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의 끓는 피, 냉천에서의 담금질
단전이 파괴된 육체는 기를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쇠는 열을 담는다. 그리고 그 열이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달구어진 철은 스스로를 녹여 무너뜨리는 법이다.
“쿠우우으으……!”
지하 고대 제련단의 석조 제단 위, 강태벽의 입술 사이로 짐승의 신음과도 같은 탁한 숨결이 터져 나왔. 그의 전신은 지금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검붉은 균열로 가득 차 있었다. 만년현철 광맥(萬年玄鐵 鑛脈)에서 흘러나온 액체 금속의 기운이 야수골(野獸骨)의 재생력과 결합하여 전신의 뼈마디를 철옹성처럼 도금해 버린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골수 깊은 곳에서 시작된 제어되지 않는 치명적인 열독 발작(熱毒 發作)이었다.
피가 끓었다. 혈관을 흐르는 액체는 이미 피가 아니라 섭씨 수천 도의 용광로에서 흘러나온 쇳물 같았다. 새로이 형성된 강철 골격이 내부의 열기를 가두는 거대한 화로가 되어 그의 오장육부를 안쪽에서부터 태워 들어가고 있었다. 내공을 한 모금도 쓸 수 없는 태벽으로서는 이 열기를 스스로 정화하거나 방출할 방법이 없었다. 어깨에 새겨진 ‘노(奴)’ 자 낙인 흉터가 검붉게 타오르며 짓무른 살가죽 위로 백색 증기가 피어올랐다.
이대로 있으면 뼈 안쪽에서부터 재가 되어 사멸한다.
태벽은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고개를 돌렸다. 제단 아래쪽, 깎아지른 듯한 암벽 밑바닥에서 음산하고 서늘한 푸른 안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안개의 심연 속에서,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만년 한기가 서린 지하 암반수 흐름—한철천(寒鐵川)이 세차게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냉천수(地下 冷泉水)의 울림이었다.
“……담금질을…… 해야 한다.”
태벽은 이빨을 악물었다. 이미 무쇠의 무게를 띠게 된 그의 골격 탓에, 몸무게는 평범한 성인의 수 배에 달하는 수백 근으로 무거워져 있었다.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는 것조차 천근의 바위를 들어 올리는 듯한 중압감이 가해졌지만, 그는 으스러진 오른손을 바닥에 박아 넣으며 몸을 비틀었다.
스르릉, 철컥.
손목에 감긴 흑철 쇠사슬이 거친 석판 바닥을 쓸며 무거운 마찰음을 냈다. 태벽은 제단의 가장자리를 향해 기어갔다. 가슴팍의 찢어진 마의 틈새로 검붉게 달아오른 갈비뼈가 비쳐 보였다. 마침내 낭떠러지의 끝에 도달한 순간, 태벽은 주저 없이 푸른 안개의 심연을 향해 몸을 던졌다.
스스스스스—!
허공을 가르며 낙하하는 그의 웅장한 실루엣이 한철천의 푸른 수면 위로 사정없이 추락했다.
쾅!
거대한 물보라가 일며 태벽의 무거운 신형이 얼음장 같은 냉천수 속으로 처박혔다.
그리고 그 순간.
치이이이이이이익—!
용광로에서 막 꺼낸 붉은 식칼을 차가운 우물물에 처박을 때 발생하는, 고막을 찢을 듯한 가혹한 기화 소리가 수중을 가득 메웠다. 태벽의 검붉게 달아오른 온몸의 피부가 차가운 지하 냉천수와 닿자마자 대량의 하얀 기포와 끓는 증기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수면 위로 솟구친 백색 증기 구름이 귀곡동의 어두운 천장을 가득 메웠다.
극과 극의 에너지가 그의 육체라는 좁은 그릇 안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으으으웁……!”
태벽은 입안으로 밀려드는 차가운 물을 삼키며 비명을 삼켰다.
차가운 냉기가 피부를 뚫고 들어가 뼈 속의 뜨거운 열독과 충돌하는 순간, 느껴진 것은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신의 뼈마디를 미세한 조각으로 쪼개어 버리는 듯한 가공할 물리적 파괴력이었다. 뜨거운 철이 갑자기 차가운 물을 만나면 급격히 수축하며 균열이 가듯, 그의 새로 제련된 강철 뼈들이 수축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쩌적거리며 갈라지려 했다.
골격이 깨지면 철골조성의 기틀은 물론이고 야수골의 재생력마저 완전히 소멸한다.
태벽은 수중에서 가부좌를 틀려 했으나, 수백 근에 달하는 몸무게 탓에 몸은 끝없는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정신 제어법인 무통식(無痛式)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뇌로 향하는 모든 통각을 차가운 이성으로 차단한 채, 마의 안감 속에 숨겨둔 무극철판의 구결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철기단골공(鐵器斷骨功)의 중반 극의이자 열독 중화법—냉천안정법(冷泉安定法)이었다.
‘열은 안에서 밖으로 흐르고, 한기는 밖에서 안으로 파고든다. 골격을 전도체로 삼아, 두 기운을 중심에서 맞물리게 하라.’
태벽은 전신의 관절을 억지로 잠그는 폐골결을 전개했다. 그리고 뼈 속에 갇혀 있던 만년현철의 뜨거운 열독을 피부 바깥쪽으로 강제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피부를 찢고 들어오는 한철천의 매서운 냉기를 골수 안쪽으로 유도했다.
