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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동의 서막, 협곡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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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령의 거친 흙바람이 목덜미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동이 트기 직전의 새벽하늘은 푸르스름한 어둠에 잠겨 있었고, 빽빽한 원시림 사이로 흐르는 공기는 뼈를 시리게 할 만큼 차가웠다.


터덜, 터덜.


강태벽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는 독사조의 마비 독침을 맞고 온몸이 굳어버린 의형제 칠성이 얹혀 있었다. 거구의 몸뚱이가 전해오는 무게는 수백 근에 달했으나, 태벽의 강철 골격은 묵묵히 그 하중을 지탱해 냈다. 왼손에는 벙어리 침모 아영의 자그맣고 거친 손이 꽉 쥐여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온기만이 태벽이 지옥 같은 살기 속에서 인간성을 붙잡아두는 유일한 줄바늘이었다.


그들의 뒤로 삼백 명의 노예들이 숨을 죽인 채 따르고 있었다. 평생을 쇠사슬에 묶여 흑철석을 캐다 죽어갈 운명이었던 자들. 마침내 관문을 부수고 탈출했다는 해방의 전율도 잠시, 험준한 서산령 외곽 삼림을 밤새 헤쳐 나오느라 그들의 얼굴에는 극도의 피로와 공포가 짙게 깔려 있었다. 숲속 어딘가에서 다시금 관군의 나팔 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노예들의 발목을 투명한 사슬처럼 죌 뿐이었다.


“태벽 도련님, 잠시 멈추시오.”


선두에서 길을 살피던 등이 굽은 늙은 노예, 만수가 마른 덤불을 헤치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노련한 안광이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 더 가면 국경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인 ‘다리목’ 강가가 나오오. 하지만 바람결에 실려 오는 냄새가 좋지 않소. 화약 탄환의 매캐한 탄내와 녹슨 철갑옷의 비린내가 숲속에 자욱하오.”


태벽은 발걸음을 멈추고 칠성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칠성은 전신 기혈이 완전히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희미하게 눈을 떠 태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태, 태벽아…… 나를 두고 가라. 이 몸뚱이는…… 짐이 될 뿐이다. 관군 놈들이…… 턱밑까지 쫓아왔어.”


“쓸데없는 소리 마시오, 형님.”


태벽의 갈라진 쇳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스승님의 망치를 쥐고 맹세했소. 이 사슬을 완전히 끊어내기 전에는 그 누구도 버리지 않는다고.”


태벽은 품속을 매만졌다. 가슴팍 마의 안감 깊숙한 곳에는 청엽검종의 백옥 인장과 최현도의 비자금 장부, 그리고 기이한 흑강 철편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그 철편은 태벽이 오른손에 쥔 철무진의 백 근 무게 대장간 망치와 미세하게 자력 반응을 일으키며, 그의 으스러진 손목 관절 뼈마디를 징징 울려 대고 있었다. 골진파를 시전한 여파로 손목 뼈에 간 미세한 균열이 격통을 질렀지만, 태벽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무통식(無痛式)의 평정심이 그의 신경을 완벽히 지배하고 있었다.


태벽은 삼식과 만수를 이끌고 삼림 경계선 너머 강가로 은밀히 다가갔다.


시야가 트이는 순간, 만수의 경고가 가혹한 현실로 드러났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가로지르는 좁은 석조 다리목. 그 입구에는 서산령 포도청의 부패한 관군 삼백여 명이 횃불을 밝힌 채 철옹성 같은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예들의 탈출을 저지하기 위해 높이 오 척에 달하는 대형 철제 장방패 수십 장을 촘촘히 맞물려 견고한 방패벽(防牌壁)을 세워두고 있었다. 방패 틈새로는 시퍼런 조총의 총구들과 날카로운 창날들이 고슴도치처럼 삐져나와 있었다.


“이런 제길…… 완전히 길목을 선점당했군.”


뒤따라온 삼식이 자물쇠 핀을 만지작거리며 이빨을 갈았다.


