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서생의 음모, 배신의 그림자
임 서생이 남긴 서늘한 비웃음이 연기 속에 흩어지자, 태벽은 피 흘리는 손바닥을 움켜쥐며 나지막이 침을 뱉었다.
주조소 바닥에는 목이 기이한 각도로 꺾인 수석 집행관 마칠의 시신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승리의 열기로 가득 차야 할 주조소 내부였지만, 정문 그늘에서 비쳐온 임 서생의 그 기괴한 미소는 태벽의 심장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태벽아! 오른손이……!”
칠성이 장대한 덩치를 이끌고 급히 다가와 태벽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상태는 처참했다. 마칠의 날카로운 귀두도를 맨손으로 움켜잡았던 오른손바닥은 가죽이 완전히 베여 나가 허연 손가락 뼈마디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붉은 선혈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검붉은 쇠사슬을 적셨다. 여기에 허벅지의 창 자상과 왼팔뚝의 채찍 상처까지 벌어져 전신이 피로 물든 몰골이었다.
“괜찮소.”
태벽은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무통식(無痛式)을 전개해 뇌로 가는 고통을 억지로 차단하고 있었지만, 뼈마디를 찌르는 만성 관절통과 전신 골격의 발열통은 그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그때 약손 사부가 허겁지겁 다가와 태벽의 오른손에 지혈 가루를 뿌리고 거친 삼베 붕대를 칭칭 감았다.
“이 미친 독종 놈아! 뼈가 드러날 정도로 손을 망가뜨려 놓고 괜찮다는 소리가 나오느냐? 당분간 이 손으로는 무거운 망치는커녕 주먹도 제대로 쥐지 못해! 무리하게 힘을 쓰면 손가락 뼈가 영구적으로 어긋날 게다!”
약손 사부의 다급한 경고에도 태벽은 주조소 밖의 어두운 통로를 응시할 뿐이었다.
“약손 사부, 장도를 부탁하오. 나 대신 마칠의 도를 막아주다 어깨를 다쳤소.”
태벽은 쓰러져 신음하는 장도를 가리켰다. 자신을 위해 몸을 던진 동료를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그의 눈빛에 서려 있었다. 장도는 피를 흘리면서도 태벽의 강철 같은 기상에 압도되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벽은 만수를 불러 조용히 속삭였다.
“임 서생 저 쥐새끼의 눈빛은 패배자의 퇴각이 아니었소. 무언가 더 추악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눈빛이었소. 광산 내부의 움직임을 철저히 감시해야 하오.”
만수는 영악한 안광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같은 시각, 광산주의 화려한 저택 지하 밀실.
창백한 얼굴에 염소수염을 기른 책사 임 서생은 소매 속에서 비전 독침 사출기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노예복 대신 가죽 간수복을 어색하게 걸친 사내, 삼수(三水)가 바들바들 떨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삼수는 원래 서산령의 노예였으나, 동료들의 동향을 간수들에게 밀고한 대가로 채찍을 쥐고 간수 자리를 얻은 추악한 배신자였다.
“삼수야.”
임 서생의 부드러우면서도 뱀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밀실을 울렸다.
“네, 나리! 말씀만 하십시오!”
삼수가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마칠이 죽었다. 그 무식한 강철 뼈다귀 놈의 주먹에 목이 부러졌더군.”
“그, 그 괴물 놈이 마칠 나리까지……!”
삼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마칠은 광산의 절대적인 폭력이자 사신이었다. 그런 자가 죽었다는 소식은 삼수에게 극도의 공포를 안겨주었다. 노예들이 광산을 장악하면 배신자인 자신의 목이 가장 먼저 날아갈 것이 자명했다.
임 서생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품 안에서 묵직한 은자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 짤랑이는 은자 소리가 밀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최현도 나리께서 도성에 지원을 요청하셨다. 청엽검종의 정예 무사들이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야 해. 저 무식한 노예 놈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방법을 내가 준비해 두었다.”
임 서생이 부채 끝으로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서산령 광산에서 가장 깊고 험하며, 지금은 폐쇄된 ‘제9갱도’였다.
“그곳에 최현도 나리가 숨겨둔 대량의 화약이 매설되어 있지. 네놈이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철골동맹의 대가리인 강태벽과 그 주력 놈들을 저 제9갱도 안쪽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그들이 무기고를 털기 위해 그곳으로 향하게 만들어라.”
