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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방과의 조우, 약속된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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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편 절벽 위에서 수백 장의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새벽안개를 뚫고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서산령 포도청의 궁수 부대와 살아남은 가열의 잔당들이 시퍼런 화살촉을 강태벽 일행에게 조준하고 있었다. 피할 곳 없는 다리 위, 쇠사슬을 주먹에 감은 태벽의 양 손목 관절에서는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균열 격통이 밀려왔다. 조총 탄환을 폐골갑으로 막아낸 여파로 어깨 가죽은 벌겋게 타들어가며 피가 배어 나왔고, 한철천의 한독이 깃든 무릎은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시린 통증을 뿜어냈다.


하지만 태벽은 망치를 쥔 오른손에 한 치의 슨들림도 허용하지 않았다. 무통식(無痛式)의 평정심이 그의 뇌를 지배하는 한, 육체의 고통은 복수를 위한 연료에 불과했다.


“쏴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강 건너편에서 포교의 표독스러운 외침이 떨어지려는 찰나였다.


둥! 투우우우웅————!


지평선을 뒤흔드는 거대한 나팔 소리가 산등성이를 타고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궁수들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산등성이로 향했다. 새벽녘의 자욱한 안개를 찢고 솟아오른 것은, 이글거리는 붉은 바탕에 검은 무쇠 망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수십 장의 깃발들이었다.


“철기방(鐵器幇)이다! 철기방의 무장들이 나타났다!”


관군들의 대열에서 경악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문과 관청의 개새끼들아! 감히 우리 구역에서 무고한 민초들의 피를 흘리려 하느냐!”


산등성이를 가득 메운 붉은 파도 속에서 거구의 사내가 대포알처럼 튀어나왔다. 덥수룩한 턱수염에 억센 가죽 조끼를 걸친 사내, 철기방의 방주 철수였다. 그의 어깨에는 백 근은 족히 넘을 법한 거대한 흑철 파천추가 얹혀 있었다. 철수가 철퇴를 허공으로 붕 띄우며 포효하자, 그의 뒤를 따르는 천여 명의 대장장이 무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강 건너편 관군의 후방을 사정없이 덮쳤다.


콰아아아앙!


철수가 내리찍은 흑철 파천추가 강가 언덕의 암반을 통째로 박살 내며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관군의 궁수 부대는 미처 화살을 쏘아보지도 못한 채, 후방에서 들이닥친 철기방의 맹렬한 중병기 습격에 전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무쇠 망치와 철퇴를 든 대장장이들이 관군의 쇠갑옷을 사정없이 찌그러뜨렸고, 시퍼런 도광 대신 투박한 무쇠의 질량이 관군의 대열을 초토화했다.


“당황하지 마라! 전열을 정비해라!”


포교가 말을 몰아 도망치려 했으나, 철수의 거대한 철퇴가 그의 말목을 정면으로 후려쳤다. 뼈가 바스러지는 비명과 함께 군마가 고꾸라졌고, 포교는 진흙바닥에 처박혀 관군들과 함께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단 몇 번의 식경 만에 다리 건너편을 완벽히 포위하고 있던 관군의 복병들이 형체도 없이 와해되어 버렸다.


태벽은 오른손에 쥔 철무진의 대장간 망치를 천천히 내리며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쳇가루 가득한 새벽바람 사이로, 철수가 피 묻은 파천추를 어깨에 짊어진 채 석조 다리를 건너 태벽을 향해 걸어왔다.


철수의 장대한 체구는 칠성에 비견될 만큼 굳건했다. 그의 이글거리는 안광이 태벽의 전신을 훑었다. 피와 화약 연기로 얼룩진 누더기 마의, 양 손목과 주먹에 칭칭 감긴 검붉은 철기 패왕 사슬, 그리고 무엇보다 태벽의 오른손에 들린 낡고 묵직한 대장간 망치를 보는 순간, 철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망치는…… 장님 늙은이 철무진 사부의 것이 아니더냐?”


태벽은 대답 대신 망치를 가볍게 고쳐 쥐었다. 뼈 세포와 현철이 융합되어 몸무게가 일반인의 수 배 이상 무거워진 탓에, 그가 망치를 움직일 때마다 다리 상판에서 둔탁한 진동이 일었다.


“사부님은 숨을 거두셨소. 가문과 최현도의 기습을 막아서다 돌아가셨소.”


태벽의 갈라진 쇳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뭐라구……? 사부님이 돌아가셨단 말이냐!”


철수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상기되었다. 그는 가죽 조끼를 쥔 손에 핏줄을 세우며 망치를 바라보았다. 과거 철기방이 일어설 때 기술적 기틀을 잡아주었던 철무진은 그들에게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다.


철수는 태벽의 주먹에 감긴 사슬과 그의 굳건한 뼈대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내공 한 모금 느껴지지 않는 신체건만,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외가 무인의 압도적인 질량과 기개는 화경의 고수조차 압도할 만큼 묵직했다. 단전이 파괴된 몸으로 포도청의 두꺼운 철제 방패벽을 주먹 하나와 망치로 깨부순 괴물이 바로 이 소년이라는 사실을, 철수는 눈앞에서 확인하고 전율했다.


“네놈이…… 사부님의 진짜 의지를 이은 제자로군. 내공 한 줌 없이 오직 뼈대의 힘만으로 가문의 개들을 때려눕히다니. 기개가 실로 장하구나!”


태벽은 품속을 뒤적여 피와 먼지로 오염된 가죽 보자기를 꺼냈다. 최현도의 천금밀고에서 탈취한 서산령 광산의 검은 비자금 장부였다.


