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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대장장이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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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주께서 네놈의 단전을 폐하고 이 먼지 구덩이로 직접 팔아넘긴 진짜 이유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흐흐흑……”


강철웅이 뱉어낸 마지막 단말마가 서산령의 차가운 아침 안갯속으로 흩어졌다. 그의 손가락이 태벽의 발목에서 힘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부릅뜬 눈동자에는 죽어서도 거두지 못한 기괴한 원망과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태벽은 가만히 서서 식어가는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오른손에서는 강철웅의 검날을 맨손으로 받아내며 찢어진 가죽 붕대 사이로 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붕대 밑으로 드러난 허연 손가락 뼈마디들은 이미 만년현철의 기운과 융합되어 기이한 흑금빛을 띠고 있었다.


태벽은 무통식(無痛式)을 전개하여 밀려드는 고통을 억눌렀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 강철웅의 가슴팍 마의 안감에서 피 묻은 가죽 장부와 서신들을 꺼내 자신의 품속 깊은 곳에 찔러 넣었다. 가주 강무현과 대총관 사공도의 비자금 거래 증거. 그리고 자신의 단전 파괴 배후에 숨겨진 또 다른 음모의 실마리가 이 장부 안에 들어 있었다.


‘단전을 폐한 진짜 이유…….’


머릿속에서 의구심이 소용돌이쳤지만, 태벽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그 음모를 곱씹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저 멀리, 주조소와 광산 하단 구역 너머로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단순한 채굴의 연기가 아니었다. 대장간이 위치한 구역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한 연기였다.


“스승님……!”


태벽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최현도가 가문의 집행관 강철웅과 함께 자신을 기습하기 전, 대장간을 먼저 습격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뇌리를 스쳤다. 눈먼 늙은 스승, 철무진이 홀로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태벽은 지체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쿵! 쿵! 쿵!


그가 달릴 때마다 최현도 저택 정원의 석판 바닥이 무겁게 내려앉으며 쩌적 갈라졌다. 뼈 속에 주입된 현철의 밀도 탓에 그의 육체는 이미 일반인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수백 근의 질량을 지니고 있었다. 쇠사슬이 손목과 발목에서 쩔렁이며 거친 마찰음을 냈다. 어깨에 새겨진 ‘노(奴)’ 자 낙인 흉터가 그의 급박한 감정에 반응하듯 검붉은 빛을 발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허벅지의 자상과 체내에 침투한 화독(火毒)의 발열이 무릎 관절을 사정없이 찔러왔지만, 태벽은 이빨을 악물고 숲길을 내달렸다. 나무 사이로 붉은 화염에 휩싸인 낡은 대장간의 형체가 드러났다.


“스승님! 스승님!”


대장간 안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화로의 석탄가루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불타고 있었고, 무쇠 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대장간 한구석에서 철무진의 제자이자 젊은 노예 대장장이인 용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울부짖고 있었다.


“태벽 형! 흐흑, 태벽 형! 스승님이…… 스승님이……!”


용이의 손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누르고 있는 곳은 대장간의 거대한 무쇠 모루 옆에 기대어 쓰러진 철무진의 가슴이었다.


태벽은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철무진의 앞으로 기어가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


백발이 성성한 거인 같은 노인, 철무진은 두 눈이 먼 채로 대장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장대한 상체는 예리한 검기에 의해 깊게 찢겨 나가 있었고, 그 틈새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와 모루를 적시고 있었다. 최현도의 정예 사병들이 습격했을 때, 철무진은 태벽의 탈출로를 지키기 위해 홀로 그들의 검날을 맨몸으로 막아섰던 것이다.


“태벽……이냐……”


철무진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태벽의 방향을 향했다. 그의 갈라진 목소리에서는 이미 죽음의 한계에 부딪친 무인의 쇠약한 숨결이 묻어났다.


태벽은 다급히 품을 뒤적였다.


“약손 사부를 불러오겠습니다! 제 몸속의 야수골 생명력이라도 주입하면…… 어떻게든 상처를 지혈할 수 있을 겁니다!”


태벽이 손을 뻗어 철무진의 상처를 막으려 하자, 철무진이 굳은살이 박힌 거대한 손을 들어 태벽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늙은 스승의 손아귀 힘은 이미 장기가 파열되어 손쓸 수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기이할 정도로 묵직했다.


“쓸데없는…… 짓이다, 태벽아. 내 수명은…… 이미 가열의 채찍을 맞던 날부터 끝났었다. 억지로 붙잡아 둔 이 가죽데기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뿐이야.”


