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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러진 빗장, 배신의 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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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가 서산령의 황량한 산맥을 타고 내려와 최현도의 저택 정원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차가운 이슬을 머금은 정원의 석판 바닥 위로, 집행관 강철웅의 독니철편(毒牙鐵鞭)이 뱀처럼 기괴한 궤적을 그리며 쏘아져 왔다.


쒸이이익—!


공기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철편 끝에 달린 날카로운 쇠가시들이 강태벽의 무릎 관절을 매섭게 노렸다. 강철웅이 펼치는 청엽검종의 비전, 음풍철편술(陰風鐵鞭術)이었다. 철편을 타고 흐르는 이류 극성의 음풍(陰風) 내공은 안개마저 서리발로 바꾸어버릴 만큼 서늘하고 예리했다.


태벽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최현도의 화독(火毒)과 한철천의 냉독(冷毒)이 체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며 무릎 마디마디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만성 관절통을 유발하고 있었고, 현철과 융합되어 수백 근에 달하는 강철 골격의 무게는 기민한 신법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벽의 안광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왼발을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대지를 굳건히 딛고 뼈마디를 잠갔다. 외가 방어 심법, 폐골결(閉骨結)이었다.


퍼어억—!


독니철편의 가시들이 태벽의 무릎 관절을 정확히 직격했다. 가죽 마의가 찢겨 나가며 시뻘건 피가 튀었지만, 철편이 뼈에 닿는 순간 둔탁한 금속성 파열음이 울렸다. 쇳소리와 함께 강철웅의 강력한 음풍 발경이 태벽의 다리뼈를 타고 뇌와 장기로 침투하려 요동쳤다.


바로 그 순간, 태벽은 전신 골격을 전도체 삼아 충격을 대지로 흘려보내는 외가 기예, 철기접지(鐵器接地)를 발동했다.


쿠구구구구—!


태벽의 발밑에 깔려 있던 단단한 정원 석판 수십 장이 쩌적거리며 거미줄 같은 균열을 일으켰다. 그의 무쇠 뼈대를 통과한 강철웅의 내공 충격파가 대지로 고스란히 접지되어 소멸한 것이다. 석판 틈새로 시커먼 흙먼지가 대포알처럼 뿜어져 나왔다.


“무, 무엇이……!”


강철웅의 뱀 같은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자신의 전력을 다한 음풍 내공이 직격했음에도, 단전이 파괴된 노예 놈의 오장육부가 터지기는커녕 멀쩡히 버티고 서 있는 광경은 그의 무학적 상식을 완전히 초월하는 일이었다.


태벽은 주무기인 검붉은 철기 패왕 사슬을 감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깨에 새겨진 ‘노(奴)’ 자 낙인 흉터가 검붉은 빛을 발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냥개의 이빨이 겨우 이 정도더냐.”


태벽의 갈라진 쇳소리가 안개 속을 무겁게 울렸다.


강철웅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뒤로 물러서려 채찍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태벽이 더 빨랐다. 태벽은 오른손을 뻗어 자신을 휘감고 있던 독니철편의 가시 돋친 날을 정면으로 움켜잡았다. 악력 단련법, 철포악(鐵骨惡)의 기예였다.


서걱! 콰구구국—!


손바닥의 가죽이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지만, 이미 흉터 가죽으로 단단하게 재생된 태벽의 손가락 뼈마디들은 무쇠 집게처럼 채찍을 고정했다. 주먹을 쥔 손가락 뼈가 미세하게 공명하며 가공할 악력을 방출했다. 강철웅이 자랑하던 가문의 보물, 독니철편의 흑강 마디들이 태벽의 아귀힘을 이기지 못하고 쩌적거리며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 채찍을 놓아라!”


강철웅이 다급히 왼손으로 소매 속에서 독가루 주머니를 꺼내 태벽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 자욱한 회색 독무가 태벽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태벽은 독기가 눈과 코로 스며들자 일시적으로 시야가 흐려져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허벅지와 손목의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적셨다.


그 틈을 타 강철웅은 부러진 채찍 끝자락을 버려두고 뒤로 십여 장이나 도망쳐 사병들의 포위망 뒤로 숨었다.


“사병들은 무엇을 하느냐! 저놈을 쏘아라! 조총과 노궁을 아끼지 마라!”


사병들이 일제히 조총의 방화쇠를 당기고 노궁의 시위를 놓았다. 수십 발의 철제 탄환과 쇠화살이 태벽을 향해 폭풍처럼 쏟아졌다.


