사슬에 묶여 짐승처럼 살아온 이들이었다. 일천 대군의 위압감과 공성 병기들의 웅장한 실루엣 앞에,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던 노예의 본능적인 공포가 다시금 고개를 든 것이다.


“정말…… 항복하면 살려주는 것일까?”


“우리가 일천 명의 군대를 상대로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몇몇 노예들이 쇠사슬을 쥔 손을 바르르 떨며 나지막이 웅얼거렸다. 절망의 패배주의가 차가운 안개처럼 노예 군단 사이로 스며들려 했다.


철기방의 방주 철수가 이빨을 갈며 흑철 파천추를 성벽 바닥에 내리찍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으나, 노예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완전히 되돌리기에는 부족했다.


그때, 강태벽이 천천히 성벽 앞으로 걸어 나갔다.


수백 근에 달하는 강철 골격의 무게가 실린 그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성벽 전체를 울렸다. 쿵, 쿵, 쿵. 쇳소리가 섞인 둔탁한 발소리가 연무장 마당의 노예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켰다.


태벽은 성벽 난간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갈라진 쇳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으나, 그 안에는 대지를 뒤흔들 듯한 웅장한 기상이 서려 있었다.


“사슬의 무게를 잊었는가.”


태벽의 첫 마디에 요새 전체가 숨을 죽였다.


“너희의 발목을 옥죄던 그 녹슨 쇠붙이의 차가움과, 살가죽을 찢어발기던 채찍의 고통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저들이 말하는 자비란, 너희의 목에 다시 개줄을 채우고 평생 어두운 갱도 속에서 철광석을 캐다 죽게 만드는 노역뿐이다.”


태벽은 주먹에 감긴 검붉은 철기 패왕 사슬을 높이 치켜들었다. 사슬의 고리들이 새벽빛을 받아 검붉은 살기를 뿜어냈다.


“자유는 구걸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 저들이 입은 비단옷과 화려한 갑옷 뒤에 숨은 위선과 탐욕을 보아라. 스스로 피땀을 흘려 사슬을 푼 자만이 이 대지를 딛고 설 자격이 있다. 나는 다시는 무릎 꿇지 않겠다. 내 뼈가 부러져 가루가 될지언정, 저들의 목뼈를 주먹으로 부러뜨리며 서서 죽겠다!”


태벽의 포효가 성채 내부의 어두운 암반을 공명시키며 노예들의 심장 깊숙한 곳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뼈저린 한(恨)과 분노가 그들의 짓밟힌 영혼에 불을 지폈다.


“형님의 말이 맞다!”


칠성이 흑철 곤봉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사납게 울부짖었다.


“다시는 사슬을 차지 않는다! 죽더라도 싸우다 죽겠다!”


“다시는 사슬을 차지 않는다!”


“싸우자!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내자!”


삼백 명의 노예들이 일제히 쇠사슬과 흑철 곤봉을 흔들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에서 공포가 사라지고, 결사항전의 뜨거운 투지가 용광로처럼 들끓어 올랐다. 철기방의 대장장이 무사들 역시 붉은 망치 깃발을 흔들며 무기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성벽 아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포도청 현감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험악해졌다.


“미천한 광산의 쥐새끼들이 기어이 개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전 군, 공격하라! 성채를 완전히 무너뜨려 흔적도 남기지 마라!”


현감의 서리발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쿠구구구구—!


관군의 대형 발석차가 가동되며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무쇠 밧줄이 풀려났다. 용광로의 불꽃을 머금은 거대한 바위들이 밤하늘을 붉은 궤적으로 수놓으며 요새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전면전의 포성이 서산령 협곡 전체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콰아아아앙—!


첫 번째 불타는 바위가 철기 성채의 좌측 성벽 상단을 직격했다. 폭발적인 물리 충격과 함께 거대한 석조 구조물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고, 뜨거운 화염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성벽을 지키던 철기방 단원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화염 속으로 휩쓸려 떨어졌다.


태벽은 무너져 내리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수성전으로는 이 압도적인 공성 병기와 일천 명의 대군을 막아낼 수 없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성채는 무덤이 될 뿐이었다. 머리를 쳐야 했다. 저 아래, 방패벽 뒤에서 오만하게 지휘하고 있는 현감의 목을 직접 꺾어버려야만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태벽은 오른손에 쥔 철무진의 대장간 망치를 양손으로 단단히 고쳐 잡았다. 주먹의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거친 마찰음을 냈다.


만성 관절통으로 무릎이 쑤셔왔지만, 그의 무통식 상태의 이성은 흔들림이 없었다. 태벽은 무너져 내리는 성벽의 가장자리, 깎아지른 절벽 위로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관군의 대형 발석차에서 날아온 불타는 바위들이 요새 성벽을 무너뜨리며 전면전의 포성이 울려 퍼지자, 태벽은 성벽 아래로 직접 뛰어내리는데...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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