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철 주조소 습격과 무기의 제련
쿠구구구궁——!
지하 갱도의 폐부를 찢어발기는 듯한 대폭발의 여음이 습한 회랑을 타고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굵은 모래와 석탄가루가 태벽의 짓이겨진 어깨 위로 비처럼 쏟아졌다.
“태벽아! 주조소다! 주조소 방향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어!”
칠성이 거구의 몸을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에 쥐인 흑철 곡괭이가 요동치는 대지의 진동을 따라 파르르 떨렸다.
태벽은 주먹을 쥐었다. 가열과의 혈투로 왼팔뚝의 가죽은 갈가리 찢겨 붉은 선혈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병의 창날에 관통당했던 오른쪽 허벅지에서도 검붉은 피가 울컥 솟구쳐 올랐다. 매서운 습기와 탄가루가 상처 틈새로 파고들 때마다, 한철천의 얼음물 속에서 얻었던 고질적인 만성 관절통이 뼈마디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으로 변해 태벽의 전신을 옥죄었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쓰러지고 싶은 육체의 절규가 뇌를 때렸다. 하지만 태벽은 이빨을 악물었다. 그의 안광 속에서 검붉은 불꽃이 일었다.
‘무통식(無痛式).’
뇌로 향하는 모든 통증의 감각을 분노의 의지로 강제 차단했다. 뜨거운 핏물이 허벅지와 팔뚝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태벽의 얼굴은 서리발처럼 차갑게 굳어 들어갔다. 지금 쓰러질 수는 없었다. 그곳에는 자신에게 단전 없는 범인(凡人)의 길을 열어준 스승 철무진과, 우직하게 화로를 지키던 젊은 대장장이 용이가 있었다.
“가자, 칠성 형. 주조소로 달린다.”
태벽의 쇳소리 섞인 묵직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은 연기를 뚫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바닥을 디딜 때마다 허벅지의 자상이 찢어지는 감각이 무형의 진동으로 전해졌지만, 태벽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손목에는 방금 격퇴한 가열의 부러진 붉은 쇠채찍 파편들이 흑철 쇠사슬 틈새에 엉망으로 얽혀 있었다. 채찍에 박혀 있던 예리한 쇠가시들이 이동할 때마다 사슬과 마찰하며 쇳소리를 냈다.
흑철 주조소에 가까워질수록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뜨거워졌다. 사방을 가득 메운 검은 연기 사이로 붉은 화염이 일렁였다. 주조소의 거대한 두꺼운 철문은 이미 절반쯤 날아가 뒤틀려 있었고, 그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지옥의 아가리를 연상케 했다.
“막아라! 노예 놈들이 이쪽으로 오지 못하게 방패벽을 세워라!”
주조소 내부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철문 너머로 진입하자, 자욱한 열기 속에서 무장한 광산 경비대 사병 수십 명이 대형 철제 장방패를 맞물려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그들은 주조소 중앙의 거대한 용광로와 제련 화로 구역을 장악한 채, 철골동맹의 진입을 결사적으로 저지하려 하고 있었다.
“칠복이의 독초가 통하지 않은 놈들이로군.”
칠성이 이빨을 갈았다.
동맹원인 칠복이 경비대 식당의 국솥에 마비 독초를 타서 대부분의 간수들을 무력화시켰으나, 주조소를 경비하는 정예 사병들은 독초의 영향을 피한 모양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독기와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쉬이익! 핏, 피싱!
방패벽 뒤편에서 사병들이 조총과 노궁의 시위를 당겼다. 좁은 주조소 입구를 향해 수십 발의 쇠화살과 탄환이 일제히 빗발쳤다.
“태벽아, 조심해!”
칠성이 곡괭이를 휘둘러 화살 몇 발을 쳐냈지만,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의 궤적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몇몇 노예들이 날아오는 화살과 조총의 열기에 비명을 지르며 화상을 입고 뒤로 물러섰다. 화로에서 비산하는 뜨거운 쇳가루와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 살을 태웠다.
