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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채찍과 무쇠의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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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령 흑철 광산의 지상 연무장을 가득 채운 것은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었다.


매몰지가 폭발하며 뿜어낸 시커먼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서서히 가라앉는 와중에도, 광산의 삼백 명 노예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지옥의 밑바닥에서 살아 돌아온 무쇠 뼈의 거인, 강태벽.


태벽이 한 걸음을 내딛자, 쩌적 하는 불길한 균열음과 함께 연무장 바닥의 석판이 깊게 함몰되었다. 스스로 자신의 뼈를 부러뜨리고 만년현철의 골수를 융합한 대가였다. 전신 골격의 밀도가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압축되어, 그의 신체는 이제 평범한 인간 수인 분량의 물리적 질량을 훌쩍 뛰어넘어 수백 근에 달하는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우드득, 쩌적…….”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릎과 발목 관절 부위에서 시린 통증이 이명처럼 울렸다. 한철천의 혹독한 냉독에 장시간 노출된 여파로 얻은 만성 관절통이었다. 뼈마디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전신 냉증이 그를 괴롭혔지만, 태벽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신 제어법인 무통식(無痛式)이 그의 뇌로 가는 고통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눈앞의 원수를 찢어발기겠다는 빙점 이하의 차가운 분노뿐이었다.


단상 위, 밧줄에 묶인 채 처형을 기다리던 칠성이 피 묻은 얼굴을 들어 올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태벽아……! 정녕 네놈이 살아 돌아왔단 말이냐!”


옆에 결박되어 있던 벙어리 침모 아영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리며 태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맑은 눈망울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먼지투성이 뺨을 적셨다. 동료들의 안전을 확인한 태벽의 안광이 단상 위의 거구, 광산주 최현도에게 고정되었다.


최현도의 얼굴은 흙빛으로 질려 있었다. 제9갱도를 통째로 화약으로 폭파해 생매장한 개새끼가 어떻게 전신 골격이 멀쩡한 채로 살아 돌아왔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최현도의 탐욕스러운 눈에 아들을 잃은 아비의 광포한 살기가 번뜩였다.


“네놈이 기어이 무덤에서 기어 나왔구나. 천한 노예 놈이 요술을 부려 목숨을 건졌을지는 모르나, 내 직접 네놈의 그 기괴한 뼈다귀를 가루로 만들어 주마!”


최현도가 이빨을 갈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굵고 묵직한 흑철 채찍이 뱀처럼 요동치며 풀려났다.


샤아아아악—!


가시가 촘촘히 박힌 흑철 채찍의 표면 위로 푸르스름한 내공의 기운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이류 극성, 아니 일류(一流)의 경지에 필적하는 가공할 발경(發勁)이었다. 최현도가 자랑하는 가문 하사의 절기, 흑철구룡편(黑鐵九龍鞭) 무공이 시동되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쇠사슬이나 가죽 채찍과는 격이 달랐다. 채찍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음이 연무장 전체를 진동시켰다.


“죽어라, 역적 놈!”


최현도가 손목을 가볍게 비틀자, 흑철 채찍이 기이한 곡선을 그리며 태벽의 안면을 향해 사납게 날아왔다. 채찍 끝에 달린 예리한 가시들이 태벽의 눈동자를 꿰뚫을 듯 쏘아져 들어왔다.


태벽은 피하지 않았다. 수백 근의 무게를 지닌 몸은 빠른 회피 신법을 허용하지 않았고, 한철천의 냉독으로 굳은 무릎은 기민한 움직임을 방해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피할 이유가 없었다.


태벽은 양팔을 교차하여 얼굴 앞을 가로막았다. 외가 방어 기예, 폐골갑(閉骨甲)이었다.


피부 아래에서 요골(radius)과 척골(ulna)이 기이한 마찰음을 내며 단단하게 맞물렸다. 철골조성(鐵骨造成)을 완성한 그의 팔뚝 뼈는 이미 제국의 그 어떤 무쇠 방패보다 견고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깡—————!


귀를 찢을 듯한 쇳소리가 연무장을 강타했다. 최현도의 흑철 채찍이 태벽의 강철 팔뚝에 부딪치는 순간, 사방으로 붉은 불꽃이 폭발하듯 비산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팔뼈가 통째로 으스러지고 살가죽이 걸레짝이 되었을 타격이었다.


하지만 태벽의 팔뚝에는 미세한 긁힌 자국만이 남았을 뿐, 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최현도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무슨 뼈다귀가 이따위란 말이냐……!”


“내공의 힘이 겨우 그 정도냐, 최현도.”


태벽이 차갑게 읊조렸다. 그의 어깨에 새겨진 ‘노(奴)’ 자 낙인 흉터가 분노의 열기로 인해 검붉게 달아오르며 희미한 연기를 피워 올렸다.