삼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9갱도는 태벽이 밤마다 스스로 뼈를 부러뜨리며 수련하던 피눈물의 장소이자, 한 번 갇히면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같은 지하 공동이었다. 그곳에 화약을 터뜨려 매몰시키겠다는 임 서생의 계획은 수백 명의 동료들을 산 채로 묻어버리겠다는 뜻이었다.
“하, 하지만 나리…… 제9갱도는 이미 폐쇄된 곳이라 그들이 믿을지……”
“믿게 만들어야지. 성공하면 네놈에게 정식 관직과 함께 도성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을 주마. 평생 이 쳇가루 날리는 지옥에서 간수 흉내나 내다 죽을 테냐, 아니면 진짜 양반으로 득세할 테냐?”
임 서생의 감언이설과 은자 주머니의 묵직함이 삼수의 마지막 양심을 완벽히 짓밟았다. 삼수의 눈에 탐욕과 비열한 독기가 차올랐다.
“하겠습니 나리! 저 무식한 노예 놈들을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게 만들겠습니다!”
***
주조소의 열기가 식어갈 무렵, 삼수가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비틀거리며 주조소 정문으로 뛰어 들어왔다.
“태벽 형! 만수 영감님! 큰일 났소!”
삼수는 숨을 헐떡이며 칠성과 만수의 앞바닥에 엎어졌다. 그의 가죽 간수복은 여기저기 찢겨 있었고, 얼굴에는 가짜 피가 묻어 있었다.
“삼수 아니냐? 네놈이 어찌 이곳에……”
칠성이 흑철 곡괭이를 치켜들며 경계했다. 배신자 삼수의 존재는 동맹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다.
“나를 죽여도 좋소! 하지만 내 말을 먼저 들으시오! 최현도 그 악마 같은 놈이 경비대의 진짜 무기고와 은자를 모두 제9갱도 최하단 밀실로 옮겨놓았소! 지금 사병들이 그곳에 모여 최후의 진압을 준비하고 있단 말이오!”
삼수의 다급하고 절박한 연기에 만수가 꼽추 같은 등을 세우며 다가왔다.
“제9갱도라고? 그곳은 이미 무너져 폐쇄된 구역이 아니더냐?”
“겉으로만 그렇게 위장해 둔 것이오! 최현도가 가문과 밀수 거래를 하던 진짜 비밀 보고가 그 지하에 숨겨져 있소. 그곳의 무기와 화약을 확보하지 못하면, 관군이 들이닥칠 때 우리는 꼼짝없이 몰살당하오!”
삼수는 품 안에서 거친 가죽 장부 조각을 꺼내 만수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임 서생이 미리 준비해 둔 진짜처럼 정교하게 위조된 무기 유통 장부였다.
만수는 지도를 펼쳐놓고 삼수가 가져온 장부와 대조했다. 지리학적 위치와 광산의 구조상, 최현도가 비밀 보고를 숨겨둘 만한 유일한 맹점이 제9갱도 최하단 공동이라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추론이었다.
“태벽 도련님, 삼수의 말이 이치에 맞소. 무기고를 선점하지 못하면 우리의 봉기는 반나절도 가지 못해 진압당할 것이오.”
만수의 분석에 동맹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기를 얻어야만 살 수 있다는 조급함이 그들의 이성을 흐려놓았다.
하지만 돌이의 생각은 달랐다. 돌이는 삼수의 얄개 같은 눈빛과, 그의 몸에서 미세하게 풍기는 값비싼 기름 냄새를 포착했다. 평범한 노예나 하급 간수에게서는 결코 날 수 없는, 임 서생의 방에서나 쓰일 법한 향유의 흔적이었다.
‘저 자식, 무언가 숨기고 있어.’
돌이는 삼수가 의심스러워 그의 뒤를 은밀히 쫓기로 결심했다.
삼수가 동맹원들의 눈을 피해 막사 구석의 어두운 흙방으로 들어서자, 돌이는 다람쥐처럼 날랜 몸놀림으로 창문 밑에 바짝 엎드렸다. 삼수는 품 안에서 임 서생이 작성해 준 밀서를 꺼내 읽으며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저놈이 밀서를 가지고 있어!’
돌이는 삼수가 방을 비운 틈을 타 창문을 넘고 방 안으로 침투했다. 삼수의 거적때기와 가죽 옷을 미친 듯이 수색했다. 배신의 증거를 찾아 태벽에게 보여주어야만 동맹의 파멸을 막을 수 있었다.
