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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그림자, 집행관 강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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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천금밀고(千金密庫)의 눅눅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 강태벽은 오른손에 쥔 청엽검종의 백옥 인장을 꽉 움켜쥐었다. 손가락 뼈마디가 으스러질 듯한 아귀힘에 백옥의 표면이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다. 차가운 백옥에 각인된 푸른 잎사귀 문양. 그것은 태벽의 어깨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새기고 쓰레기처럼 버렸던 친부 강무현과 가문의 상징이었다.


그 순간, 가죽 마의 안감 너머 왼쪽 어깨에 깊이 새겨진 ‘노(奴)’ 자 흑철 낙인 흉터가 미친 듯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뼈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한(恨)과 분노가 맥박을 타고 요동쳤다.


쿠구구구구—!


밀실의 두꺼운 석조 천장을 뚫고, 지상에서부터 전해지는 육중한 진동이 지면을 타고 내려왔다. 한두 필이 아니었다. 최소한 수십 필의 정예 군마들이 최현도의 저택 정원을 가로지르며 내딛는 발발굽 소리였다. 그 발소리에는 일반적인 관군의 군마와는 다른, 기이하게 묵직하고 날카로운 기세가 실려 있었다.


“태, 태벽 형…….”


옆에 서 있던 삼식이 긴 손가락을 바르르 떨며 태벽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삼식의 손가락 끝에는 조금 전 금고의 독침 장치에 긁혔던 찰과상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지상에 당도한 놈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말발굽의 간격과 지면의 울림이 일정한 것을 보니, 가문의 정예 사병들이 틀림없습니다. 청엽검종의 푸른 장포를 걸친 놈들 말입니다.”


태벽은 대답 대신 품 안을 더듬었다. 조금 전 임 서생의 목숨줄을 끊어놓고 확보한 최현도와 가문 사이의 추악한 거래가 적힌 비자금 장부, 그리고 가문의 비밀 인장이 가슴팍 마의 안감 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그 옆에는 지하 공동에서 수거한, 자신의 무쇠 골격과 미세하게 자력 공명을 일으키는 기이한 흑강 철편(黑鋼 鐵片) 조각이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태벽의 몸 상태는 최악에 가까웠다. 최현도와의 혈투에서 입은 목덜미와 옆구리의 채찍 자상에서는 여전히 붉은 피가 배어 나와 삼베 천을 적시고 있었다. 게다가 최현도가 주입했던 일류 화독(火毒) 내공의 잔재가 체내의 한철천 냉기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전신에 미세한 발열통과 무릎 관절을 쑤시는 만성 관절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쇠처럼 무거워진 골격의 무게가 어긋난 관절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하지만 태벽은 정신 제어법인 무통식(無痛式)을 전개하여 그 모든 육체적 제약을 이성 아래로 억눌렀다. 뇌로 가는 고통의 통로가 완벽히 차단되자, 그의 안광은 오직 적을 찢어발기겠다는 차가운 살기만으로 번뜩였다.


“칠성 형님, 삼식.”


태벽의 갈라진 쇳소리가 어두운 밀실을 무겁게 울렸다.


“장부와 인장은 내가 챙겼소. 임 서생 그 쥐새끼는 이미 사지가 박살 나 움직이지 못하니 그대로 버려두고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태벽아, 저택 입구가 완전히 포위당한 것 같다. 정면으로 나가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칠성이 거구의 몸을 슬쩍 굽히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의 손에는 주조소에서 챙겨온 묵직한 흑철 곤봉이 단단히 쥐여 있었다.


“피할 길은 없소. 어차피 이 광산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내기 위해서는, 가문이 보낸 사냥개들의 목을 먼저 부러뜨려야 하오. 삼식은 내 뒤를 따르며 퇴로를 살피고, 칠성 형님은 본진을 경계하시오.”


태벽은 주먹에 감긴 검붉은 ‘철기 패왕 사슬’을 다시 한번 단단히 동여맸다. 가열의 붉은 채찍 성분과 용융 제련되어 흑빛과 붉은빛이 기묘하게 감도는 사슬의 고리들이, 그의 무쇠 같은 주먹 위에서 쩔렁이며 거친 마찰음을 냈다.