태벽은 충격을 흘려보내기 위해 대지를 디뎠다. 채찍에 실려 온 강력한 발경의 충격파가 그의 강철 골격을 타고 내려가 척추와 다리뼈를 관통했다. 태벽은 그 파괴적인 에너지를 억지로 소멸시키는 대신, 뼈의 전도력을 이용해 발바닥을 거쳐 땅바닥으로 고스란히 흘려보냈다. 외가 방어 심법, 철기접지(鐵器接地)의 원리였다.


쿠구구구!


태벽이 딛고 선 사방 삼 척의 석판들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주저앉았다. 내공 한 모금 없는 육체로 일류 고수의 타격을 지면의 물리적 붕괴로 치환해 버린 것이다.


“요사스러운 놈! 내공도 없는 놈이 어디서 잡술을 펼치느냐!”


최현도가 광분하여 채찍을 회수했다. 그리고 더욱 강력한 내공을 채찍에 주입했다. 이번에는 채찍 전체가 붉은빛을 띠며 이글거렸다. 흑철구룡편의 제삼 초식, 구룡토사(九龍吐蛇)였다.


쉬이이이익—!


채찍이 뱀처럼 휘어지며 태벽의 방어벽을 우회했다. 태벽이 주먹을 뻗어 최현도의 안면을 직격하려 앞으로 나아갔으나, 채찍의 반동과 궤적 변화가 너무나 빨랐다. 태벽이 내지른 주먹은 최현도의 옷자락을 스치며 허공을 갈랐고, 그 반동으로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관절통으로 인해 무릎의 지지력이 일시적으로 흔들린 탓이었다.


그 찰나의 허점을 최현도가 놓치지 않았다.


“이놈!”


파아앗!


궤적을 비튼 흑철 채찍이 태벽의 방어막을 뚫고 그의 옆구리와 늑골(ribs) 부위를 사납게 파고들었다. 채찍 끝에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들이 태벽의 맨살을 찢고 들어가 뼈마디 사이에 박혔다. 채찍을 타고 최현도의 강맹한 일류 내공이 태벽의 체내로 사정없이 주입되었다. 뜨거운 화독(火毒)의 기운이 뼈 속 깊은 곳까지 침투하려 요동쳤다.


태벽은 이빨을 악물었다. 전신의 골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열기가 느껴졌고, 심장이 가볍게 요동쳤다. 체내에 남아 있던 한철천의 냉기와 최현도의 화독이 충돌하며 가벼운 신체 발열이 일어났다.


하지만 태벽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뼈마디를 순간적으로 잠그는 외가 심법, 폐골결(閉骨結)을 발동했다.


우드득! 우두둑!


태벽의 갈비뼈들이 마치 강철 빗장처럼 서로를 단단히 물리며 수축했다. 옆구리를 파고들었던 채찍의 가시들이 압착된 강철 뼈 사이에 끼어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뼈의 밀도만으로 일류 고수의 발경을 억지로 가두어 상쇄해 버린 것이다.


“무, 무어라? 채찍이 빠지지 않는다니!”


최현도가 경악하며 채찍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뒤로 거칠게 잡아당겼다.


콰아아악!


태벽의 옆구리와 어깨 가죽이 찢겨 나가며 붉은 선혈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채찍의 가시들이 살점을 한 움큼 뜯어내며 회수되었으나, 태벽은 단 한 번의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붉은 피가 그의 검붉은 피부를 타고 흘러내려 바닥의 먼지를 적셨다.


피부를 내어주고 뼈를 지켰다.


태벽은 찢어진 어깨의 통증을 무시한 채, 최현도를 향해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의 눈빛은 늑골을 파고든 채찍의 고통 속에서도 더욱 투명하고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태벽은 이미 최현도가 전개하는 흑철구룡편의 공참 각도와 내공이 실리는 타이밍을 뼈의 진동으로 완벽히 읽어내고 있었다. 적의 무기 궤적이 그의 머릿속에 한 장의 정교한 설계도처럼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끝이다, 노예 놈아!”


최현도가 광분하여 채찍을 머리 위로 크게 회전시켰다. 채찍 끝에 실린 내공이 폭풍 같은 바람 소리를 내며 연무장을 휘감았다. 최현도는 태벽의 목뼈를 단숨에 꺾어버릴 심산으로, 채찍을 태벽의 목덜미를 향해 사선으로 매섭게 뿌리쳤다.


휘이이이잉— 콰아아악!


기이한 궤적으로 꺾여 들어온 흑철 채찍이 태벽의 목덜미를 뱀처럼 단단히 휘감았다. 가시들이 목 가죽을 파고들며 척추 뼈대를 으스러뜨리려 무서운 압박을 가해왔다.


“태벽아—!”


단상 위에서 칠성이 절규하듯 외쳤다. 아영은 공포에 질려 두 눈을 감아버렸다.


최현도가 승리를 확신하며 비열하게 입꼬리를 올린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


목덜미가 조여오는 극심한 압박 속에서도, 태벽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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