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집행관 마칠, 피의 참수도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화염이 매캐한 쇳가루 연기와 뒤섞여 주조소 천장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바닥에 고인 핏물 위로 화로의 열기가 닿을 때마다 비린내가 증기처럼 피어올랐다.
철기방의 대장장이들과 철골동맹의 노예들이 새로이 제련된 무기를 쥐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려던 찰나, 주조소 정문 너머에서 흘러든 기괴한 살기가 그들의 목구멍을 턱 막아세웠다.
터벅, 터벅.
느리고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오는 사내의 실루엣은 기이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석판 바닥에 묻어 있던 붉은 피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검은 가죽 옷을 걸치고, 한쪽 뺨에 음산한 뱀 문신을 새긴 사내. 최현도 광산주의 오른팔이자 서산령의 수석 집행관, 마칠(馬七)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하고 두꺼운 참수도, 귀두도(鬼頭刀)의 날을 따라 붉은 선혈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그 피는 방금 전 주조소 외곽에서 탈출하려던 노예들의 것이 분명했다.
“쥐새끼들이 감히 주조소까지 기어들어와 불장난을 쳤구나.”
마칠의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주조소 내부를 싸늘하게 얼려버렸다. 그의 차가운 안광이 모루 옆에 서 있는 강태벽의 주먹을 향했다. 가열의 부러진 채찍 파편들과 용융 제련되어 검붉은 흑빛을 뿜어내는 거친 쇠사슬.
“가열을 때려눕힌 놈이 너냐? 단전이 깨진 가문의 쓰레기라 들었는데, 제법 기괴한 짓을 하고 있군.”
태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왼팔뚝 채찍 자상에서는 여전히 붉은 피가 사슬 틈새로 흘러내리고 있었고, 사병의 창날에 뚫렸던 오른쪽 허벅지에서도 욱신거리는 격통이 치솟았다. 한철천의 얼음물 속에서 얻었던 고질적인 만성 관절통이 습한 연기와 고열 속에서 뼈마디를 송곳으로 찌르듯 자극했다. 태벽은 묵묵히 호흡을 고르며 무통식(無痛式)을 전개해 통증을 억눌렀다. 지금은 단 한 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일류 도객과의 사투였다.
“태벽아, 저놈은 내가 막으마!”
태벽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삼류 도객 출신의 동료 장도(張刀)였다. 장도는 날이 무딘 광산용 벌목도를 치켜들며 마칠을 향해 돌격했다. 그의 야전도결(野戰刀訣) 도세가 바람을 가르며 매섭게 내리뻗었다.
그러나 마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스윽.
마칠의 신형이 기이하게 흔들렸다. 사파의 기이한 신법인 혈사보법(血沙步法)이었다. 장도의 벌목도가 허공을 가르는 찰나, 마칠의 귀두도가 음산한 파공음과 함께 비스듬히 솟구쳤다.
서걱!
“크아악!”
장도의 비명과 함께 붉은 선혈이 공중에 뿌려졌다. 마칠의 단 한 초식에 장도의 어깨 가죽이 깊게 찢겨 나가며 벌목도가 바닥으로 뎅그렁 떨어졌다. 마칠은 쓰러진 장도의 목을 베어 넘기려 귀두도를 높이 쳐들었다.
“비켜라.”
그 순간, 태벽의 묵직한 신형이 장도의 앞을 가로막았다. 태벽의 주먹에 감긴 검붉은 쇠사슬이 쩔렁이며 차가운 마찰음을 냈다. 마칠은 멈칫하며 쓰러진 장도 대신 태벽의 심장을 향해 귀두도의 방향을 틀었다.
“그래, 네놈의 목을 먼저 베어 가문으로 보내주마.”
마칠의 귀두도가 허공에서 기이한 원을 그리며 음풍참수도법(陰風斬首刀法)의 서늘한 기세를 뿜어냈다. 단순한 쇠붙이가 아니었다. 도날을 타고 흐르는 이류 극성의 음산한 내공 기운이 주조소의 열기마저 일시적으로 찢어발겼다.
휘이이익——!
첫 번째 공세. 마칠의 귀두도가 태벽의 목덜미를 향해 번개처럼 베어왔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도풍이 태벽의 목 가죽을 자극했다. 허벅지의 자상 탓에 신속하게 뒤로 물러서는 신법은 쓸 수 없었다.
태벽은 고개를 뒤로 꺾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척추가 부러질 각도였다.
‘연골회피(軟骨回避).’
우드득하는 기괴한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태벽의 목뼈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이며, 마칠의 참수도날이 그의 턱밑을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갔다. 도날에 실린 예리한 검기가 태벽의 마의 깃을 찢어발겼으나, 뼈에는 닿지 않았다.
“이놈이……!”
마칠의 눈에 경악이 스쳤다. 인간의 신체 구조상 불가능한 회피였다. 그러나 마칠은 일류 도객다웠다. 그는 빗나간 도세를 즉각 거두며, 반동의 힘을 이용해 태벽의 무방비한 늑골을 향해 귀두도를 수평으로 강하게 찔러 들어왔다. 좁은 회랑에서 피할 길은 없었다.