태벽은 흐려진 시야 속에서도 뼈의 음파 전도력으로 날아오는 무기들의 궤적을 읽어냈다. 그는 주먹에 감긴 쇠사슬을 넓게 휘둘러 탄환들을 쳐내고, 흉갑을 앞으로 내밀며 정면 돌파를 감행했다. 수백 근에 달하는 강철 신체가 정원을 가로지를 때마다 석판 바닥이 쿵, 쿵 비명을 지르며 내려앉았다.


“비켜라!”


태벽이 사슬 주먹으로 전방의 사병들의 방패를 후려쳤다. 콰아앙! 철제 방패들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사병들이 비명을 지르고 나가떨어졌다. 태벽의 거대한 신형은 순식간에 사병들의 포위망을 종이 찢듯 찢어발기고 강철웅의 눈앞에 도달했다.


“네놈이……!”


강철웅이 공포에 질려 검을 뽑아 들고 음풍공의 내공을 검날에 실어 태벽의 목덜미를 베어왔다. 검기가 퍼르스름한 안개를 가르며 쏘아져 왔다.


태벽은 피하지 않고 오른주먹을 내질렀다. 뼈 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현철의 진동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적의 내부 골격을 공명시켜 터뜨리는 최후의 일격, 골진폭(骨振爆)이었다.


웅웅웅웅————!


태벽의 주먹 끝에서 기이하고 묵직한 고주파의 진동음이 정원을 진동시켰다. 강철웅의 장검이 태벽의 사슬 주먹과 맞부딪치는 순간, 이류 극성의 검기가 실려 있던 명검이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며 허공으로 비산했다.


“아, 아아……!”


강철웅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검날을 부수고 나아간 태벽의 묵직한 사슬 주먹이 그의 가슴팍을 직격했다.


콰아아앙—! 쩌저적!


강철웅의 가슴에 덧대어져 있던 철제 경갑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함몰되었다. 그의 등 뒤로 붉은 선혈과 함께 으스러진 뼛가루들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골진폭의 파멸적인 진동 충격파가 강철웅의 갈비뼈와 심장을 형체도 없이 으스러뜨린 것이다.


강철웅의 신형이 정원의 흙바닥 위로 무참히 꺾이며 쓰러졌다. 그의 입에서 시커먼 선혈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가문의 정예 사병들은 집행관의 허무하고 처참한 패배를 목격하자, 무기를 버리고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태벽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강철웅에게 다가갔다. 그의 걸음걸음마다 묵직한 무게감이 정원을 울렸다. 태벽은 강철웅의 가슴팍 마의를 찢고 품 속을 뒤졌다.


그곳에서 붉은 비단으로 감싸인 묵직한 가죽 장부와 여러 통의 서신이 드러났다. 가주 강무현과 제국의 대총관 사공도가 결탁하여 서산령 광산의 흑철을 밀수하고, 그 대가로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해 온 ‘서산령 광산의 검은 비자금 흐름’이 상세히 적힌 비밀 장부였다. 그리고 그 장부의 마지막 장에는 대총관 사공도의 친필 서신과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태벽의 손끝이 장부의 가죽 표면을 꽉 움켜쥐었다. 가문이 자신을 지옥으로 판 대가로 제국의 권력자들과 더러운 거래를 해왔다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었다.


그때, 바닥에 피를 토하며 누워 있던 강철웅이 떨리는 손으로 태벽의 가죽 붕대 감긴 발목을 붙잡았다. 그의 뱀 같은 눈동자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입가에는 피 섞인 기괴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커흑…… 쿨럭! 강…… 태벽…… 네놈이 가문의 장부를 손에 넣었다고 해서…… 복수를 완수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강철웅이 피를 울컥 토해내며 태벽의 귀를 향해 몸을 억지로 비틀었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늘고 음산하게 떨렸다.


“가주께서…… 강무현 그 냉혹한 인간이…… 네놈의 단전을 폐하고 이 먼지 구덩이로 직접 팔아넘긴 진짜 이유는…… 네놈이 단전 없는 폐물이라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흐흐흑…… 가문의 깊은 어둠 속에서…… 너는 결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강철웅은 피 섞인 비웃음을 흘리며 태벽의 발목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그의 고개가 옆으로 꺾이며 숨줄기가 완전히 끊어졌다. 눈을 부릅뜬 채 죽어간 그의 얼굴에는 기괴한 미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태벽은 차갑게 식어가는 가문의 집행관의 시신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가주 강무현이 자신의 단전을 폐한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는 유언. 가슴팍에 보관된 백옥 인장과 검은 비자금 장부가 그의 주먹 안에서 무겁게 요동쳤다. 서산령의 차가운 안개가 태벽의 검붉은 흉터 가죽 위로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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