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독(骨毒)의 역습, 차가운 신체
회랑의 차가운 석판 바닥에 쓰러진 강태벽의 시야는 암전되기 직전이었다.
단 한 모금의 내공도 쓰지 못하는 육체. 오직 스스로 뼈를 부러뜨리고 그 틈새에 철 성분을 밀어 넣는 철기단골공(鐵器斷骨功)의 가혹한 대가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청엽검종의 일류 검수 조대성을 격살하기 위해 전신의 관절을 억지로 비틀고, 뼈마디의 수축과 팽창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역골경(逆骨勁)을 폭발시킨 대가는 참혹했다.
피부 아래, 뼈 깊숙한 곳에서부터 쩍쩍 갈라지는 듯한 균열음이 뇌리를 때렸다.
“으…… 윽!”
태벽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핏덩이가 뿜어져 나왔다. 흘러내린 피는 기이하게도 탁하고 어두웠으며, 석판 바닥에 닿자마자 서늘한 냉기를 풍겼다. 단순한 혈액이 아니었다. 뼈 속에 주입되어 골격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지탱해 주던 만년현철의 독기, 즉 골독(骨毒)이 전신 혈맥으로 무섭게 역류하고 있었다.
과거 귀곡동 지하의 한철천(寒鐵川) 얼음물 속에서 뼈의 열독을 식히며 담금질했던 만년 한기의 기운이, 이번에는 사지 관절을 얼려버리는 죽음의 덫으로 변해 있었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손가락 끝부터 서서히 감각이 사라졌다. 피부는 시퍼렇게 죽어가고, 관절마디마다 쇳가루를 가득 채워 넣은 듯 뻣뻣하게 굳어갔다. 수백 근에 달하는 강철 골격의 질량이 자신의 육체를 짓누르는 감옥이 되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태벽아! 태벽아!”
희미해져 가는 의식의 경계선 너머로 거친 발소리와 함께 찌든 술 냄새와 매캐한 약초 향이 훅 끼쳐왔다.
약손 사부였다. 광산의 야수 같은 간수들을 치료하던 돌팔이 의원이자, 태벽이 뼈를 부러뜨릴 때마다 독문 침술로 그의 생명줄을 붙잡아주던 유일한 의학적 조력자. 그의 영악하고 주름진 얼굴이 극도의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 이 미친 독종 놈이……! 내공도 없는 몸뚱이로 일류 무사의 검기를 맨몸으로 받아내고 뼈를 그렇게 쥐어짰으니 골독이 터지지 않고 배기겠느냐!”
약손 사부가 다급히 태벽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맥박을 짚는 그의 손가락 끝이 사정없이 떨렸다. 맥박은 일 마디에 겨우 서너 번 뛸 정도로 느려져 있었고, 그마저도 딱딱하게 굳은 쇳덩어리가 혈관을 막아서고 있는 듯 기이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철독이 심장 직전까지 밀고 들어왔다! 이대로 혈맥이 완전히 굳어버리면, 네놈은 살아있는 강철 석상이 되어 숨이 끊어질 게다!”
약손 사부가 허리춤에서 낡은 은침 주머니를 펼쳐 들었다. 그의 손놀림은 영악한 돌팔이 의원의 그것이 아니었다. 오직 사람의 기혈과 독소의 흐름만을 평생 연구해 온 대가의 손길이었다.
“용이! 어서 화로의 불을 피우고 뜨거운 모래를 가져와라! 칠성이는 태벽이의 상체를 붙잡아! 절대로 뼈마디가 완전히 맞물려 잠기지 않게 해야 해!”
성채 내부의 좁은 회랑으로 용이와 철기방 단원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태벽의 단단한 신형을 지탱하려 했다. 하지만 현철과 융합되어 일반 성인의 서너 배 무게에 달하는 태벽의 육체를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장정 셋이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태벽아, 이 악물어라! 독소 중화침법(毒素 中化針法)을 전개하겠다!”
핏! 피싱!
약손 사부의 손끝이 번뜩이며 길고 얇은 은침 세 자루가 태벽의 척추와 대추혈(大椎穴) 주변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은침이 살가죽을 뚫고 뼈막에 닿는 순간, 깡! 하는 나지막한 쇠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태벽의 전신이 발작하듯 뒤틀렸다.
“우으으윽!”
태벽은 이빨을 악물며 비명을 삼켰다. 뇌로 가는 고통을 억누르는 무통식(無痛式)을 시전하고 있었음에도, 골수 깊은 곳에서 은침과 철독이 정면으로 충돌하며 일어나는 진동은 영혼을 찢어발기는 듯한 격통으로 다가왔다. 은침이 꽂힌 혈도 주변의 피부가 검붉은 자색으로 물들며 탁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약손 사부는 멈추지 않고 태벽의 등뼈를 무거운 나무 부목으로 쉴 새 없이 두들겼다. 철독 조율술(鐵毒 調律術)이었다. 타격이 가해질 때마다 태벽의 골격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며 역류하던 철독의 흐름이 아주 미세하게 비틀려 분산되기 시작했다.