태벽은 이를 악물었다. 피할 수 없다면 버텨낸다.
‘폐골갑(閉骨匣)!’
태벽은 다리뼈와 왼팔뼈를 교차하여 가슴과 늑골 전면을 단단히 가로막았다. 피부 아래 요골과 척골, 그리고 정강이뼈가 쇠사슬처럼 굳건하게 맞물려 하나의 거대한 무쇠 방패를 형성했다. 단골 중기(斷骨 中期)의 경지에 도달하여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두꺼워진 그의 강철 골격이 비정상적으로 밀착했다.
깡——!
주조소 내부에 웅장한 쇠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칠의 날카로운 귀두도 끝이 태벽의 교차된 팔뚝 뼈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이류 극성의 음산한 발경이 태벽의 뼈를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려 했으나, 태벽은 전신 뼈대를 전도체 삼아 충격을 땅바닥으로 흘려보냈다.
쿵! 쿵!
태벽의 발밑 석판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쩌적 갈라지며 먼지를 뿜어냈다. 태벽의 신형이 뒤로 서너 걸음 밀려났지만, 그의 뼈는 부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내공도 없는 놈이 대체 어떻게……!”
마칠의 안색이 완전히 굳어졌다. 자신의 참수도는 무쇠 갑옷도 단숨에 찢어발기는 예리함을 지녔거늘, 천한 노예의 맨살과 뼈대에 막혀 가로막힌 것이다. 마칠은 당황하여 귀두도를 회수해 다시금 사선으로 베어 넘기려 했다.
태벽은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허벅지의 자상으로 인한 고통이 뇌를 찔렀지만, 무통식의 힘으로 억누르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무거운 체중이 실린 발걸음이 지면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리고 오른손을 뻗었다. 검붉은 쇠사슬이 감기지 않은, 맨살의 오른손이었다.
‘철포악(鐵器握).’
태벽은 손가락 뼈마디의 밀도를 극한으로 압축하며, 마칠이 내리치려던 귀두도의 시퍼런 칼날을 손바닥으로 정면에서 움켜잡았다.
스으으윽!
“……!”
살이 찢어지고 가죽이 갈라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마칠의 예리한 도날이 태벽의 손바닥 가죽을 파고들어 깊은 자상을 냈다.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터져 나와 마칠의 얼굴을 적셨고, 태벽의 손바닥 틈새로 허옇게 바랜 강철 같은 손가락 뼈대가 그대로 드러났다. 손바닥 가죽이 완전히 베여 뼈가 드러나는 가혹한 대가(Cost)를 치렀으나, 태벽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태벽의 오른손 손가락 뼈들은 마칠의 도날을 움켜쥔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강철 바이스가 칼날을 물어버린 듯했다. 마칠이 경악하여 도를 빼내려 힘을 주었으나, 완력 대결에서 태벽의 무식한 힘을 이길 수 없었다. 귀두도는 태벽의 손아귀 안에서 꽉 묶여 버렸다.
“이, 미친 괴물 놈이……!”
마칠의 이빨이 사정없이 떨렸다.
태벽은 피 흘리는 오른손 주먹에 힘을 쥐어짜며, 뼈 속에 잠재된 탄성을 폭발시키는 외가 비기, 단골경(斷骨勁)을 발동했다. 부러졌다 붙은 뼈마디가 순간적으로 수축했다가 팽창하며 가공할 물리적 파괴력을 방출했다.
우득! 쩌적!
태벽의 손가락 뼈 진동이 마칠의 귀두도 날로 전도되었다. 두껍고 흉폭하던 참수도날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굉음과 함께 유리 조각처럼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비산했다.
쨍그랑——!
명검의 파편들이 용광로 불빛을 받아 붉게 빛나며 주조소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기를 잃은 마칠의 눈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극도의 공포가 서렸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려 혈사보법을 전개하려던 찰나, 태벽의 검붉은 쇠사슬이 감긴 왼주먹이 번개처럼 날아와 그의 턱관절을 정확히 격타했다.
콰직!
목뼈가 비틀려 꺾이는 끔찍한 파열음이 주조소의 정적을 깨뜨렸다. 마칠의 마른 체구가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한 뒤, 차가운 석판 바닥 위로 묵직하게 추락했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흐려져 있었고, 입가에서는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즉사였다.
주조소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철골동맹의 노예들과 철기방의 단원들은 넋을 잃고 태벽의 피 흘리는 주먹을 바라보았다. 일류 도객이자 광산의 무자비한 집행관이었던 마칠이, 단전 없는 범인의 주먹 한 방에 목이 꺾여 절명한 것이다.
태벽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 가죽이 완전히 찢겨 뼈가 보일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그의 심장은 복수의 열기로 뜨겁게 날뛰고 있었다.
그때, 자욱한 화약 연기와 수증기 너머, 주조소 출구 쪽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태벽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곳을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광산의 책사이자 음흉한 지략가인 임 서생(任 書生)이 서 있었다. 임 서생은 마칠의 처참한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공포나 당혹감 대신, 기이할 정도로 차갑고 음산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임 서생은 태벽과 눈이 마주치자, 소리 없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주조소의 짙은 어둠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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