바스락.
돌이의 손끝에 타버린 종이 재가 만져졌다. 삼수는 이미 밀서를 읽은 즉시 촛불에 태워 흔적을 지워버린 뒤였다. 돌이가 허탈함과 공포에 질려 방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문이 벌컥 열리며 삼수가 들어섰다.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내 방을 뒤져?”
삼수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삼수는 돌이의 목덜미를 낚아채려 비수를 뽑아 들었다. 돌이는 날랜 신체 능력을 발휘해 삼수의 팔 밑으로 슬라이딩하며 극적으로 방을 탈출했다.
돌이는 숨을 헐떡이며 태벽이 있는 주조소로 달려갔다.
“태벽 형! 삼수가 배신자예요! 그놈 몸에서 이상한 향유 냄새가 나고, 방에서 탄 종이 재를 발견했어요! 제9갱도는 함정이에요!”
돌이의 다급한 고발에 주조소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칠성은 곡괭이를 바닥에 내리찍으며 분노했고, 만수는 지도를 내려다보며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러나 삼수는 눈물까지 흘리며 칠성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억울하오! 돌이 저 꼬맹이가 나를 모함하는 것이오! 내가 간수 노릇을 했다고 해서 나를 믿지 못하는 건 이해하지만, 수백 명의 목숨이 걸린 무기고 정보를 거짓이라 치부하다니요! 정 못 믿겠다면 내가 선봉에 서서 제9갱도로 들어가겠소! 내 목을 베고 가시오!”
삼수의 목숨을 건 듯한 절박한 태도에 만수와 노예들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물증이 없는 돌이의 심증만으로는 무기고라는 거대한 전술적 이점을 포기하기에 상황이 너무나 다급했다. 관군의 추격대는 시시각각 조여오고 있었다.
태벽은 감겨진 오른손의 삼베 붕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찢어진 손바닥 뼈마디에서 욱신거리는 마찰음이 울릴 때마다 임 서생의 서늘한 미소가 뇌리를 스쳤다.
함정이다.
그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놈들이 파놓은 함정 속에 진짜 무기고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었다. 적들의 음모를 두려워해 피하기만 한다면, 단전 없는 범인들은 영원히 쇠사슬을 풀지 못하고 광산의 흙먼지 속에서 고사당할 뿐이었다.
“가겠다.”
태벽의 무겁고 단호한 결단에 돌이가 경악하며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형! 안 돼요! 들어가면 죽어요!”
“돌이야.”
태벽은 피 묻은 왼손으로 돌이의 어깨를 지시했다.
“적들이 쳐놓은 그물망을 피하기만 해서는 이 사슬을 끊을 수 없다. 놈들이 우리를 묻으려 판 구덩이라면, 그 구덩이를 통째로 뒤엎어 적들의 목을 묻어버리면 그만이다.”
태벽의 안광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리발 같은 독기에 삼수는 순간 소름이 돋아 마른침을 삼켰다.
만수는 지도를 챙겨 들고 동맹원 삼백 명의 주력군을 소집했다. 칠성이 흑철 곤봉을 쥐고 선봉에 섰고, 태벽은 피 흘리는 오른손을 마의 안감 깊숙이 찔러 넣은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어둠이 짙게 깔린 광산의 최하단, 거대하고 음산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제9갱도의 입구에 도달했다. 차갑고 축축한 지하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뼈마디가 시려오는 통증이 태벽의 전신을 자극했다.
삼수가 앞장서서 어두운 갱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칠성과 삼백 명의 노예 군단이 횃불을 밝히며 깊은 지하 공동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태벽 역시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갱도 안으로 천천히 발을 들였다. 공기가 기이할 정도로 건조했고, 축축한 흙냄새 대신 아주 미세하고 달콤한 유황과 숯가루의 냄새가 그의 코끝을 자극했다. 화약의 냄새였다.
‘과연…….’
태벽이 함정을 확신하고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쿵——! 콰아아앙!
그들의 등 뒤에서 거대한 흑철 빗장이 내려앉는 굉음과 함께, 제9갱도의 유일한 입구가 거대한 석판과 무쇠 철문에 의해 완전히 봉쇄되어 버렸다. 사방이 완벽한 암흑 속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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