“이것을 보시오.”


철수가 장부를 받아 펼쳐 들었다. 장부의 첫 장에는 청엽검종 가주 강무현의 백옥 인장과 함께, 제국 대총관 사공도의 친필 서명과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광산에서 채굴된 고순도 흑철이 정파의 기치 뒤에서 황실의 특수 병기 제작용 비자금으로 유통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었다.


“이 위선적인 정파 놈들이…… 대총관 사공도와 결탁하여 우리 대장장이들의 피를 짜내고 있었다니! 가문의 명예를 읊조리던 청엽검종 놈들이 실상은 더러운 노예 상인들과 다를 바 없었구나!”


철수가 이빨을 사정없이 갈며 장부를 꽉 움켜쥐었다. 그의 분노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사부님의 원수이자 민초들의 고혈을 짜낸 저 정파 놈들을 내 결코 용서치 않겠다. 강형제, 그리고 철골동맹의 동지들이여! 우리 철기방은 사슬을 끊어낸 진짜 사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모두 나를 따르라. 관청과 가문의 눈길이 닿지 않는 산속 깊은 요새로 인도하겠다.”


칠성을 업고 있던 만수와 뒤편의 삼식, 그리고 아영의 얼굴에 마침내 팽팽했던 긴장이 풀리며 옅은 안도가 스쳐 지나갔. 삼백 명의 노예들은 철기방 단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쇠사슬이 끊어진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


철기방의 임시 은신처인 ‘철기 성채’는 서산령 외곽의 험준한 바위산 협곡 사이에 요새처럼 숨겨져 있었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는 결코 침투 경로를 찾을 수 없는 천혜의 요새였다. 성채 내부로 진입하자, 거대한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쇠를 두드리는 웅장한 타격음이 성벽을 울리고 있었다.


노예들은 성채 내부의 임시 처소에 여장을 풀고 마침내 무거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칠성은 약방의 거적때기 위에 뉘어졌고, 만수와 용이가 그의 곁을 지키며 독사조의 마비 독 기운을 정화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성채 구석에 마련된 작은 흙방.


태벽은 낡은 나무 침상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의 상의는 전투의 여파로 갈가리 찢겨 있었고, 어깨 가죽은 조총 탄환에 스쳐 벌겋게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양 손목 관절은 미세한 균열로 인해 징징 울려 대며 쑤셔왔고, 한철천의 혹독한 한독이 깃든 무릎은 비가 올 것처럼 습한 성채의 공기 때문에 뼈마디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만성 관절통을 유발했다.


스르릉, 툭.


태벽이 주먹에 감겨 있던 검붉은 철기 패왕 사슬을 풀어내어 침상 옆 바닥에 내려놓았다. 수백 근의 무게를 지닌 사슬이 바닥에 부딪치며 묵직한 파공음을 냈다. 어깨에 새겨진 ‘노(奴)’ 자 낙인 흉터가 그의 지친 호흡에 따라 희미하게 붉은 빛을 내뿜으며 열기를 발산했다.


그때, 흙방의 낡은 목조 문이 조용히 열렸다.


말없이 들어선 것은 벙어리 침모 아영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와 깨끗한 삼베 천, 그리고 약손 사부에게서 얻어온 상화고 고약 단지가 들려 있었다. 아영은 태벽의 상처투성이인 몰골을 보는 순간, 맑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그녀는 말없이 태벽의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따뜻한 물에 적신 삼베 천으로 태벽의 어깨에 남은 화약 자국과 피딱지를 조심스럽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거친 노역으로 굳은살이 박힌 그녀의 손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따뜻했다.


태벽은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뼈마디를 잠그고 있던 긴장이 미세하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피비린내 나는 살기로 가득 찼던 그의 안광이 아영의 슬픈 눈망울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서늘한 평온을 되찾았다.


아영은 태벽의 상처에 상화고 고약을 정성스럽게 발라주었다. 톡 쏘는 독특한 약초 비린내가 좁은 흙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가죽 붕대를 꺼내 태벽의 양 손목 관절과 어깨를 단단히 감싸 고정해 주었다. 상처를 돌보던 아영의 눈에서 참지 못한 눈물 한 방울이 태벽의 등덜미 흉터 위로 툭 떨어졌다.


태벽은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맞잡았다. 그의 무쇠 같은 손가락 마디들이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투박하게 감싸 쥐었다.


“울지 마시오. 사슬은…… 이미 끊어졌소.”


태벽의 나지막한 쇳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따뜻하게 채웠다. 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 지옥 같은 광산에서 살아 돌아온 두 사람의 짧은 평온이 성채의 밤공기 속에서 잔잔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그 평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성채 외곽의 깎아지른 절벽 위, 어둠이 짙게 깔린 바위 틈새 속에서 세 개의 음산한 그림자가 소리 없이 스며들고 있었다. 청엽검종의 가주 강무현이 태벽의 목을 거두고 비자금 장부를 회수하기 위해 급파한 정예 자객단, ‘철검삼조’의 자객들이었다. 그들의 장포 자락 사이로 차가운 검광이 새벽이슬을 받아 서리발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요새의 외곽 경비선 동선을 완벽히 파악한 채, 태벽이 머무는 처소를 향해 좁혀오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크아아아악————!”


성채 외곽 순찰로 방향에서, 요새 경비를 서고 있던 의형제 칠성의 날카롭고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한밤중의 어둠을 사정없이 찢어발기며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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