철무진은 피를 울컥 토해내며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거친 손가락이 태벽의 어깨와 팔뚝 뼈마디를 천천히 더듬었다. 으스러졌다 다시 붙으며 무쇠처럼 견고해진 태벽의 전신 골격. 철골조성(鐵骨造成)의 완벽한 기틀이 철무진의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훌륭하구나…… 뼈의 밀도가…… 이미 제국의 흑강을 넘어섰어. 내공 한 모금 없이…… 오직 스스로 뼈를 부러뜨리는 고통을 견뎌낸 육체로…… 기어이 이 경지에 도달했구나.”


철무진의 먼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려 핏빛 가득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대견함과 슬픔이 교차하는 눈물이었다.


“스승님, 제발 말씀을 아끼십시오.”


태벽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평생을 가문의 핍박 속에서 독종처럼 살아온 그였지만, 자신에게 단전 없이도 강해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유일한 스승의 죽음 앞에서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찢어지는 듯한 슬픔이 밀려왔다.


철무진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태벽의 손을 더욱 세차게 쥐었다.


“태벽아…… 내 진짜 정체를…… 숨겨왔던 이야기를 들어라.”


철무진의 목소리가 대장간의 꺼져가는 화로 불꽃처럼 흔들렸다.


“나는 그저 광산의 장님 대장장이가 아니다. 과거…… 천하를 호령했으나 역사 속에서 추악하게 지워진 외가 무공의 종주 문파, ‘철검문(鐵劍門)’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태벽의 눈동자가 커졌다. 철검문. 가문의 서재에서 얼핏 읽었던, 수십 년 전 사파의 요술을 부린다는 누명을 쓰고 정파 무림에 의해 멸문당했다던 그 문파의 이름이었다.


“정파라는 위선자 놈들…… 특히 청엽검종(靑葉劍宗) 가문 놈들은 자신들의 화려한 검기 뒤에 숨은 가식을 지키기 위해, 맨손으로 검을 부러뜨리는 우리 철검문의 힘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우리를 마도(魔道)로 몰아 멸문시키고, 내 두 눈을 멀게 한 뒤 이 어두운 서산령 광산의 노예로 매각했지.”


철무진의 이빨 사이로 뼈에 사무친 한(恨)과 분노가 피 섞인 음성으로 새어 나왔다.


“내가 평생 이 먼지 구덩이에서 쇠를 두드리며 버틴 것은, 오직 가문 놈들의 목을 부러뜨릴 후계자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하늘이…… 내 단전이 폐기된 너를 내게 보내주었지.”


철무진은 고개를 돌려 모루 옆에 놓여 있는 낡고 거대한 무쇠 망치를 가리켰다.


“철무진의 대장간 망치…… 평생 내가 쇠를 두드리며 내 외가 기운과 한을 불어넣은 유품이다. 백 근에 달하는 이 무거운 쇳덩이가 이제 네 복수의 병기가 될 것이다.”


용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놓여 있던 거대하고 투박한 무쇠 망치를 태벽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망치의 자루에는 철무진이 평생 쇠를 다루며 남긴 손때와 불꽃에 그을린 자국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망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묵직한 질량감이 대장간 바닥을 지탱하는 듯했다.


철무진이 태벽의 손을 망치 자루 위에 얹어주며 마지막 남은 숨을 쥐어짜 소리쳤다.


“태벽아! 내 마지막 유언을 들어라! 저 위선적인 검가 놈들의 칼날을…… 그 가식적인 검기들을 네 강철 주먹과 이 망치로 모조리 부러뜨려라! 단전 없는 범인도 세상의 정점에 설 수 있음을 천하에 증명해라!”


“스승님……!”


“가라…… 사슬을 끊고…… 천하로 나아가라……”


철무진은 태벽의 손을 잡은 채 마지막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손에 힘을 풀었다. 그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고, 장대했던 거인의 숨결이 완전히 멈추었다. 대장간의 마지막 화로 불꽃이 툭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었다.


태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스승의 주름지고 굳은살 박힌 차가운 손을 꽉 쥔 채, 피눈물이 고인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파멸적인 분노가 그의 전신 강철 뼈대를 맹렬하게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주먹에 감긴 흑철 쇠사슬이 쩔렁이며 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태벽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신형은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음산해 보였다. 그는 바닥에 놓인 백 근 무게의 대장간 망치를 오른손으로 단단히 움켜쥐었다. 망치를 들어 올리는 순간, 대장간 바닥의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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