태벽은 전방을 노려보았다. 다리의 부상으로 인해 신속하게 좌우로 회피하며 파고드는 신법은 쓸 수 없었다. 정면 돌파를 시도하다가는 동료들이 먼저 화살비에 목숨을 잃을 터였다.
그의 눈에 주조소 한구석, 채굴된 원석을 정련하기 위해 쌓아둔 백 근 무게의 무거운 흑철 괴(黑鐵 塊)들이 들어왔다.
태벽은 주저 없이 흑철 괴 무리로 돌진했다. 창날 같은 화살 두 발이 그의 어깨와 옆구리를 스치며 가죽을 찢었지만, 뼈에 닿는 순간 쇠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화살촉이 찌그러져 튕겨 나갔다. 단골 초기(斷骨 初期) 경지에 이른 그의 무쇠 골격은 이미 평범한 화살 따위로는 뚫을 수 없는 경도에 도달해 있었다.
태벽은 백 근이 넘는 거대한 흑철 괴 하나를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우두두둑!
그의 척추와 어깨 관절이 비정상적으로 맞물리며 근육이 터질 듯 팽창했다. 내공의 기운은 단 한 모금도 없었지만, 뼈의 밀도와 순수한 질량의 힘이 그의 두 팔에 실렸다.
“비켜라.”
태벽이 쇳소리 나는 포효와 함께 거대한 흑철 괴를 전방의 방패벽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던졌다.
투우웅——!
백 근의 무쇠 덩어리가 엄청난 파공음을 내뿜으며 허공을 가르자, 방패 뒤에 숨어 있던 사병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화살이나 검기를 막기 위해 설계된 철제 장방패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암석과도 같은 물리적 질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태벽이 던진 흑철 괴가 사병들의 철제 방패벽 중앙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단단하던 방패벽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방패를 지탱하고 있던 사병 세 명의 팔뼈와 쇄골이 일격에 부러지는 끔찍한 파열음이 주조소 내부에 울려 퍼졌다.
“크아아악!”
방어선이 단 한 방에 허무하게 붕괴되었다.
“돌격하라! 저 개새끼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칠성이 울부짖으며 가장 먼저 붕괴된 방패벽 사이로 뛰어들었다. 철골동맹의 노예들이 녹슨 곡괭이와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관군 사병들을 덮쳤다.
그 와중에도 주조소 깊은 곳, 거대한 용광로 바로 앞에서는 노예 대장장이 용이가 굵은 땀방울을 비 오듯 흘리며 거대한 풀무를 필사적으로 당기고 있었다. 용이의 가죽 앞치마는 이미 불똥에 타서 누더기가 되어 있었고, 그의 구리빛 팔뚝은 고열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바로 뒤편에는, 양눈이 멀어 흉터 가득한 백발의 거인 철무진이 지팡이를 짚은 채 굳건히 서 있었다. 철무진은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주조소 내부의 공기 흐름과 쇠를 두드리는 진동만으로 전황을 완벽히 읽고 있었다.
“용이야! 풀무질을 멈추지 마라! 화로의 온도를 극한으로 올려라!”
철무진의 웅장한 목소리가 용광로의 끓는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예, 스승님!”
용이가 이빨을 악물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풀무를 당겼다.
푸우우욱! 화아아악——!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화염이 순간적으로 팽창하며 주조소 내부의 온도를 섭씨 수천 도에 달하는 극한의 고온으로 끌어올렸다. 공기 자체가 타들어 가는 듯한 열기가 밀려들자, 무거운 철제 갑옷과 투구로 전신을 무장하고 있던 경비대 사병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 뜨겁다! 갑옷이…… 갑옷이 달아오른다!”
“숨이…… 숨이 안 쉬어진다!”
철제 갑옷은 열을 가두는 가마솥과 같았다. 고온의 열기가 갑옷 내부를 채우자, 사병들은 스스로의 갑옷 안에서 구워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들의 손가락이 열기로 인해 흐느적거렸고, 꽉 쥐고 있던 장검과 창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태벽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철기타(鐵器打)!”
태벽은 주먹에 감긴 사슬을 휘두르며 열기에 허덕이는 사병들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격타했다. 단골경의 충격파가 뜨겁게 달아오른 사병들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 그들의 늑골을 차례로 바스러뜨렸다.