지이이이잉!
그의 몸을 중심으로 물속에서 기이한 와류가 발생했다. 태벽의 골격이 하나의 거대한 자력 전도체가 되어 뜨거운 열기와 차가운 한기를 스스로 조율하기 시작한 것이다.
치직, 치지직.
피부 표면에서 검붉은 열독과 푸른 냉독이 격돌하며 미세한 불꽃과 얼음 결정이 동시에 피어났다 사라졌다. 그 극한의 조율 속에서, 태벽의 뼈 속에 남아 있던 치명적인 불순물이자 탁한 금속 독소인 골독(骨毒)이 모공을 통해 검은 진액의 형태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붉고 탁한 골독이 뿜어져 나오자, 맑던 한철천의 얼음물이 태벽의 주변에서부터 시커넓게 물들어가며 흐려졌다.
동시에 기적이 일어났다.
검은 골독이 빠져나간 자리를 차가운 냉기가 채우자, 팽창해 있던 태벽의 뼈 세포들이 급속도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느슨하게 얽혀 있던 만년현철의 입자들이 극한의 담금질을 거치며 빈틈없이 맞물렸다. 골밀도가 이전의 서너 배 이상으로 단단하게 압축되며, 뼈의 경도가 일반적인 강철을 넘어 다이아몬드 수준의 극의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우드득! 철컥!
수중에서 태벽의 전신 골격이 완벽한 무쇠의 성질로 고정되는 웅장한 골음(骨音)이 울려 퍼졌다. 마침내 뼈와 금속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담금질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재앙이 찾아왔다.
태벽의 몸무게가 골밀도 압축으로 인해 더욱 무거워지면서, 한철천의 너무 깊은 수중 심연으로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그곳은 햇빛이 단 한 줌도 닿지 않는 완벽한 암흑이었고, 수온은 인간의 장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릴 수 있는 절대영도에 가까웠다.
쩌적, 쩍.
태벽의 허벅지 자상 부위부터 시작하여 혈관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차가운 한기가 심장으로 향하는 혈맥을 얼려 들어가자, 심장박동이 기이할 정도로 느려졌다.
두근.
……두근.
일시적인 심장마비의 위기였다. 내공이 있었다면 진원을 끌어올려 체온을 유지했겠으나, 태벽의 몸에는 기운이 한 모금도 없었다. 의식이 급격히 흐려지며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대로 이 어두운 냉천의 바닥에서 얼어붙은 철상이 되어 영원히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
태벽은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이빨을 깨물었다.
‘가문이 나를 쓰레기처럼 버렸다. 내 단전을 폐하고, 나를 사슬에 묶어 이 지옥에 던져넣었다. 그런데 내가 왜 여기서 굳어 죽어야 한단 말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배신의 한(恨)과 복수심이, 얼어붙어가던 그의 심장에 마지막 불꽃을 지폈다. 태벽은 뼈 속에 아주 미세하게 남아 있던 만년현철의 잔여 열기를 심장 부근으로 강제로 유도했다. 극단적인 정신력의 승리였다.
쿵!
얼어붙어가던 심장이 강하게 요동치며 전신으로 뜨거운 피를 뿜어냈다. 태벽은 굳어지던 다리뼈를 억지로 움직여 한철천의 깊은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
콰아아앙!
내공이 실리지 않은 순수한 물리적 반동력만으로 지하수의 바닥이 움푹 패이며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태벽의 무거운 신형이 탄환처럼 수면을 향해 솟구쳤다.
푸하학!
태벽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귀곡동 지하의 축축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밀려 들어왔다. 전신의 뼈마디는 무쇠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고, 피부 아래에는 강철의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비록 전신 장기가 냉독에 노출되어 평생 시린 관절통과 냉증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짊어지게 되었으나, 그는 마침내 열독과 골독을 완벽히 극복하고 생명력의 절정에 도달했다.
태벽은 물가로 기어 올라와 으스러진 돌더미 위에 몸을 뉘었다. 몸이 가벼우면서도 웅장한 무게감을 띠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귀가 미세하게 떨렸다.
현철과 융합된 그의 골격은 이제 아주 미세한 지면의 진동과 공기 중의 음파를 뼈 자체의 전도력으로 흡수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귀곡동 천장 너머, 수만 톤의 낙석으로 막혀 있는 지상 연무장 방향에서 기이한 진동음이 뼈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칠성…… 아영……”
그것은 목소리였다.
두꺼운 암반의 틈새를 뚫고,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좁은 바위 균열을 타고 흘러나온 희미한 메아리.
- 태벽아! 어디 있느냐! 살아서 대답해 다오!
- 으읍…… 으으으……!
칠성의 웅장하고 절박한 울부짖음과, 말을 하지 못하는 아영이 울음을 삼키며 태벽을 찾는 애처로운 신음 소리였다. 그 소리는 단순한 울림이 아니었다. 지상에서 최현도와 그의 사병들이 살아남은 노예들을 전원 처형하기 위해 연무장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절박한 파멸의 징조였다.
태벽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딛고 선 돌바닥이 그의 무거운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쩌적 갈라졌다.
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흑금빛의 서늘한 안광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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