태벽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수백 근에 달하는 강철 골격의 질량이 실린 그의 발걸음이 지하 계단의 석판을 쿵, 쿵 짓밟으며 위를 향했다.


***


최현도의 화려한 저택 안방을 지나, 넓은 앞마당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을 때, 태벽의 눈앞에 차가운 아침 안개와 함께 숨이 막힐 듯한 살풍(殺風)이 밀려들었다.


서산령의 황량한 산맥을 타고 흘러내린 아침 안개 사이로, 청색 비단 도포를 걸치고 철제 경갑을 덧댄 무사 수십 명이 군마를 탄 채 정원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의 장검 끝에는 퍼르스름한 검기가 예리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청엽검종의 정예 집행 사병들이었다.


그리고 그 군마들의 중심, 백마를 탄 채 오만한 눈빛으로 저택 문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길쭉한 뱀 같은 눈매에 차가운 냉소를 머금은 중년의 사내. 허리춤에는 가문의 집행관을 상징하는 검은 가죽 가시 채찍인 독니철편(毒牙鐵鞭)을 차고 있는 자.


집행관 강철웅(姜鐵雄)이었다.


태벽의 눈동자가 그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분노가 폭발했다.


과거, 어머니 연소하가 가문의 냉대 속에서 병들어 죽어가던 날. 그리고 단전이 파괴된 태벽을 개처럼 끌고 가 발목에 무거운 흑철 사슬을 채우고, 최현도에게 노예 대금 몇 푼을 받으며 이 서산령의 지옥으로 던져버렸던 장본인. 바로 눈앞에 서 있는 강철웅이었다.


강철웅은 말 위에서 턱을 치켜든 채, 저택 문을 열고 나오는 태벽의 몰골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피와 쇳가루로 얼룩진 낡은 마의,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도드라진 넓은 어깨와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진 강철 같은 골격. 그리고 주먹에 칭칭 감긴 검붉은 쇠사슬.


강철웅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허, 나는 어떤 대단한 마두가 최현도의 목을 베고 광산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나 했더니…… 겨우 가문에서 버림받은 똥개새끼였구나.”


강철웅의 뱀 같은 눈이 태벽의 왼쪽 어깨에 선명하게 드러난 검붉은 ‘노(奴)’ 자 낙인 흉터를 향했다.


“단전이 걸레짝이 되어 광산 구석에서 철광석이나 캐다 시체 구덩이에 처박혔어야 할 놈이, 어찌 목숨을 부지하고 이런 해괴한 몰골로 서 있는 것이냐?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으면서 감히 천한 노예의 사슬을 감고 가문의 지배지에 반기를 들다니. 정녕 미쳐버린 것이로군.”


강철웅의 목소리에는 명문 정파의 권위를 내세우는 오만함과, 약자를 벌레처럼 내려다보는 극도의 멸시가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뒤에 선 사병들이 일제히 장검을 치켜들며 기세를 더했다.


“강태벽. 가문의 법도는 엄하다. 단전이 파괴된 서자라 할지라도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죄는 오직 피로써만 씻을 수 있는 법.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사슬을 내어놓아라. 가주의 자비로 목숨줄만은 살려두어 가문의 지하 감옥에 평생 가두어 줄 테니.”


강철웅의 도발적인 대사가 정원의 차가운 안개를 찢으며 태벽의 귀를 자극했다.


태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거친 쇳소리 같은 호흡이 흘러나왔다. 한 걸음 걸어 나오는 그의 무릎 관절에서 우드득, 하는 기괴한 뼈 마찰음이 울렸다. 한철천 냉독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쑤셔왔지만, 대지를 디디는 그의 두 발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태벽은 주먹을 꽉 쥐었다. 주먹에 감긴 흑철 쇠사슬이 살가죽을 파고들며 쩍쩍 소리를 냈다. 피부 아래 새겨진 검붉은 강철 무늬가 요동치며 그의 전신에서 내공 한 모금 없는, 오직 압도적인 물리적 질량과 골격의 경도에서 나오는 무형의 압박감이 사방으로 방출되기 시작했다.


히히힝—!


태벽이 뿜어내는 기괴하고 무거운 살기에, 가문의 사병들이 타고 있던 정예 군마들이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앞발을 치켜들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정원의 단단한 바닥이 태벽의 발걸음마다 미세하게 내려앉았다.