과거 칠성이 마비 독에 당하기 전, 곡괭이를 휘두르며 저 방패벽을 부수려 돌격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관군의 조직적인 협격 창술에 가로막혀 방패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한 채, 어깨와 가슴에 깊은 창상만 입고 처참하게 밀려나야 했다. 평범한 완력으로는 저 두꺼운 무쇠 방패벽의 결착을 결코 깨뜨릴 수 없었다.


“천한 노예 놈들은 들어라!”


방패벽 너머에서 말을 탄 포교가 확성기를 치켜들고 오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의 수장 강태벽은 이미 귀곡계곡의 낙석 아래 파묻혀 죽었다!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는다면, 광산으로 돌려보내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니라! 만약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온다면, 황실의 조총 탄환이 너희의 천박한 대가리를 모조리 뚫어버릴 것이다!”


그 위선적인 외침이 강가에 메아리치자, 뒤편에 서 있던 노예들의 대열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태벽 형이 죽었다고……?”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또다시 그 사슬을 차야 한단 말인가!”


절망과 공포가 삼백 명의 노예 군단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한 번 풀려난 자유의 기쁨이 꺾이는 순간의 좌절은 죽음보다 더 잔혹한 법이었다. 몇몇 이들은 들고 있던 곡괭이를 떨어뜨리며 흙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태벽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가 한 걸음을 내딛자, 뼈 속에 융합된 현철의 무게로 인해 젖은 흙바닥이 쿵 하고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그의 손목과 주먹에 감긴 검붉은 철기 패왕 사슬이 쩔렁이며 차가운 마찰음을 냈다.


“만수 영감, 아영이를 부탁하오.”


태벽은 아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아주며 만수에게 칠성을 넘겼다. 아영은 말없이 태벽의 누더기 옷자락을 붙잡았으나, 태벽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그의 안광은 이미 얼어붙은 빙판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태벽은 오른손으로 철무진의 백 근 무게 대장간 망치를 치켜들었다. 손목 관절의 균열이 찢어지는 듯한 격통을 질렀지만, 그는 무통식으로 그 고통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내가 길을 열겠소.”


태벽의 갈라진 쇳소리가 바람을 타고 노예들의 귓가를 때렸다. 주저앉아 울던 노예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태벽의 장대한 등을 바라보았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거인의 기상이 그들의 꺾였던 투지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태벽은 망치를 어깨에 짊어진 채, 홀로 좁은 다리목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저놈은…… 강태벽이다! 죽었다던 괴물 놈이 살아있다!”


성벽 같은 방패벽 너머에서 관군들이 그의 몰골을 알아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피와 먼지로 얼룩진 누더기 마의, 어깨에 선명하게 드러난 ‘노(奴)’ 자 낙인 흉터가 새벽안개 속에서 검붉은 빛을 발산하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당황하지 마라! 조총 부대, 사격 준비! 놈의 가슴팍에 구멍을 내라!”


포교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방패 틈새로 일제히 화약 조총의 총구들이 태벽을 조준했다. 사격 거리는 불과 삼십 보. 회피할 공간이 없는 좁은 다리목 위에서, 태벽은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타앗!


그가 디딘 석조 다리 상판이 쩌적 갈라지며 그의 신형이 탄탄한 탄성을 받고 직선으로 탄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쏴라!”


콰아아아앙————!


좁은 다리목 전체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수십 자루의 조총이 일제히 불꽃을 뿜어냈다. 자욱한 백색 화약 연기 속에서 납으로 만든 수십 발의 조총 탄환들이 공기를 찢으며 태벽의 전면을 향해 무섭게 쇄도했다.


태벽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그는 양손으로 백 근 망치를 가슴 앞에 교차해 쥐며 전신의 관절과 뼈마디를 일체화하여 고정하는 외가 방어 기예, 폐골갑(閉骨甲)을 발동했다.


우드득, 우두두둑!