우드득! 콰직!
사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용광로 주변의 뜨거운 석탄 더미 위로 쓰러졌다. 칠성과 철골동맹원들은 사병들이 떨어뜨린 흑철 곤봉과 검을 주워 들고 남은 적들을 완벽히 제압하기 시작했다.
“태벽아! 어서 이쪽으로 오너라!”
철무진이 태벽의 방향을 향해 외쳤다. 그의 장대한 손이 태벽의 피 흘리는 왼팔을 짚었다.
“가열의 무기를 부러뜨렸구나. 그 채찍의 파편들이 네 사슬에 엉켜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예, 스승님.”
“용이야! 가열의 부러진 붉은 채찍 조각들을 당장 도가니에 넣어라! 저 채찍은 가문에서 하사한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저것을 녹여 태벽이의 흑철 쇠사슬과 융합해야 한다!”
철무진의 지휘 아래, 용이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용이는 태벽의 주먹에 엉켜 있던 붉은 채찍의 부러진 파편들을 집게로 뜯어내어 붉게 끓어오르는 도가니 속에 던져 넣었다.
치이이이익——!
고온의 용융 액체 속에서 가열의 채찍 파편들이 서서히 녹아내리며 푸른빛이 도는 특수 합금 액체로 변해갔다.
“태벽아, 주먹의 사슬을 모루 위에 올려라.”
철무진의 무뚝뚝하지만 엄격한 명령에 태벽은 왼손과 오른손의 녹슨 흑철 쇠사슬을 벌겋게 달아오른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용이가 도가니를 들어 올려 끓어오르는 붉은 합금 액체를 태벽의 흑철 쇠사슬 위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붉은 액체가 녹슨 사슬의 미세한 균열과 마디 틈새로 흘러들어가며 치직거리는 연기를 내뿜었다.
“두들겨라! 뼈의 진동을 사슬에 전도해라!”
철무진이 소리쳤다.
태벽은 주먹을 쥐고 자신의 단골 초기 뼈마디의 미세한 진동을 모루 위의 사슬을 향해 방출했다. 동시에 용이가 무거운 망치를 들고 사슬의 마디마디를 정밀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깡——!
주조소 내부에 웅장하고 묵직한 아날로그 쇠 소리가 메아리쳤다. 망치가 내리칠 때마다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했고, 태벽의 뼈 진동과 용이의 망치질이 하나로 어우러져 사슬의 밀도를 극한으로 압축해 나갔다. 가열의 붉은 채찍이 지녔던 특수 합금 성분이 태벽의 투박한 흑철 쇠사슬에 완전히 녹아들며, 사슬의 표면이 짙은 검붉은 빛을 띠는 가공할 무기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구속구가 아니었다. 이제는 천하의 그 어떤 명검과 맞부딪쳐도 결코 부러지지 않을, 태벽만의 시그니처 무기인 ‘철기 패왕 사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동맹원들의 무장도 끝났습니다!”
칠성이 주조소 무기고에서 찾아낸 흑철 곤봉들을 노예들에게 나누어 주며 외쳤다. 삼백 명의 노예 저항군이 마침내 무쇠 무기를 손에 쥐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으으으으——.
주조소 내부의 뜨겁던 공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듯한 기괴한 살기가 정문 입구로부터 흘러들었다.
철컥, 철컥.
느리고 규칙적인,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무너진 주조소 철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사방을 가득 메웠던 붉은 화염과 연기가 그 발걸음 소리와 함께 양옆으로 갈라졌다. 비릿한 피비린내가 공기 중에 짙게 풍겨왔다.
태벽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검은 가죽 옷을 걸치고, 한쪽 뺨에 뱀 문신이 새겨진 마른 체구의 사내. 그의 손에는 길고 두꺼운 참수도(귀두도)가 들려 있었고, 도날을 따라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져 석판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최현도의 오른팔이자 광산의 수석 집행관, 마칠(馬七)이었다.
마칠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주조소 정문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왔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가 태벽의 주먹에 감긴 검붉은 쇠사슬을 향해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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