“가문의 법도라…….”


태벽의 이빨 사이로 피 섞인 조소가 새어 나왔다.


“단전이 없다는 이유로 자식의 단전을 폐하고 지옥에 팔아넘긴 것이 너희가 말하는 법도더냐. 명문 정파라는 가면 뒤에 숨어 노예들의 피를 빨아먹던 너희 가문의 위선, 오늘 이 주먹으로 그 뼈마디를 모조리 부러뜨려 증명해 주마.”


태벽이 품 안에서 청엽검종의 백옥 인장을 꺼내 강철웅의 눈앞에 가볍게 던졌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백옥 인장이 차가운 안개 속에서 뒹굴었다.


“이 더러운 인장과 너희 가문의 장부는 내가 거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너희 사냥개들의 목줄을 끊는 것뿐이다.”


강철웅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가문의 극비 인장이 천한 노예의 손에 들어가 바닥에 뒹구는 꼴을 본 그의 눈에 잔혹한 살기가 서렸다.


“건방진 놈. 감히 가문의 상징을 더럽히다니! 사병들은 들어라! 저놈의 사지를 찢어 발겨 개먹이로 던져줘라!”


강철웅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전방에 서 있던 가문의 정예 사병 한 명이 군마를 몰아 태벽을 향해 돌격했다. 사병의 손에 쥔 군용 강창이 푸른 검기를 머금은 채 태벽의 심장을 향해 번개처럼 내찔러졌다.


“죽어라, 노예 놈!”


창끝이 공기를 가르며 파멸적인 파공음을 내뿜었다.


태벽은 피하지 않았다. 다리의 관절통으로 기민한 회피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방패도, 회피도 필요 없었다.


태벽은 왼손을 가볍게 치켜들어 날아오는 창날의 측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 감긴 검붉은 흑철 쇠사슬이 쩔렁이며 궤적을 그렸다.


깡—————!


귀를 찢을 듯한 쇳소리와 함께, 일류 무사의 검기가 실려 있던 고강도 강창의 철제 창날이 태벽의 사슬 주먹에 부딪치는 순간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사슬의 압도적인 질량과 태벽의 무쇠 뼈대가 지닌 경도가 창날의 물리적 한계를 단 한 방에 부숴버린 것이다.


“엇……!”


사병이 반동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말 위에서 뒤로 크게 비틀거렸다. 그의 손에 남은 창대는 형체도 없이 쪼개져 있었다.


강철웅의 뱀 같은 눈이 크게 흔들렸다. 단전이 파괴되어 내공을 단 한 모금도 쓰지 못하는 폐물이, 오직 신체의 완력과 사슬의 질량만으로 가문의 정예 창격을 부러뜨린 광경은 그의 상식을 완전히 깨부수는 일이었다.


“이…… 괴물 같은 외공 놈이……!”


강철웅은 말 위에서 가볍게 신형을 날려 지상으로 내려섰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허리춤에서 뽑아 든 독니철편이 쥐여 있었다. 채찍의 표면을 따라 이류 극성의 음산한 음풍(陰風) 내공 기운이 푸르스름하게 이글거리며 서늘한 바람을 일으켰다.


“과연 최현도를 때려죽인 완력이로군. 하지만 가문의 비전 무공은 네놈이 생각하는 삼류 외공과는 격이 다르다.”


강철웅이 독니철편을 가볍게 휘둘렀다.


쉬이이익—! 콰직!


철편 끝자락이 허공을 가르자, 정원의 견고한 석판 바닥이 칼로 두부 자르듯 깨끗하게 갈라지며 깊은 균열이 패였다. 채찍의 궤적을 따라 음산하고 차가운 음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안개를 찢어발겼다.


태벽은 한 걸음 걸어 나갔다. 그의 무거운 발걸음이 갈라진 석판을 짓밟으며 쿵, 하는 묵직한 진동을 지면에 각인시켰다. 그의 주먹에 감긴 흑철 쇠사슬이 쩔렁이며 거친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뼈를 부러뜨리는 처절한 무인과, 가문의 더러운 뒤처리를 전담하는 집행관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피의 전장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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