그의 피부 아래에서 현철과 융합된 갈비뼈와 쇄골이 쇠사슬처럼 단단하게 맞물리며 고밀도의 무쇠 방패막을 형성했다.


퍼어억! 퍽! 퍼억!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조총 탄환들이 태벽의 어깨 가죽과 가슴팍을 사정없이 직격했다. 살가죽이 찢어지고 화약의 뜨거운 열기에 외피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화상을 입었으나, 납 탄환들은 그의 무쇠 같은 늑골과 쇄골에 닿는 순간 깡! 깡! 하는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처참하게 찌그러져 튕겨 나갔다. 탄환에 실린 일류급 화력의 충격파는 태벽의 단단한 골격을 전도체 삼아 석조 다리 바닥으로 고스란히 흘러내려 소멸했다.


“이, 이게 무슨……!”


화약 연기 너머로 태벽이 멀쩡히 걸어 나오는 광경을 본 조총병들의 눈이 공포로 뒤집혔다. 철제 갑옷마저 걸레짝으로 만드는 조총 탄환을 맨몸뚱이 하나로 튕겨내며 다가오는 인간은 무인이 아니라 괴물이었다.


“괴물이다! 저놈의 뼈는 강철로 되어 있다!”


사병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방패를 버리고 뒤로 도망치려 했다.


“도망치지 마라! 방패를 유지해라!”


포교가 칼을 휘둘렀지만, 이미 무너진 군기는 회복되지 않았다.


태벽은 적들의 방패벽 코앞까지 도달했다. 그의 오른쪽 어깨 낙인 흉터가 터질 듯한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태벽은 양손으로 철무진의 백 근 무게 대장간 망치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손목의 균열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뼈 세포의 수축과 팽창 탄성을 폭발시키는 역골경(逆骨勁)의 기예를 망치 자루에 주입했다.


“부러져라.”


태벽의 포효와 함께, 백 근의 무쇠 망치가 수천 근의 질량을 싣고 철제 방패벽의 중앙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앙————!


지진이 일어난 듯한 파괴적인 굉음이 다리목을 강타했다.


철제 장방패 수십 장이 맞물려 있던 방패벽의 중심부가 태벽의 망치 일격에 형체도 없이 찌그러지며 산산조각이 났다. 방패를 지탱하고 있던 사병 수십 명의 팔뼈와 어깨뼈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바스러지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부러진 방패 파편들이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뒤편의 관군들을 덮쳤고, 다리목의 견고했던 방어선은 단 한 방의 타격에 처참하게 붕괴해 버렸다.


관군들은 완벽한 패닉에 빠져 무기를 버리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그 광경을 본 뒤편의 노예 삼백 명이 해방의 함성을 지르며 곡괭이를 치켜들고 다리목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유의 길목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태벽은 망치를 거두며 강 건너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첫 번째 방패벽은 부수었으나, 강 건너편 언덕 위에는 가열의 잔당들과 포교들이 이끄는 수백 명의 궁수 부대가 시퍼런 화살촉을 태벽 일행을 향해 조준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끝에서 방출될 2차 일제 사격은 다리 위를 건너는 노예들을 몰살시키기에 충분했다.


태벽이 시린 무릎 관절의 통증을 참으며 망치를 치켜들고 강 건너편의 복병들을 향해 정면 돌파를 감행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투우우우웅————!


지평선 너머 산등성이에서 웅장하고 호방한 나팔 소리가 계곡 전체를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태벽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먼 산등성이를 향했다. 짙은 새벽안개를 뚫고, 붉은 바탕에 거대한 무쇠 망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진 깃발들이 물결치듯 솟아오르고 있었다.


붉은 깃발을 흔들며 다가오는 거대한 무장 집단. 그 선두에는 거대한 무쇠 철퇴를 어깨에 멘 덥수룩한 수염의 사내, 철기방의 방주 철수가 수천 명의 단원들을 이끌고 다리목을 향해 폭풍처럼 질주해 내려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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