“한철천의 한기가 뼈 속에 갇혀 철독을 응고시키고 있어! 내공이 있다면 기운으로 녹여내련만, 네놈은 단전이 깨진 범인이 아니더냐! 오직 내 침술과 네놈의 불굴의 의지만으로 이 쇳물을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
약손 사부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려 태벽의 찢어진 마의 위로 떨어졌다.
태벽은 어둠 속에서 정신을 집중했다. 단전의 기운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밤마다 정강이뼈를 부러뜨리며 새겨 넣은 불굴의 골격이 있었다. 그는 심장으로 밀려드는 차가운 골독의 기운을 억지로 밀어내기 위해, 전신의 미세한 근육과 골막의 탄성을 쥐어짜 은침의 자극에 반응시켰다.
우드득, 우두둑.
피부 아래에서 뼈마디가 스스로 움직이며 은침의 궤적을 따라 철독의 탁한 피를 밀어내는 기괴한 소리가 회랑을 채웠다. 약손 사부가 침을 찌르고 두들기기를 수십 번, 마침내 태벽의 등뼈 주변에서 시커멓게 응고된 철독의 핏덩어리들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후우…… 후우…….”
약손 사부가 은침을 거두며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태벽의 차갑게 식어 가던 피부에 아주 미세하게 온기가 돌기 시작했으나, 그의 피부 아래 새겨진 검붉은 철색 무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짙고 선명해져 있었다. 체온은 일반인보다 영구적으로 낮아진 상태였다.
태벽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진 철무진의 대장간 망치를 고쳐 잡았다. 주먹에 감긴 쇠사슬이 쩔렁이며 차가운 마찰음을 냈다.
“사부…… 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소.”
태벽의 갈라진 쇳소리에 약손 사부가 씁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하지. 방금 한 처치는 임시방편에 불과해. 네놈의 뼈 속에 주입된 만년현철은 너무나 고밀도의 기금이다. 네놈의 유기적인 뼈 세포가 그 거대한 금속의 질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독소를 뿜어내는 것이지. 쉽게 말해, 뼈와 철이 서로를 갉아먹고 있다는 뜻이다.”
약손 사부가 태벽의 단단한 무릎 관절을 짚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골독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고 뼈와 현철을 완벽히 동화시키려면 촉매가 필요하다. 뼈 속 깊숙이 침투해 강철 골격의 중심을 잡고 유연성을 부여해 줄 희귀 액체 금속…… ‘현철 골수 원액(玄鐵骨髓 原液)’이 있어야 해.”
“현철 골수 원액…….”
태벽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래. 하지만 그 귀한 기금은 제국의 황실이나 명문 세가조차 함부로 구하지 못하는 보물이다. 변방의 이 황량한 광산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오직 무법지대인 ‘흑무성(黑霧성)’의 지하 세계, 그중에서도 피와 은자가 요동치는 지하 격투장 ‘흑호가(黑虎家)’의 암시장에만 극비리에 흘러나온다고 들었다.”
약손 사부의 진단은 명확했다. 이 성채에 머물며 안주하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가문의 추격자들을 부러뜨리고 자신의 육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더 깊고 어두운 지옥인 흑무성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때, 흙방 문을 열고 용이가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들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예리하게 갈라진 푸른 강철 검날의 파편이었다.
“사형, 성채 외곽의 무너진 귀곡계곡 낙석 장벽 틈새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황실 추적자 사공혁이 쓰던 가문 하사의 명검, ‘추풍검(追風劍)’의 부러진 파편입니다.”
태벽이 그 파편을 받아 쥐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검날의 감촉에서 대총관 사공도의 서늘한 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사공혁은 낙석 아래 매몰되었으나 그의 부하들과 가문의 추적망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조대영이 가문으로 도망쳐 이 성채의 위치와 태벽의 생존을 보고하면, 청엽검종은 더 강력한 초일류 고수들을 보낼 터였다.
시간이 없었다.
태벽이 대장간 망치를 굳건히 짊어지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바로 그 순간, 흙방의 낡은 나무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형! 태벽 형!”
쳇가루로 얼굴이 얼룩진 소년 노예 돌이가 헐떡이며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작은 손에는 초록색 가루가 묻은 가죽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우물가와 식량 창고 주변에서 발견했어요! 누군가 성채 내부의 식수와 식량에 마비 독을 풀려던 배신의 흔적입니다!”
돌이의 다급한 외침이 차가운 정적을 찢어발겼다. 약손 사부의 은침술로 간신히 안정을 찾은 아침, 보이지 않는 배신의 독기가 이미 성채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태벽의 안광이 어둠 속에서 서리발처럼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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